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44)
신마의선-144화(144/500)
신마의선 (144)
그야말로 사색이 된 굉성자가 필생의 힘을 다해 세 사람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격이 다른 고수.
이내 연무장 위로 처절한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면 초악량은 내심 굉성자의 무위에 감탄했다.
‘확실히 걸출한 인재다.’
어디 가도 곤륜의 이름에 먹칠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직 약관을 넘기지 않은 나이를 감안하면 더욱 놀라웠다.
세 사람이 진지하게 비무에 임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들은 한계까지 굉성자를 몰아붙이는 와중에도 부족한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보완해 주었다.
“정신 차려라. 마교에 우리 같은 고수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
초악량의 충고에 굉성자의 눈빛이 다시 돌아왔다.
마치 타고 남은 재를 들쑤셔 다시 불을 일으키듯 굉성자가 남은 힘은 모조리 쥐어짰다.
그렇게 약 일각의 시간이 지났을 때.
굉성자가 그 자리에 널브러졌다.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남지 않은 것이다.
직접적인 타격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몇 번이나 간접적인 죽음을 경험해야 했다.
그렇게 비무를 끝낸 범계위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단 의원이랑 놀아 주느라 수고했어.”
그 말을 남기고 범계위가 돌아섰다.
“이걸로 우리도 밥값은 한 셈인가?”
초악량의 말에 한설화도 조용히 웃고는 함께 연무장을 벗어났다.
홀로 남은 굉성자는 난생처음 느껴 보는 기분에 잠시 멍하니 누워 있었다.
설명하기 힘든 고양감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순간 눈앞이 어두워졌다.
뒤늦게 그것이 역광을 등진 사부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은 굉성자가 누운 채로 울상을 지었다.
“저 아직 살아 있는 거 맞지요?”
“입을 나불대는 걸 보니 아직 살 만한가 보구나.”
“하나뿐인 제자를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십니까?”
“하나뿐인 제자니까.”
“……?”
이어진 광진도장의 말에 굉성자의 눈이 흔들렸다.
“그 제자가 마교 놈들에게 잡아먹히는 꼴은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부님…….”
“그러니 엄살 그만 떨고 일어나라. 아직 대련 안 끝났다.”
“예?”
광진도장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감격은 잠시.
이어진 광진도장의 말에 굉성자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어디 우리 제자 실력이 얼마나 늘었나 볼까?”
* * *
신년 초하루.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곤륜에도 새해가 찾아왔다.
척박한 곳이라곤 하나 곤륜 역시 사람이 사는 곳.
전각 곳곳에 복을 기원하는 물고기 그림과 붉은 색지 장식이 늘어섰다.
비록 묘회(廟會)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사자춤 공연은 없었지만 신년을 맞아 들뜬 분위기만큼은 여느 곳 못지않았다.
이따금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폭죽 소리.
그 사이로 덕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넘쳤다.
볕이 잘 드는 너른 공터 한편에는 이곳의 원로인 노도사들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왜소한 체구에 몸은 나뭇가지처럼 말랐지만 눈빛만큼은 정정한 노도사가 입을 열었다.
“나이를 먹으면 약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다들 건강해져 버렸군.”
푸근한 인상을 지닌 노도사가 그 말을 받았다.
“단 의원 덕분이지. 그냥 옆에만 있어도 건강해지는 것 같아.”
다른 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생 의원인 게지. 아픈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니까 말이야.”
“무공 실력은 어떻고? 내 평생 저렇게 빨리 발전하는 아이는 본 적이 없네.”
그들의 시선은 저 멀리, 또래 아이들과 함께 폭죽을 터트리며 노는 단악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저 아이 덕분에 본 문의 제자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처음 입을 열었던 마른 도사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지.”
“본 문의 홍덕(鴻德)일세. 우리에게 큰 복이 굴러왔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던 노도사들 중에 한 사람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가능한 그 복을 계속 머물게 하면 좋을 텐데.”
“그러면 더 바랄 것이…….”
