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19)
신마의선-119화(119/500)
신마의선 (119)
이립이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보았다.
그토록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정을 지닌 아이가 이렇게까지 단호하고 확고한 태도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상대는 형산파의 장로였다.
주눅 들기는커녕 오히려 시원하게 받아칠 정도로 강단이 있을 줄이야.
정말이지 통쾌하기 짝이 없었다.
홍적문 역시 마찬가지.
단악선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까지.
하나같이 일대종사급인 고수들이 그토록 단악선을 아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양일소의 추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할 말이 없어지자 궁색한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도 무림문파 중에 마의의 핏줄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 혈육이 형산파에 발을 들였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치욕이고 모욕이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양일소가 단악선을 쏘아봤다.
“정파인이 들어설 수 없는 금지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 생각하시오?”
이립은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장로께서는 무언가 큰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구려. 우리가 찾아온 것은 비단 연판장 때문만이 아니오. 오히려 그건 부수적인 문제지.”
“그게 무슨 소리요?”
“원공보검. 잃어버린 귀 파의 신물을 되찾을 방법을 알려 드리러 온 것이오.”
그 말에 진조운을 비롯한 모든 형산 문하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양일소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랐다.
이립이 진조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곽유라는 자에 대해 알고 있소?”
“곽유? 곽유라면…….”
이립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한 진조운이 양일소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곽유는 양일소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실종되어 소식조차 없는 제자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일까.
양일소는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런 양일소의 모습에 이립은 가두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도박 중독자라는 사실을 장문인께서는 알고 계셨소이까?”
“네? 그런…….”
금시초문이라는 듯 진조운이 크게 당황했다.
창백한 얼굴로 서 있던 양일소가 뒤늦게 어색하게 한숨을 터트렸다.
“하아……. 제자의 과오를 드러내는 걸 원치 않아 내 선에서 묻으려 했건만…….”
그런 양일소의 모습에 이립은 내심 조소를 삼켰다.
하나 사실을 알 리 없는 양일소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 도박에 빠졌다는 말은 사실이오. 아무리 타이르고 혼내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더이다. 그래서 본 파의 누가 되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쳐 냈소이다. 녀석은 실종이 된 게 아닙니다. 제가 파문한 것이지요.”
“아니, 사형! 어찌 그런 중차대한 문제를 혼자 결정한단 말입니까?”
놀란 진조운의 말에 양일소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염치없소이다, 장문인. 하나 이는 본 파의 명예와도 직결된 문제이기에 부득이하게 그 아이를 거둔 내가 직접 결정할 수밖에 없었소.”
이립이 나직한 어조로 껴들었다.
“곽유는 죽었습니다.”
“……!”
놀란 진조운을 향해 이립이 말을 이어 갔다.
“그의 시신을 확인한 증인이 있습니다만 그를 죽인 흉수는 보지 못했다더군요.”
그 말에 진조운은 탄식하고, 양일소는 안도했다.
“하나 그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귀 파의 신물인 원공보검의 행방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격앙한 얼굴로 반문하는 진조운을 향해 이립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립이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그가 죽기 전, 드나들던 도박장에 원공보검의 행방을 흘렸다더군요. 해서 이와 관련해 수소문을 해 봤는데,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이 죽거나 실종되었지요.”
“하면 어떻게…….”
“다행히 당시에 곽유가 남긴 말을 들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 말에 양일소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그럴 리가!”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지자 뒤늦게 당황한 양일소가 진조운을 향해 말했다.
“장문인께서는 부디 황당무계한 강호의 소문에 휘둘리지 않으시길 바라오. 강호의 소문이란 게 으레 그렇듯 왕왕 와전되고 부풀려지기 마련 아니겠소?”
“조사님들께서 물려주신 신물입니다. 설령 그것이 한낱 헛된 소문에 불과할지라도 확인은 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단호한 진조운의 태도에 양일소는 입을 다물었다.
사부께서 물려주신 신물을 잃어버린 뒤 단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를 괴롭혔고, 최근에는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 원공보검을 복원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 왔습니다.”
한숨을 흘린 진조운이 말을 이어 갔다.
“비록 조사님들의 유지가 담긴 물건은 아니나, 후대를 위한 본 파의 신물은 반드시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기울여 원공보검의 재질과 같은 운철을 구했다는 것이다.
“허……. 대단하시구려. 그 운철이라는 게 돈만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이립의 탄성에 진조운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말해 뭐할까.
모종의 일로 청성파가 갑작스레 몰락하지 않았다면…….
향후 십 년간은 구대문파 언저리도 얼씬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그게 어디 제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었겠습니까. 그만큼 조사님들께서도 본 파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신 것이겠지요.”
“하지만 복원을 한다 해도 문제가 남지 않소? 듣기로는 원공보검에는 형산의 비기가 숨겨져 있다 들었소만?”
진조운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와전된 소문일 뿐입니다. 원공보검에 글귀가 있긴 합니다만, 그것은 후대를 위한 조언일 뿐이지 무공과 관련된 요결이 아닙니다.”
그 말에 눈에 띄게 양일소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를 놓칠 이립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진짜 원공보검을 되찾는 게 더 좋지 않겠소?”
