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40)
신마의선-140화(140/500)
신마의선 (140)
굉도자의 안내를 받아 곤륜파에 들어선 단악선은 주변을 둘러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곤륜파는 곤륜산맥 한가운데 있는 분지인 삼성요(三聖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지형 자체가 신마곡과 매우 흡사했다.
폭포와 호수만 없다 뿐이지, 마치 신마곡을 넓게 펼쳐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사방을 높은 산이 에워싸듯 자리 잡고 있어 외부의 차가운 바람을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기가 곤륜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따듯한 공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삼성요 중앙에 위치한 태청각.
그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선두에 서 있던 노도장이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사나운 올빼미를 연상시키는 부리부리한 눈매와 고집이 느껴지는 단단한 턱선.
마치 변방의 장수 같은 호방한 느낌을 지닌, 독특한 분위기의 도사였다.
그가 바로 이곳 곤륜파의 장문인인 광진도장이었다.
“이미 앞서 도착한 제자들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일행 뒤쪽에서 실려 오는 환자와 시신들을 눈에 담은 광진도장의 눈빛에 진한 아픔이 떠올랐다.
“귀한 손님이 방문하신다기에 내려보낸 아이들인데……. 때가 좋지 못했군요.”
광진도장의 한숨에 단악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고 보니 저들은 자신들을 마중하러 갔다가 횡액을 당한 것이다.
광진도장이 단악선 일행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능운을 구해 주셨다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곤륜 문하들이 일제히 쩌렁하게 외쳤다.
“곤륜불망(崑崙不忘)! 곤륜은 은인들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저들의 환대에 단악선은 살짝 당황했다.
그런 단악선을 위해 초악량이 속삭이듯 설명을 덧붙였다.
“척박한 곳이니만큼 누구보다 사람 귀한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예로부터 저들은 사파 정파 구분 없이 친구를 사귀는 것을 좋아했지. 중원과 멀리 떨어져 있어 복잡한 이해관계나 은원에 휘둘릴 일도 별로 없었고.”
그 말을 들었는지 광진도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러나 저희도 아무나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악인만큼은 가려서 사귀지요.”
그 말에 범계위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우리 십대악인인데?”
광진도장이 웃으며 반문했다.
“듣기로는 정마대전 당시 기련산의 마귀들을 누구보다 많이 때려잡은 사람이 두 분이라더군요. 맞습니까?”
범계위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어 보진 않았지만 꽤 많이 잡긴 했지.”
광진도장이 조용히 웃었다.
“그렇다면 곤륜에게 두 분은 악인이 아닙니다.”
단악선이 초악량을 보며 물었다.
“곤륜과 마교는 굉장히 사이가 안 좋나 봐요?”
“어디 사이가 안 좋다 뿐일까.”
마교가 발호할 때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곳이 곤륜이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몇 번이고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패퇴하는 마교도들을 가장 마지막까지 쫓아가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곳도 곤륜이었다.
그렇다 보니 서로 간에 무엇으로도 지워 낼 수 없는 원한을 지니고 있었다.
이때 광진도장이 단악선을 향해 호감 어린 눈빛을 건넸다.
단악선이 곤륜을 방문한 이유는 잘 알고 있었다.
개방 방주로부터 그와 관련한 언질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바로 연판장에 수결을 채워 넣었다.
“감사해요.”
단악선의 인사에 광진도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 길을 왔으니 며칠 머물다 가는 게 어떠한가?”
“아, 그렇지 않아도 환자분의 상태를 좀 더 지켜보려 했어요. 위기는 넘겼지만 상당 기간 치료가 필요하거든요.”
그 말에 광진도장이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뒤쪽의 곤륜 문하들을 향해 외쳤다.
“손님들이 머무실 곳을 안내해 드리고 음식과 반야탕(般若湯)을 내어 오거라.”
“반야탕이요?”
생소한 음식 이름에 단악선이 의아해하자 광진도장이 눈을 찡긋했다.
“간혹 스님들도 즐긴다는 음료라네. 거기선 이걸 곡차(穀茶)라 한다지?”
