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24)
신마의선-124화(124/500)
신마의선 (124)
객잔에 돌아온 범계위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내가 뭐랬어? 나만 믿으라고 했지?”
“정말 해내셨네요.”
단악선의 칭찬에 범계위의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한설화는 그런 범계위가 내심 못마땅했지만 결과가 좋으니 굳이 따지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묵비였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객잔까지 찾아온 그가 범계위와 한설화 앞에 넙죽 엎드렸던 것이다.
“제발 가르침을 주십시오!”
간절한 그의 음성이 객잔에 울려 퍼졌다.
“저분 묵 장주님 아냐?”
“왜 저기 저러고 계시지?”
객잔을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근처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늘어나 순식간에 객잔 앞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상황이 이쯤 되니 범계위의 얼굴에도 곤혹스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범계위가 한설화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던졌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냉담한 거절이었다.
“네가 벌인 짓이니 네가 수습해.”
범계위가 쓴 입맛을 다셨다.
병장기를 만들어 준다는 허락을 받아 낸 건 좋았지만 당시의 우연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보다 못해 단악선이 나섰다.
“뭘 가르쳐 달라는 건가요?”
묵비는 범계위와 한설화가 대치하던 상황을 다시 한 번 설명했다.
“화기와 냉기가 중간에서 섞여 두 기운을 모두 아우르는 신묘한 기운으로 바뀌었다. 그 원리를 응용한다면 세상에 다시없을 절세신병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묵비가 건넨 철 조각을 받아 든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안에서 위화신공의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범계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아! 그런 거였어? 난 또 뭐라고.”
묵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그 원리를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단악선을 가리켰다.
“단 의원이 잘 이해시켜 줄 거야. 위화신공에 관해서는 우리들 중 제일 뛰어나니까.”
생색이란 생색은 혼자 다 내더니 결국 수습은 단악선 몫으로 떠넘기는 범계위였다.
그런 그가 못마땅했는지 한설화가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일단 조용한 곳으로 옮기죠.”
단악선의 말에 일행은 한적한 객잔의 후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단악선이 묵비에게 건네받은 철 조각을 두 손으로 감싼 뒤 위화신공을 끌어 올렸다.
잠시 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 묘한 서기가 단악선의 손을 타고 철편(鐵片)으로 옮겨 갔다.
그 장엄한 광경을 목도한 묵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그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묵비가 소리쳤다.
한설화와 범계위의 대치로 인해 우연히 발생한 찰나의 위화신공보다 지금의 기운이 훨씬 더 선명했다.
“그 기운이라면 분명 화기와 냉기를 하나의 무기에 오롯이 담아낼 수 있을 겁니다!”
잔뜩 흥분한 묵비를 진정시키며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위화신공의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해요.”
단악선이 위화신공을 운용하는 묘리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묵비의 얼굴은 암담함으로 물들었다.
안타깝게도 묵비는 무공을 익힌 무인도 아니었고, 의술에 정통한 의원도 아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치 귀로 들어온 단악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뒤엉키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설명을 마친 단악선이 순진하게 웃었다.
“쉽죠?”
“…….”
멍하니 서서 눈만 깜박이는 묵비의 모습에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로 설명드리는 게 나을까요?”
지필묵을 얻어 온 단악선이 위화신공의 구결과 운용법을 상세히 적어 내려갔다.
그리곤 순서대로 짚어 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설명은 묵비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그저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건 글자일 뿐.
“……이래도 어렵나요?”
조심스럽게 묻는 단악선의 말에 묵비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일반인에게 위화신공의 묘리를 이해시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난감하게 되었구나.”
그 상황을 지켜보던 초악량이 쓰게 웃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묵비에게 위화신공을 익히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공심법을 익히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입문이 늦은 만큼 그만큼 성취도 더딜 터.
그 상황이 답답했던지 범계위가 불쑥 손을 뻗어 단악선이 적어 둔 위화신공의 구결을 낚아챘다.
화르륵.
범계위가 진기를 끌어 올리자 손에 쥔 종이가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날렸다.
그 와중에 혹시라도 위화신공이 유출될까 싶어 사전에 손을 쓴 것이다.
범계위가 반쯤 얼이 빠져 있는 묵비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흥! 그게 뭐 어렵다고.”
단악선이 반색했다.
“방법이 있나요?”
“그럼! 나만 믿어!”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묵비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몸으로 직접 느껴 봐. 그게 빠를 테니까.”
그렇게 말한 범계위가 한설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손 한번 맞대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역시나.
예상했던 냉담한 반응에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안 그러면 얘 죽을걸?”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의 표정이 변했다.
범계위가 맥문을 통해 다짜고짜 도반삼양공을 밀어 넣어 버린다면 순식간에 온몸이 타 버릴 터.
“한 아주머니!”
단악선이 깜짝 놀라 한설화를 불렀다.
차마 묵비가 눈앞에서 재가 되는 꼴은 볼 수 없었기에 한설화도 마지못해 다른 쪽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내키지 않는 얼굴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범계위가 씩 웃으며 그녀의 장심에 손바닥을 밀착했다.
“으아악!”
묵비의 처절한 비명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전신에서 피어오른 열기에 그의 옷이 타들어 가나 싶더니, 어느 순간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뜨거운 열기와 허연 입김을 입에서 토해 내는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길 잠시.
두 사람의 기운이 묵비의 몸 안에서 천천히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거예요!”
