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43)
신마의선-143화(143/500)
신마의선 (143)
“오늘은 어느 분이죠?”
전각을 걸어 나온 단악선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정체 모를 흉수에게 습격당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던 삼대 제자 능운.
그를 치료하고 나서던 참이었다.
다행히 능운은 차도가 있어 이제는 가벼운 거동도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날세.”
단악선 앞으로 한 사람이 웃으며 다가섰다.
장문인의 사제이자 광 자 배를 지닌 장로, 광령도장이었다.
평소 준엄하고 엄숙한 눈빛을 지닌 그였지만 단악선 앞에서는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앉으세요.”
단악선이 그를 앉히고 진맥을 시작했다.
눈을 감고 진맥하길 잠시.
광령도장의 몸 곳곳을 만지며 촉진을 하던 단악선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음……. 오래된 부상이 있네요. 일찍 치료를 했어야 하는데 그 시기가 너무 늦어 고질병이 되어 버렸어요.”
광령도장이 쓰게 웃었다.
단악선의 실력은 이미 앞서 치료받은 이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가.”
광령도장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네. 불편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걸.”
그러나 말과는 달리 그의 눈빛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교도 놈들에게 잘려 나갈 뻔했던 팔꿈치가 새삼 욱신거렸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통증은 사라지게 할 수 있어요. 약해진 주변 근육을 복원하면 상태도 호전되실 거고요.”
“하지만 방금 고질병이라고…….”
“다치기 이전처럼 완벽한 회복은 불가능하기에 그렇게 말씀드린 거예요.”
“정말인가?”
광령도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다시 검을 잡을 수도 있는 겐가?”
부상으로 인해 그는 좌수검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연마를 한다 한들 과거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침과 약을 병행한다면요.”
“고맙네. 정말 고마워!”
단악선의 대답에 광령도장이 단악선의 손을 붙잡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새로운 희망에 가슴이 벅차올랐던 것이다.
단악선도 이를 알기에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에게 있어 무공은 목숨과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단악선이 광령도장의 몸 곳곳에 침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효과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동안 치료와 관리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약방문까지 작성해 건넨 다음 단악선이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오늘은 한 분 더 볼게요.”
“하루에 한 명씩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누군가의 질문에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오늘은 금방 끝났잖아요. 그러니 한 분 정도는 더 진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곤륜 도사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이쿠!”
“아니, 이 사람아! 그렇게 갑자기 나오면 어떡하나?”
“거참, 적당히들 하게나. 이럴 때야말로 장유유서를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차라리 제비뽑기를 합시다!”
거의 동시에 앞으로 나서던 곤륜 문하들의 어깨가 서로 부딪치며 어지럽게 뒤엉켰다.
그 모습에 나직하게 한숨을 흘린 단악선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마세요. 적어도 봄까지는 여기 머물기로 했으니까요. 차례를 기다리시면 여기 계신 분들 모두를 봐 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 순서대로 한 분씩 나오세요.”
그 말에 앞서 치료를 받은 광령도장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신세를 져도 되는 것인지, 참…….”
“괜찮아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치르는 밥값이라 생각하세요.”
“엄연히 본 파의 귀한 손님인데 밥값은 무슨! 의당 해야 할 당연한 일인 것을.”
“그럼 밥값 대신…….”
말끝을 흐리는 단악선의 모습에 곤륜파의 도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난감한 눈빛을 흘렸다.
“우리 아저씨들과 아주머니 좀 잘 부탁드려요.”
“…….”
“…….”
곤륜 도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곤혹스러워했다.
그들이라 해서 어찌 가깝게 지내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그들과는 무엇으로 메울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했다.
정파와 사파를 떠나 저들의 존재감 자체가 몹시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더구나 무슨 이유에선지 최근 들어 유난히 더욱 까칠하게 자신들을 대하는 것 같아 쉽게 다가설 수 없었다.
“노, 노력해 보겠네.”
결국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 중 한 명인 범계위는 전혀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마음에 안 들어.”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단악선 주변을 둘러싼 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곤륜 도사들.
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범계위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이었다.
“뭐가 말이냐?”
초악량의 물음에 범계위가 툴툴댔다.
“저놈들이 단 의원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고 있잖수. 그럴수록 단 의원과 내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고.”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한설화의 눈이 차가워졌다.
“엉뚱한 짓 하지 마.”
혹시 범계위가 사고라도 칠까 싶어 미리 경고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발끈한 범계위가 한설화를 노려봤다.
하지만 금세 얼굴이 풀어졌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단악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저씨!”
“오! 그래, 단 의원. 어서 와.”
언제 험악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범계위가 환한 얼굴로 단악선을 맞았다.
“이제 곧 새해잖아요. 여기에서도 원단에 폭죽을 터트린대요. 우리 같이 준비해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신마곡을 떠나온 것이 작년 이맘때였으니 벌써 여행을 시작한 지 일 년이 가까워지는 셈.
한데 범계위에게는 바로 며칠 전 일만 같았다.
그만큼 단악선과 함께 하는 여행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사부와 함께했던 때를 제외하면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그렇게 함께 숙소로 향하던 도중.
단악선이 멈춰 서서 어딘가를 주시했다.
멀리 떨어진 연무장 쪽이었다.
연무장 위에는 굉성자가 세 사람을 상대로 동시에 비무를 펼치고 있었다.
세 사람의 합공에 굉성자가 맞서는 형태였다.
