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17)
신마의선-117화(117/500)
신마의선 (117)
“힘을 다루는 방법을 깨달았구나!”
이전보다 훨씬 유연해진 단악선의 움직임에 초악량이 탄성을 흘렸다.
상황에 맞춰 뿌리고 거두는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상대의 힘이 출발하기 전에는 강하게 치고 들어가며, 상대의 힘이 막 지났을 때는 부드럽게 흘리는…….
이른바 강재타력전(剛在他力前), 유승타력후(柔乘他力後)의 묘리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놀림만 보면 단악선은 결코 빠르지 않았고, 신묘막측하지도 않았다. 다만 서두름이 없고 차분한 상태에서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필요한 순간에 정확한 움직임을 보였다.
‘피망아정대(彼忙我靜待), 지박임군투(知拍任君鬪).’
기억하기 쉽도록 요점만을 간추려서 노래 형식으로 가르쳤던 가결(歌訣).
그걸 손끝에서 재현해 내고 있었다.
“적어도 몇 년은 더 수련해야 깨달으리라 생각했건만…….”
초악량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우리 단 의원은 천재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보여 줬다 생각했는지 단악선이 손을 거두며 훌쩍 물러섰다.
“계속 배워도 되겠죠?”
초악량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렇게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 주는데야 반대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드디어 단악선은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게 방울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가두달이 어디에 숨겼는지 알려 주지 않아도 정확하게 방울을 빼 오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으로 대충 준비가 끝났구나.”
단악선의 실력을 확인한 가두달이 한껏 들뜬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밤 움직이자.”
“네, 좋아요. 그런데 원공보검은 운진암 어디에 있는 거예요?”
단악선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가두달에게 모아졌다.
잠시 망설이던 가두달이 입을 열었다.
“운진암 안에 다섯 개의 개인 연공실이 있다. 본인이 아니면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지. 장문인과 장로들에게 각각 하나씩 배정되어 있는데, 양일소는 그중 두 번째 연공실에 원공보검을 숨겨 두고 수련을 하고 있었다.”
“직접 보신 거예요?”
“나도 진짜인지 의심스러워 오랫동안 지켜봤지. 그런데 딱 한 번 연공실에서 검을 가지고 나온 적이 있다. 연공실이 좁았는지, 아무도 없는 먼 산속에서 홀로 수련을 하더구나.”
“이상하네요. 그렇게까지 원공보검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나요?”
단악선의 의문을 들은 이립이 설명을 더했다.
“원공보검에는 전해지는 전설이 있다.”
바로 형산파의 실전된 절학인 연혼팔검(燃魂八劍)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양일소가 원공보검을 빼돌린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것 말고는 달리 짚이는 바가 없었다.
아마도 양일소는 소문과는 달리 사제인 진조운에 대한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양일소 스스로 장문인 자리를 양보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경쟁에서 밀린 것이라면 말이지.”
진조운의 무위가 사형인 양일소를 월등히 뛰어넘는다는 이야기는 무림에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마 그게 열등감을 부추겨 이런 일을 벌이게 만든 것이 아닐까?
“그분은 원공보검의 비밀을 풀었을까요?”
단악선의 물음에 이립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진 못한 것 같다. 원공보검까지 빼돌릴 정도의 놈인데 순순히 장문인 자리를 양보했을 리 없지. 원공보검이 사라진 게 십 년 전이고, 진조운이 장문인 자리에 오른 건 오 년 전이다. 지금껏 양일소가 잠잠한 걸 보면 아직 비밀을 풀지 못한 걸로 봐도 무방할 게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은 초악량이 가두달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진법이 있다면서?”
아무리 투도술을 익힌다 한들 진법을 뚫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에이, 왜 이러십니까. 저 귀영마자입니다. 제가 괜히 신투라 불리는 게 아니죠.”
가두달이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렸다.
“파훼법은 진즉에 찾아냈습니다.”
“파훼법?”
못 미더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초악량의 눈빛에 가두달이 정색했다.
“그럼요. 그걸 위해 무려 일 년이나 진법 공부에만 매달렸는걸요.”
범계위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도둑질하려고 진법 공부까지 한다고?”
“하늘 아래 제가 훔치지 못하는 건 없어야 하니까요. 신투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뭐든지 해야죠.”
고개를 끄덕인 가두달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여러 번 접힌 종이였다.
가두달이 종이를 펼치자 깨알 같은 글씨와 그 사이로 그려진 복잡한 표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그 파훼법입니다. 기존의 공부만으로는 부족해 나머진 직접 몸으로 부딪쳐 가며 깨우쳐야 했지요.”
종이 안에 빼곡히 적힌 방대한 양의 정보에 범계위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대체 몇 번이나 간 거야?”
“한…… 서른 번쯤?”
“안 들킨 게 용하군.”
“그게 제 일이니까요.”
이립이 질린다는 눈빛으로 가두달을 쳐다봤다.
다른 건 몰라도 도둑질에 대한 집념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음?”
유심히 파훼법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확인하길 잠시. 이내 팔짱을 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혹시 다른 건 없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가두달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거라니?”
“연공실이 다섯 개라면서요? 이건 두 번째 연공실의 진법을 파훼하는 방법이고요.”
“다른 곳도 물론 있긴 한데…….”
가두달이 곤란한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어 입구 쪽만 살짝 건드리다 말았거든.”
“제가 확인해 봐도 될까요?”
가두달이 품속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의 것처럼 방대한 양이 담겨 있지 않았다.
단악선의 이를 가져와 처음의 것과 비교하며 무언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종이 안의 내용에 한참을 몰입해 있던 단악선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단악선이 의아해하는 일행들을 돌아봤다.
“어쩌면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뭣!”
가두달이 놀라 펄쩍 뛰었다.
