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38)
신마의선-138화(138/500)
신마의선 (138)
“……!”
단악선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설마 상대가 갑자기 자신을 죽이려 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간 익혀 온 보법도, 금나수도 지금 이 순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새하얗게 변해 버린 것이다.
그 순간에도 비수는 단악선의 명치를 파고들고 있었다.
한 줄기 부드럽고 유장한 기운이 단악선을 감싼 것도 그때였다.
사태를 파악한 초악량이 늦지 않게 손을 쓴 것이다.
“큭!”
두 손으로 비수를 움켜쥔 사내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앞의 꼬마와 비수의 거리는 고작 한 치 남짓.
그런데 비수가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친 것만 같았다.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일그러진 것도 한순간이었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을 때.
시간이 지워진 것처럼 눈앞에 나타난 초악량의 모습에 사내가 경악했다.
순간 엄청난 충격이 손목을 타고 올라와 온몸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우드득.
두 사람 사이에서 섬뜩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초악량이 상대의 손목을 비틀어 꺾어 버린 것이다.
챙그랑.
사내의 손에서 비수가 떨어졌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은 그 직후에 벌어졌다.
돌연 사내가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떨더니 힘없이 축 늘어진 것이다.
초악량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를 제압하긴 했지만 살수를 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놈이 단악선을 해치려 한 이유를 밝혀낼 때까지는 살려 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맥없이 고꾸라지는 상대의 두 눈에서는 이미 생명의 기운이 사라져 있었다.
초악량의 표정을 마주한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 때문이 아니에요.”
“괜찮으냐?”
여전히 안색은 창백했지만 단악선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덕분에요.”
초악량이 손을 놓자 사내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단악선이 그에게 다가가 맥을 짚었다.
예상대로였다.
사내는 이미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어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정말…… 지독하네요.”
단악선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물러서라.”
단악선을 뒤로 물린 초악량이 사내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서였지만 소득이 없었다.
“일단 돌아가자.”
그렇게 말한 초악량이 의아한 눈으로 단악선을 보았다.
단악선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죽은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미하게 떨리는 단악선의 어깨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초악량이 손을 뻗어 단악선의 손을 잡았다.
얼마나 놀랐던지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잡은 손을 통해 초악량이 진기를 흘려 넣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단악선은 몸이 천천히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객잔으로 돌아왔다.
“어서 와, 단 의원.”
환한 얼굴로 단악선을 맞던 범계위가 초악량을 향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유달리 심각한 단악선의 표정 때문이었다.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단악선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그녀가 어찌 된 영문인지 눈빛으로 물었다.
초악량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을에서 일이 있었다.”
이어진 초악량의 설명에 범계위와 한설화의 눈에서 가공할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감히 어떤 놈들이?”
치솟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씩씩대던 범계위가 그대로 객잔 밖으로 뛰쳐나갔고 한설화는 조용히 단악선을 끌어안았다.
“많이 놀랐겠구나.”
단악선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솔직히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고개를 끄덕인 한설화가 말없이 단악선의 등을 쓸어 주었다.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된 것일까.
단악선이 복잡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게…… 무림이라는 거군요.”
말로만 듣던 무림의 어둠의 일면을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초악량과 범계위가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잠시 후 범계위가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마을 전체를 이 잡듯이 뒤졌으나 무공을 익히거나 수상한 자는 발견할 수 없었다.
초악량 역시 예상했던 결과였다.
행여 모를 자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극독도 서슴지 않고 복용하는 놈들이었다.
그토록 용의주도한 놈들이 추적이 가능할 빌미를 남겨 놓을 리 만무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씨근덕대는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암습에 성공을 했어도 그놈은 죽었을 것이다. 이미 치사량의 독에 중독된 상태였으니까.”
“그러니까 죽을 걸 알고서도 암살을 시도했다고? 증거 인멸을 위해 스스로 독을 복용한 거고?”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이자 범계위가 침음했다.
“그 정도로 독한 놈들은 많지 않은데.”
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사람이 있었다.
“혹시 그놈들 아냐?”
“……?”
“당가! 얼마 전에 놈들이 대놓고 시비를 걸어왔잖수.”
정연신니의 엄포에 물러섰다곤 하나 이대로 순순히 포기할 놈들이 아니었다.
암습자는 독에 중독된 상태.
당가는 독의 전문가였고, 독기라면 그들을 빼고 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초악량은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아니다.”
아무리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당가라지만 이건 그들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도 정파를 표방하는 만큼 나름의 원칙과 명분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들은 아직 원하던 절명전을 손에 넣지 못했다.
아직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는 만큼 무턱대고 암습을 가할 리 없었다.
무엇보다 당가가 직접 단악선을 죽이려 했다면 이처럼 허술한 방법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을 노린 것인가?’
초악량은 문득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만약 이번 암습이 자신들과 당가의 전면전을 야기하기 위한 것이라면?
아직 배후가 누군지는 모르나 이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한설화가 초악량을 향해 물었다.
