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39)
신마의선-139화(139/500)
신마의선 (139)
초악량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저들이 오해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하긴.’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 상황은 지나치게 공교로웠다.
그러나 지금은 저들을 적대할 수 없었다.
“큰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초악량의 말에 굉도자가 검을 뽑아 들었다. 아끼는 제자의 시신을 본 그에게 인내심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닥쳐라! 당장 그 자리에 무릎 꿇지 않는다면 내 검이 무정하다 원망 못하리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곤륜 문하가 일제히 검을 뽑았다.
스무 자루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청광이 눈 위에서 시리게 부서졌다.
굉도자의 반말에 초악량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했다.
그러나 단악선 때문에 애써 인내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들을 죽인 사람은 우리가 아니다.”
“순순히 본 파로 따라온다면 충분히 해명할 기회를 줄 것이다!”
보다 못한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이것들이 지금 우릴 뭘로 보고.”
어느새 살기를 끌어 올린 범계위가 섬뜩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끌고 가 봐.”
언제든지 출수할 준비를 마친 범계위가 굉도자를 노려봤다.
“할 수만 있다면.”
범계위가 뿜어내는 기파를 마주한 곤륜 문하들이 멈칫했다.
일순 온몸의 피가 서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잠깐만요!”
단악선의 다급한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아졌다.
단악선이 시신 한 구를 향해 황급히 다가갔다.
약관을 넘기지 않은 듯 보이는 청년 도사.
목 언저리에 손을 가져다 대자 희미하게 맥이 뛰고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숨도 붙어 있었다.
단악선은 지체하지 않고 품속에서 침을 꺼냈다.
“무슨 짓을!”
시신에 침을 찔러 넣는 단악선의 모습에 곤륜 문하들이 경악했다.
그러나 단악선은 눈 하나 깜짝 않고 필요한 치료를 이어 갔다.
이를 오해한 곤륜 문하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하나 그들은 단악선에게 이르지 못했다.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가 그들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물러서라!”
초악량의 외침에 굉도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야말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을 지닌 자들이도다! 이미 죽은 자를 또다시 인질로 삼다니!”
초악량의 인내심도 거기까지였다.
“한 번만 더 그 입을 놀려 봐라.”
초악량의 두 눈에서 광망이 이글거렸다.
“곤륜이라는 이름을 강호에서 지워 버릴 테니.”
말없이 서 있던 한설화가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가볍게 허공을 내리그은 손.
하나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쩌저적.
곤륜파 도사들과 단악선 일행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균열이 생겨난 것이다.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균열은 그 깊이를 짐작할 수도 없었다.
움찔하는 곤륜파 도사들을 노려보며 한설화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단 의원의 시간이다.”
곤륜산의 혹한보다 더욱 지독한 한기가 그녀로부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굉도자를 비롯한 곤륜 문하들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설마……?”
비로소 세 사람의 정체를 짐작한 굉도자가 침음성을 흘렸다.
하나 자신들은 곤륜 문하.
죽었으면 죽었지 불의 앞에 굴할 수 없었다.
그 상대가 누구라도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결코 위협에 몸을 사리는 법이 없었다.
기련산 너머로 쫓아낸 마귀들.
언제 쏟아져 나올지 모르는 놈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목숨 따위가 아까웠다면 처음부터 곤륜의 도첩에 이름도 올리지 않았을 터.
곤륜파 도사들이 기세를 높여 가자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초악량이었다.
‘이것들, 제정신인가?’
이쯤 되면 적당히 주제 파악을 하고 물러설 줄 알았는데, 오히려 투지를 드러내며 일전을 불사할 기세였다.
하나같이 무모한 그 모습이 마치 수십 명의 범계위를 보는 기분이었다.
‘끔찍하군.’
내심 진저리를 친 초악량이 전면을 노려봤다.
상황은 이미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범계위나 한설화, 둘 다 한번 뱉은 말을 번복할 성격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역시 질러 놓은 게 있으니 이제 와 무를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하나 그 대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범 아저씨! 불을 피워 주세요! 뜨거운 물이 필요해요!”
“어? 그래!”
