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4)
신마의선-14화(14/500)
신마의선 (14)
―여긴 왜 왔지?
“널 도와주려고?”
―네가? 나를?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전음에서는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 한 몸 건사하지도 못하는 놈이 날 도와? 이대로 무림맹에 넘겨줄까? 널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던데.
“흥! 그 멍청한 놈들이 날 잡을 수 있을 거 같아?”
―아무리 그래도 너만 할까.
“물론 나보다 더 멍청하지! 널 십대악인에 넣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난 악인이 아니니까.
범계위가 콧방귀를 꼈다.
“연못 아래 시체들은 뭔데? 연못 속에 사는 용왕님께서 그러신 거냐?”
처음엔 몰랐지만 두 사람의 격돌로 얼어붙은 연못 곳곳이 깨지고 박살 나 있었다.
뒤집어진 연못 위로 그 안에 얼어 있던 십여 구의 시신이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한순간이었지만 한설화의 눈 위로 섬뜩한 기광이 일렁였다.
저들은 하나같이 죽어도 싼 자들이었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금역에 발을 디뎠기 때문이다.
음욕에 눈이 먼 쓰레기들.
그 사실을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지만 저 멍청한 놈이 자신을 돕기 위해 왔다는 이유는 궁금했다.
―진짜 목적을 말해.
“널 도와주러 왔다니까?”
―헛소리.
범계위가 답답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네 병을 고쳐 줄 사람이 있다고!”
한설화가 순간 멈칫했다.
―내 병?
“그래.”
범계위는 ‘지금도 정신이 오락가락 하잖아.’라는 뒷말을 황급히 삼켰다.
―어떻게?
범계위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신의와 마의를 찾았거든.”
정확히는 두 사람의 의술을 이은 그들의 자식이었지만.
실제로 자신을 치료할 의원이 아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자신도 의술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진 믿지 못했으니까.
‘엎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지, 뭐.’
반면 한설화는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신의와 마의라고?
“속고만 살았어?”
그녀가 선뜻 믿지 못하는 눈치였기에 범계위가 서둘러 설명을 이어 갔다.
“나랑 초 형도 치료받는 중이야.”
한설화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범계위가 형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뿐이다.
―혈수존자?
“그래.”
―초 오라버니는 왜?
“무림맹에 당했거든.”
대답하던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문득 이상함을 느꼈던 것이다.
“응? 그런데 초 형이 왜 오라버니야? 마녀, 네가 훨씬 나이가 많지 않아?”
―닥쳐. 원래 멋있으면 오라버니야.
“그럼 난?”
―멍청한 대머리지.
“이게!”
발끈하는 범계위를 향해 한설화가 전음을 날렸다.
―제대로 설명해 봐. 처음부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제 와서?”
―그래. 궁금해졌거든.
“하! 미친년.”
범계위의 욕설에도 한설화는 분노하지 않았다. 대신 모옥 앞의 의자를 끌어와 차분하게 앉았다.
그 모습에 범계위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래, 단 의원을 위해 참자.’
범계위가 설명을 시작했다.
* * *
이틀 후.
흑룡강성의 성도, 합이빈(哈爾濱)에 들어서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합이빈은 만주어로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의미다. 북쪽에는 흑룡강(黑龍江)이, 남쪽에는 송화강(松花江)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합이빈은 ‘백조 목 위의 진주’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건 흑룡강이 흐르는 모습이 백조를 닮은 탓이었다.
우아한 별명과 달리 흑룡강성은 매우 척박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성도인 합이빈만큼은 꽤 번화한 거리와 상점을 갖추고 있었다.
범계위와 한설화가 곧장 시장으로 들어섰다.
상단들이 늘어선 거리.
그중 한 곳에 한설화가 멈춰 섰다.
“여기다 돈을 맡겨 뒀다고? 여긴 상단인데?”
범계위가 흑룡 상단이라 적힌 현판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돈을 묻어 두는 건 하수지. 투자를 통해 굴리면 알아서 불어나는 게 돈이거든.
“어련하시겠어. 그래서 치료비는 충분하다는 거지?”
―일 년에 은자 삼천 냥이라고?
“내 소개로 특별히 깎아 주는 거야. 딱 봐도 넌 치료가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오만 냥은 있어야 할걸?”
―그 정도야 푼돈이지.
범계위는 내심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게 바로 일석이조라는 것인가? 청소도 시키고! 돈도 벌고!’
범계위의 내심을 알 리 없는 한설화는 무심한 표정으로 상단에 들어섰다.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배웅한 범계위는 한설화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하긴 금액이 크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기다리던 것도 잠시.
“어?”
범계위가 이변을 감지했다.
쩌저적!
흑룡 상단의 건물 위로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나 싶더니, 송두리째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 미친년!”
돈을 맡겨 놨다더니 상단을 털려 했던 모양이다.
범계위가 상단 문을 열어젖혔다.
휘잉!
문을 열기 무섭게 건물 안에서 뼛골 시린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뚫고 안으로 들어서던 범계위의 얼굴로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차피 벌어진 일. 어차피 주범은 저년이니까 난 슬쩍 필요한 만큼만…….’
그런데 막상 안에 들어서니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쳤다.
몹시 화가 난 듯 냉기를 풀풀 뿜어내는 한설화.
그 맞은편에는 꼬장꼬장한 인상의 중년인이 한 치 물러섬도 없이 그녀와 대치 중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이 증서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눈썹이며 수염이 하얗게 얼어 고드름이 매달릴 지경이었는데도 중년인은 꼿꼿하게 선 채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이걸 보십시오.”
