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5)
신마의선-15화(15/500)
신마의선 (15)
‘그깟 꼬맹이와 부딪친 게 뭐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커질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히 사과까지 하지 않았던가.
무림맹의 대처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정도 사소한 일을 가지고 감찰 사자씩이나 파견해 문책하다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그런 곽가를 향해 죽립인이 피식 웃었다.
“말은 감사하다고 했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네? 이번 처우가 꽤나 불만스럽나 봐?”
“아닙니다. 다만…….”
“다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곽가가 가슴에 담고 있던 울분을 쏟아 냈다.
“비록 진성의가의 명성이 높다 하나 많고 많은 의가 중 한 곳일 뿐입니다. 별것 아닌 문제로 이렇게까지…….”
죽립인이 끼어들어 그 말을 잘랐다.
“본 맹의 특별 관리 대상이거든.”
“네?”
“그를 영입하기 위해 맹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르는 모양이군. 간도 쓸개도 다 내줘야 했지. 아쉬운 건 본 맹이지 그가 아니거든.”
“대체 왜 그렇게까지?”
죽립인의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이 말을 해 주는 걸 깜빡했군.”
의아해하는 곽가를 무시하고 죽립인이 말을 이어 갔다.
“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네.”
“……?”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걸. 호기심은 화를 부르고 과욕이 명을 재촉하지.”
곽가가 흠칫하며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죽립인의 음성은 시종일관 여유로웠지만 그 안에 담긴 추상같은 기운은 분명한 살기였다.
“쓸데없는 일에는 그만 관심을 거두고 이제 자네들 일을 하는 게 어떨까?”
죽립인이 품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다탁 위에 올렸다.
그것은 한 사람의 용모파기였다.
“장염방의 잔당을 토벌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장염방은 십대악인 중에 두 명, 흑수이귀(黑水二鬼)라 불리던 장곡과 염위가 이끌던 흑도 방파였다.
그들은 흑룡강 일대를 장악한 수적 집단으로, 수적의 연합체인 장강수로채와 별개로 자신들만의 독립된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우두머리였던 장곡과 염위가 무림맹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 바람에 휘하의 잔당들 역시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 행방이 묘연하던 마일립이 이 근처로 도주했다더군. 부상이 깊은 상태니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마일립은 장염방의 실질적인 재무와 인적 관리를 총괄하던 자였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파사단의 대원들을 향해 죽립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고생하게. 본 맹의 최일선에서 애쓰는 자네들의 고충은 내 위에 전하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죽립인이 자리를 떠났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누군가가 나직이 투덜거렸다.
“어렵지 않은 일이면 직접 처리하면 되잖아?”
조원들 몇몇이 덩달아 분통을 터트렸다.
“씨☓, 무림맹이 우리한테 해 주는 게 대체 뭐야?”
“내 말이. 이런 오지에 내던져진 것도 억울한데 이런 대접까지 받아야 해?”
“증원이나 제대로 해 주든가.”
“맨날 우리보고 지랄이지. 험지란 험지에는 죄다 밀어 넣으면서.”
열 받은 조원들이 한창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때.
곽가가 다탁을 힘껏 내려쳤다.
콰직!
충격을 견디지 못한 탁자가 으스러지며 사방으로 찻물이 튀었다.
“그만.”
그 한마디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애써 분을 삭인 곽가가 수하들을 둘러봤다.
“지금은 그자를 찾는 데 집중한다. 더 이상 맹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돼.”
그 말로 수하들의 불만을 누른 곽가가 객잔을 나섰다.
이십여 명의 파사단 무인들 역시 곽가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내뿜는 흉흉한 기파에 저자를 오가던 사람들이 황급히 양쪽으로 비켜섰다.
그만큼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스산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 * *
삐익!
“……?”
어디선가 들려온 호각 소리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방향은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데 정신을 팔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야겠다.’
벌써 해가 서산을 향해 기울어 가고 있었다. 지금 출발해도 한밤중이 되어서야 도착할 터. 약초가 든 가방을 단단히 둘러맨 단악선이 잰걸음을 서둘렀다.
‘여기서 지름길로.’
건물과 건물의 담벼락 사이.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틈 사이로 몸을 구겨 넣었다.
시장 길로 가면 한참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응?”
단악선이 걸음을 멈추었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때.
“으으…….”
한 줄기 미약한 신음이 들려왔다.
단악선은 그 소리를 쫓아 틈새 길을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쓰러지듯 벽에 기댄 사내였다.
나이는 대략 사십 대 중반 정도.
크고 작은 흉터가 가득한 얼굴을 보니 꽤나 험한 삶을 살아온 것이 분명했다.
단악선이 서둘러 그에게 다가섰다.
“괜찮으세요?”
그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온몸은 피로 흠뻑 물들어 있었다.
‘출혈이 너무 심해!’
사내가 기대앉은 담벼락 아래로 핏물이 고여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호흡 역시 금방이라도 목숨이 끊어질 것처럼 미약했다.
가방을 내려놓은 단악선이 품속에서 침이 든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사내의 혈도에 침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마 안 가 출혈이 멎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식은 엄엄한 상태였다.
그를 살리려면 서둘러 치료를 이어 가야 했다.
그때 단악선의 등 뒤로 접근하는 인영이 있었다.
덥석.
누군가 단악선의 손목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렸다.
“악!”
단악선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우악스러운 손길이었다.
단악선은 너무 놀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이어진 상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악선의 손목을 낚아챈 인물이 다른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스릉.
차가운 소리와 함께 한 자루 날카로운 칼이 새하얀 나신을 드러냈다.