황망히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부리나케 움직였다.
“아주머니!”
이어진 단악선의 외침에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진기를 끌어 올리자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허공에 응결되기 시작한 작은 물방울이 순식간에 얼어붙나 싶더니 이내 커다란 얼음덩이로 몸집을 부풀려 갔다.
범계위가 짐을 뒤져 커다란 솥을 가져왔다.
청해에 들어서면서 일상처럼 빈번하게 노숙을 해 왔기에 일찌감치 챙겨 놓은 가재도구였다.
두 손으로 솥을 잡은 채 범계위가 진기를 끌어 올렸다.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오른 솥 안에 한설화의 얼음이 채워졌다.
초악량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반면 곤륜파의 도사들은 일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죽일 듯이 살기를 뿜어 대던 저들이 이처럼 갑자기 물러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단악선이 소리쳤다.
“깨끗한 천을 준비해 주세요!”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단악선이 버럭 했다.
“빨리요! 이 사람 죽이고 싶어요?”
“……!”
그제야 곤륜파의 도사들은 상황을 깨달았다.
‘신의!’
눈앞에 세 괴물이 있다면 저 아이가 당연히 신의의 아들일 터.
“천을 가지고 와라!”
정신을 차린 굉도자의 외침에 곤륜파 문하들이 부리나케 어딘가로 달려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들의 손에는 새하얀 광목천이 들려 있었다.
그사이 범계위가 움켜쥔 솥 안에서는 물이 끓기 시작했다.
한설화가 적당히 내공을 사용해 뜨거운 물을 식히고, 온도가 너무 떨어지면 범계위가 다시 데우기를 반복했다.
광목천을 건네받은 단악선은 눈앞의 환자를 살려 내기 위해 쉬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그렇게 두 시진에 걸친 사투 끝에 단악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고비를 넘긴 것이다.
출혈은 잡았고, 자리를 벗어났던 장기도 제 위치를 찾아 주었다.
남은 건 환자가 의식을 회복하는 일뿐이었다.
단악선이 눈을 들어 범계위와 한설화를 바라봤다.
“부탁드려요.”
단악선의 눈빛을 읽은 범계위가 마뜩잖은 눈빛으로 한설화를 보았다.
내키지 않는 건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단악선의 간절한 눈빛에 마지못해 한 손을 내밀었다.
범계위 역시 마주 손을 내밀어 한설화와 손바닥을 맞댔다.
그리고 이내 위화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상서로운 기운이 주위를 감싸자 이를 지켜보던 곤륜 도사들이 절로 탄성을 흘렸다.
저 멀리 북으로 북으로 향하다 보면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얼어붙은 대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극광(極光)이 이럴까 싶었다.
그 와중에도 단악선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오랜 치료로 인해 고단함이 밀려들었지만 위화신공을 운용해 환자의 손과 발을 쉬지 않고 주물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으음…….”
정신을 잃고 있던 청년 도사가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힘겹게 눈을 떴다.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의식을 회복하자 굉도자가 자신도 모르게 성큼 다가섰다.
그러나 철통같은 태세로 호법을 서고 있던 초악량에게 이내 가로막혔다.
“괜찮아요. 위기는 넘겼어요.”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으로 비켜 길을 터 주었다.
그 모습에 굉도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 소년이 바로 신의의……?’
소문대로였다.
하나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무림에서 차지하는 혈수존자의 위명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다른 두 사람의 위명 또한 크게 뒤지지 않았다.
그런 세 사람을 몇 마디 말로 쥐락펴락하는 단악선의 존재가 새삼 놀랍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굉도자가 청년 도사를 향해 다가갔다.
“……사부님.”
자신을 알아본 청년 도사를 향해 굉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부다.”
“사형과 사제들은……?”
굉도자는 대답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오열을 참아 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입술이 터져 흘러내린 피가 턱을 타고 떨어졌다.
그래도 굉도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자, 능운의 창백한 얼굴이 훨씬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녀석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도사 된 신분으로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제자가 격동할까 싶어 굉도자가 적당한 말로 얼버무렸다.
그게 통했던지 능운이 희미한 웃음을 떠올렸다.