중년인이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저희가 상단을 인수할 당시 작성했던 양도 계약서입니다. 이때 모든 채무 관계를 정리했지요. 귀하께서 투자하신 금액에 대한 지불도 확실하게 마쳤습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와중에도 돈에 대한 무서운 집념이 느껴졌다.
“귀하께서 요구하신 돈은 저희가 아닌, 상단을 저희에게 넘겼던 전 상단주에게 지불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중년인이 한설화에게 건넨 문서를 범계위가 낚아챘다.
“그자는 어디에 있지?”
범계위의 질문에 중년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딘가 멀리 변방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소만, 저 역시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범계위가 한설화를 바라봤다.
한마디로 맡겨 둔 돈을 홀랑 날린 셈.
“뭐야? 돈을 굴린다더니? 굴리고 굴리다 아주 닳아 없어져 버렸네?”
―…….
그러다 문득 범계위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들고 있던 문서 때문이었다. 낡고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 걸로도 모자라 부분 부분 바스러지기까지 했다.
“대체 이게 언제 적 거야?”
문서의 내용을 확인하던 범계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홍무(洪武) 이 년?”
서류에 적힌 연호.
무려 오십 년 전에 작성된 문서였다.
“투자를 했다더니 오십 년 만에 찾으러 온 거야?”
범계위가 한설화를 빤히 응시했다.
“나한테 멍청하다고 할 자격이 있냐?”
―닥쳐.
자존심 상한 한설화가 그대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채 걸음을 뗄 수도 없었다.
범계위의 질문 때문이었다.
“그럼 치료비는 어떻게 할 건데?”
―…….
고민하던 한설화가 상단주를 향해 다가섰다. 그리고 자신의 비녀를 뽑아 그에게 건넸다.
“뭐 하자는 것이오?”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상단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눈을 휘둥그레 떠야 했다.
“이, 이건!”
그 또한 상단을 이끄는 사람이었기에 단번에 비녀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청옥(靑玉).
그것도 청해에서만 드물게 생산된다는 곤륜옥(崑崙玉)이었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날개를 펼친 봉황 조각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충분히 황실에 진상되고도 남을 보물이었다.
봉잠(鳳簪)을 받아 드는 상단주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이 물건을 파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끄덕.
상단주가 몇 번이고 봉잠을 살피다가 말했다.
“만 냥이면 적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성도로 가면 이만 냥은 족히 받겠습니다만, 저희로서는 수익과 운반의 어려움을 수반하는 일이니까요.”
한설화가 상단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단주가 전표를 가지러 간 사이 범계위가 물었다.
“무슨 비녀가 만 냥이나 해?”
―너 같은 바보가 조화건잠(造化鍵簪)의 가치를 알 리 없지.
“건(鍵)? 그 비녀가 무슨 열쇠라도 된다는 거야?”
한설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범계위 역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나머지 치료비는 어쩌려고?”
―신경 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한설화가 덧붙였다.
―우선은 네놈 말이 사실인지 확인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니겠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
“협박으로 어찌해 볼 생각은 하지 마라.”
멈칫하는 한설화의 모습에 범계위가 실소했다. 누가 악인 아니랄까 봐 생각이 하나같이 거기서 거기다.
그때 상단주가 돌아왔다.
가지고 온 전표에 직접 수결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범계위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말이야.”
전표를 건네받는 한설화를 향해 범계위가 물었다.
“돈을 맡긴 게 오십 년 전이면…….”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도대체 몇 살이라는 거야?”
―…….
한설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 * *
“장수하는 비결을 하나 알려 주지.”
흑색 무복을 걸친 중년인.
죽립을 깊게 눌러쓰고 있어, 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입가에 맺힌 희미한 웃음은 비웃음이 분명했다.
묵묵히 서 있는 곽가를 향해 죽립인이 말을 이어 갔다.
“선을 잘 지키는 거야.”
곽가의 눈썹이 꿈틀했다.
나이를 떠나 무림맹에 입맹한 순서로 따져도 그보다 자신이 한참 선배다.
그런 그에게 죽립인은 마치 후배를 타이르듯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함부로 시선도 마주할 수 없었다.
직책이 깡패였기 때문이다.
파사단의 일개 조장에 불과한 자신과 달리 그는 맹에서 직접 파견한 감찰 사자였다. 맹주와 맹을 지탱하는 가문의 수장들을 제외하면 무림맹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위를 지닌 인물이다.
“최근 선을 넘는다는 이야기가 들리거든.”
“……주의하겠습니다.”
“제발 그래 줬으면 좋겠군. 의원들과 시비나 일으키라고 자네들을 파견한 건 아니잖아. 안 그래?”
“…….”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자고. 자네들이나 나나 모두 맹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만나는 건 나 역시 원치 않아.”
탁.
들고 있던 찻잔을 다탁에 내려놓으며 죽립인이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려 날뛴다는 소문이 감숙 지부까지 들려오는데.”
곽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삭여야 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도 모욕적이었기 때문이다. 말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하건만, 정작 불쾌한 점은 따로 있었다.
굳이 수하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대로라면 일벌백계를 하고 맹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나, 그간의 노고를 감안해 이 정도에 그치는 걸세.”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죽립인이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말이 좋아 파견이지, 이 궁벽한 외지로 좌천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나도 사람인데 그 정도는 봐줘야지.”
“……!”
“여기서 징계를 받는다면 맹을 떠나란 소리밖에 더 되겠어?”
독려로 포장한 질책에 곽가는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었다.
자존심이 몹시 상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맹을 떠나 무관이라도 차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것도 모아 놓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대로 맹에서 퇴출되면 기껏해야 표국의 표사나 될 뿐이다.
‘젠장!’
지금 이 상황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짜증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