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52)
신마의선-152화(152/500)
신마의선 (152)
사실 이곳에 오기 전, 능소밀은 주루에 들러 미리 값을 치른 뒤 몇 병의 술을 이곳으로 가져다 달라 부탁해 두었다.
“이건 산서분주 아닌가?”
쟁자수들을 통해 들여온 술병들을 확인한 서담명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가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이렇게밖에 모실 수 없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추후 시간을 따로 내 극진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닐세. 다음에는 내가 대접을 해야지.”
‘퍽이나.’
내심과 달리 능소밀은 미소로 응수했다.
“우선 한잔하고 이야기를 이어 갈까요?”
벌써부터 배 속의 주충(酒蟲)이 날뛰는지 서담명이 꼴깍 침을 삼켰다.
능소밀이 따라 준 술을 곧장 비운 서담명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기가 막히는군.”
반면 능소밀은 술잔에 입술만 살짝 가져다 댔을 뿐이었다.
원래라면 실례되는 행동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서담명의 성격을 익히 아는 까닭이다.
오히려 그만큼 자신이 마실 수 있는 술이 덜 줄어드는 셈이니 내심 기뻐하고 있을 터.
그렇게 몇 순배의 술이 돌자 서담명이 거나하게 취해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산서분주는 맛과 향이 뛰어난 명주였지만 여러 번 증류를 거쳤기에 매우 독한 화주였다.
그래서 이처럼 무턱대고 들이켰다가는 인사불성이 되기 십상이다.
“슬슬 사업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어? 아아, 그랬지. 맞아. 사업 이야기를 해야지.”
술기운에 불콰해진 서담명이 기분 좋은 듯 한껏 호쾌하게 웃었다.
“장기간 표물 운송을 약조하면 표행비를 1할 깎아 주겠네. 그리고 내가 직접 표행을 이끌도록 하지.”
호기로운 그의 태도에 능소밀이 내심 조소를 삼켰다.
마지막으로 나선 표행이 언제인지 모르나 지금 그의 몸 상태로는 무리였다.
말에나 제대로 오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뚱뚱한 건 둘째 치고, 술에 탐닉하는 성격상 무슨 사고를 쳐도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본산의 고수 한두 명을 파견해 달라고 부탁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그에 대한 기부금은 섭섭지 않게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서담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좀 힘들 걸세.”
“어째서요?”
“그건…….”
머뭇거리며 말끝을 흐리는 서담명의 모습에 능소밀이 짐짓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니, 왜 갑자기?”
당황한 서담명을 향해 능소밀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표국을 물색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서담명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다루는 물건이 보통 물건이 아니다 보니 보통의 표사들만으로는 불안해서요. 제가 드린 선물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호의이니 돌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능소밀을 서담명이 붙들었다.
“거, 사람 참 급하기는.”
주위를 살피며 듣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서담명이 목소리를 낮춰 입을 열었다.
“외부인에게 함부로 알릴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네.”
“공동파에 말입니까?”
서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발설해선 안 될 이야기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횡재에 마음이 들떠 있었던 데다 술기운이 더해졌다.
무엇보다 큰 고객을 놓칠까 봐 조바심이 들었다.
“돌아와야 할 사람들이 오지 않았네. 대신 서신 한 장만 도착했지. 그때부터 본산의 분위기가 급변했네.”
서담명이 알아서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본 파의 이대 제자인 공현자와 그의 제자인 현검. 그 두 사람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일세.”
당금 공동파의 장문인인 형진도장에게는 두 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중 대제자가 바로 공현자였다.
그리고 공현자가 최근 거둔 제자가 바로 현검이라는 것이다.
“공현자가 겨울 동안 제자를 데리고 수련행에 나섰네. 그런데 돌아오기로 한 날짜가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지. 부랴부랴 본산에서는 수색 인원을 차출하기 시작했네.”
그즈음에 서신 하나가 장문인 앞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형진도장은 다짜고짜 외부 인원을 내보낸 뒤 산문을 닫아걸었다.
‘이거였군.’
공현자는 형진도장의 뒤를 이어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되어 있던 적전제자였다.
또한 그의 제자인 현검 또한 그 비범한 자질을 인정받아 공동파의 미래를 짊어질 후기지수라 평이 자자했다.
“혹시 그 서신에 뭐라 적혀 있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능소밀의 질문에 서담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서게. 무슨 경을 치려고.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조차도 본 파의 친한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것일세. 그러니 어디가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게. 꼭 자네만 알고 있어야 하네. 알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사업 이야기는…….”
“계속하시죠. 이렇게나 제게 신의를 보여 주셨는데 제가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자, 자. 한 잔 올리겠습니다.”
온갖 이유를 대며 능소밀은 계속 술을 권했고, 서담명은 마다치 않고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쿵.
고주망태가 되어 대청 한가운데 널브러진 서담명을 뒤로한 채 능소밀이 등룡표국을 벗어났다.
단악선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다루로 돌아온 능소밀은 곧바로 자신이 알아 온 내용을 보고했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초악량과 달리 단악선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단해요! 어떻게 알아내신 거예요?”
“감숙성 아닙니까? 비록 신소방은 사라졌지만 인맥은 남아 있으니까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죠. 개방조차 알아내지 못한 정보잖아요.”
별것 아니라는 듯 능소밀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했지 않느냐. 녀석이 아니라면 누구도 알아내지 못할 거라고.”
초악량의 말에 능소밀이 슬쩍 웃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능소밀의 말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돌아와야 할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서신이 이를 대신했고……. 장문인은 산문을 닫아걸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느냐?”