“아!”
단악선이 탄성을 흘렸다.
술, 그것도 증류를 거친 맑은 백주를 가리키는 그들만의 은어였던 것이다.
“추운 곳에서 몸을 데우기에 그만한 것도 없지.”
광진도장의 말에 초악량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게 좋수?”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아닌데? 뱃속의 주충(酒蟲)들이 신난 표정인데?”
반면 단악선은 다른 의미로 기뻐했다.
“환자분의 치료가 더 수월해지겠어요.”
자상을 입은 환자는 환부를 자주 소독해 주는 게 중요했다.
일반적으로 감초와 파 뿌리를 달인 감총전(甘蔥煎)을 쓰지만 이 오지에서 그런 재료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증류주가 있다면 굳이 감총전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곤륜파의 환대를 받으며 저녁 식사를 마친 이후.
능운의 치료를 위해 단악선이 자리를 비우자 초악량이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일부러 우리에게 덮어씌우려는 것 같지?”
살해당한 곤륜 문하들을 떠올린 한설화와 범계위의 눈에 불쾌한 감정이 떠올랐다.
자신들의 결백이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일이었다.
그만큼 흉수들의 무공과 격차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설픈 무공으로 자신들을 흉내 낸 것만큼은 상당히 모욕적이었다.
“아무래도 연판장을 견제하는 것이 확실한 것 같군.”
일부러 곤륜과 척을 지게 만들어 차질을 빚게 하려는 의도로 짐작되었다.
“그럼 단 의원을 해치려 한 놈들도?”
범계위가 분한 얼굴로 콧김을 내뿜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지?”
“정파 쪽은 아닐 게다. 금지를 만든다고 저들이 특별히 손해 보는 건 없을 테니.”
“그렇다고 사파 쪽도 아니잖수. 아니, 그럴 필요가 없지. 애초에 무위가 금지로 선언되면 더 이상 정파에 쫓길 일도 없을 테니까. 오히려 좋아할 일 아닌가?”
그러다 문득 초악량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전에 삼몰쌍괴 녀석들이 제 살길을 찾아간다고 했던 것 기억나지?”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초악량이 다시 물었다.
“만약 무림맹에 쫓겨 갈 곳 없는 사파의 인물들을 모으는 곳이 있다면?”
그 말에 범계위의 눈이 커졌다.
“그럼 놈들은 우리가 달갑지 않겠는데?”
저들이 사파인을 규합하는 데에는 분명 목적이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간에 일단 머릿수가 중요할 터.
연판장이 완성되면 저들에게 갈 사파인 일부가 무위로 올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초악량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아무래도 놈들이 그쪽에 합류한 것 같군.”
“놈들?”
“우리를 흉내 내 곤륜과 이간질을 도모했던 자들 말이다.”
“짚이는 게 있수?”
“당금 무림에 빙공으로 유명한 고수들은 대부분 북해빙궁 소속이다.”
북해빙궁이 언급되자 한설화가 멈칫했다.
“빙궁은 아니야.”
한설화의 말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어차피 그들은 사파 쪽도 아니어서 아예 의심하지도 않았다.”
초악량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하나 사파의 인물로 한정한다면 짐작되는 사람이 있지.”
“그게 누구요?”
“독안나찰(獨眼羅刹) 사영의.”
“그 눈깔 귀신?”
범계위의 반문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빙심투골장(氷心透骨掌)의 고수로, 상대를 죽인 후 눈을 파내어 삼키는 엽기적인 행각으로 악명이 높았다.
범계위도 비로소 이유를 짐작했다.
“그 할망구 아직도 그러고 다닌대? 그런다고 눈깔이 다시 생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초악량이 피식 웃으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범계위가 할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원래 명호는 명음나찰(銘陰羅刹)이었다.
하지만 범계위와 싸운 직후 눈 하나를 잃었고, 이로 인해 무공도 약해졌다.
내공으로 유지하던 주안의 효과가 사라지자 흑단 같던 머리칼은 백발로 변했다.