“말해 뭣 하겠습니까. 그렇게만 된다면야 바랄 것이 없지요.”
상황이 이쯤 되니 양일소는 불안해졌다.
대체 이립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일소가 정색하며 진조운을 바라봤다.
“본 파의 신물을 찾는 일은 오직 본 파의 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면 강호에 우스갯거리가 될 거요. 게다가…….”
“그만. 거기까지만 하십시오, 양 장로.”
단호하게 양일소의 말을 자르는 진조운의 모습에 다른 형산 문하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양일소에게 얼마나 많은 부분을 양보해 왔는지 익히 아는 까닭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형산 문하 역시 장문인인 그보다 양일소의 눈치를 더 많이 살펴야만 했다.
처음엔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던 양일소가 이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진조운을 응시했다.
“장문인! 타 문파 사람의 헛소리에 휘둘려 내 충언을 무시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소이까?”
“그만하라지 않소!”
진조운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본 파의 장로가 본인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오!”
“……!”
“이럴 거면 왜 처음부터 장문인 자리를 양보하시었소!”
격해진 두 사람의 눈빛과 목소리에 형산 문하들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단악선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결코 손님을 앞에 두고 할 행동이 아니었다.
결국 단악선이 나섰다. 이립으로 인해 시작된 일이었지만 결국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다.
“두 분이 다투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연판장을 포기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이립과 홍적문을 비롯한 모두가 놀라 단악선을 보았다.
그러나 단악선은 단악선대로 확고한 계획이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의원으로서 할 도리만큼은 다하게 해 주세요. 전 환자 몇 분만 치료하고 돌아갈게요.”
“환자라니?”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진조운의 모습에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그리곤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계신 장로님들이요.”
단악선에게 지목받은 장로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은 크게 아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분은 동공의 크기가 다르고 그로 인해 시력이 크게 약화되셨어요. 최근에 눈이 침침해지고 어지럼증도 있으셨죠?”
“그거야 당연히 노환이라고…….”
“노환이라도 동공의 크기가 달라지진 않아요. 그런 현상은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쳐 생기는 거예요. 습관이나 버릇처럼 무의식적인 행동이 반복된 결과로 발생하기도 하고요.”
“그런…….”
“제가 진맥을 해 봐도 될까요? 그래야 정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장로의 눈빛을 받은 진조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는 순순히 단악선의 손에 손목을 맡겼다.
눈을 감고 진맥에 집중하길 잠시.
단악선이 눈을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압력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받았네요. 머리의 혈도와 진기의 흐름이 살짝 균형을 잃었어요. 아마 외부의 압력을 버티기 위해 특별한 내공심법을 자주 운기하신 것 같은데, 그게 이유인 것 같아요.”
이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부위는 달랐지만 하나씩은 진기의 흐름이 어그러진 곳이 존재했다.
심지어 장문인인 진조운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단악선은 양일소도 진맥을 하려 했지만, 워낙 격렬하게 거부해 결국 포기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단악선이 진조운을 향해 말했다.
“정말 특이한 경우네요. 아무래도 네 분의 원인이 같은 것 같아요.”
“원인이라면……?”
“신체의 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수련한 적이 있나요?”
진조운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은 형산파 내에 그런 무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환경이 특이한 장소에 반복적으로 드나들거나 오래 머문 적이 있나요? 예를 들어 미로나 진법처럼 특정 방향으로만 움직여야 하는 곳이요.”
그 말에 진조운과 다른 장로들이 깜짝 놀랐다.
단악선이 말한 곳이 단 한 곳 존재했기 때문이다.
바로 운진암.
장문인과 장로들이 폐관해 연공할 수 있는 연공실이 위치한 곳이었다.
진조운의 설명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제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요. 어떤 진법인지 알아야 치료도 가능할 것 같거든요.”
“하지만 그곳은…….”
진조운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장로들을 보았다.
그의 연공실이라면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지만 장로들의 연공실은 예외였다.
형산파의 전통상 해당 연공실은 오직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설이는 사이 주위를 둘러보던 단악선이 무언가를 깨닫고 물었다.
“하나만 더 여쭈어봐도 될까요?”
막상 그렇게 말을 한 단악선은 한참이 지나도록 입을 열길 망설였다.
곤란해하는 단악선의 표정에 진조운이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질문이길래 그리 뜸을 들이는 것인가?”
“결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워서요.”
“괜찮으니 말해 보게.”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속에 담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
“어째서 연세 드신 분들이 보이지 않는 건가요?”
“……?”
“지금껏 방문했던 다른 문파들에 비해 장로님들의 연세가 적으신 것 같아서요.”
“……!”
진조운이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그런 질문을 던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본 파의 무공 때문일세.”
“무공이요?”
“본 파의 무공은 변화와 중첩에 주안해 창안된 무공들이 대부분이네. 따라서 막대한 진기의 소모가 필요하지.”
장로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달리면 펼치고 싶어도 펼칠 수가 없거든.”
다른 장로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을 보탰다.
“게다가 운용법도 까다롭지. 실수로라도 진기가 흐트러지면 곧장 주화입마로 이어진다네. 양날의 창처럼.”
“위력만큼은 그 어떤 문파에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네.”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 참 이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