“확실하진 않지만 열에 아홉은 두 사람이 인질로 잡힌 경우겠지요.”
능소밀의 대답에 범계위가 탄성을 흘렸다.
“차기 장문인을 납치했다고? 그것도 그 제자와 함께? 누군지 몰라도 간덩이가 크군.”
“곤륜파 앞마당에서 곤륜 문하들을 살해한 자도 있었는데, 뭐.”
“하긴.”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참 미친놈들 많아. 안 그래?”
동의를 구하는 범계위의 말에 능소밀이 어색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가 입에 담을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장 깔끔한 해결책은 그 두 사람이 무사히 공동파로 귀환하게 만드는 것이다.”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찾죠?”
초악량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능소밀에게 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능소밀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시하신다면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마는……. 긍정적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능소밀이 난감한 눈빛을 흘렸다.
“일단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들이 감숙성에 있다는 보장도 없고요. 무엇보다 저를 수행할 인력이 부족합니다.”
“신마상단에 소속된 사람들이 많은 걸로 아는데?”
“그들은 이 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정보를 모으는 일은 은밀하고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그들은 오히려 탐문 과정에서 흔적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능소밀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신마상단의 단주라는 직책 때문에 저는 이미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라진 두 사람에 대해 수소문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능소밀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뒷말은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놈들은 분명 꼬리를 자르려 할 터.
그런 경우 인질의 목숨은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그때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흑점 애들은 어때?”
“흑점…… 말입니까?”
“은밀한 놈들이 필요하다며?”
능소밀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장물을 비롯한 온갖 물건과 정보, 심지어 사람의 목숨까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거래하는 암거래 집단이 바로 그들이다.
점조직 형태로 존재하며 철저한 상명하복의 체계로 운영되는지라 우두머리인 점주를 비롯해 조직 체계 대부분이 알려진 바가 전무했다.
그만큼 상대하기 꺼림칙한 자들이었다.
게다가 점조직의 특성상 접촉할 수 있는 자들이라고 해 봐야 말단에 불과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범계위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엽단영이라고, 산서 지부장인가 그렇다던데?”
“……!”
능소밀이 깜짝 놀랐다.
지부장이라면 흑점 내에서도 핵심 인물.
“내가 가서 데리고 올까?”
범계위의 말에 능소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왜?”
“여기 계신 세 분도 감시를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곤륜파에서 있었던 상황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선배님들께 누명을 씌우려 했다는 흑막이 만약 이번 일과 관련이 있다면요?”
초악량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가정만은 아니었다.
“저들이 만약 곡주님과 선배님들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 사달을 일으킨 것이라면 분명 이곳에도 감시를 붙여 두었을 겁니다.”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특별히 이상한 건 못 느꼈는데?”
“만약 그랬다면 그만큼 실력이 있는 놈을 붙였겠지요.”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에 하나의 경우라도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러니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적어도 이 지역을 벗어나면 적의 감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세 사람 정도 되는 고수를 은밀하게 감시할 만한 전문가는 강호를 통틀어 몇 되지 않았다.
당연히 그 일에 투입된 인원 역시 극소수일 터.
이들과 자신 중 누굴 감시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제 신원을 증명할 만한 추천장 하나만 써 주십시오.”
능소밀이 범계위가 써 준 추천장을 품속에 갈무리했다.
이후 범계위가 알려 준 흑점의 산서 지부로 향하기 위해 다루를 나섰다.
혹시 모를 감시자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상단을 인솔해 감숙을 벗어났고, 이후 상단 일행 중 한 명을 자신처럼 변장시켜 무위까지 향하도록 지시한 뒤 은밀하게 일행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밤새 경공을 발휘했다.
그렇게 이튿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능소밀은 흑점의 산서 지부를 방문할 수 있었다.
‘이러니 눈에 띄지 않을 수밖에.’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사 층 누각.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다루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드나드는 대부분의 손님들 역시 한눈에 봐도 외지인이 분명했다.
쌍탑사라 불리는, 인근의 영조사를 방문하기 위한 향화객인 듯싶었다.
다루 안으로 들어선 능소밀은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각은 이 층까지만 쓰이고 있었다.
삼 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점원 한 명이 다가왔다.
“찾으시는 게 있으십니까? 손님.”
능소밀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을 지으려 하는 중인데 서까래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알아보던 중이었소.”
그 말에 점소이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그것이 흑점(黑店)의 점(店) 자를 파자한 교묘한 언어유희임을 눈치챈 것이다.
이미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을 시각인지라 능소밀은 범계위가 준 추천장을 꺼내 점소이에게 내밀었다.
“귀하의 상관에게 전해 주시오.”
잠시 묘한 눈빛으로 능소밀을 응시하던 점소이가 이내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러기를 잠시.
“따라오십시오.”
낯선 여인 한 명이 능소밀에게 다가와 조용히 소매를 잡아 이끌었다.
여인을 따라 이 층 구석으로 향한 능소밀은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계단이었다.
삼 층으로 오르자 여기저기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은밀하게 존재를 감추고 있어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눈빛에 담긴 경계심만큼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때 천장이 열리며 사 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모습을 나타냈다.
삼 층과 마찬가지로, 필요에 따라 여닫이 형태로 은폐가 가능한 계단 문이었다.
계단을 밟아 꼭대기 층인 사 층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그저 하나의 다탁과 의자 하나가 전부인 간소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중앙에는 우두커니 서서 능소밀을 응시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