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22)
신마의선-122화(122/500)
신마의선 (122)
놀라는 단악선을 향해 진조운이 웃으며 말했다.
“원공보검을 복원하기 위해 구했던 운철일세. 이젠 자네 것이야.”
“하지만 이건…….”
거기에 쏟아부은 진조운의 노력을 아는지라 단악선은 쉽게 이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런 단악선을 향해 진조운이 포권을 취했다.
“형산파는 단 의원에게 입은 은혜를 잊지 않겠소.”
지극히 정중한 그의 태도와 눈빛에 단악선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개방의 노고 역시 기억하겠습니다.”
이립과 홍적문을 향해서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 진조운이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기 직전.
진조운이 무언가를 건넸다.
“이건 뭔가요?”
“소개장이네.”
“소개장이요?”
단악선의 반문에 진조운이 묘하게 웃었다.
“운철을 제련할 수 있는 야금 장인은 그리 많지 않다네. 더구나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워낙 게으르고 괴팍해서 말일세. 소개장도 없이 갔다가는 문전 박대 당하기 일쑤지.”
단악선은 진심으로 감격했다.
그렇게 단악선은 연판장과 운철, 그리고 소개장을 받고 형산을 내려왔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품(品)자 형태로 가만히 앉아 있는 네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밤새 비가 왔는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은 몰골이었다.
그런데도 미동도 하지 않고 석상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왜 그러고 계세요?”
단악선의 말에 가두달이 반쯤 풀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가만히 있어야 해……. 아무것도…… 하면…… 안 돼…….”
범계위가 지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단 의원.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더군.”
초악량도 마찬가지.
마치 십 년은 늙은 것 같았다.
그곳에서 멀쩡한 사람은 한설화가 유일했다.
“뭐만 하려고 하면 꼭 무슨 일이 일어난단 말이지.”
“네?”
“앞으로는 우리도 함께 다니는 게 낫겠다.”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다시 우리만 남겨 두지 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네 사람 모두 힘든 기색이 역력해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갔던 일은? 잘 해결됐어?”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웃으며 옷 안에 넣어 둔 연판장을 두드렸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점창파로 가면 되는 건가?”
“우선 들러야 할 곳이 있어요.”
“……?”
“운철을 맡길 야공 장인을 만나려고요.”
“운철?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그것 말이냐?”
“네. 형산파 장문인께서 선물로 주셨어요.”
단악선이 형산파에서 겪은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범계위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만 때운 소림사 땡중들보다는 훨씬 낫군.”
초악량이 단악선에게 다시 물었다.
“운철로 무엇을 만들려 하느냐?”
“음……. 침을 만들어 달라고 할까 생각했어요.”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초악량이 이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운철이 특이한 재질이라곤 하나 선앙침이나 마령침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것 말고는 당장 떠오르는 게 없어서요.”
기다렸다는 듯 범계위가 나섰다.
“잘됐네. 이참에 우리 단 의원 무기 하나 만들지, 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무기요?”
단악선의 반문에 범계위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래, 단 의원. 무인이라면 모름지기 자신만의 병기를 지니고 있어야지.”
“정작 본인의 성명병기는 흘리고 다니는 놈이 할 말은 아니지만.”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의 얼굴이 벌게졌다.
“초 형이 던졌잖수!”
“아무 데나 대충 숨겨 놓은 건 너였잖아.”
금방이라도 한판 붙을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이었다. 그때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서 있던 가두달이 입을 열었다.
“좋군요. 강호 전체를 뒤져도 운철로 만든 성명병기를 지닌 사람은 몇 명 안 되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많은 이들이 탐낼 것입니다.”
그런 가두달을 향해 이립이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세상 사람이 다 자네 같은 도둑놈인 줄 아나?”
“하! 괜히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보물을 보면 탐심이 동하는 게 사람입니다. 저는 다만…….”
“다만?”
“본능에 조금 솔직한 것뿐이죠.”
