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50)
신마의선-150화(150/500)
신마의선 (150)
예상치 못한 말에 단악선이 당황한 사이 한설화가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기에 손님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지?”
중년 도사가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빈도가 함부로 입에 담을 사안이 아니오니 부디 해량해 주시길 바랍니다.”
서늘해진 한설화의 눈빛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먼 길 오신 손님을 환대하지 못해 저 또한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나 지금은 장문인을 뵐 수 없습니다.”
단악선과 한설화가 시선을 마주한 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한설화는 몹시 불쾌했지만 그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당금 공동파 장문인의 도명은 형진이었다.
같은 형 자 돌림을 쓰는 것으로 보아 눈앞의 중년 도사는 낮은 배분이 아닌, 장문인과 같은 항렬로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주인이 손님을 만나지 않겠다는데 어쩔 수 없죠.”
단악선이 한설화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 순간에도 한설화는 무언가를 몹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 돌아가요.”
“하지만…….”
“기회가 있을 거예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웃는 단악선의 모습에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결국 두 사람은 공동파의 산문 앞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유일한 다루에 도착하자 범계위가 반색하며 단악선을 반겼다.
“벌써 다녀온 거야?”
“아니요. 산문을 넘지도 못했어요.”
“왜?”
방금 전 산문 앞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한 단악선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구대문파 모두의 동의를 얻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언제까지 시간만 끌 수도 없는 노릇.
이대로라면 결국 공동파 장문인의 수결 없이 연판장의 내용을 공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실 공동파 하나 정도야 없어도 되지 않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결국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요.”
“어떻게든 받아 내야 한다는 거지?”
그 말과 함께 범계위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악선이 재빨리 물었다.
“어디 가세요?”
“어? 음……. 화장실?”
“그 화장실이 혹시 공동파 안에 있는 화장실은 아니겠죠?”
이미 자신의 생각을 눈치챈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찔끔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시잖아요. 우격다짐으로 해결해서는 의미가 없어요.”
입맛을 다시며 다시 자리에 앉는 범계위를 향해 힐난을 담은 눈빛이 쏟아졌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네요.”
단악선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절을 하더라도 만나서 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이때 한설화의 눈 위로 한 줄기 이채가 떠올랐다.
“그 도사는 지금은 만날 수 없다고 했지.”
“그랬죠.”
“그런데 유독 지금이라는 말을 강조했어. 그 뜻은…….”
초악량이 그 말을 받았다.
“지금이 아니라면 만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 셈이로군.”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초악량이 단악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들에게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굳이 일대 제자가 나서서 그렇게 말한 데에는 분명 숨은 뜻이 있었다.
“혹시 개방에 물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단악선의 말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 곳곳,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개방이 뻗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물론 이곳 감숙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악선이 곧장 다루 입구에 여덟 개의 매듭을 엮은 누런 천을 내걸었다.
언젠가 개방의 도움이 필요하면 사용하라며 이립이 알려 준 방법이었다.
잠시 후.
근처의 개방도를 통솔하는 향주급의 인물이 다루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단악선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글쎄요?”
풍숙이라 자신을 밝힌 나이 지긋한 거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공동파 내부에 최근 이렇다 할 변고가 일어났단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개방을 통해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하자 단악선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미안했던지 풍숙이 듬성듬성 빠진 누런 이를 드러내며 위로하듯 웃음을 건넸다.
“제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그 길로 풍숙은 다루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딱히 뾰족한 수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릴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던 그때.
초악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녀석을 불러야겠구나.”
“누구요?”
“능소밀.”
“능 아저씨요?”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은 그놈이 전문이다.”
적어도 정보를 캐내는 데 있어서만큼은 능소밀을 따라갈 적임자가 없었다.
일행은 곧장 가까운 신마상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마리 전서구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느지막한 오후.
밀려 있던 서류들을 처리한 능소밀이 상단을 나섰다.
신마상단의 단주직을 맡은 이후 능소밀은 바쁜 업무 중에도 시간을 내서 저자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인근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사람들의 분위기만큼 정확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소방을 운영했던 그만의 오랜 습관이자 비결이었다.
느긋하게 걸으며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던 중 지나가던 지게꾼이 능소밀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하십니까, 단주님.”
안면이 있던 자였기에 능소밀이 아는 척을 했다.
“오, 잘 지냈나?”
“저야 잘 지내지요. 이게 다 단주님 덕분입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그나저나 아들은 좀 어때? 지난번에 듣기론 열이 심했다며?”
지게꾼이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당연히 기억해야지. 우리 상단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인데.”
마침 옆에 간식거리를 파는 가판대가 있었기에 능소밀은 당과와 전병을 구입해 지게꾼에게 건넸다.
“가져가 아들 먹이게.”
“아이고, 아닙니다.”
한사코 마다하는 지게꾼의 품에 능소밀이 떠밀다시피 간식들을 안겼다.
“뭐 이런 걸 다…….”
“혼자 아들 키우려면 부족한 게 많을 게야.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 조금만 더 인내하시게.”
“감사합니다. 아이가 너무 어려 아직은 혼자 둘 수가 없어서…….”
“아네, 알아. 조만간 그 문제도 해결해 줄 테니 자넨 걱정 말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게. 뭐, 물론 지금도 아주 잘하고 있지만 말이야.”
능소밀의 말에 지게꾼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무언가를 발견한 능소밀이 눈살을 찌푸렸다.