이제껏 공을 들였는데 자칫 지금까지 기울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그래, 단 의원.”
가두달이 황급히 단악선을 설득했다.
“우린 그저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아 주는 것뿐이야. 절대 나쁜 짓이 아니라고.”
“알아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뭐? 대체 무슨 수로?”
“일단 가죠. 자세한 내용은 가면서 말씀해 드릴게요.”
자신만만한 단악선의 모습에 범계위가 가두달을 쏘아봤다.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처음부터 단 의원에게 파훼법을 보여 주면 되는 거였어.”
이립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네. 단 의원에게 도둑질은 안 어울려. 앞으로 큰일을 해야 할 강호의 동량이 도둑질이라니……. 괜히 흠 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게 여러모로 좋지.”
이립이 황망한 얼굴로 서 있는 가두달을 향해 고소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배운 잡기도 잊어버리게.”
“네? 왜요?”
단악선의 반문에 오히려 이립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쓸모도 없어지지 않았나?”
“하지만 많은 도움이 되는걸요.”
가두달이 감격한 표정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이 자리에서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은 그나마 단악선이 유일했던 것이다.
“역시 그렇지?”
가두달이 단악선을 향해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앞으로 더욱 재미있는 것들을 가르쳐 주마.”
이왕 이렇게 된 것.
모로 가도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배우면 쓰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 공공문의 투도술을 모두 익히고 나면 분명 시험해 보고 싶어서라도 손가락이 근질거릴 것이다.
‘그저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나마 이를 위로 삼아 가두달은 쓰린 속을 달랬다.
* * *
남악묘(南岳廟)는 형산 곳곳에 자리 잡은 무수한 전각들 중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창건 시기조차 정확히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만큼 과거 몇 차례의 큰 화재로 전소된 적도 있었고, 권력자들에 의해 훼손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재건되어 지금과 같은 장대한 규모를 갖추었다.
영성문(欞星門)을 비롯한 괴성각(魁星閣)과 정천문(正川門), 그리고 어비정(御碑亭)에 이르기까지, 남악묘 안에 위치한 그 어느 건축물도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특히나 대전은 그 안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지닌 건축물이었다.
지붕 두 개를 겹쳐 놓은 듯한 헐산식(歇山式) 지붕.
그 아래로 형산의 칠십이 개 봉우리를 상징하는 동일한 숫자의 돌기둥이 대전을 받치고 있었다.
“……해서 개방 방주와 단악선이라는 이름을 지닌 신의의 아들이 수일 내로 본 파를 방문할 것 같습니다.”
형산파 내에서 지객을 담당하는 이 대 제자의 보고에 대전 안에 모여 있던 인사들이 반색을 했다.
“나쁘지 않군요. 청성파가 아닌 본 파의 이름을 연판장에 올린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구대문파의 지위를 되찾는 것이야말로 본 파의 염원이었으니까요.”
형산파의 장문인인 진조운은 말없이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이견이 없었다.
“과거 신의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있으니 허락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개방 방주까지 직접 온다니, 그의 체면을 세워 주는 일도 되고요.”
“흥! 우리가 마의로 인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모두 잊으신 것 아니오?”
대전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사람에게 모아졌다.
장문인의 사형이자, 장로직을 맡고 있는 양일소.
뜻밖에도 그가 직접적으로 반대를 표명한 것이다.
“단악선이라는 아이는 신의의 아들이지만 마의의 자식이기도 하오. 그 증오스러운 핏줄을 어찌 본 파 내에 들인단 말이오?”
그렇게 말한 양일소가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과거를 잊은 문파에 미래란 없소.”
양일소가 고리눈을 부릅뜨자 몇몇 인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개중에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이 본 파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현실? 방금 현실이라 했소?”
상대의 말을 자른 양일소가 호통을 쳤다.
“아직도 그날 죽은 제자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오. 잠들 때마다 그 아이들의 비명이 잊히지 않아 지금도 밤잠을 설친단 말이오.”
“…….”
대전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모습에 진조운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토록 격렬한 반대에 부딪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십오 년 전.
형산파는 흑도 문파 한 곳과 이권을 놓고 충돌했다.
형산을 끼고 있는 형산현(衡山縣)은 예로부터 수로와 육로에 인접해 교통이 발달하고, 그로 인해 주변 지역의 농산물이 모여드는 집산지다.
당연히 이권이 모여드는 곳이다 보니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도 가득했는데, 하필 형산파가 내부 문제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흑무방이라는 무리가 은밀하게 터를 잡았다.
형산파가 이를 눈치챘을 때는 그들은 이미 엄청나게 세를 확장한 뒤였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사실 흑무방은 단일 규모의 흑도 방파가 아니었다.
수장인 귀왕마륜(鬼王魔輪) 조고 아래 염효 집단인 백사회와 녹립칠실이채에서 파견된 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던 것이다.
조고는 형산파에 큰 원한을 지닌 인물이다.
과거 그의 손에 형산파 제자 한 명이 살해당한 적이 있었기에 형산파는 그를 추적했고, 결국 형산의 천라지망에 붙잡혀 네 자루의 검에 가슴과 배를 관통당한 채 천장단애 아래로 떨어졌다.
죽은 줄 알았던 그가 흑무방을 이끌고 있었다.
뒤늦게 형산파는 대책을 강구했지만 조고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형산 속가의 무관을 시작으로 표국에 이르기까지.
고수들을 대거 이끌고 야음을 틈타 선공을 감행한 것이다.
그로 인한 형산파의 피해는 실로 적지 않았다.
조고와 흑무방은 쓸어 냈지만 당시 수많은 제자들이 그 일로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양일소가 쐐기를 박았다.
“잊지 마시오. 조고를 살려 준 사람이 바로 그 생사마의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