독안나찰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곤륜파 애들 시신은 멀쩡했는데?”
“참았겠지. 우리와 엮으려면 스스로를 드러내선 안 될 테니까.”
“그럼 다른 놈들은? 짚이는 놈이 있수?”
“키가 작다고 한 놈은 아마 홍단엽일 것이다.”
“홍단엽? 초 형이 손가락 세 개를 날려 버린 그 변태 꼽추?”
“너를 제외한 사파 고수 중에 열양공으로 유명한 놈은 칠지괴타(七指怪駝), 그놈뿐이니까.”
“그럼 마지막 한 명은? 암습한 놈들은 세 명이라 했잖수.”
초악량이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잘 모르겠다.”
위력의 차이만 있을 뿐 전사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 발경 수법은 중원에 즐비했다.
당장 무당파의 십단금(十段錦)이 그랬고, 사파의 고수인 고목노괴의 성명절학인 풍뢰장(風雷掌) 역시 비슷한 원리를 지니고 있었다.
“고목노괴는 아닐 거요.”
“……?”
의아해하는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툭 내뱉었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손 하나 없는 놈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범계위가 그의 손목 하나를 날려 버린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이때 치료를 마친 단악선이 방으로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요?”
방 안을 감도는 심각한 분위기에 단악선이 물었다.
초악량이 우려 섞인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 일이 아주 위험해질 수도 있다.”
초악량은 자신들이 나눈 대화를 단악선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단악선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자들이 선한 목적으로 사파 사람들을 모을 리 없을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에게 단악선이 단단한 눈빛을 드러냈다.
“하루라도 더 빠르게 연판장을 완성해야겠어요. 그래야 사파인들에게도 선택지가 생길 테니까요.”
단악선의 성격을 익히 아는 그들인지라 쉽게 포기하지 않으리란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걱정이 사라지진 않았다.
“앞으로 무공 수련의 비중을 더 늘려야겠다. 지난번 같은 암습이 언제 있을지 모르니.”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맞장구를 쳤다.
“마침 이곳에 적당한 놈들도 많으니 비무도 실컷 해 보고.”
“그래도 될까요?”
눈빛을 반짝이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이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곤륜 문하들 역시 거절하진 않을 게다. 이 궁벽한 격지에서 외부 사람과 손을 섞어 볼 기회는 흔치 않을 테니까.”
다음 날 아침.
날이 밝기 무섭게 단악선은 광진도장을 찾아갔다.
능운을 치료하는 동안 곤륜파의 도사들과 비무를 해도 되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광진도장은 흔쾌히 수락했고 그날부터 단악선의 바쁜 일과가 시작되었다.
처음 단악선의 비무 상대는 또래의 어린 도사였다.
아직 도첩에 명호를 올리지 않은 수습 제자였으나 기초적인 곤륜파의 무공은 전수한 상태.
두 사람의 비무를 구경하기 위해 곤륜파의 도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연무장을 에워쌌다.
“의원인데 무공도 익힌 건가?”
“당구풍월(堂狗風月)이라 했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하물며 저처럼 똑똑한 아이는 말할 것도 없지. 함께 지내는 저 세 사람을 보게. 어디 평범한 고수들인가?”
“그래도 상대가 될까요? 아직 정식으로 입문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휘경이는 수습 제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녀석이잖습니까?”
“물론 어렵겠지. 저 어린 의원은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지 고작 일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으며 곤륜에서의 첫 비무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싱거웠다.
“어?”
“이런!”
곤륜파 도사들의 입에서 당혹성이 새어 나왔다.
비무가 시작되고 단 오 합 만에 승부가 갈려 버린 것이다.
승자는 뜻밖에도 단악선이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였다.
초식 운용이나 보법, 그리고 내력에 이르기까지.
곤륜의 어린 제자는 단악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단악선이었다.
또래들과 비무를 경험한 것은 지금껏 방소방과 운중산이 유일했다.
그래서 이휘경이라는 또래의 도사도 그들과 비슷한 수준이라 짐작했는데……. 이건 웬걸.
이렇게 쉽게 나가떨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