“아아……. 정말 다행……. 쿨럭.”
굉도자가 황급히 능운의 등을 쓸어내렸다.
어느 정도 호흡이 안정된 능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흑의인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흑의인?”
사부의 반문에 능운이 자신들이 겪은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나 이마저도 힘에 부친 듯 매우 느리게 띄엄띄엄 입을 열었다.
그 힘겨운 설명을 통해 굉도자는 비로소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흉수는 셋.
그리고 복면을 착용하고 있어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중 한 명은 머리카락이 온통 새하얀 백발이었고, 한 명은 난쟁이처럼 작은 사내였다고 했다.
비로소 굉도자는 자신이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만큼 흉수들의 용모파기는 단악선 일행과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기력이 다한 듯, 능운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굉도자가 화들짝 놀랐다.
“안 된다, 이놈아! 눈을 떠라! 능운아!”
굉도자가 애달픈 목소리로 차가운 공기를 흔들었다.
그러나 한번 눈을 감은 능운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굉도자가 단악선을 향해 털썩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 녀석을……. 이 녀석을 살려 주십시오! 평생 명령을 따르라 하면 따를 것이고, 목숨을 달라고 하면 기꺼이 내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 녀석만은…….”
결국 굉도자가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제자들 중 유일하게 남은 녀석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 절절한 마음에 단악선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가만히 고개를 젓는 단악선의 모습에 굉도자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냥 혼절한 것뿐이에요.”
“그럼……?”
“위기는 넘겼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단악선이 아픈 눈빛으로 다른 시신들을 보며 말했다.
“저분들을 구하기엔 너무 늦었지만요.”
“아아!”
굉도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모습에 범계위가 나직이 툴툴댔다.
“왜 저래? 미친놈인가?”
“쯧!”
초악량이 혀를 차며 범계위에게 눈치를 줬다.
갑작스런 변고에 제자들을 잃은 사부의 심정이 오죽할까 싶었던 것이다.
“아니, 그렇잖수. 잡아 죽일 듯이 길길이 날뛸 때는 언제고, 이제는 울었다 웃었다……. 저게 어디 온전한 정신을 가진 놈이 할 짓이냔 말이지, 내 말은.”
다른 사람도 아닌 범계위가 그 말을 하니 초악량은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러나 굉도자가 그런 범계위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은공들을 오해한 죄는 두고두고 갚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해량해 주십시오.”
지극히 공손한 그의 사죄에 범계위는 되려 뻘쭘해졌다.
금방이라도 다시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그를 계속 다그쳐 봤자 괜히 자신만 나쁜 놈이 될 것 같았다.
괜히 머쓱해져 헛기침을 토한 범계위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마침 적당한 놈들이 눈앞에 있었다.
범계위는 괜히 엉뚱한 곳에 분풀이를 시작했다.
“야, 너. 이리 와 봐.”
범계위에게 지목당한 곤륜파 문하 한 명이 멈칫했다.
“너 아까 나 노려봤지?”
“그, 그게……. 모든 상황이 확실치 않아서…….”
곤륜파 삼대 제자 능허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범계위는 순순히 그를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아닌데? 완전히 동문 살해범을 보는 눈빛이었는데?”
움찔하는 그를 향해 범계위가 한껏 험악한 눈빛을 드러냈다.
“콱! 그냥 한판 붙어? 알지? 우리 단 의원 아니었으면 저놈도 죽었어.”
능허를 비롯한 곤륜 문하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뭐? 잘 안 들리는데?”
능허를 위시한 곤륜 문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저희들이 실수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악량이 내심 감탄했다.
조금 전 목숨을 도외시한 채 달려 들려 하던 악귀 같은 자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담백하고 진솔한 태도였다.
성격은 하나같이 단순하고 불같았지만 의외로 뒤끝이 없었던 것이다.
‘이 산을 닮은 것인가?’
초악량이 고개를 들어 우뚝 솟은 높은 봉우리를 눈에 담았다.
산허리를 감도는 흰 구름이 은빛으로 부서지는 옥허봉.
그 모습이 저들과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