“거참, 이 영감님 사람 말 정말 안 들으시네.”
능소밀의 말에 두 손 가득 연장을 들고 있던 구부정한 노인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좀 쉬시라니까. 장성한 아들들 놔두고 왜 아직까지 연장을 놓지 못하는 거요? 아들들 실력도 좋다며?”
“소일 삼아 하는 겁니다. 평생 하던 일인데 갑자기 놀면 아픕니다.”
“그러다 지난번처럼 지붕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거 자식들 욕 먹이는 짓이야.”
능소밀의 핀잔에 늙은 목수가 씨익 웃었다.
“단주님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에 지금은 멀쩡합니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해야 손주들 용돈이라도 쥐여 주지 않겠습니까? 요즘에는 그 맛에 사는걸요. 이 늙은이의 기쁨을 뺏지 말아 주십시오.”
“하아. 저 고집. 대체 누가 말려.”
능소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몸조심하시고 적당히만 하세요, 적당히.”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능소밀은 저자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괜한 그의 오지랖에도 어느 누구 하나 불쾌한 내색을 비치는 사람이 없었다.
신마상단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며 이전보다 훨씬 삶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능 오라버니!”
지나가던 기녀 한 명이 능소밀에게 추파를 던졌다.
“언제 한번 놀러 와요. 진짜 잘해 드릴게.”
능소밀이 지그시 기녀를 노려봤다.
“가짜 술 먹이고 바가지 씌우려고?”
“무슨 소리예요? 가짜 술이라니?”
“요새 싸구려 백주를 섞은 검남춘(劍南春)을 판다는 소문이 들려?”
깜짝 놀라는 기녀를 향해 능소밀이 엄포를 놓았다.
“루주한테 적당히 하라고 전해라. 내 조만간 직접 가서 확인할 거야. 지난번에 싸구려 녹차를 동정벽라춘(洞庭碧螺春)이라고 속이다 쫓겨난 다루 있잖아? 그래, 일심향(一心香). 거기 꼴 나지 말고.”
“우, 우린 아니에요.”
황급히 자리를 뜨는 기녀의 모습에 능소밀이 조용히 웃었다.
‘예전에는 숨느라 바빴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썩 잘생긴 인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오랜 무림 생활에 젖어 자신도 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특히나 소적산이 이끄는 이의당 사람들과 접촉이 많다 보니 이를 오해한 대부분의 사람은 가급적 그와 엮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가 신마상단의 단주라고 알려지면서 무위의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롭구나.”
주변을 둘러보던 능소밀이 지금의 상황을 만끽했다.
느긋한 태도와 표정에서는 여유가 넘쳤다.
능소밀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현재의 삶에 만족했다.
‘신소방을 운영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군.’
정보라는 게 그렇다.
절대 거저 얻어지는 법이 없었다.
기름칠을 위해 선물을 빙자한 뇌물을 바쳐야 했고, 정보원과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 온갖 향응을 제공해야 했다.
정작 그러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얼마 없었다.
운영에 허덕이던 당시와 지금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상단의 주인은 단악선이었고 자신은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단주일 뿐이었다.
그래도 상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주변 사람 챙기는 데 인색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베푸는 즐거움을 알아 가고 있었다.
더구나 최근 들어 서역과의 교역이 성공하며 무위도 활기를 띠고 있었고.
지금만 해도 그렇다.
시장 곳곳을 어슬렁거리는 홍모벽안(紅毛碧眼)의 사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슬슬 상단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인파를 헤치며 황급히 달려오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소적산이었다.
시장의 사람들이 소적산에게도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뭐가 그리 급한지 소적산은 건성으로 화답하며 곧장 능소밀에게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던 소적산이 품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냈다.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누구?”
소적산은 대답 대신 전서를 내밀었다.
사뭇 공손한 그 모습에 능소밀은 괜히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공동산 아랫마을의 다루로 와라.
절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눈에 익은 필체.
초악량이었다.
능소밀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고민했다.
“이거 못 받은 걸로 하면 안 되겠지?”
“네?”
“아닐세. 아무것도.”
능소밀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평화는 개뿔.”
몇 가지 사항을 소적산에게 지시한 능소밀이 곧장 신형을 날렸다.
발바닥에 땀 나도록 달려 공동산 아래 위치한 마을, 평랑에 도착한 능소밀은 어렵지 않게 다루를 찾을 수 있었다.
“아저씨!”
자신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반기는 단악선의 모습에 능소밀 역시 팔을 벌리고 달려갔다.
“곡주님!”
서로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은 뒤 능소밀이 단악선 뒤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신수가 좋아졌구나.”
초악량의 말에 능소밀이 기다렸다는 듯 즉각 대답했다.
“모두 선배님들 덕분입니다.”
입에 발린 능소밀의 말에 피식하기도 잠시.
초악량이 그를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공동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라.”
“뭐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시고요?”
“없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능소밀이 단악선을 향해 눈웃음을 건네고는 곧장 다루를 나섰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데 알아내실 수 있을까요?”
단악선의 걱정에 초악량이 슬쩍 웃었다.
“해 봐야 알겠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
“녀석이 알아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성과가 없으면 어쩌죠?”
“그때는 어쩔 수 없지. 포기하든지…….”
말끝을 흐린 초악량이 범계위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니면 공동산에 직접 올라가 알아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