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21)
신마의선-121화(121/500)
신마의선 (121)
“사형의 말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군요.”
진조운이 고개를 돌려 양일소를 바라봤다.
“구대문파니 뭐니……, 허울 좋은 명예에 앞서 내실을 다졌어야 했는데.”
진조운이 손에 든 원공보검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다른 장로들 역시 장문인의 모습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너무 무겁게 생각하시는구려.”
그때 이립이 짝 소리 나게 손뼉을 쳤다.
“이로써 형산파는 신물과 실전되었던 절기를 한꺼번에 찾게 되었으니 경사로운 날 아니겠소.”
이립이 말은 하지 않았으나, 저 말은 변절자를 찾은 공로까지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진조운이 양일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사형.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차차창.
그 말과 함께 장로들이 검을 뽑아 양일소를 겨누었다.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눈 사제들의 모습에 양일소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갑자기 장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장로들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장로들의 검은 이미 양일소의 가슴을 찌른 뒤였다.
투두둑.
검신을 타고 흘러내린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러나 그 피는 양일소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아니었다.
양일소의 몸에 검이 파고들려는 찰나 진조운이 벼락처럼 손을 뻗어 검날을 움켜쥔 것이다.
순식간에 마혈이 짚여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양일소가 진조운을 노려봤다.
“사형……, 마지막까지 우릴 실망시키지 마시오.”
진조운이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형산에 조금이라도 충의의 마음이 있다면, 당신이 저지른 일을 온전히 책임지셔야 하지 않겠소?”
진조운이 다른 장로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장로들은 자신들의 검에 몸을 던진 양일소의 모습에 적잖게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어쨌거나 평생을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사형을 모시게.”
진조운의 지시가 떨어지자 장로들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진조운은 장로들에 의해 뇌옥으로 끌려가는 양일소를 말없이 지켜봤다.
부욱.
이윽고 양일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진조운이 자신의 소맷자락을 찢어 길게 갈라진 손을 대충 감쌌다.
그리고 좌중을 향해 깊이 읍했다.
“귀한 손님들을 모시고 추태를 보였습니다. 형산파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이립이 손을 내저었다.
“허허, 아니요. 살다 보면 모두 한 번씩 겪는 일 아니겠소? 이 늙은 거지는 신경 쓰지 않으니 장문인께서도 괘념치 마시오.”
진조운이 단악선을 향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 온 심마를 드디어 떨쳐 내게 되었소. 이 모든 것이 단 소협 덕분이오.”
단악선이 깜짝 놀라 마주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단악선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진조운이 더없이 부드러운 눈빛을 건네고 있었다.
“날이 흐려졌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형산의 운무는 매우 지독해 길을 잃기 십상이니 오늘 밤은 본 파에서 머물러 주십시오.”
진조운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단악선 일행은 하루를 더 형산파에서 머물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청석판이 깔린 거대한 연무장에 모든 형산 문하가 모였다.
초대를 받은 단악선 일행 역시 연무장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장문인인 진조운이 연무장 가운데로 나섰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푸석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손에는 형산파의 신물인 원공보검이 들려 있었다.
연무장 중앙에 선 진조운은 말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형산 문하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청풍검결(淸風劍訣)의 기수식이었다.
이내 한바탕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절도와 기품이 서려 있었지만, 지극히 단조롭고 평이한 검무(劍舞)였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의 손에 들린 검이 변화를 일으켰다.
검 끝이 미세하게 떨리나 싶더니, 검극에서 차가운 검기가 불쑥 솟구친 것이다. 부르르 떨며 점차 진폭을 늘려 간 검이 일시에 폭발하듯 무수한 검영(劍影)을 쏟아 냈다.
대기가 급격히 요동치며 난폭한 검기가 일대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겹겹이 중첩된 검기가 거대한 운무가 되어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눈앞에서 일렁이는 푸른 잔영(殘影)을 응시하며 홍적문이 탄성을 흘렸다.
“금지에 묶여 있던 신공이 풀려났구나!”
한때 강호를 떨어 울렸던 형산파의 신공절학이 백 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연혼팔검인가.”
이립은 어딘가 복잡한 표정이었다.
“풍운신검의 절학을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단악선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백 년 전의 천하제일검이라고 하신 그분 말씀이죠? 그분이 그렇게나 대단했나요?”
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개방의 기록에 의하면 천하에서 그보다 검을 잘 쓰는 사람은 없다고 적혀 있었다.”
“대단한 분이셨군요!”
탄성을 흘리는 단악선의 모습에 이립이 실소했다.
“그래도 천하제일고수는 아니었다.”
“네? 어째서요?”
“그 시대를 풍미했던 고수가 그만 있는 건 아니잖느냐.”
뒤늦게 단악선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혹시 한 아주머니 때문인가요?”
이립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조운의 검무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홍적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성취는 삼성 정도인가.”