“정확히 단 의원을 노렸다고?”
“놈은 단 의원이 의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초악량은 당시의 정황을 다시 한 번 설명했다.
“환자를 두고 보지 못하는 단 의원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우리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초악량이 고개를 저었다.
“놈에게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의원만 주시하고 있었지.”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신의나 마의, 두 사람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 말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생각에 잠겼다.
아예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의와 마의는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온 만큼 은원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단악선이 이미 두 사람의 아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두 사람에 대한 원한이 자식인 단악선에게 향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말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단악선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어쩌면 제가 그 은원의 당사자일지도 몰라요.”
세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단 의원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눈을 들어 세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연판장요.”
단악선이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연판장의 완성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허를 찔린 듯 세 사람이 당황한 눈빛을 드러냈다.
단악선 말대로였다.
누군가는 분명 지금의 상황을 싫어할 수도 있었다.
한데 문제는 정확히 누구인지 알아낼 방법이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반면 어느 정도 신색을 회복한 단악선은 침착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고 예상은 했어요.”
다만 그날이 오늘일 줄은 몰랐다.
“일단 오늘은 이만 쉬자꾸나.”
많이 놀랐을 단악선을 위해 초악량이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우리가 있으니 안심해라.”
단악선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방으로 향하던 단악선이 일행을 돌아봤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선택한 길이에요. 이 정도 위험은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어요.”
세 사람 역시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단악선이 객실 안으로 사라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세 사람의 표정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단악선은 이번 일을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들은 아니었다.
기필코 이번 일의 배후자를 발본색원해 철저하게 응징하리라!
지금은 오직 그것만 다짐할 뿐이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이나 남은 이른 시각이었지만 단악선 일행은 객잔을 나섰다.
단악선을 에워싸듯 품자 형태로 늘어선 세 사람은 삼엄한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오른쪽은 이상 없다.”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도 마찬가지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수.”
전면을 노려본 한설화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모를 암습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들은 아예 사방에 기감을 펼친 채 이동 중이었다.
잔뜩 날이 선 그들의 눈빛에 단악선이 곤혹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평소처럼 여행하듯이 즐겁게 가요.”
단악선의 만류에도 세 사람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여전히 딱딱한 분위기에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앞으로 무공 수련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이번 일을 통해 단악선 역시 깨달은 바가 있었다.
만약 제때 초악량이 나서지 않았다면 이렇게 살아 있지 못했을 터.
하나 언제까지 세 사람에게 의지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더 강해지고 싶었다.
‘몸도, 그리고…… 마음도.’
언제 또 비슷한 위기에 맞닥뜨릴지 알 수 없는 일.
그때도 어제처럼 한심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단악선이 멀리 우뚝 솟은 곤륜산을 바라봤다.
이제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그날 오후.
하루를 꼬박 이동해 곤륜산 아래 도착한 일행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초악량의 나직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피 냄새가 난다.”
산정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 안에 비릿한 혈 향이 실려 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사위를 쓸어 보길 잠시.
초악량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쪽인 것 같군.”
단악선을 보호한 채 그들은 곤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설원을 붉게 물들인 피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쌓인 눈에 반쯤 파묻혀 있는 다섯 구의 시신도 보였다.
“곤륜 문하들 같은데?”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매 끝에 덧댄 홍청황의 끈 장식.
거기에 엎드린 채 죽어 있는 도사의 등 쪽에는 특이한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삼태극(三太極), 또는 희선(喜旋)이라 부르는 곤륜파의 상징이었다.
중원의 도교 문파들이 이원의 태극을 쓰는 것과 달리 곤륜파는 지금도 삼태극을 고집하고 있었다.
“응?”
시신들의 사인을 살펴보던 초악량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러슈?”
범계위의 물음에도 초악량은 말이 없었다.
말없이 서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초악량이 시신 한 구를 가리켰다.
“이자는 강력한 양강 무공에 당해 내부의 장기가 타 버렸다.”
그리고 곧장 다른 시신을 가리켰다.
“저자는 요혈을 파고든 지독한 음한의 경력에 기맥이 얼어 버렸고.”
초악량이 발밑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쓰게 웃음 지었다.
“이자는 내부가 진탕되고 온몸의 뼈가 부서졌다. 상당한 위력의 전사경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이 분명하다.”
“어? 그건 마치 우리에게 당한 거 같잖소?”
범계위가 당황한 얼굴로 초악량과 한설화를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어? 아닌데? 계속 같이 있었는데?”
그때였다.
“멈춰라!”
차가운 대기를 뒤흔드는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일행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눈보라를 일으키며 비탈을 달려오는 인영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장내에 도착한 사람들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곳곳에 쓰러져 있는 시신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감히! 삼성요(三聖坳)가 지척인 이곳에서 감히 곤륜 문하를 살해하다니!”
이십여 명의 곤륜파 도사들을 이끌고 있던 선두의 중년 도사.
굉도자(宏道者)가 창노해 부르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