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2)
신마의선-12화(12/500)
신마의선 (12)
“찾아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어쩌다 보니 우연히 뵙게 된 것뿐입니다. 그러니 저 이를 너무 탓하지 마십시오.”
풍진성이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얼마 전에 만난 점복자(占卜子)가 북동쪽이 길하다는 이야길 하더군요. 그래서 무작정 길을 나섰는데 이리 소곡주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복채를 더 쥐여 줄 것을…….”
“…….”
“이왕 이렇게 만났으니 식사라도 함께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는데 내치지는 않으시겠지요?”
간곡한 그의 청에 단악선이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나란히 걷던 풍진선이 질문을 던졌다.
“듣자니 최근에 자주 마을에 내려오신다고요? 약재 구입도 잦아졌고요.”
“그건…….”
단악선은 그만 난감해졌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되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니 초악량과 범계위가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자니 풍진성에게 미안했다.
그에게 둘러댈 적당한 이유를 애써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퍽.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일단의 무리와 단악선이 부딪쳤다.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걷느라 단악선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풍진성이 재빨리 손을 뻗어 쓰러지는 단악선을 붙들었다.
“괜찮으십니까?”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괜찮아요.”
“다행입니다.”
풍진성이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에 노여움이 자리 잡았다. 그 와중에도 사과 한마디 없이 제 갈 길을 가는 사내들 때문이었다.
“이것 보시오!”
풍진성의 외침에 사내들이 걸음을 멈췄다.
“아!”
단악선의 눈에 당혹감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자신과 부딪쳤던 사람들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며칠 전 약재상에서 초악량을 찾던 무림맹의 무인들이었다.
풍진성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보아하니 무림맹 사람들 같은데, 어찌 그리 염치가 없는 것이오?”
“염치?”
일행들 사이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의당 사과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소?”
풍진성의 말에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날카로운 눈매와 차가운 눈빛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
“본 맹의 무인들은 현재 공무 중이오. 그러니 가던 길이나 마저 가시오.”
마주한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서늘한 음성이었다.
이에 풍진성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넌지시 칼에 손을 올리는 상대의 모습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그 의도는 명확했다.
“무인이 일반인을 위협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무림맹의 이름을 업은 자가 어찌 이리 무도하단 말인가!”
풍진성의 일갈에 상대가 움찔했다.
그만큼 서슬 퍼런 기세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귀하의 성명과 소속을 밝히시오.”
이어진 풍진성의 말에 무인들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그러나 풍진성은 물러서지 않았다.
“내 직접 귀 맹을 방문해 이번 일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할 것이오.”
무림맹 무인들이 그제야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판단한 것이다. 이때 처음 입을 열었던 선두의 사내가 포권을 취했다.
“본인은 파사단의 오조를 이끌고 있는 조장 곽가라 합니다. 귀하의 존성대명을 여쭙고 싶소만.”
“나는 풍가 진성이라 하오.”
“풍진성?”
그 이름을 되뇌던 사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혹시 진성의가의?”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민하나 내가 그곳을 이끌고 있소.”
“……!”
곽가라 자신을 밝힌 사내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태도나 말투에서 평범한 신분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설마 진성의가의 가주였을 줄이야.
“난주에 계셔야 할 분께서 예까진 어인 일로 왕림하셨는지?”
뒤늦게 곽가가 예의를 갖춰 물었으나 풍진성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본인의 행보에 대해 일일이 무림맹에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이오?”
곽가가 쓰게 웃었다.
“그럴 리가요. 다만 이곳의 상황이 썩 좋지 않기에 주의를 드리려고…….”
주위를 둘러본 곽가 일행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람들의 이목이 모조리 이쪽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곽가가 한숨을 흘렸다.
‘귀찮게 되었군.’
이래저래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결국 곽가가 풍진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저지른 무례를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아무쪼록 노여움을 푸시길.”
“사과를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오.”
곽가의 미간이 꿈틀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단악선을 향해 포권했다.
“미안하오, 소협. 부디 이 곽모의 실수를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길…….”
단악선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저들과 엮여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사과를 받아들이자 무림맹 무인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단악선이 풍진성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풍진성이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빙그레 웃었다.
“곡주님 때문이 아닙니다. 최근 저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풍진성이 말을 이어 갔다.
“혈수존자라고, 무서운 악인이 있습니다. 저들이 얼마 전에 그를 척살했다고 발표했지요. 그런데 실상은 다른가 봅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풀어 탐문을 이어 가는 걸 보면 말이죠.”
“아…….”
“그것 때문에 요즘 분위기가 흉흉합니다. 그래서 한 번쯤 저들에게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림인들의 싸움에 애꿎은 일반인이 휘말리는 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객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객잔에는 이미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심지어 다른 손님도 보이지 않았다. 풍진성이 통째로 빌렸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어이없는 얼굴로 풍진성에게 물었다.
“아마 이것도 우연이겠죠?”
단악선의 반문에 풍진성이 머쓱하게 웃었다.
“자, 일단 앉으십시오.”
상석을 권한 풍진성이 음식들을 끌어와 단악선에게 권했다.
“이것도 한번 드셔 보십시오. 여기 숙수가 실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풍진성이 열심히 음식들을 덜어 단악선에게 건넸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좀처럼 음식을 들지 않았다. 흐뭇한 얼굴로 단악선이 먹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탁.
