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51)
신마의선-151화(151/500)
신마의선 (151)
당당하게 다루를 나선 능소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참을 걸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다루가 멀리 떨어지자 그의 걸음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문득 걸음을 멈춘 능소밀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는 더없이 청명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하아…….”
그런데도 입에서는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랜만에 몸으로 때워야겠군.”
정보를 캐는 모든 방법을 경험했다고 자부하는 능소밀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신소방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수하들과 다시 연락하기도 애매한 상태.
“방법은 있기 마련이지.”
생각에 잠겼던 능소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번 겨울, 공동산에 유독 눈이 많이 왔다고 했지?’
썩어도 준치라고, 단순히 운이 좋아 정보 방파인 신소방의 수장이 된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정보를 도출해 내는 탁월한 능력.
거기에 정보를 얻기 위한 집념과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재능과 저력이 그 순간 빛을 발했다.
능소밀은 마을에서 가장 큰 목공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면 일반적으로 전각을 보수하기 마련.
특히나 폭설이 내렸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낡아 빠진 전각이 멀쩡할 리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능소밀은 대패 밥이 흩날리는 목공소 안에 들어섰다.
“계십니까?”
잠시 후 산처럼 쌓아 둔 나무 자재들 사이로 머리 희끗한 목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오셨소?”
“여기 주인 되십니까?”
“그렇소만?”
능소밀이 환한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창고가 모자라 더 지으려 하는데, 당장 사람들을 좀 보내 줄 수 있겠습니까?”
아주 빈말은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신마상단의 규모를 감안하면 어차피 근일 내로 창고를 늘려야 했기 때문이다.
“창고 규모가 얼마 정도 됩니까?”
노목공(老木工)의 물음에 능소밀이 주위를 둘러봤다.
“대략 여기 목재 창고 정도쯤? 아니, 조금 더 커야 하려나?”
대충 계산하던 노목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목수 다섯 명 정도 붙이면 되겠구려.”
“급한데 바로 보내 줄 수 있겠습니까? 값은 후려치지 않고 제대로 치르겠습니다.”
“마침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보내 주리다.”
능소밀이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가능한 것입니까? 이맘때면 늘 일손이 달린다 들었는데?”
늙은 목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원래대로라면 가장 바쁠 때가 맞소. 한데 최근에 갑자기 일이 취소되는 바람에 여유가 있소.”
“오! 내가 아주 운이 좋았군요.”
능소밀이 품 안에서 은자가 담긴 주머니를 꺼내 목재 위에 올렸다.
짤그랑.
노목공의 눈이 반짝였다.
소리만 들어도 적은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건 착수금입니다. 비용이 모자란다면 더 청구하십시오.”
주머니를 열어 금액을 확인한 노목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자라기는커녕 오히려 거슬러 줘야 할 정도였다.
“왜? 부족한 것 같습니까?”
능소밀의 말에 노목공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 돈이면 창고 두 채를 짓고도 남소.”
능소밀이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정말 잘 찾아온 것 같구려. 목장(木匠)께서는 신의가 있으신 분 같소.”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노목공의 얼굴이 밝아졌다.
“앞으로도 꾸준히 창고를 비롯해 건물들을 올려야 할 것 같으니 그 일도 계속 귀하 쪽에 맡기고 싶습니다.”
“고맙소. 꼼꼼하게 신경 써서 제대로 일하리다.”
“하하, 별말씀을. 소신과 양심을 지키는 장인들과 함께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요. 그런데…….”
상대를 한껏 추켜세운 능소밀이 슬쩍 떠보았다.
“이런 분을 함부로 대하다니, 누군지 몰라도 참 예의가 없군. 일을 맡겨 놓고 갑자기 취소하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랍니까?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젠데. 안 그렇습니까?”
“쉿. 목소리를 낮추시오.”
“……?”
“괜히 저들과 척을 져 좋을 게 없소이다.”
“저들이라니?”
