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23)
신마의선-123화(123/500)
신마의선 (123)
가두달이 자신만만한 눈빛을 흘렸다.
“인근의 소문과 정보에 가장 정통한 인물을 꼽으라면 저는 무조건 객잔의 점소이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가 기루의 기녀들이고요.”
자고로 사람은 음식과 술 앞에서 입이 가벼워지는 법.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누구나 아쉬운 점은 존재하기 마련이죠.”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지라 일행은 가두달의 의견에 따랐다.
인근의 객잔을 돌며 탐문을 하다 보니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주에 대한 사람들의 신망이 매우 두터웠던 것이다.
묵비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점소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워낙 배타적인 성향이 강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마을 내에서 묵가철장이 차지하는 위상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가문의 유훈에 따라 묵가철장은 농기구를 매우 저렴하게 판매했다. 게다가 망가진 농기구는 대가 없이 수리를 해 준다는 것이다.
당연히 쌀농사로 생계를 이어 가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그를 매우 존경하고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점소이들의 입을 열게 만드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악의가 없다는 뜻을 밝히고, 비싼 음식을 몇 개나 주문해야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심부름 값 명목으로 은자 조각을 찔러주고 나서야 과묵했던 점소이들의 입이 자유로워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점소이들을 통해 얻은 정보.
이를 토대로 묵비의 약점을 찾던 가두달이 당혹스런 감정을 드러냈다.
어디 한 구석 찔러볼 데가 없었던 것이다.
대를 이어 오며 축적한 부는 인근의 내로라하는 상단들도 사업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한 수 접어줄 정도이며, 거기에 인맥 또한 대단했다.
인근 관리들은 물론이고 중앙 정계의 높으신 분들과도 친분이 매우 돈독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각의 수장 격인 정오품의 대학사(大學士)와 호형호제할 만큼 친하다고 했다.
말이 정오품이지, 대학사는 황제의 보좌와 주요 행정 기관의 알력을 조정하는 중책 중의 중책.
중앙 정계의 핵심 권력자 중 한 명이었다.
인품은 물론 가정도 화목해 도무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약점은커녕 회유할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게 있어야 조건이라도 제시해 볼 만하지 않겠는가.
“좋은 분이시네요.”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착한 놈이라 강제로 일을 시키지도 못하겠네.”
초악량이 한숨을 흘렸다.
“형산파 장문인의 소개장도 무용지물이라니.”
가두달도 덩달아 풀이 죽었다.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그들에게 점소이가 눈이 번쩍 뜨일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장주님의 가문인 묵가에 대대로 전승되는 가풍이 하나 있습죠.”
“가풍?”
“이게 좀 오래된 이야기긴 한데…….”
잠시 말끝을 흐리던 점소이가 이내 이야기를 이어 갔다.
“당대 장주에게는 과제 하나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바로 전대 장주의 업적을 뛰어넘거나 혹은 그에 비견되는 기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장주님이 한동안 크게 낙담한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전 장주님의 실력이 워낙 출중하셨거든요.”
쇠를 다루는 실력이 귀신같다 하여 철귀라 불린 것이 바로 전 장주다.
그가 죽었을 때 전국의 관과 무림의 유명 인사들이 직접 찾아와 애도할 정도였다고 했다.
초악량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쩌면 그게 그가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일 수도 있겠군.”
선대의 뛰어난 능력을 넘어설 수 없다는 좌절감은 매우 컸을 터.
“고마워요. 덕분에 어쩌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단악선의 인사에 점소이가 환하게 웃었다.
“뭘 이 정도 가지고요. 손목 때문에 오래 고생했는데,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픈 사람은 그냥 두고 지나치지 못하는 단악선의 오지랖이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한 것이다.
점소이가 물러가자 가두달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게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그는 운철도 돌덩이 보듯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부터 생각을 해 봐야지.”
초악량의 말에 한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나마 그것만이 그를 설득할 유일한 단서였다.
“좋아!”
범계위가 돌연 벌떡 일어났다.
“나만 믿어!”
의아해하는 중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좋은 방법이 있거든.”
자신만만한 범계위의 모습이 한설화는 오히려 불안해졌다.
“말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걱정 마. 이번만큼은 내게 맡겨도 돼.”
“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흥! 모르는 소리.”
범계위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흘렸다.
“그가 진짜 대장장이라면 나를 거부할 수 없어.”
“대체 그건 어디에 근거한 자신감이지?”
“두고 보면 알아. 마녀 넌 죽었다 깨도 못 하는 걸 난 할 수 있거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가 객잔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괜찮을까요?”
단악선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범계위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내가 가 보마.”
“아니. 내가 가지.”
차가운 눈빛을 흘리던 한설화가 흐릿한 잔영을 남기며 사라졌다.
“아주머니께서 따라가셨으니 괜찮겠죠?”
안도하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안쓰러운 눈빛을 던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
“휴우, 아니다. 부디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그 역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누군가는 남아 단악선을 지켜야 했다.
초악량이 골치 아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 * *
객잔을 나선 범계위는 곧장 묵가철장을 찾아갔다.
그리곤 철방 사내들의 만류를 무시한 채 힘으로 밀어붙여 내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황당해하는 묵비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이미 의뢰는 거절했을 텐데요.”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묵비를 향해 범계위가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아비보다 더 뛰어난 기물을 만들고 싶다고?”
“……!”
그 말에 묵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도와주지.”
자신만만한 범계위의 태도에 묵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기를 잠시.
“아!”