일대일 비무에 익숙했던 단악선에게는 다소 생경한 모습이었다.
“저런 수련도 있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초악량이 대답했다.
“두 가지 경우가 있지. 한쪽 실력이 월등해 다수의 합격으로 균형을 맞추는 경우. 혹은 다수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있어 미리 대비하는 경우.”
범계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수와 다수가 한 번에 격돌하는 경우에는 흔한 상황이지.”
생사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대일의 정정당당한 비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빨리 상대를 한 명이라도 더 빨리 쓰러트려야 내가 살고 아군이 사는 것이다.
“굉성자라 했었나?”
유심히 상황을 지켜보던 초악량이 관심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두 가지 모두인 모양이구나.”
굉성자의 비무 상대는 같은 굉 자 배의 이대 제자 셋이었다.
그에게는 손위 사형들이었지만 나이로는 사숙뻘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무공이 뛰어나고 쌓아 온 경험과 연륜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그런데도 굉성자는 크게 밀리지 않고 훌륭하게 싸웠다.
비록 연무를 위한 비무여서 살초를 사용하진 않았으나 지극히 실적전인 곤륜 무학의 정수가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와! 대단해요!”
반 각에 걸친 비무 끝에 굉성자가 승리하자 단악선이 박수를 쳤다.
뒤늦게 단악선을 발견한 굉성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 다음! 아무나 오세요!”
신이 난 굉성자가 기세 좋게 외쳤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되었다.
“응? 아저씨 어디 가세요?”
단악선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연무장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범계위의 모습 때문이었다.
연무장에 오른 범계위가 굉성자의 맞은편에 섰다.
굉성자가 놀란 얼굴로 눈을 껌벅였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아무나 오라며.”
“네?”
“설마 곤륜의 적전 제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냐?”
“그, 그게 아니라…….”
굉성자가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그만큼 정면에서 마주한 범계위의 삼엄한 기파는 지금껏 경험해 온 그 누구보다 위험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 범계위는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굉성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의원 시간을 제일 많이 빼앗아 가는 놈.’
비무를 빙자해 적당히 며칠 몸져누울 정도로만 두들겨 주면 새벽부터 단악선을 데리고 나갈 수 없을 터.
범계위의 눈 위로 스쳐 지나가는 섬뜩한 웃음.
이를 목도한 굉성자는 한 줄기 오한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어?”
갑자기 느껴진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굉성자는 언제 나타났는지 자신의 오른편에 서 있는 한설화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선자께서는 왜?”
“저놈이 사고 칠 거 같아서.”
굉성자는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본래 좋은 일은 하나씩 와도 나쁜 일은 한 번에 찾아오는 법.
아니나 다를까.
초악량도 연무장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연실색한 굉성자와 눈이 마주치자 초악량이 빙그레 웃었다.
“저 둘을 그냥 두기 불안해서.”
결국 일대종사 세 명에게 둘러싸인 굉성자가 재빨리 뒤쪽을 보았다.
도움을 청하는 제자의 간절한 눈빛에 광진도장은 빙그레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
굉성자가 재빨리 전음을 날렸지만 돌아온 것은 호된 꾸짖음뿐이었다.
―이런 기회가 흔한 줄 아느냐? 앞으로 네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행운이다. 저분들께 고맙다고 인사부터 올려도 모자랄 판에……. 쯧.
―제자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광진도장이 피식 웃었다.
설마 곤륜파 한가운데서 장문인의 제자를 때려죽일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세 사람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죽이지만 말아 주십시오.”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응. 알았어. 죽이지는 않아.”
그 말에 굉성자의 얼굴이 잠시 밝아졌지만 이내 혼란으로 물들었다.
안쓰러운 눈빛을 던지는 초악량과 한설화 때문이었다.
범계위의 말에 숨어 있는 의도를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이다.
“뭐, 상관없으려나.”
초악량의 말에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단 의원이 살려 줄 테니까.”
“……!”
굉성자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세 사람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에워싸이니 그만 눈앞이 아득해진 것이다.
그때 초악량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셋을 이긴다면 그땐 네가 천하제일고수다.”
“……!”
굉성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언젠가 단악선에게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백 번 천 번 지더라도 단 한 번만 이기면 된다.’
따지고 보면 천하제일인과의 싸움을 이렇게라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인 셈.
“후읍.”
크게 숨을 들이마신 굉성자가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세 사람에게 포권했다.
“좋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굉성자가 기세 좋게 외치자 범계위가 물었다.
“내가 먼저 공격하면 되는 거지?”
“네!”
범계위의 얼굴에 맺혀 있던 웃음이 짙어졌다.
그 순간 굉성자의 눈앞에서 범계위가 사라졌다.
쾅!
‘으악!’
굉성자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눈앞에서 나타난 거대한 주먹.
전력을 기울여 막았는데도 충격에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이 정도 가지고 엄살은.”
문제는 방금 전 일격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툭툭 던져 대는 주먹 한 방 한방에 지금껏 살아왔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거기에 초악량과 한설화도 가세하자 굉성자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불과 몇 호흡 만에 순식간에 내력이 고갈되었다.
게다가 공격 한번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하고 수비하기에도 급급한 상황.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인데도 세 사람은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내공을 전부 남김없이 쏟아 낸 뒤, 지금부터가 진짜다.”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히죽거렸다.
“그래. 마른 수건에서 물방울을 쥐어짜듯이. 너 그런 거 좋아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