홍적문의 말에 이립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고작 삼성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만약 연혼팔검을 대성한다면 얼마나 대단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청풍검결에 새로운 심법이 더해진 것만으로도 저렇게 다른 무공이 되는군요.”
이립과 홍적문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뜻이냐?”
이립의 물음에 단악선이 대답했다.
“어제 장문인께 양일소 장로의 연공실 파훼법을 알려 드렸거든요.”
이를 통해 진조운은 청풍신검 이후 실전되었던 풍운합이위일진기(風雲合而爲一眞氣)를 복원해 낸 것이다.
“그렇다는 건 너도 연혼팔검을 익힐 수 있다는 뜻이냐?”
홍적문의 물음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단악선은 운진암의 모든 진법을 파훼했으니 당연히 풍운합이위일진기(風雲合而爲一眞氣)를 터득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불가능하죠. 다섯 개의 진법을 조합하는 순서와 방법을 모르니까요.”
“그런가…….”
고개를 끄덕이는 홍적문의 얼굴 위로 왠지 모를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나저나 백 년 넘게 실전된 절학을 하룻밤 만에 복원해 내다니……,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그만큼 오랜 세월 연구를 해 오셨으니까요. 원공보검을 복원하기 위해 장문인께서 쏟은 노력을 보셨잖아요.”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아무것도 없이 복원하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는 일이지만 제대로 된 심법이 그 바늘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준 셈이죠.”
“너는 그걸 어찌 그렇게 잘 아느냐?”
“저도 그랬거든요.”
의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께서 남겨 주신 의서들이 있기에 단악선은 지금의 의술을 지닐 수 있었다.
“그만큼 치열한 노력을 쏟으셨겠죠.”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건 고금의 진리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진조운이 펼친 연혼팔검은 복원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력은 천하의 절학들에 비해 다소 모자람이 있다. 하나 그 안에 담긴 기세와 신묘함만큼은 신공절학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참 지독한 사람이었군.”
뜬금없는 이립의 말에 홍적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 말이오?”
“풍운신검 혁력성 말일세.”
“……?”
“사문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한 셈 아닌가.”
홍적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히 담대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때문에 형산파가 근 백 년이나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무려 백 년에 걸친 시험을 이제야 통과한 게로군.”
원래대로라면 모든 형산 문하가 단악선에게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판이다.
원공보검을 되찾은 것도, 실전된 절학을 복원한 것도 단악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 이 자리는 흐트러진 형산의 마음을 다잡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일 것이다.
본래라면 외부인을 이런 자리에 들이지 않는다.
그런 만큼 이 자리에 단악선 일행을 초대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외부인이 아닌, 형산파와 가까운 관계자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립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연무장을 가득 메웠던 검기의 운무가 씻을 듯 사라졌다.
그리고 진조운이 원공보검을 들어 올렸다.
“검을 들고 홀연히 깨우쳐, 바람과 구름이 함께하니.”
진조운은 지쳐 보였지만 목소리만큼은 쩌렁했다.
“나아가는 걸음마다 천하에 적이 없도다.”
집검맹오(執劍猛悟) 수풍수운(隨風隨雲).
보보진전(步步進前) 천하무적(天下無敵).
원공보검의 검 면에 새겨진 글귀.
진조운이 원공보검을 거꾸로 쥐더니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리꽂았다.
원공보검은 운철로 벼려 만든 검답게 단단한 청석판을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반쯤 박힌 검신 위로는 오직 수풍수운, 천하무적.
이 네 글자만 남았다.
바람과 구름이 함께하니, 천하의 적이 없도다.
형산파의 새로운 기조가 될 가르침이었다.
“지금까지 형산을 지탱해 온 것은 신물도, 신공절학도 아니다.”
웅혼한 내력을 담아 진조운이 말을 이어 갔다.
“하나로 결속된 문하의 힘이야말로 지금의 형산을 존재하게 하는 진실된 힘인 것이다.”
진조운이 형산 문하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모두 눈에 담았다.
“금일 이후 형산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진조운의 눈에서 섬전 같은 안광이 뿜어졌다.
“우리가 곧 바람이고 구름이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형산 문하들 사이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남악형산(南岳衡山)!”
“앙시천하(仰視天下)!”
하나 된 형산 문하의 목소리에 형산 전체가 떠나갈 것만 같았다. 그 들끓는 열기를 뒤로한 채 진조운이 단악선을 향해 걸어왔다.
“아침부터 피곤하게 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안계를 넓힐 수 있어 좋았는걸요.”
진조운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렇게 단 소협을 보고 있자니 강호의 미래가 무척이나 밝다는 생각이 드네.”
그 말과 함께 진조운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단악선에게 내밀었다.
수결이 찍힌 연판장이었다.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하는 단악선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진조운이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잠시 후 형산 문하 몇 명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와 단악선 앞에 내려놓았다.
“약소하나마 이렇게라도 성의 표시를 하고자 하네.”
“이건 뭔가요?”
“열어 보게.”
고개를 갸웃하던 단악선이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