단악선이 묵비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의 그 감각을 기억하시면 돼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묵비는 자신의 몸속을 휘도는 미증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범계위와 한설화가 동시에 손을 놓고 물러섰다.
두 사람 모두 살짝 지친 표정이었다.
멍한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묵비가 나직이 중얼거린 것도 그때였다.
“결국엔 균형과 조화인 것인가…….”
그 말에 단악선의 눈이 반짝였다.
“맞아요. 그게 위화신공의 핵심이에요.”
한참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던 묵비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을 잡은 것 같습니다!”
들뜬 기색이 역력한 묵비의 모습에 초악량이 혀를 찼다.
장인이나 무인이나…….
최고를 추구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방금 전 자신의 목숨이 풍전등화와 같았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너란 놈은 정말이지…….”
의기양양한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상대의 목숨을 담보로 위화신공의 묘리를 강제로 때려 넣다니.
범계위가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우악스럽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다.
“만들고 싶은 게 봉이라고?”
묵비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미곤이요. 높이가 제 눈썹까지 오는 정도로요.”
묵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나중에 지금보다 키가 커지면 더 이상 제미곤이라 부를 수가 없을 텐데?”
“괜찮아요. 아, 참. 그보다 봉을 만들고 남은 운철로 침을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침? 의원들이 쓰는 그 침 말이냐?”
“네. 이런 식으로요.”
단악선이 품속에서 선앙침과 마령침을 꺼내 묵비의 눈앞에 늘어놓았다.
조심스럽게 침을 들어 한참을 들여다보던 묵비가 탄성을 터트렸다.
“이걸 만든 사람을 한번 보고 싶군!”
묵비가 기가 막히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사람의 솜씨가 아니구나. 이걸 만든 사람은 나보다 적어도 몇 수 위의 실력을 지녔다.”
“그럼 이보다 뛰어난 침을 만드는 건 불가능한 건가요?”
“원래부터 운철은 침의 재질로 적합하지가 않다. 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두 가지 조건이요?”
“바로 극음의 냉기를 지닌 만년한철과 극양의 열기를 지닌 염화단철(炎火丹鐵)이다.”
“만년한철이라면…….”
단악선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오랜 세월 깊은 바다 밑에서 만들어진다는, 지극히 희귀한 철이다.
그런데 염화단철은 생소했다.
그때 묵비가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만년한철은 내가 가진 게 조금 있다. 그러니 염화단철만 구하면 될 것 같구나.”
“염화단철은 어디서 구하죠?”
“나도 직접 본 적은 없어 확실치는 않으나 오래전에 해남도에서 그걸 봤다는 사람이 있었다.”
“해남도요?”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어? 해남도라면?”
초악량이 범계위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 묘한 눈빛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범계위가 멈칫했다.
단악선이 반색했다.
“범 아저씨가 해남도에 대해 잘 아시나요?”
“어, 그게…….”
범계위가 당황해 얼버무리는 사이 초악량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그냥 알다 뿐일까. 해남도를 꽉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와! 정말요?”
환한 얼굴로 반문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범계위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범계위가 초악량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러나 초악량은 얄미운 얼굴로 빙글거릴 뿐이었다.
간만에 속 시원하게 한 방 먹인 것이다.
단악선이 눈을 반짝이며 범계위를 향해 다가섰다.
“그럼 혹시 염화단철도 구하실 수 있나요?”
“……!”
범계위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그러기를 잠시.
꿀꺽.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킨 범계위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단 의원은 나만 믿으면 된다니까? 우리 단 의원을 위해서라면 내가 못 할 게 뭐가 있겠어? 그깟 해남도쯤이야 일도 아니지!”
범계위의 호언장담에 단악선이 와락 범계위를 끌어안았다.
“범 아저씨 최고!”
“음하핫! 단 의원은 언제나 그렇듯 나만 믿으면 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악량이 피식 실소했다.
범계위와 해남도 사이에 얽힌 저간의 사정을 아는 까닭이다.
“고생 좀 해라.”
그렇게 말한 초악량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의외로 범계위가 웃으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까짓것 좀 고생하면 어떻수.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
범계위가 초악량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같이 갑시다.”
초악량이 깜짝 놀라 범계위의 손을 뿌리쳤다.
“내가 왜? 싫다.”
범계위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우리 계산은 확실히 합시다.”
“계산?”
“청성파에서 진 빚은 갚으셔야지?”
“……!”
초악량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식으로 치사하게 자신을 끌어들일 줄이야!
이윽고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범계위가 흡족하게 웃더니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우리는 해남도에 다녀오마. 염화단철을 구해 합류할 테니 먼저 움직이고 있어.”
“네. 조심하세요.”
“걱정 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초 형이랑 함께 가는걸. 안 그렇수?”
초악량은 범계위를 잠시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갑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신형을 날렸다.
순식간에 작은 점으로 화해 사라지는 두 사람을 배웅한 단악선이 묵비와 시선을 마주했다.
“염화단철. 그것만 구해다 준다면 봉뿐만 아니라 침도 세상에 다시 없을 물건으로 만들어 주마.”
자신감을 내비치는 묵비를 향해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만년한철은 굉장히 비싸다 들었는데…….”
“괜찮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
“아마 그 물건들이 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거든. 역사에 내 이름을 남기는 일인데 그 정도는 기꺼이 투자해야지.”
묵비의 눈빛에서 단단한 각오와 열의가 느껴졌다.
단악선이 한설화와 가두달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럼 우리도 출발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