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16)
신마의선-116화(116/500)
신마의선 (116)
범계위가 실소했다.
“도는 개뿔. 도둑질이 도(道)면, 살인은 인(仁)이겠다.”
단악선을 제외하곤 어느 누구 하나 가두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가두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명분과 실리를 취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게 꼭 단 의원이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위치만 말해. 내가 가져올 테니까.”
가두달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직 단 의원만 가능한 일입니다.”
“왜?”
“그곳에 설치된 절진(絶陣) 때문입니다.”
그 말에 단악선이 눈을 빛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절진이요?”
고개를 끄덕인 가두달이 중인들을 향해 설명을 이어 갔다.
“그 진법에는 유일한 틈이 있는데, 겨우 아이 한 명이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축골공(縮骨功)을 익히지 않은 이상 들키지 않고 몰래 잠입하는 건 불가능하죠.”
이립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절진이라 불릴 만한 진법이 설치된 곳은 강호 전체를 뒤져도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거기가 어딘데?”
“그게…….”
말끝을 흐리던 가두달이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운진암(雲陣庵)입니다.”
“뭣?”
이립이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중인들을 향해 이립이 한숨을 내쉬었다.
“운진암은 형산파 내부에 있습니다.”
그것도 중지(重地) 중의 중지다.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장소.
형산파 내부인들조차 들어가기 위해선 허락을 득해야 하는 곳이다.
그곳을 관장하는 이는 철담검객 양일소로, 현 장문인의 다음 서열인 장로이며 그가 직접 운진암을 책임지고 관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소였다.
“명문정파의 금지를 어찌 그리 쉽게 말한단 말인가!”
이립의 질책에 가두달이 웃으며 답했다.
“전 원래 금지를 다니는 사람입니다만.”
“…….”
이립은 그만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설화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 신물이 왜 형산파에 있는 거지?”
초악량도 거들었다.
“굳이 훔칠 필요도 없이, 그 사실만 알려 줘도 될 것 같은데?”
“제가 왜요?”
가두달이 뻔뻔한 얼굴로 반문했다.
“제가 그럴 이유도 없을뿐더러, 설혹 제가 말을 해 준다 한들 저들이 믿지도 않겠지요. 오히려 덤터기를 씌워 쫓아올 겁니다.”
“쫓다니?”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모두 죽었으니까요.”
“……?”
“원공보검을 빼돌린 사람이 누구일 것 같습니까?”
의아해하는 중인들을 향해 가두달이 히죽 웃었다.
“그게 바로 양일소입니다.”
가두달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이립이 깜짝 놀랐다.
“그가…… 왜?”
당대 형산파의 장문인인 진조운의 사형이 바로 그다.
더구나 그들 사형제 사이는 무척이나 돈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속사정이야 저는 모르죠.”
그때였다.
“그런데 아저씨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단악선의 질문에 가두달이 선선히 대답했다.
“도박장에서 들었다.”
“도박장이요?”
“그래. 형산 문하 중 도박에 미친 놈이 하나 있었거든.”
예전에도 지금도, 가두달은 이따금 도박장을 찾았다. 물론 도박을 즐기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도박장엔 간혹 도박 자금 때문에 물건을 담보로 잡히는 경우가 많거든.”
개중에는 뛰어난 가치를 지닌 것도 있었다.
“그 맡기는 물건 중엔 정보라는 것도 있고.”
어느 날.
평소처럼 지붕에 은신해 정보를 모으고 있던 중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들었다.
“놈은 자신의 사부가 형산파의 신물인 원공보검을 몰래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는 주인 없는 물건이니 언제든 훔쳐 올 수 있다고도 했고. 대신 자신도 목숨을 걸어야 하니 값을 높게 쳐 달라고 했다.”
그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가두달은 즉시 운진암에 잠입했다.
“그런데 진법 때문에 애를 먹었지.”
어떻게 겨우겨우 빠져나오긴 했는데, 하마터면 양일소에게 들킬 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도박장에서 원공보검과 관련된 이야기를 언급하거나 들었던 당사자들이었다.
“죽은 자들 중에는 원공보검의 소재를 알린 형산 문하도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가 양일소의 제자였더군. 흉수가 누군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
“그런데 왜 끝까지 훔치지 않고 포기하셨어요?”
“굳이 위험을 감수할 가치를 못 느꼈으니까. 형산파의 신물을 훔쳐 봐야 내겐 가치도 없고.”
전에 가두달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가 아저씨는 구대문파의 보물들을 훔쳐 중원에 전시할 계획이라고 하셨죠?”
가두달이 깜짝 놀라 이립 쪽을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고리눈을 치켜뜬 채 노려보는 이립의 살벌한 눈빛을 마주한 가두달이 헛기침을 하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기를 잠시.
“어쨌거나 은밀히 숨어 들어가 조용히 들고나오는 것이 상책입니다.”
원공보검을 가져와 돌려준다면 형산파의 장문인은 고마워할 것이고, 기꺼이 연판장에 수결을 채워 넣을 것이다.
양일소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장로라는 체면상 그가 나서서 원공보검을 자기가 잃어버렸다고 자백할 리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곤란한 표정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가두달의 의견이 사실이라면 분명 괜찮은 수단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단악선이 직접 나선다는 것은 조금…….