젓가락을 내려놓은 단악선이 풍진성을 바라봤다.
“제가 만나 드리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풍진성이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벌써 식사를 끝내셨습니까? 여기 후식도 훌륭합니다. 말린 감을 꿀로 졸여 생강과 땅콩으로 버무린 건데, 동정에서 생산한 벽라춘(碧螺春)과 곁들이면…….”
“말 돌리지 마시고요.”
풍진성이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모르는 사이 소곡주님께 뭔가 실수라도 한 겁니까?”
“아니요.”
“그럼 제게 서운한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번에도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어찌 그리 저와 거리를 두려 하십니까.”
침묵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풍진성이 한숨을 터트렸다.
“이유라도 알면 이렇게 답답하진 않을 터인데…….”
“아저씨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잖아요.”
단악선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제 그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실 때가 되었어요.”
“소곡주님…….”
“언제까지 그 일에 얽매여 계실 건가요?”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그건 모두 부모님께서 결정하신 일이에요. 누구도 아저씨를 탓하지 않아요.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자책하지 마세요. 아저씨도 아저씨 길을 가야 하잖아요.”
“그리 말씀하시면 참 섭섭합니다.”
풍진성이 말을 이어 갔다.
“두 분 곡주님들께 받은 은혜가 하해와 같거늘, 제가 어찌…….”
“지금까지 해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차고 넘쳐요.”
“하지만…….”
단악선이 풍진성의 말을 자르며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기억하세요?”
당시를 떠올린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의께서는 배운 의술로 돈 많이 벌어 잔뜩 사치를 누리라 하셨죠.”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도 기억하시겠군요.”
“물론입니다. 그게 좀 의외긴 했지만요.”
―너도 꼭 혼인해라. 아니, 두 번 해라. 나만 억울할 수 없으니까.
평소 알던 신의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두 분 그날 부부 싸움하셨거든요.”
희미하게 웃는 풍진성을 향해 단악선이 말했다.
“더 이상 오늘처럼 애쓰지 마세요. 모두 잊고 아저씨 인생을 사세요. 그날 부모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요.”
웃음을 거둔 풍진성은 말없이 찻잔을 기울였다.
그러기를 잠시.
“소곡주님이 태어나신 그날, 참 눈이 많이 왔습니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 풍진성의 눈빛이 아련하게 젖어 갔다.
“걸음마를 처음 하셨을 때도 제가 그 옆을 지키고 있었지요.”
“…….”
“말이 트이기 시작할 무렵에는 절 그렇게 따르셨고요.”
“…….”
“일곱 살 때였나? 올라갔던 감나무가 부러져 크게 다치셨을 때도 제가 소곡주님을 업고 달렸습니다.”
풍진성이 슬픈 얼굴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저와 피로 이어지진 않았다 뿐이지, 소곡주님은 제게 가족과 다름없습니다.”
풍진성의 눈빛에 담긴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곡주님만큼은 제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저씨…….”
“두 분과 소곡주님을 잊고 살라니……. 너무 가혹하다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단악선은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가 얼마나 끔찍하게 자신을 아끼는지 알기 때문이다.
‘두 아저씨를 내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걸 던지고 기꺼이 따라나설 것이다.
풍진성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단악선은 풍진성이 위험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적어도 그만은 이대로 행복한 삶을 누리길 바랐다.
자신과 얽히지만 않는다면 지금의 명성과 지위를 얼마든지 누리며 살 수 있는 그였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그걸 원하셨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했다.
적당한 이유로는 저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왜 아저씨와 거리를 두려 하냐고요?”
단악선이 풍진성을 바라봤다.
“제가 힘들어서요.”
“네? 그게 무슨……?”
의아해하던 풍진성이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아저씨와 함께 있는 게 괴로워요. 자꾸 부모님 생각이 나거든요.”
“소곡주님…….”
“그러니 제 말을 들어주세요. 다른 누구도 아닌, 저를 위해서요.”
풍진성이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했다.
그러다 불쑥 입을 열었다.
“저도 아픕니다.”
그 한마디가 단악선의 마음을 흔들었다.
“가족이지 않습니까? 소곡주님이 아프면 저도 아픕니다. 그게 뭐 어떻습니까? 가족이 아프면 나도 아픈 게 당연한 겁니다.”
풍진성이 손을 뻗어 단악선의 손을 감싸 쥐었다.
“아플 때, 혼자 있는 게 제일 서러운 겁니다. 제가 잘 모실 테니 밀어내지 마십시오.”
단악선은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그 감정을 겨우 밀어내자 꼭 해야 할 말이 떠올랐다.
‘죄송해요. 아저씨.’
그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반드시 해야 할 말을 위해서였다. 단악선이 굳은 얼굴로 풍진성을 응시했다.
“풍가 진성.”
“……!”
“당대 신마곡주로서 이 자리에서 명한다.”
이어진 단악선의 말이 풍진성의 귀에 벼락처럼 꽂혔다.
“신마곡 속가 제자 풍가 진성을 금일부로 파문한다.”
풍진성은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절연(絶緣)을 선언한 단악선 역시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단악선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지만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홀로 남겨진 풍진성.
오직 그만이 덩그러니 남아 착잡한 눈빛으로 손에 쥔 찻잔을 응시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