“공동파 말이오.”
능소밀이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천하의 그 공동파가 그럴 리가? 그래도 명색이 명문정파 아니오?”
노목공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소. 지금껏 이런 일이 없었는데…….”
“무슨 변고라도 생겼답디까?”
노목공이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소. 전각 보수를 위해 목수들을 데리고 올라갔는데, 이틀째 되던 날 갑자기 일을 중단시키더니 하산하라 하더이다. 무슨 일이 생기긴 생긴 모양이오. 장문인의 표정도 다급해 보였고, 우리뿐만 아니라 방문했던 손님들도 모두 내보냈으니까.”
“손님들이라면?”
“듣기론 속가 문하라 하던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소. 그쪽 방면으로는 아는 바가 없어서…….”
능소밀의 눈이 한순간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면 공동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목수들만은 아니었다.
겨우내 왕래가 뜸했던 만큼 날이 풀리기 무섭게 속가 문파들이 본산을 찾는다.
기부금을 내기 위해서였다.
말이 좋아 기부금이지 사실상 공동파의 이름을 등에 업고 비호를 받는 대신 그에 대한 일종의 사례금을 바치는 셈.
목공소를 나선 능소밀은 곧장 인근 객잔을 돌기 시작했다.
약간의 은자로 점소이들을 구슬리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통해 능소밀은 목수들이 철수할 당시 공동파에 머물렀던 속가 문파를 알아낼 수 있었다.
특히 그중 한 명은 자신과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서담명.’
공동파의 속가 표국 중 한 곳인 등룡표국의 표국주였다.
능소밀은 지체하지 않고 등룡표국으로 향했다.
능소밀이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분주하게 움직이던 쟁자수들 중에 제법 연륜이 있어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국주님을 뵈러 왔네.”
“사전에 약조를 잡으셨습니까?”
능소밀이 빙그레 웃더니 슬쩍 상대의 소매 속에 은자를 찔러 넣었다.
“신마상단의 단주가 뵙잔다고 전하게.”
그 말에 쟁자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근 무서운 기세로 상단을 확장해 나가는 신마상단에 대한 소문을 그 역시 들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쟁자수가 허겁지겁 내당 안으로 사라졌다.
일각 정도 지났을까.
여러 명의 표두를 거느린 서담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등룡표국의 국주 서가 담명이라 합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등을 보인 채 느긋하게 표국을 둘러보던 능소밀이 천천히 돌아섰다.
“오랜만입니다, 서 국주님.”
깜짝 놀란 서담명이 이내 낯빛을 굳혔다.
“이게 무슨 짓인가?”
“무슨 짓이라니요?”
의아해하는 능소밀을 향해 서담명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내가 만나려 한 사람은 자네가 아니네. 어째서 신마상단의 단주를 사칭한 것인가?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나?”
“이런, 오해를 하셨군요.”
“오해?”
능소밀이 넉살 좋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섰다.
“한때는 신소방을 운영했으나 지금은 아닙니다. 국주님 앞에 선 사람은 신소방주가 아닌, 신마상단의 단주 능소밀입니다.”
“자네가…… 신마상단의 단주라고?”
“정 의심스러우시면 이곳 감숙 지부에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서담명은 일순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하지만 이내 표두 한 명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표국 밖으로 달려 나가는 표두의 모습에 능소밀은 내심 쓴웃음을 머금었다.
‘속 좁은 인간.’
하나 겉으로 내색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이런 인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소심하고 의심이 많으며, 철저히 이익에 치우쳐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소인배.
공동파의 명성을 등에 업지 않았다면 표국주랍시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지도 못했을 자였다.
게다가 술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친분을 다진답시고 그와 드나든 기루는 셀 수도 없었다.
물론 술값은 매번 능소밀이 계산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막상 자신이 무림맹에 추포되자 안면몰수하고 연락을 끊었다.
그에게 인간적인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괘씸한 건 사실.
