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37)
신마의선-137화(137/500)
신마의선 (137)
객잔에서 하루를 쉰 단악선은 다시금 여행길에 오를 채비를 마쳤다.
“이제 구파일방 중에는 곤륜과 공동만 남았네요.”
“어디를 먼저 가고 싶으냐?”
“음…….”
초악량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던 단악선이 이내 목적지를 밝혔다.
“곤륜이 좋을 것 같아요.”
“꽤 먼 길이 되겠구나.”
경공을 펼쳐 직선으로 달려도 오천 리가 넘는 길이었다.
하물며 길을 따라 이동하는 여정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거리만 족히 그 몇 배가 되는 것이다.
“이제 겨울이 코앞이니까요.”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해의 겨울 날씨는 혹독하기로 유명했다.
강풍을 동반한 혹한은 말할 것도 없었고, 자칫 폭설이라도 쏟아진다면 꼼짝없이 몇 달은 발이 묶일 수도 있었다.
거기에 곤륜산의 험한 지형을 감안하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다녀오는 것이 현명했다.
그에 반해 공동파는 감숙성에 위치해 있었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위치였기에 돌아오는 길에 들러도 충분했다.
그렇게 떠날 준비를 마치고 객잔을 나서려 할 때였다.
객잔 안으로 한 명의 중년 거지가 들어섰다.
그가 곧장 이립을 향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오결 제자 화종개가 방주님을 뵙습니다.”
이립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서둘러 달려온 듯 화종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얼굴에는 온통 땀이 한가득이었다.
향주급의 인물이 이토록 급히 움직였다는 건 가져온 소식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
이립이 그를 데리고 객잔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혼자 돌아온 이립이 단악선을 향해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우린 여기까지만 함께해야겠구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곤란한 얼굴로 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 동향이 수상해 몇 가지 조사를 지시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 거지들의 이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구나.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무시하기에는 아무래도 찝찝해서 말이야.”
단악선이 짧게 탄식했다.
함께한 시간이 적지 않았던 만큼 정도 많이 들었다.
가두달이 떠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립과도 헤어져야 한다니 몹시 아쉬웠던 것이다.
그런 단악선을 향해 이립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 표정 하지 말아라. 넓은 듯하면서도 한없이 좁은 게 이 바닥이니까. 언제 헤어졌냐는 듯 다시 만날 것이다.”
“방주님도 참 힘드시겠어요.”
단악선의 말에 이립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타고난 성격이 이 모양인 것을 누굴 탓할까. 돌다리도 두들겨 봐야 직성이 풀리는 노파심 때문인 것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립의 표정은 진지해져 있었다.
“나는 내 일을 할 터이니, 너도 네가 할 일을 하거라.”
“방주님.”
“……?”
“고마워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의아해하던 이립의 눈 위로 감격한 빛이 떠올랐다.
“항상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시잖아요.”
“……!”
이립은 잠시 말이 없었다.
진심이 담긴 단악선의 말에 새삼 울컥한 것이다.
말이 좋아 구파일방이지, 개방을 대하는 타 문파들의 태도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몇몇 제대로 된 인사들을 제외하면 개방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멸시의 감정을 예의로 감추고, 대의라는 명분 아래 허울 좋은 협력을 강요하곤 했다.
그런데도 결국 개방에 돌아오는 이익은 거의 없었다.
물론 이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그 역시 사람인 이상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이따금 깊은 회의가 들었다.
개방은 다른 구파에 비해 무공 실력이 뒤떨어졌다.
무공 자체가 뛰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다 못해 개방에 투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사람들은 무지했고 입문 자체가 늦어 무공으로 대성하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는 곳이 개방이었다.
아쉬울 때만 부탁을 빙자한 협조를 구하는 구대문파의 꼬락서니가 눈꼴실 때도 있었다.
일이 잘못되어 불똥이 튀면 맨 앞에서 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건 항상 개방의 거지들이었기 때문이다.
강호의 협의를 세우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방도들을 떠올리면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실제로 정마대전 당시에도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문파는 개방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보상이나 대우는 없었다.