뚫어져라 범계위의 얼굴을 응시하던 묵비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가 말을 이어 갔다.
“너는 훌륭한 기회를 얻었다. 네 아비는 얻지 못한 기연이지.”
“기연이요?”
“그래. 바로 나다.”
범계위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예전에 어떤 대장장이를 만난 적이 있다. 자기 말로는 자신이 중원 최고의 대장장이라 하더군. 그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간절히 애원했었지.”
범계위가 성큼 걸음을 옮겨 벽에 걸린 큼직한 칼을 움켜쥐었다.
치익.
범계위가 진기를 끌어 올리자 칼날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시뻘건 쇳물로 녹아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그의 부탁대로 이렇게 만년한철을 녹여 주었지.”
백 마디 말보다 보는 것이 효과적인 법.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묵비의 얼굴을 보며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이 정도면 네 아비의 아성을 충분히 뛰어넘고도 남지. 한철이든 운철이든 내가 다 녹여 주마.”
그 말에 묵비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놀랍기는 합니다만…….”
“……?”
“그걸로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왜? 재료만 구해 와. 내가 다 녹여 준다니까? 그때 그 대장장이가 그러던데? 내가 도와주기만 하면 자신은 진짜 중원 제일의 대장장이가 될 거라고.”
묵비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녹여 주시지 않았습니까?”
“응?”
“그 중원 제일의 대장장이가…… 제 부친이십니다.”
“어? 그 사람이 네 아버지였다고?”
묵비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건 정말 감사합니다만, 그 이유로 아버지를 넘을 수 없습니다.”
“왜지?”
“낙룡(落龍)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낙룡? 그게 뭔데?”
“귀하께서 녹여 주신 만년한철로 아버지께서 만드신 검입니다.”
묵비가 낙담한 듯 어깨를 늘어트렸다.
“저는 그 이상 뛰어난 기물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하길래?”
“감히 중원 제일의 명검이라 할 수 있지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범계위가 환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그걸 누가 가지고 있지?”
“점창파의 장문인인 사일검정 낙영음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그 문제도 해결해 주지.”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던 묵비는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내가 가서 박살 내 버릴게.”
“예?”
“아니다. 아예 여기 가져와 쇳물로 녹여 버릴까?”
쇳물로 녹여 형체가 사라진 이상 증거도 남지 않을 터.
“굳이 뛰어넘을 필요 없잖아? 그 검만 사라지면 비슷하게 만들기만 해도…….”
묵비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유작이 된 아버님의 작품을 망가트릴 수는 없습니다!”
“아, 그럼 어쩌라고!”
범계위가 버럭 역정을 냈다.
그의 성격상 사실 이만큼 참은 것도 용한 것이었다.
“에이, 씨! 불알 달고 태어난 게 부끄럽지도 않아? 무슨 사내놈이 이렇게 배포가 없어? 일단 도전해. 뭐라도 만들어 보는 거야. 그러다 어? 안되면 또 도전하고. 혹시 누가 알아? 그중에 하나 얻어걸릴지. 왜 자식은 많이 낳고 보라는 말도 있잖아. 나중에 커 보면 어떤 놈이 효자일지 모르니까.”
범계위가 벽장에 장식된 철봉 하나를 다시 집어 들었다.
순식간에 철봉이 벌겋게 달궈졌다.
“왜 눈앞의 기회를 못 잡는 거야?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한 줄 알아?”
달궈진 철봉을 눈앞에 흔들어 대니 묵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막무가내인 범계위의 설득에 묵비가 쩔쩔매고 있을 때.
“이럴 줄 알았지.”
턱.
방 안에 들어온 누군가가 범계위의 철봉 한쪽을 움켜쥐었다.
한설화였다.
“잘하는 짓이다.”
치익.
시뻘겋게 달궈져 금방이라도 쇳물로 녹아내릴 것 같던 철봉이 순식간에 새하얀 서리로 뒤덮였다.
범계위가 한설화를 노려봤다.
“거의 다 설득했는데 왜 방해하고 난리야?”
“요즘에는 협박을 그렇게 표현하나 봐?”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이 동시에 진기를 끌어 올렸다.
범계위가 움켜쥔 부분이 붉게 달아올랐다. 반대로 한설화가 움켜쥔 부분은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그러기를 잠시.
두 사람의 진기를 견디다 못한 철봉이 점차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쩌정!
철봉이 산산조각 나 후드득 쏟아졌다.
반복되는 가혹한 열기와 냉기.
그로 인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다 결국 한계에 달한 것이다.
“이 마녀가…….”
“이 얼간이가…….”
그때였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묵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두 사람 사이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바닥에 흩어져 있던 철봉의 일부를 집어 들었다.
유심히 그것을 들여다보던 그가 범계위와 한설화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두 분의 기운이 가운데서 융합되는 걸 봤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요?”
“……?”
“……?”
의아해하는 두 사람을 향해 묵비가 다그치듯 다시 물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극한의 양기와 냉기가 섞여 전혀 다른 기운으로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두 사람의 표정에 묵비가 답답한 듯 자신의 가슴을 쳤다.
“제가 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요.”
그가 들고 있던 철봉의 일부를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이게 그 증거입니다. 이것만 멀쩡하지 않습니까?”
이어진 묵비의 말에 범계위와 한설화가 시선을 마주했다.
“그 원리만 가르쳐 주신다면 당장이라도 의뢰를 수락하겠습니다.”
그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묵비가 환하게 웃었다.
“그 원리만 알아내면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