“그나저나 이렇게 얼굴을 대놓고 드러내도 되는 것인가?”
서담명의 의심 가득한 눈빛을 마주한 능소밀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걱정할 게 뭐가 있습니까? 이미 공동파를 비롯한 구대문파는 무림맹과 다른 길을 걷기로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게다가 무림맹의 맹주도 바뀌었고요.”
남궁백이 무림 맹주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
임시 맹주직에 등극한 제갈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림맹에서 남궁백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었다.
기존의 무림맹 정책을 실책이라 비판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고, 백대악인 토벌을 비롯한 기존의 사안들을 백지화시켰다.
덕분에 거리낌 없이 신분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표국 밖으로 사라졌던 표두가 급히 돌아와 서담명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서담명의 눈에 놀라움이 떠오르나 싶더니.
“자, 자.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봄이라곤 하나 아직 바람이 차가우니…….”
한결 나긋나긋해진 서담명의 태도에 능소밀이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당 깊숙이 마련된 대청으로 안내받은 능소밀이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담명과 마주 앉았다.
“그래,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어인 일인가?”
먼저 연락을 끊은 서담명의 뻔뻔한 물음에도 능소밀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신마상단이 슬슬 자리를 잡아 가고, 목적했던 바도 어느 정도 이루고 나니 문득 국주님이 생각나더군요.”
“내가?”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좋은 시절에 사귀었던 좋은 사람은 늘 그리운 법 아닙니까.”
그 말이 뜻밖이었던지 서담명이 어색하게 웃었다.
“험험. 그렇지.”
“겸사겸사 사업 이야기도 할까 하고요.”
그 말에 서담명이 자세를 달리했다.
“사업이라면……?”
“아시다시피 최근 신마상단이 꽤 사업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이야기 들었네. 자네 수완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내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 대체 어떻게 그만한 규모의 상단을 일궈 낸 것인가?”
“운이 좋았지요.”
“어디 그게 운만으로 될 일인가? 어디 말해 보게. 훌륭한 사업가의 성공담이라면 천금을 지불하는 것도 마다치 않아야 한다는 게 내 평소의 지론일세.”
능소밀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옛말 우습게 볼 일이 아닙니다. 인간사 새옹지마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더군요. 오히려 이쯤 되니 신소방이 와해된 것이 지금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드니까요.”
능소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는 서담명이었다.
“듣자니 새외뿐만 아니라 서역과도 교역을 한다지?”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국주님을 찾아뵌 것입니다.”
“……?”
“서역은 그렇다 치고 중원 변방 지역엔 아직 본 상단이 다루는 물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상품의 가격이 가격이다 보니 허술하게 행상들에게 맡길 수도 없고요.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표국을 물색하던 중이었습니다.”
“상품이라면 혹시?”
그 역시 무림인인 만큼 신마단에 대해 익히 소문을 들어 왔다.
특히나 표행으로 인해 늘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다니는 표사들인 만큼 내상 약으로도, 외상 약으로도 효과가 뛰어난 신마단의 효험은 이미 충분히 입증이 된 상태.
그러나 워낙 원하는 사람이 많고 구하기는 어려워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 지금은 원래 가격에 웃돈을 얹어도 손에 넣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듣자니 신마단이 그렇게 용하다고?”
기대를 담아 넌지시 운을 떼는 서담명을 향해 능소밀이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서담명이 목갑을 열자 그 안에는 밀랍에 쌓인 아홉 개의 단환이 들어 있었다.
“이게 그?”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펴봐도 되겠나?”
“그것은 이미 국주님의 것인데 허락이 왜 필요합니까?”
그 말에 서담명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이때 시비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서담명에게 말을 건넸다.
“밖에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왔다는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물건?”
의아해하는 서담명을 대신해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 안에 들이게.”
“자네 쪽 사람인가?”
능소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모처럼 만나는 뜻깊은 자리에 술이 빠질 순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