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32)
신마의선-132화(132/500)
신마의선 (132)
“응? 가짜가 아니라고?”
범계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의가 안으로 초악량과 한설화가 들어섰다.
“조금 전에는 그걸 만든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요. 왜 이걸 신마단이라고 하는 걸까요?”
단악선이 다시 한 번 유발 안의 내용물을 집어 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요. 아무리 봐도 이건 보양환이 분명해요.”
단악선이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의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약을 어디서 구하셨죠?”
홍씨 의방의 의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단지 맛을 본 것만으로 약의 진위를 알아낸다고?”
“제가 만든 거니까요.”
그래도 홍씨 의원은 여전히 의구심을 지워 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로 뛰어난 약을 제조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를 뒤져도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술에 평생을 바쳐 온 그조차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이 약재의 배합을 분석하기 위해 밤을 지새운 게 벌써 몇 달이던가.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보양환의 재료를 나열했다.
“이 안에는 갈근과 건칠, 곽향과 구자가 들어가 있어요. 길경과 당귀, 도인도 들어가고요.”
의원의 눈이 반짝였다.
“도인? 하지만 복숭아씨에는 독이 있어서 복통을 유발할 텐데?”
“당연히 독을 제거하는 법제 과정을 거쳐야죠. 뜨거운 석회에 울금을 넣어 볶는 방법을 썼어요. 그리고 나중에 지부자와 총백을 배합해 따듯한 기운을 끌어 올렸고요.”
“총백, 총백이라……. 그렇군. 끝에 남는 달짝지근한 맛이 말린 파 뿌리에서 우러난 것이었군. 확실히 그런 방식이라면 약재의 기운들이 충돌하지 않으면서 효과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겠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인 의원은 이후로도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단악선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
의원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술만 달싹였다.
커질 대로 커져 흔들리는 눈동자는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놀라움을 넘어 그저 아연할 지경이었다.
실제로 그가 느낀 충격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눈앞의 소년이 지닌 의술은 자신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자네가 신의의 아들인가?”
상황이 이쯤 되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의원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신마단과 같은 효과를 지닌 약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최근 의가들 사이에 소문이 무성한 진성의가의 가주.
황실의 어의들조차 배움을 청한다는 그 정도는 되어야 감히 견주어 볼 엄두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마상단에서 구했네.”
“신마상단이요?”
단악선의 반문에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 달 전인가? 자신을 그곳의 단주라고 소개한 사내가 이곳을 방문해 그 약을 건네더군. 당시 급한 환자가 있어 써 보았는데, 놀라우리만치 효과가 뛰어나 그 뒤로 계속 주문을 넣어 왔네.”
고개를 갸웃하던 단악선은 이어진 의원의 설명에 이내 탄성을 터트렸다.
“마흔 정도 되었을까? 깡마른 얼굴에 족제비처럼 쭉 찢어진 눈매를 지닌 사내였네.”
“아!”
단악선이 되물었다.
“혹시 그분 성함이 능씨 성에 소 자 밀 자를 쓰지 않았나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능씨 성을 썼던 것은 확실하네. 하지만 그날 이후 다시 찾아오진 않았네. 매번 다른 사내들이 신마단을 이곳에 가져다주더군.”
단악선은 비로소 어찌 된 연유인지 알 수 있었다.
“족제비 낯짝? 딱 능소밀 그놈인데?”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의 눈에서 자욱한 살광이 쏟아져 내렸다.
“뭐? 단 의원 이름을 팔아 사기를 친 게 그놈이라고?”
금방이라도 신마곡으로 달려갈 것 같은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신마상단이라는 곳을 사 총관이 운영하는 것 같다고.”
“뭐라고! 사무심 그놈까지 가담한 거야? 내 이것들을……!”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말을 말자.”
단악선이 웃으며 대신 설명했다.
“상단의 이름을 신마곡에서 따온 것 같아요.”