“자랑이다!”
잠시 후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시작했다.
운철로 어떤 무기를 만들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여러 의견이 오가다가 봉으로 결정됐다.
“단 의원에게 날카로운 날붙이는 어울리지 않잖아.”
새삼 초악량은 범계위의 날카로움에 감탄했다.
사실 단악선의 무공이 그들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한다면 무기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고수는 다 썩어 가는 나뭇가지를 들어도 천하제일인 법이다.
잠시 후 단악선 일행은 상강에 배를 띄웠다.
진조운이 소개한 야공 장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 * *
남악묘를 떠난 지 열흘째.
단악선 일행은 강서성 성도인 남창에 도착했다.
“와! 저게 등왕각(滕王阁)이군요.”
거대한 황색 감강(赣江)을 끼고 있는 웅장한 규모의 목조탑에서 단악선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기다렸다는 듯 가두달이 입을 열었다.
“괜히 중원 사대 누각 중 하나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웅주무열(雄州霧烈)이라는 현판 보이지? 등왕각서 원문에는 그 뒤에 준재성치(俊彩星馳)라는 말이 뒤따른다. 훌륭한 주와 군이 안개가 깔린 듯 즐비하고 뛰어난 인물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찬란하게 많다는 뜻이지.”
“헛소리지.”
가두달이 눈꼴 시렸던지 범계위가 끼어들었다.
“남창 출신 중에 제대로 된 무림인은 본 적이 없다!”
초악량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이 지방 사람들의 기질 때문이지. 개성이 강하고 폐쇄적인 면이 많거든. 그래서 교역보다는 쌀농사를 위주로 살아가고 있다. 그게 철방이 많은 이유고.”
“아! 알겠어요. 농기구가 많이 필요해서군요.”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게다가 이 지역에는 유독 좋은 철이 많이 나거든.”
그들은 곧 번화가로 들어섰다.
문득 단악선은 한설화를 올려다보았다. 근래 들어 가장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악선과 눈이 마주치자 한설화가 조용히 웃었다.
“거지들이 없으니 살 것 같구나.”
그제야 단악선은 한설화의 여유가 어디서 비롯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난 며칠간 두 사람의 악취 때문에 한설화는 매일같이 기분이 좋지 않은 모습이었었다.
“그래도 전 조금 아쉬워요.”
이립과 홍적문은 훗날 점창파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급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개방 본단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무림맹 탈퇴와 관련된 문제인 듯싶었다.
철방의 위치를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쇠 두드리는 소리를 쫓다 보니 입구로 짐작되는 대문 위에 우직한 필체로 묵가철장이라 적힌 현판을 볼 수 있었다.
깡깡!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요란한 금속성이 귀청을 때려 댔다.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규모였다.
크고 작은 용광로의 숫자만 해도 여섯 개에 달했고, 그 앞에는 서너 명의 대장장이가 쉬지 않고 망치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게다가 용광로 주변에는 열 명이 넘는 일꾼들이 바쁘게 오가며 그들을 보조하고 있었다.
최소한 팔십 명.
주변을 가득 메운 열기 때문인지 용광로 근처의 인원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상의를 벗고 있었다. 근육질의 사내들 수십 명이 맨살을 드러낸 채 망치질을 해 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어떻게 오셨소?”
망치질을 하던 장인들 중 우락부락한 얼굴을 한 사내가 단악선 일행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묵비라는 분을 만나 뵈러 왔어요. 장주님이시라고 들었는데요.”
단악선을 위아래로 힐끔거리던 사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장주님은 아무나 뵐 수 없소.”
“아! 여기 소개장이 있어요.”
단악선이 재빨리 진조운에게 받은 소개장을 꺼내 내밀었다.
“기다리슈.”
이를 받아 든 사내가 장원 안쪽으로 이어진 작은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월동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도저히 야공 장인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비대한 체구를 지닌 사내였다.