그 말에 동의하던 노도사 한 명이 멈칫하며 말끝을 흐렸다.
어디에선가 날아든 섬뜩한 기파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려 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살기에 가까운 섬뜩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노려보는 사람이 있었다.
범계위였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도사들의 말을 들은 것이다.
“우리 단 의원 노리는 놈들은 내가 아주 그냥!”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다.
그만큼 범계위의 음성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도 노도사들은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염치없다는 듯 멋쩍은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범계위가 황당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초 형, 저 영감들이 이제 나를 안 무서워하는데?”
마침 범계위 쪽으로 걸어오던 초악량이 실소하며 핀잔을 던졌다.
“같이 지낸 시간이 두 달이 넘었는데 당연한 것 아니냐?”
노도사들을 향해 눈인사를 건네는 초악량의 모습에 범계위가 나직이 툴툴댔다.
“우리가 정파 놈들하고 친해져도 되는 거유?”
“저들도 우리 사파 놈들과 친해졌잖느냐?”
“…….”
“그리고 사실 우리가 언제 정사를 구분했더냐? 같은 사파라고 딱히 봐준 적도 없잖아.”
“하긴.”
그 말에 수긍한 범계위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뒤늦게 두 사람을 발견한 단악선이 쪼르르 달려왔다.
품에는 폭죽을 한가득 끌어안은 채였다.
“우리 같이 해요!”
두 뺨이 발그레 상기된 단악선의 얼굴을 마주한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좋아. 새해에는 역시 폭죽이지!”
단악선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주머니는 어디 계시죠?”
“마녀? 글쎄?”
범계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어디서 낮잠이라도 자나 보지. 그냥 우리끼리 놀자.”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마녀는 이런 거 안 좋아해.”
그때였다.
“누가?”
단악선이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뒤를 돌아봤다.
언제 왔는지 한설화가 새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한설화를 향해 범계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뭐? 사실이잖아. 언젠 폭죽 시끄러워 별로라며?”
한설화가 실소하며 받아쳤다.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
점차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듯싶자 단악선이 재빨리 한설화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우리 같이 놀아요!”
한설화가 마지못해 따라가며 슬쩍 웃었다.
“그러자꾸나.”
그렇게 단악선과 세 사람은 폭죽놀이가 한창인 연무장 옆 공터 쪽으로 향했다.
단악선이 실로 연결된 폭죽을 길게 늘어트려 장대 위에 걸친 뒤 화섭자를 꺼냈다.
“어?”
뚜껑을 열고 화섭자를 기울이던 단악선이 당혹성을 흘렸다.
종일 돌아다니며 폭죽을 터트린 탓에 화섭자 안에 불씨가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 누구보다 든든한 사람이 함께 있었다.
“아저씨, 부탁드려요.”
“흐흐.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지.”
눈앞에 들어 올린 범계위의 검지.
그 위에는 어느새 한 줄기 화염이 넘실대고 있었다.
범계위가 심지에 손가락을 가져가자 순식간에 폭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삼매진화를 고작 폭죽놀이에 쓰다니.”
한심해하는 초악량의 말에도 정작 범계위는 별반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뭐 어떻수? 저렇게 좋아하는데.”
신이 나서 연기 사이를 뛰어다니는 단악선.
그 모습을 보며 세 사람이 흡족한 눈빛을 흘렸다.
지난해 원단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절로 마음이 흐뭇해진 것이다.
작년 이 무렵의 단악선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정작 폭죽놀이를 제안하고도 멍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 흩어지는 연기와 불꽃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단악선의 모습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이윽고 폭죽이 모두 소진되자 단악선이 환하게 웃으며 세 사람을 돌아봤다.
“역시 효과가 있었어요.”
의아해하는 세 사람을 향해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폭죽을 터트리면 나쁜 일이 사라진다고 하잖아요.”
단악선이 성큼 다가서더니 세 사람을 힘껏 끌어안았다.
“함께해 줘서 고마워요.”