총관 일을 맡자마자 사무심이 가장 먼저 단악선에게 부탁한 일이 바로 보양환의 제조였다.
보양환의 기본적인 효과는 성수신단과 비슷하지만 값비싼 약재 대신 일반적인 약재로 제조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다.
그러나 의가를 통해 거래되는 기존의 단약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떠나기 전에 총관님께서 창고의 약재들을 이용해 보양환을 대량으로 제조해도 되는지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제조법을 알려 드렸고요.”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은 자신의 불찰로 인해 빚어진 촌극이었다.
그동안 연판장 때문에 강호를 떠도느라 신마곡에 연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홍씨 의방의 의원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시간을 뺏어서 죄송해요. 신마단은 계속 판매하셔도 될 것 같아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의원을 뒤로한 채 단악선이 의가를 나섰다.
“어? 범 아저씨는요?”
범계위가 따라나오지 않자 단악선이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사랑해서 그랬어. 이해하지?”
“네?”
“자자. 가만 있어봐.”
머리를 쥐고 있던 사내의 몸을 두드려주는 범계위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름대로는 미안함의 표현이었지만 그 웃음이 주는 공포는 머리를 쥐고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 전 이제 괜찮습니다.”
“어? 그래? 정말?”
“네!”
“아니야. 내가 석 달 열흘은 오장육부가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어. 기다려 봐.”
범계위가 뜨거운 오른 손을 들어보이자 사내의 동공이 흔들렸다.
“정말 괜찮습니다!”
“어? 뭐 그렇게까지 거절한다면야. 알았어.”
범계위는 그제야 손을 흔들어주고는 의가를 나섰다.
그가 곁으로 오자 단악선은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사 총관님은 역시 대단해요. 상단을 운영하시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벌써 여기까지 진출해 있을 줄은 몰랐어요.”
범계위와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돈 귀신이 아니지.”
“이곳 사천까지 진출했다는 건, 이미 다른 지역에도 신마단을 유통하고 있다는 의미겠군.”
단악선은 새삼 시간의 빠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석 달만 지나면 우리가 신마곡을 떠나온 지 일 년이 되네요.”
신마곡과 마을 안만 오가며 지내던 시절에는 그렇게 더디게 흐르던 시간이 지금은 깜짝 놀랄 만큼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두 분 다 잘 지내고 계시겠죠?”
우연치 않게 접하게 된 두 사람의 소식과 활약에 기분이 좋아진 단악선이었다.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애쓰시는 두 분을 위해서라도요.”
* * *
한편.
같은 시각 무위에서는 능소밀과 사무심이 어둑한 뒷골목을 거닐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자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소적산이 넙죽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준비는?”
까칠한 능소밀의 말투에도 소적산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완벽합니다.”
사무심이 빙그레 웃으며 소적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맙네. 우리 때문에 자네가 늘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두 분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진심이 듬뿍 담긴 소적산의 표정에 사무심과 능소밀이 조용히 웃었다.
처음에는 뒷골목 건달들에게 상단 일을 맡기는 것에 대해 내키지 않아 하던 능소밀도 이제는 생각을 달리했다. 소적산이 이끄는 이의당은 그들의 기대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었다.
뒷골목을 전전하던 순의방을 벗어나 이제는 신마상단의 주축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지 오래였다.
“들어가시죠.”
소적산의 안내를 받아 사무심과 능소밀이 허름한 모옥 안으로 들어섰다. 햇살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실내에는 퀴퀴한 먼지와 묵은 냄새가 가득했다.
안쪽 벽으로 다가간 소적산이 벽면의 한 곳을 눌렀다.
그르릉.
육중한 소리와 함께 벽면 아래 지하로 이어진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 사람은 희미한 유등에 의지해 계단을 내려섰다.
계단 끝에는 이토록 허름한 모옥 아래 존재한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거대한 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층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은은한 약재 향이 감도는 내부에는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약재를 썰기 위한 작두와 약탕기, 연단로에 이르기까지.