두 팔로 껴안는 게 불가능할 만큼 출렁이는 뱃살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세 겹으로 접힌 턱에서는 연신 비 오듯 땀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를 찾으셨다고?”
단악선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그를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운철? 아아, 형산파 장문인께서 조만간 맡긴다 했던 그것 말이로군.”
그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도 말했지만 나는 더 이상 병장기를 만들지 않소. 사람들에게 기술을 모두 전수하고 나면 은퇴할 생각이기도 하고.”
“은퇴하신다고요?”
“아아. 우리 아버지처럼 살다 가긴 싫거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그가 말했다.
“평생 철만 두드리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평소에는 마시지도 않던 술을 자시더이다. 딱 한 잔.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마셨지. 그리고 일찍 침소에 드셨소.”
말을 이어 가는 사내의 눈 위로 아련한 슬픔이 떠올랐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이었소.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시고 그대로 소천하셨지.”
“저런…….”
“우리네 삶이 그렇소. 평생 화기(火氣)를 마주하고 쇠를 두들기다 보니 몸이 성할 리 없는 것이지. 그래서 그만두려 하오. 그러니 운철은 다른 곳에 맡기시오.”
“이곳 말고도 운철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곳이 있나요?”
“글쎄…….”
모호하게 말끝을 흐린 사내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툭 내뱉었다.
“당신네 무림인들이 늘 하는 말 있지 않소? 중원은 넓고 기인이사는 강가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지 않겠소?”
“저는 무림인이 아닌데요?”
단악선 일행을 훑어보던 사내가 피식 웃었다.
“딱 봐도 육선문 나으리들처럼 보이지는 않소만?”
육선문은 관부의 인물을 가리키는 은어다.
그들을 제외하면 병장기를 찾는 사람은 무림인이 유일했다.
“정말이에요. 전 의원이에요.”
“의원이라고?”
사내가 믿기 어렵다는 눈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그 말을 선뜻 믿기에 단악선은 너무나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제가 아저씨의 몸을 봐 드릴 게요. 아픈 곳을 미리 파악해 치료한다면 부친과 같은 불행을 겪지 않으셔도 될 테니까요.”
“살이 조금 찐 것만 제외하면 나는 아주 건강하오. 그래서 그만두려는 거요. 몸이 상하기 전에 사람답게 살아 보려고.”
“그럼 제가 진맥만 해 봐도 될까요?”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린 의원이 의심도 많군. 자, 살펴보시오.”
마지못해 소매를 걷은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던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단악선조차 놀랄 만큼 눈앞의 사내는 매우 건강했다.
이 정도로 살이 쪘다면 분명 어딘가 이상이 있으리라 여겼건만, 예상을 비웃듯 심장은 힘찼고 진기의 흐름도 원활했다.
“왜 그러느냐?”
보다 못한 가두달의 물음에 단악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분은 처음 봐요. 진짜 완벽할 정도로 건강하신데요?”
그 말에 사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린 의원이 거짓말은 안 하는군. 그럼 이만 돌아가시오. 멀리 안 나가리다.”
할 말이 없어진 단악선이 당황해 눈만 깜박였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다른 일행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그나마 이들 가운데 협상에 능한 가두달이 나섰다.
“운철을 다루는 건 야공 장인들의 꿈이라고 들었소만…….”
사내가 귀찮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일반적인 장인들에게는 그렇겠지요. 하나 내겐 그리 특별하지 않소. 한 달 동안 잠도 못 자고 매달려야 하는데 고되기만 하지.”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무리한 부탁을 해서 죄송해요.”
“괜찮소. 다시 찾아와 귀찮게 하지만 마시오.”
그렇게 철방을 나선 일행을 향해 가두달이 말했다.
“일단 객잔으로 가시죠.”
“또 음식 타령이야?”
범계위의 핀잔에 가두달이 씩 웃었다.
“음식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묵비라는 자를 공략할 방법을 찾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