졸지에 한설화와 바짝 붙게 된 범계위가 인상을 찌푸렸다.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고운 아미를 한껏 찡그린 채 말없이 범계위를 쏘아봤다.
하지만 차마 단악선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기를 잠시.
어느새 두 사람의 시선은 단악선에게 모아졌다.
상기된 얼굴로 친근하게 볼을 비비는 단악선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초악량의 눈이 이채를 발한 것도 그때였다.
“힘이 꽤 좋아졌구나.”
“근육도 제법 붙었수.”
단악선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굉성자 형이 도와준 덕분이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마침 근처를 지나던 굉성자가 폭죽을 들고 걸어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굉성자의 새해 인사에 범계위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홍포는 없다.”
굉성자가 넉살 좋게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그 이상으로 이미 충분히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의 가르침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니까요.”
범계위가 멋쩍은 얼굴로 초악량을 향해 말을 건넸다.
“어째 점점 내 존재감이 흐려지는 것 같소.”
강호의 공포로 군림하던 망산초자의 악명이 이곳 곤륜에서는 더 이상 이렇다 할 위협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묘해지는 범계위였다.
이는 초악량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싫지만은 않았다.
정파.
그것도 핵심이 되는 구대문파의 일원인 이들과 이처럼 스스럼없이 지내게 될 줄은 그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바로 단악선 때문이었다.
물과 기름 같은 그들을 한데 어울리게 만드는 친화력이야말로 어찌 보면 단악선의 진짜 재능일지도 몰랐다.
굉성자 역시 마찬가지.
위명만으로도 강호를 뒤흔드는 사파의 고수들과 다 같이 폭죽놀이를 하다니.
불과 두 달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노도사들이 일행에게 다가온 것도 그때였다.
“어? 어디 또 편찮으세요?”
단악선의 염려에 노도사들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만 같으면 백수(白壽)도 누려 볼 만할 정도로 멀쩡하다.”
노도사들이 등 뒤에 숨기고 있던 물건을 단악선에게 내밀었다.
단악선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이 건넨 물건을 받아 들었다.
“연이네요?”
노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 파만의 특별한 비장 절예를 보여 주마.”
“비장 절예요?”
한껏 기대에 부풀어 반짝이는 단악선의 눈을 보며 노도사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연에 폭죽을 매달아 길게 늘인 뒤, 연을 조종하는 실을 단악선에게 넘겼다.
노도사 중 한 명이 길게 늘인 심지에 불을 붙인 뒤 단악선을 향해 외쳤다.
“달려라!”
단악선이 실을 움켜쥐고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맞바람을 한껏 끌어안은 연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 순간 연에 매달려 있던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우와!”
하늘을 올려다본 단악선이 탄성을 터트렸다.
연을 따라 길게 늘어진 폭죽 다발.
폭죽이 터질 때마다 연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 용이 구름 사이를 헤치며 나아가는 것 같았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장관에 단악선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삼성요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한껏 즐거워하는 모습에 노도사들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이 바로 본 파 절예, 운룡대폭죽(雲龍大爆竹)이니라.”
잠시 후.
점점 길이가 줄어든 폭죽 다발의 불꽃이 연과 닿았다.
기름을 먹인 얇은 종이로 만들어진 연은 순식간에 불꽃에 휩싸여 저 멀리 날아갔다.
“저대로 날아가게 두어도 괜찮은 건가요?”
혹시라도 화재가 날까 싶어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노도사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다른 산처럼 우거진 관목이나 산림이 없다. 그래서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한 놀이지.”
“그렇군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지는 단악선의 표정에 노도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더 놀고 싶은 게냐?”
고개를 끄덕이던 단악선의 얼굴이 이내 환해졌다.
곤륜파의 원로들이 건넨 한 다발의 폭죽 때문이었다.
“새로운 폭죽이다!”
질리지도 않는지 이제는 아예 폭죽을 건 장대를 들고 눈 만난 강아지처럼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단악선이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내년에도.
그리고 내후년에도.
단악선과 함께할 매년 새해가 기대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