단약 제조를 위한 설비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다.
“이자들인가?”
능소밀의 물음에 소적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실 곳곳을 분주하게 오가며 단약 제조에 열중하는 사내들.
그 숫자만 서른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예. 본래 춘약을 만들던 놈들이라 실력은 확실합니다.”
“걸러 낼 놈은 걸러 냈겠지?”
“물론입니다.”
사실 이들 대부분은 흑룡회에 잡혀 와 노예처럼 지내던 자들이었다.
소적산은 흑룡회를 흡수하면서 그들에게 자유를 보장했고, 거기에 새로운 일자리와 임금을 제공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사무심의 요청에 의해 다시 소집하게 된 것이다.
“단약을 만드는 건 웬만한 의원보다 뛰어난 자들입니다.”
“규칙은 잘 설명했겠지?”
“네.”
철저한 비밀 유지를 위해 지하실 내부에서는 대화가 금지되었다.
필요한 경우에는 이곳에 상주하는 이의당 소속의 관리자를 통해서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신마단의 제조 방법을 철저히 분업화시켜 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알 수 없도록 조치했다.
이때 몇 명이 사무심과 능소밀 쪽으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멀끔하게 의관을 정제한 이의당 소속의 관리자들이었다.
이제는 신마상단의 일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들은 그 어디에서도 예전의 뒷골목 건달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목!”
능소밀의 쩌렁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아졌다.
“이제부터 자네들은 사람을 죽이는 약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약을 만들 것이다. 또한 그대들이 신의를 다하는 한, 우리가 먼저 내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며 사전에 명시해 나누어 가졌던 계약서에 적힌 내용대로 정당한 보수와 권리를 보장하겠다.”
그 말에 사내들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몇몇은 환하게 웃었지만 대부분은 반신반의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만큼 오랜 세월 흑룡회에게 착취당하며 시달린 탓이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사무심이 더없이 인자한 미소를 건넸다.
“우리를 믿어 주게. 나 역시 한때는 자네들처럼 평생을 의심으로 살았으나, 곡주님을 뵙고 난 이후 세상을 달리 보게 되었네.”
“…….”
“당장은 어렵더라도 언젠가 자네들도 그리되길 바라네. 나와 이 친구들도 더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우릴 도와주게나.”
말을 마친 사무심이 그들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능소밀은 당황했지만 이내 사무심을 따라 허리를 숙였다.
소적산도 재빨리 두 사람을 따라 했다.
약제실에 모인 사내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이의당의 대당가인 소적산.
그보다 더 윗급인 두 사람이 이처럼 먼저 자신들에게 예의를 갖춰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사내들 중 누군가가 황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를 시작으로 사내들이 앞다투어 허겁지겁 마주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격동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하나같이 뜨거운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잠시 후 위층과 연결된 계단을 통해 점소이들이 술과 음식을 날라 오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접하지 못할 온갖 산해진미의 향연에 사내들이 환호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점소이들 역시 하나같이 이의당에 소속되어 있는 정식 일원이었다.
따라서 이곳의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는 없었다.
문득 사무심이 점소이 중 한 명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 모습에 능소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아, 별거 아닐세.”
사무심이 조용히 웃으며 점소이를 가리켰다.
“저 아일 보고 있으니 곡주님이 생각나는군. 지금쯤 많이 크셨겠지?”
그제야 능소밀이 사무심을 따라 웃었다.
“신마곡을 떠나실 때 키가 저 아이 정도였으니 지금쯤 머리 하나만큼은 더 자라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 크는 속도야 워낙 빠르잖습니까.”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인 사무심의 눈 위로 언뜻 그리움이 떠올랐다.
“곡주님이 보고 싶군.”
“저도 그렇습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셔야 할 텐데요.”
능소밀의 눈빛도 함께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