푸욱.
“……!”
단악선이 눈을 부릅떴다.
자신을 구속한 사내.
그가 그대로 손을 뻗어 쓰러져 있던 환자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은 것이다.
“안 돼!”
단악선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시간과 노력만 들인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환자였다. 그런데 눈앞에서 허무하게 그 목숨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단악선이 분노해 소리쳤다.
“또 네놈인가?”
단악선은 그제야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음산한 음성이 귀에 익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신은?”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었다. 얼마 전 풍진성과 시비가 붙었던 무림맹의 무인.
자신을 곽가라 밝혔던 파사단 조장이 눈앞에 있었다.
“이자와 무슨 관계냐?”
곽가가 서슬 퍼런 살기를 흘렸다.
단악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서 절명한 사내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곽가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추살령이 내려진 적도를 돕는 자는 즉시 적으로 간주된다. 사안에 따라서는 즉결처분도 가능한 것이다.
‘잘만 하면…….’
이 상황을 제대로만 이용하면 이 궁벽한 오지를 벗어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풍진성 그자를 옭아맬 수도 있다.’
무림맹 수뇌부도 대우를 해 주는 인물이니 그 정도 힘은 있을 것이다.
“대답해라. 마일립과 어떤 관계냐?”
단악선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전부 말하게 될 것이다.”
곽가가 시신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시신에서 뿜어진 피가 단악선의 얼굴을 뒤덮었다.
* * *
한설화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나란히 달리던 범계위가 갑자기 우뚝 선 것이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잠깐. 마을에 좀 들렀다 가야겠어.”
―갑자기?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우리 단 의원, 맛있는 거 사 줘야지.”
한설화의 대답도 듣지 않고 범계위가 방향을 틀었다. 순식간에 마을에 도착한 범계위가 가장 가까운 객잔으로 향했다.
“여기서 제일 비싸고 맛있는 걸로 포장!”
점소이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 고급 요리는 담는 그릇이 따로 있는지라 포장이 어렵습니다.”
“그럼 그릇까지 팔면 되잖아?”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그리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큽니다요.”
“상관없으니 얼른 줘.”
잠시 후.
사기로 만들어진 냄비 형태의 그릇 안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가 담겨 나왔다.
냄새만으로도 절로 침이 넘어갈 만큼 훌륭한 요리였다.
게다가 그릇과 한 벌로 만들어진 뚜껑도 있어 옮기기도 수월해 보였다.
범계위가 요리를 받아 그대로 돌아섰다.
그 모습에 점소이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손님! 값을 치르셔야죠!”
“아, 맞다.”
범계위가 고개를 돌려 한설화를 바라봤다.
“저 여자가 계산할 거야.”
―……!
한설화가 범계위를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는 벌써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마지못해 한설화가 음식과 그릇값을 치렀다. 객잔을 나선 그녀가 저만치 앞서가는 범계위를 쫓아 경공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흐흐. 우리 단 의원이 엄청 좋아하겠지?”
뭐가 그리 좋은지 범계위는 연신 헤벌쭉 웃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한설화는 더없이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저 인간이 누군가를 저리 살갑게 여긴다고?’
그때 범계위가 바지춤을 열었다.
―무슨 짓이야?
“이대로 가면 음식이 식어 버리잖아.”
―미친……!
한바탕 욕을 쏟아붓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난번 선물이랍시고 범계위가 내밀었던 교자. 그걸 떠올리니 또다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 비싼 불도장을 냄새나는 곳에 집어넣겠다고?
범계위가 손으로 사타구니를 긁더니 코앞으로 가져갔다.
“냄새 안 나는데?”
질색하는 한설화를 향해 범계위가 말했다.
“지난번에 목욕도 했잖아.”
―언제?
“너랑 싸울 때.”
―이 더러운…….
짜증을 내려던 한설화가 내심 한숨을 흘렸다.
―그걸 다리 사이에 끼고 어떻게 달릴 건데?
“겅중겅중 뛰면 되지 않을까? 강시당 애들처럼 말이야.”
천하에서 가장 독특한 보법으로 손꼽히는 산서 강시당.
그들만의 독문신법이 바로 두 발을 모아 뛰는 개로보(開路步)였다.
―음식이 다 쏟아질걸?
범계위가 멈칫했다. 그 지적이 일리 있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지.”
범계위가 진기를 끌어 올렸다.
그릇을 받친 그의 손에 화염이 일렁이나 싶더니, 식어 가던 요리가 금세 다시 뜨거워졌다.
―도반삼양진기(導反三陽眞氣)를 기껏 음식 데우는 데 쓴다고?
“도반 뭐?”
한설화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쓰는 무공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게 뭐가 중요해? 어차피 내 건데. 이름 모른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천하에 산재한 무수한 내공심법.
그중에서도 극양기공으로는 으뜸으로 치는 절학이 바로 도반삼양진기다.
그 절학이 돌고 돌아 어쩌다 이런 멍청이에게 전해진 것일까.
도반삼양진기를 창안한 사람이 땅속에서 오열할 일이다.
그런 그녀에게 범계위가 되물었다.
“그러는 넌? 무공으로 음식 얼려서 보관한 적 없어?”
―그건……!
한설화가 침묵했다.
“다 왔다!”
범계위의 환호에 한설화가 전면을 응시했다. 티격태격하던 와중에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저 멀리.
유려하게 뻗는 능선 사이로 자리 잡은 계곡 입구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단 의원!”
신마곡에 들어선 범계위가 산이 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단악선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