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20)
신마의선-120화(120/500)
신마의선 (120)
의아해하는 진조운과 장로들을 향해 단악선이 말했다.
“형산의 무공이 그토록 막대한 내력을 필요로 한다 해도 소림이나 무당만 할까요? 현란함에 바탕을 둔 화산은요?”
그들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단악선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형산파의 역대 장문인과 장로님들 가운데 고희(古稀)를 넘기신 분이 계신가요?”
기억을 더듬던 진조운이 고개를 저었다.
“백 년 전에는 계셨지만 그 후로는…….”
“그렇다면 일반 문하 중에서는요?”
“……!”
진조운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당장 생각나는 사람만 해도 숫자가 상당했다.
그 표정으로 상황을 짐작한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요.”
단악선이 진조운과 장로들의 동의를 구했다.
“반드시 운진암의 연공실을 확인해 봐야겠어요.”
그리고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연공실의 무언가가 여러분의 수명을 깎고 있어요.”
충격을 받은 진조운의 두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단 한 번도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내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운진암이 만들어진 것은 대략 백 년 전.
그것도 풍운신검 혁련성이 자신의 제자들을 위해 직접 설계하고 주춧돌을 놓았다고 알려진, 유서 깊은 장소였다.
개파조사인 하원일 이후 형산파가 두 번째로 배출한 천하제일검.
그가 바로 혁력성이었다.
‘누구보다 형산을 아끼고 사랑했다 알려진 그분이 어째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진조운이 장로들을 향해 동의를 구했다.
결국 단악선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나 양일소는 끝까지 격렬하게 반대했다.
“외부인에게 연공실을 공개하는 것은 조사님의 의지에 반하는 짓. 또한 형산파의 전통을 크게 훼손하는 행위요!”
“전통이라고 해 봐야 운진암의 역사는 백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진조운의 간곡한 설득에도 양일소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반대했다.
“차라리 내 목을 치시오.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결코 받아들일 수 없소이다! 조사님의 유지를 깨트려 욕되게 하느니 이 자리에서 죽겠소!”
진조운이 양일소를 노려봤다.
그러기를 잠시.
“나, 형산파 칠십이 대 장문인 진조운이 명하노니…….”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형산 문하가 일제히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형산의 모든 문하가 장문인의 명을 좇습니다!”
진조운이 장문령을 발동하자 양일소도 마지못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를 응시하며 진조운이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금일부로 형산파 장로 양일소를 장로직에서 파(罷)한다.”
“장문인!”
난데없는 파직령(罷職令)에 양일소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설마 진조운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알고 있소? 지금 장문인께서는 기사멸조(欺師滅祖)의 죄를 지으려 하는 것이오!”
스승을 속이고, 사문의 이름에 먹칠을 한 죄.
정확하게는 사문의 어른을 능멸한 죄다.
그 어떤 문파를 막론하고 가장 무겁게 여기는 중죄가 바로 기사멸조였다.
“기사멸조? 방금 기사멸조라 하셨소?”
진조운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지금까지 사형이 장문인인 내게 해 왔던 짓이야말로 명백한 기사멸조요.”
진조운의 호된 질책에도 양일소는 끝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 무엇으로도 나를 겁박할 수는 없소. 나는 끝까지 연공실을 열지 않을 것이오!”
진조운이 단악선을 돌아보며 곤란한 눈빛을 던졌다.
이대로라면 양일소의 연공실에 들어설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연공실마다 설치된 진법은 동일하나 운용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장문인인 그조차 다른 장로의 허락 없이는 연공실을 드나들 수 없는 이유였다.
단악선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일단 다른 분들의 연공실부터 확인해 보죠.”
양일소를 제외한 나머지 장로들이 모두 동의했기에 단악선은 진조운의 안내를 받아 운진암으로 향했다.
형산파의 금지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외부인이 된 셈이다.
단악선은 가장 먼저 진조운의 연공실에 들어섰다.
진조운은 그 안에 설치되어 있던 진법을 직접 다루며 상세히 설명했다.
다른 장로들의 연공실 역시 마찬가지.
양일소의 연공실을 제외한 나머지 연공실의 진법을 확인한 단악선이 눈을 빛내며 무언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역시…….”
단악선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곤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에 들어가 봐도 될까요?”
단악선이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린 진조운이 씁쓸하게 웃었다.
단악선이 가리킨 곳은 양일소의 연공실이었기 때문이다.
진조운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양일소를 바라봤다.
개방 방주인 이립의 요구에 의해 양일소 역시 이곳까지 동행한 상태였다.
양일소가 차갑게 웃으며 단악선을 노려봤다.
“어디 할 수 있다면 해 봐라. 하나 내가 직접 그곳을 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언제 허락을…….”
양일소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단악선이 자신의 연공실 쪽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운진암의 절진은 생명을 앗아 가기 위한 목적의 살진(殺陣)은 아니었다.
침입자의 감각을 교란해 정신을 무너트리는 일종의 기환진.
하나 절진이라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대로 된 방법을 숙지하지 않고서는 파훼가 불가능할뿐더러 결코 빠져나올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번 발을 들인 이상 그가 나서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저 안을 헤맬 터.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살짝 당황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단악선이 이내 차분한 얼굴로 무언가를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건!’
단악선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진조운의 두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마치 검결을 헤아리듯 엄지로 나머지 손가락을 짚어 가는 단악선의 손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순서가 눈에 익었다.