반면 가두달은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투도는 단순히 물건만 몰래 가져오는 게 전부가 아니다.
훔치는 물건의 가치에 지금 같은 극적인 이야기가 더해졌을 때 진정한 예술로 승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성취감은 술과 도박으로 얻는 쾌락과는 격이 다르다.
‘흐흐. 일단 훔치는 맛이 어떤지 알게 해 주마.’
자고로 한 번도 안 훔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훔친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런 가두달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단악선이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제게 맡겨 주세요. 제 생각에도 이 방법이 서로에게 피해가 적을 것 같아요.”
“하지만 넌 도둑질을 해 본 적이 없지 않느냐?”
한설화의 우려에 단악선이 가두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 아저씨가 도와주시겠죠.”
“아무렴.”
고개를 끄덕인 가두달이 신이 나 소리쳤다.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마!”
희희낙락하는 가두달과 달리 한설화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고집스런 단악선의 눈빛.
그 완고한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끝내기 무섭게 단악선은 가두달에게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지금 이게 잘하는 짓 맞는 거유?”
초악량과 한설화도 묘한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투도술까지 익혀야 한다니. 하나를 극한까지 익히는 것도 어려운 법인데, 이젠 하다 하다 잡기까지 익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단악선은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가두달에게 전수받은 소매치기 수법.
이를 연습하는 단악선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게다가…….
“저것 보슈. 심지어 벌써 저만큼 늘었수.”
단악선은 지난번 가두달에게 받았던 방울을 소리 없이 옮기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과 달리 지금은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훌륭하다!”
심지어 가두달마저 탄성을 터트릴 정도였다.
자신의 소매에 감춘 방울을 소리 없이 빼 가는 단악선의 솜씨는 천하제일의 신투인 그가 보기에도 손색이 없는, 실로 대단한 한 수였던 것이다.
재능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헤헤. 고마워요. 가 아저씨의 가르침 덕분이에요.”
겪으면 겪을수록 몹시 탐이 나는 녀석이었다.
“훌륭한 스승은 제자에게 가야 하는 길을 보여 주고, 훌륭한 제자는 스승에게 가지 못한 길을 보여 준다더니…….”
가두달이 진심으로 감탄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너야말로 내가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투도의 경지를 밝힐 사람일지도 모르겠구나.”
그 말에 범계위의 눈썹이 꿈틀했다.
“누구 마음대로 제자고 스승이야?”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진 범계위의 눈빛에 가두달이 멋쩍게 웃었다.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두달의 속내는 달랐다.
이미 단악선 말고는 다른 사람을 후계자로 생각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범계위가 한숨을 흘렸다.
“저러다 이상한 것에 눈을 뜨는 거 아닌가 몰라.”
우려를 담은 그 말에 결국 초악량이 나섰다.
곧장 단악선에게 다가간 초악량이 단악선을 만류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구나.”
초악량과 시선을 마주한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이 수련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
“투도술이 제 의술에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에요.”
“소매치기 수법이 말이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초악량을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아 보시겠어요?”
“눈을 감으라고?”
“네.”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마지못해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이제 눈을 뜨셔도 돼요.”
단악선의 말에 눈을 뜬 초악량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하는 단악선의 얼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악선이 손을 들어 초악량의 손등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
무심코 자신의 손등을 확인한 초악량이 깜짝 놀랐다.
“대체 언제?”
엄지와 검지가 만나는 합곡혈(合谷穴)에 언제부터가 침 하나가 꽂혀 있었다.
“전혀 아프지 않았죠?”
초악량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기는커녕 느낌조차 없었다.
“방울을 소리 없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손끝의 미세한 감각을 최대한 활용해야 해요. 그런데 침도 결국 손으로 놓는 거잖아요. 방울을 옮기는 느낌과 감각을 응용하니 이런 것도 가능해진 거예요.”
배시시 웃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은 할 말을 잃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금나수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초악량이 살짝 눈살을 찡그렸다.
“그깟 잡기를 어찌 나의 금나수와…….”
자존심이 상한 초악량이 불쾌한 눈빛으로 말끝을 흐렸다.
“한번 보여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단악선의 말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던 이립이 신형을 일으켰다.
“그럼 어디 가볍게 비무를 해 볼까?”
마침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다 생각한 이립이 성큼성큼 걸어와 단악선과 마주 섰다.
그렇게 단악선의 선공으로 시작된 비무.
이립은 구파일방의 한자리를 차지한 개방의 방주. 그만큼 무공 역시 나름 일가견이 있었다.
당연히 비무 자체는 그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립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떠올랐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이립이 놀란 눈으로 초악량을 힐끔거렸다.
분명 무공을 익힌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다 들었는데, 단악선의 손끝은 너무도 섬세했다.
이는 비무를 지켜보던 홍적문도 마찬가지.
아무리 천하오절에게 사사했다 하나 단악선의 금나수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 오묘한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천하삼대권사라 불리는 자신조차 그 맛을 보고 싶을 정도였다.
‘저게 일개 어린애의 실력이라고?’
단악선의 금나수는 이미 절정에 이른 고수라 해도 믿을 정도로 잘 정돈되고 또 유려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놀라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단악선에게 금나수를 전수한 초악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