협의의 개방이라 추켜세우지만 항상 이용만 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개방의 현실이었다.
하나 단악선은 진심으로 자신들을 인정해 주고 있었다.
드러나지 않는 자신들의 노고를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립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이는 홍적문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이립을 대신해 홍적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우리 업이고 소명(召命)이다.”
“부디 조심하세요.”
“너무 염려할 것 없다.”
그제야 이립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지필묵을 준비했다.
이립이 급히 휘갈긴 서신을 단악선에게 건넸다.
“추천장이다. 곤륜 장문인은 성격이 좀 괄괄해서 그렇지, 광명정대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나와의 일면도 있고 화통한 성격이니 이걸 가져가면 흔쾌히 너와 만나 줄 것이다.”
추천장을 받아 든 단악선이 물끄러미 이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그에게 성큼 다가섰다.
이립이 슬쩍 물러나며 고개를 저었다.
“벼룩 옮는다.”
“괜찮아요.”
“넌 괜찮을지 몰라도 내가 괜찮지 않다.”
이립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단악선은 살짝 아미를 찡그리고 있는 한설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보고도 단악선은 이립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허허, 이것 참…….”
이립이 곤란한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리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단악선의 등을 토닥였다.
“부디 좋은 결과 얻길 바란다.”
“방주님도요.”
“아니.”
“……?”
“차라리 헛물을 켜는 게 낫다. 그만큼 강호가 평화롭다는 의미니까.”
“아!”
탄성을 흘리는 단악선을 뒤로한 채 이립이 다른 사람들과도 한 명씩 눈을 맞추고 작별을 고했다.
홍적문 역시 일행과 인사를 나눴다.
이립의 호위를 전담하고 있는 만큼 항상 곁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저희는 이만.”
경공을 전개해 순식간에 멀어지는 이립과 홍적문의 뒷모습을 단악선은 말없이 바라봤다.
아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배웅한 단악선이 단출해진 일행을 돌아봤다.
“우리도 이제 출발해요.”
보름 후.
단악선 일행은 청해성에 들어섰다.
뽀득.
발 아래 부서지는 눈을 만끽하며 단악선이 쪼르르 달려 나갔다.
고원 지대에 펼쳐진 끝없는 설원은 장관 그 자체였다.
연신 새하얀 입김을 토하면서도 단악선은 순백의 설원 위로 첫발자국을 남기는 놀이에 흠뻑 빠져 있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곳곳을 뛰어다니던 단악선이 한참 뒤에 일행을 돌아봤다.
“여기는 벌써 겨울이네요.”
초악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형 자체가 높은 만큼 청해의 겨울은 유독 빨리 찾아오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언 손을 입으로 가져가 호호 불었다.
얼마나 눈밭을 뛰어다녔는지 코끝은 이미 빨갛게 얼어 있었다.
한설화가 그런 단악선의 옷깃을 단단히 여며 주었다.
단악선은 솜을 넣은 바지와 여우 가죽으로 만든 두꺼운 털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거기에 방한을 위해 여러 겹으로 두껍게 감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은 듯 뒤뚱거리며 걷는 모양새가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졌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가벼운 경장 차림이었다.
“저만 이렇게 입으니까 이상해요.”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빙그레 웃었다.
“몇 년만 지나면 너도 이 정도 추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게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가 앞으로 나섰다.
“단 의원, 추워?”
단악선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범계위가 내공을 끌어 올렸다.
“내 옆에 딱 붙어 있어. 그럼 안 추울 거야.”
순식간에 주변을 감싼 따듯한 열기에 단악선이 범계위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헤헤, 따듯해요.”
“그럼, 내 무공은 저 두 명과 달리 쓸 데가 많지.”
으쓱한 범계위가 초악량과 한설화를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졌다.
두 사람의 기세가 험악해졌지만 의기양양한 범계위는 그들의 따가운 시선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예 단악선을 어깨 위로 올려 목말을 태운 범계위가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만큼 부쩍 해가 짧아진 것이다.