‘청풍검결(淸風劍訣)?’
형산파의 독문검법을 어찌 단악선이 알고 있단 말인가?
비록 기초적인 검법이라 하나 그가 아는 한 단 한 번도 외부로 유출된 적이 없었다.
진조운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이립을 돌아봤다.
하나 이립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개방은 아니다.’
그렇다니 더욱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단악선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양일소가 소리쳤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단악선의 모습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단악선은 연공실의 진법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악선의 모습이 연공실 안으로 사라졌다.
“안 돼!”
양일소가 황급히 연공실 안으로 뛰어들려 했다.
하나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새 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홍적문이었다.
그는 더 이상 방주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던 거렁뱅이가 아니었다.
당대를 풍미하는 고수, 쾌수여의가 바로 그인 것이다.
“……!”
서늘한 음성이 귓전을 파고든 것도 그때였다.
“손가락 하나라도 까닥한다면 나 역시 기꺼이 손을 쓰겠소.”
일말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은 차디찬 눈빛.
그 속에서 맹렬히 소용돌이치는 가공할 투지는 그저 전율스러울 뿐이었다.
그 살벌한 기세에 양일소가 석상처럼 그 자리에 굳었다.
단악선이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처음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연공실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빈손이었지만 지금은 무언가를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 자루 검이었다.
“……!”
진조운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토록 찾기 위해 애썼던 개파조사의 신물.
원공보검이 분명했다.
“찾으시던 검이 이게 맞나요?”
단악선이 내민 검을 진조운이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들었다.
“아아!”
직접 원공보검을 확인한 진조운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잃어버렸던 신물을 되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진조운의 시선이 양일소에게 향했다.
그 어떤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더없이 차갑고 무거운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양일소의 얼굴은 어느새 밀랍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나,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리곤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한 채 악을 써 댔다.
“이건 음모다! 저자들이 날 위해하려 꾸민 짓이야!”
이립이 차갑게 웃었다.
“흥! 우리가 뭐가 아쉬워 당신 따위를 상대로 음모를 꾸민단 말이오?”
이립의 비난을 받은 양일소가 갑자기 진조운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행동에 다른 세 명의 장로들이 황급히 그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양일소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무릎걸음으로 기어 진조운을 향해 다가서더니 그의 바지 자락을 붙들었다.
“장문인! 아니, 사제! 제발 나를 믿어 주게! 이 모든 건 우리 사형제들을 이간질하기 위한 음모야!”
그러나 양일소를 내려다보는 진조운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음모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저 작은 몸 어디에 검을 숨겨 들어갈 수 있을까.
만에 하나 그랬다 한들 자신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래서였소?”
진조운이 더없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양일소가 이어진 진조운의 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것을 지니고 있으니 스스로 장문인이 된 것처럼 느껴지셨소?”
진조운의 눈빛은 경멸의 감정이 가득했다.
눈앞의 사내는 더 이상 형산파의 장로도, 그의 사형도 아니었다.
사문에 지울 수 없는 큰 죄를 지인 죄인일 뿐인 것이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진조운을 올려다보던 양일소의 두 눈에 기이한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원래 내 것이었다!”
양일소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대사형인 내가 장문인이 되었어야 했어! 원공보검도! 그 안의 절기도 원래부터 나를 위한 것이니까!”
“사형……. 당신은 끝내…….”
결국 말을 잇지 못한 진조운이 입술을 깨물었다.
감출 수 없는 아픔이 묻어나는 그의 음성.
그 안에는 양일소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한숨을 흘렸다.
“아마 원공보검에는 그 절기가 숨겨져 있지 않을 거예요.”
중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와 관련해서는 진조운이 직접 밝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양일소는 허황된 유혹과 헛된 욕심에 자신의 양심과 자존심을 팔아넘긴 셈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중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절기가 어디에 있는지 제가 알거든요.”
단악선이 손을 들어 연공실 쪽을 가리켰다.
“저곳에 존재하는 각각의 진법이 사실은 하나의 심법과 연관되어 있어요. 하나의 심법을 진법의 형태로 나누어 놓은 거죠. 그래서 저 진법을 드나들며 진기의 흐름이 균형을 잃은 거예요. 진법을 파훼하기 위해 계속 불완전한 심법을 운용했을 테니까요.”
단악선의 설명이 이어졌다.
“진법 안에서 안전하게 이동하는 유일한 생로(生路)가 곧 진기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이었어요.”
“그 말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진조운을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다섯 분이 모두 힘을 합쳐 파훼법을 공유하고 연구했다면 하나의 완벽한 심법을 얻을 수 있었다는 의미죠.”
“……!”
“아무래도 이곳을 만드신 분이 처음부터 그렇게 안배를 하신 것 같아요.”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진조운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한때 흩어진 구름도 언젠가는 다시 하나로 모일지니.”
그게 운진암이라는 이름의 연원이었다.
진조운이 한숨을 터트렸다.
풍운신검 혁력성.
그가 이곳을 만든 이유를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그는 다섯 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차기 장문인 자리를 두고 사형제들 간에 반목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로 뜻을 모아 힘을 합치도록 이와 같은 안배를 해 둔 것이다.
하나 그의 바람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로 인해 천하제일고수로 이름을 날렸던 혁련성, 그가 익혔던 형산파의 신공절학도 함께 유실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