“다음 마을에서는 건량을 좀 넉넉히 챙겨야겠어요.”
단악선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곳 청해성은 전 중원을 통틀어 가장 넓은 성이었다.
반면 척박한 환경 탓에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가장 적었다.
그래서인지 인가를 찾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런데 다행히 밤이 깊어지기 전에 작은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운 좋게 객잔도 있었다.
규모는 작아도 갖출 건 모두 갖춘, 좀처럼 보기 드문 마을이었다.
초악량이 춘래향(春來香)이라는 편액이 걸린 객잔을 가리켰다.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 쉬어 가자.”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된 야영에 지쳐 있을 단악선을 위한 그 나름의 배려였다.
그런데 정작 단악선은 짐도 풀기 전에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어딜 가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약재상이 있는지 찾아보려고요.”
“또?”
초악량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면 직업병 아니유?”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만큼 단악선은 마을에 들를 때마다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약재상과 시장을 뒤지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동충하초(冬蟲夏草) 파는 곳을 못 찾았어요. 분명 이곳 청해성의 특산품이라고 들었거든요.”
“동충하초?”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이 웃으며 설명했다.
“벌레나 곤충 몸에서 자라는 약용 버섯이에요. 겨울까지는 곤충이었다가 이듬해 봄에는 버섯이 되어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죠.”
시큰둥하던 범계위가 이어진 단악선의 설명에 눈빛을 반짝였다.
“폐 기능을 강화해 출혈과 기침을 완화해요. 무엇보다 양기를 보충해 자양 강장에 효과가 매우 뛰어나고요.”
“혹시 그거 독계산에도 들어가?”
“네.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예요.”
“그럼 구해야지.”
범계위의 속내를 눈치챈 한설화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그런데 동충하초라면 중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 않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대부분 말리거나 가루를 낸 것뿐이에요. 야생 상태의 동충하초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해요.”
“단 의원, 나랑 함께 가.”
성큼 나서는 범계위를 제지하며 초악량이 나섰다.
“아니, 이번에는 나랑 가자꾸나.”
“아니, 왜?”
범계위가 발끈하자 초악량이 핀잔을 던졌다.
“곧 식사 시간 아니냐? 너를 딸려 보내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그거야…….”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범계위가 어물쩍 말끝을 흐렸다.
그런 범계위에게 모든 짐을 떠넘긴 채 초악량이 단악선과 함께 나란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을을 둘러보길 잠시.
시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약재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와! 중원에서 보지 못했던 게 정말 많아요.”
약재상 앞에 늘어놓은 좌판 앞에는 온갖 약재들이 올려져 있었다.
단악선은 신기한 눈으로 약재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간혹 약재상에게 약재의 효능과 사용법을 물어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한창 단악선이 약재에 정신이 팔려 있던 그때.
초악량의 눈 위로 기광이 번뜩였다.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수상한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초악량이 슬쩍 눈을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삽십 대 초반쯤 되었을까.
딱히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평범한 인상의 사내였다.
무공을 익힌 흔적도 없었고,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낯빛이 유난히 창백했다.
“어?”
약재를 살피던 단악선이 코를 킁킁거린 것도 그때였다.
“독 냄새가 나요!”
뒤늦게 사내를 발견한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랏빛으로 물든 입술과 간헐적인 경련.
거기에 불규칙한 호흡과 핏기 없는 얼굴까지.
전형적인 중독 증상이었다.
게다가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몹시 위험한 상태였다.
단악선과 눈이 마주친 사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단악선이 놀라 사내에게 달려갔다.
그 순간 초악량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사내의 행동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아이보다는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사내는 자신이 아닌 단악선을 콕 집어 도와 달라고 했다.
단악선이 의원이란 사실을 알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그 일련의 상황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이질감의 정체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사내의 눈빛 때문이었다.
단악선과 가까워지자 두려움에 물들어 있던 사내의 눈빛이 돌연 살기로 바뀌더니.
소매 속에서 꺼낸 한 자루 비수가 단악선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