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53)
신마의선-153화(153/500)
신마의선 (153)
능소밀은 단번에 그가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눈빛이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능소밀이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훌륭한 풍광이군요.”
이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노을에 물들어 금빛으로 빛나는 탑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 전각의 사 층은 영조사의 상징인 한 쌍의 탑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묘한 위치였다.
“이처럼 낭만적인 운치를 지닌 곳이 흑점의 지부일 거라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차갑게 얼어붙은 음성이 능소밀의 말을 자른 것도 그때였다.
“그분이 보내서 왔다고?”
능소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신 대로요.”
엽단영이 손에 들린 서신을 다시 확인했다.
―이걸 가지고 온 사람을 나라고 생각해라.
밑도 끝도 없이 그 내용이 전부였다.
그리고 말미에는 괴발개발 엉망으로 휘갈긴 범계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서신의 진위를 어떻게 확인하지?”
빙그레 웃는 능소밀의 모습에 엽단영의 눈에서 음산한 살기가 흘러내렸다.
“증명하지 못한다면…….”
“사라지는 겁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엽단영의 눈썹이 꿈틀했다.
능소밀이 나직이 한숨을 흘리더니 엽단영과 시선을 마주했다.
“쓸데없이 찔러보는 건 그만합시다. 어차피 주어진 일, 빨리 마무리 짓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
“제 소개는 굳이 필요 없겠지요? 이미 파악하고 계실 테니까요.”
그 말대로였다.
능소밀이 이곳 산서 지부에 들어서는 순간 엽단영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한때 신소방의 방주였던 자.
그러나 지금은 신마상단의 단주라는 것도.
하나 그의 배후를 캐면 캘수록 수상한 무언가가 자꾸만 딸려 나왔다.
무림맹에 관련된 정보를 취급한 혐의로 추포된 뒤 뇌옥에 갇힌 것까지는 괜찮았다.
한데 뇌옥을 탈출해 모습을 감춘 그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신마상단의 단주가 되어 강호에 나타났다.
문제는 그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무림맹의 정예 상당수가 의문의 고수에 의해 쓸려 나갔다는 점이다.
당금 강호에 그 정도 수준의 고수는 손에 꼽을 정도.
이를 인지한 순간 엽단영은 조사를 중지시켰다.
머릿속에서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토끼 굴을 들쑤시다 난데없이 호랑이가 튀어나오는 봉변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무림맹의 감찰 사자였던 백운휘에게 얻은 정보.
이를 다시 장락방에 제공한 것이 화근이 되어 천재지변보다 두려운 존재를 이곳에 불러들이지 않았던가.
당시 느꼈던 끔찍한 기분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능소밀이 다시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 서신의 진위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
“절 죽이시면 됩니다.”
능소밀이 여유롭게 말을 이어 갔다.
“그럼 다음에 그분이 찾아오실 테니까요.”
“……!”
엽단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예의를 갖춰 완곡히 돌려 말하곤 있었지만 명백한 협박이었다.
그에겐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그러나 더 견딜 수 없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박이 제대로 먹혔다는 점이다.
잡아먹을 듯 자신을 노려보는 엽단영을 향해 능소밀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정녕 눈앞의 기회를 놓치실 겁니까?”
“기회?”
엽단영의 반문에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이 아니라 제가 오지 않았습니까? 이보다 좋은 기회가 어디 있습니까?”
“어째서 이게 기회지?”
“그분에게 끌려다니는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계약 관계로 바꿀 기회 말입니다.”
능소밀이 설명을 이어 갔다.
“신마상단은 자금력을 지니고 있고, 지부장님은 정보가 있지요. 그리고 저는 정보의 가치를 누구보다 높게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엽단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말은?”
“이번 일이 잘 끝나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훗날 신뢰가 쌓이면 신마상단이 지부장님의 후원자가 될 수도 있을 테고요.”
“내 뒷배가 되고 싶다?”
엽단영이 코웃음을 쳤다.
“그럴 능력은 되고?”
그가 파악한 신마상단의 규모는 아직 중원 십 대 상단 안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능소밀이 그가 간과한 부분을 짚어 주었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올리는 데 고작 일 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엽단영도 이 부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마상단의 성장 속도만큼은 무림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능소밀이 이내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곧 엄청난 물건이 세상에 나올 겁니다. 이를 통해 신마상단은 지금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세를 확장해 나갈 겁니다.”
“물건?”
“아직 대외비라 말씀드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군요. 하지만 머잖아 알게 되실 겁니다. 전 중원이 들썩일 테니까요.”
엽단영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상대가 이처럼 호언장담하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자, 이제 선택하시지요.”
대화의 주도권을 거머쥔 능소밀이 부드러운 미소로 엽단영을 압박했다.
“앞으로 저와 함께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엽단영의 어깨가 흠칫하며 굳어졌다.
“직접 그분을 상대하시겠습니까?”
엽단영은 침음했다.
그야말로 외통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능소밀이 웃으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짤랑.
“이건 뭐지?”
“의뢰비입니다. 정보를 얻으려면 마땅히 값을 치러야지요.”
“감히 우리를 뭘로 보고!”
엽단영이 참았던 노기를 터트렸다.
기껏해야 은원보(銀元寶) 네댓 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주머니가 작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돈을 내놓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는 대놓고 자신을 모욕하는 행위였다.
한껏 대등한 입장이니 신뢰니 떠들어 대 놓고 헐값에 자신들을 부리려 하다니!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담담한 능소밀의 눈빛과 표정 그 어디에서도 멸시나 비웃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뒤늦게 엽단영은 눈앞에 놓인 주머니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
엽단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보(元寶).
그것도 금으로 만들어진 열 냥짜리 금원보가 열 개나 들어 있었다.
금 한 냥이 은 오십 냥인 셈이니, 이것만으로도 은원보 백 개 이상의 가치를 지닌 셈.
엽단영은 비로소 능소밀이 지금까지 한 말을 다시 되짚었다.
결코 생각 없이 지껄인,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이를 깨닫자 새삼 눈앞의 사내가 달리 보였다.
“확실히 정보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다르군. 우리는 제법 말이 잘 통하겠어.”
능소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지요?”
그 말에 엽단영이 울컥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설움과 억울함.
세상의 어느 누가 이를 알아줄까 싶었는데, 뜻밖에도 처음 만나는 능소밀의 그 한마디가 위로가 되었다.
“사실 저만큼 지부장님을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 겁니다. 제 신세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능소밀은 자신이 어째서 무림맹에 추포되었는지 설명했다.
“저 또한 무서운 사람에게 끌려다녀야 했거든요. 그래서 결국 평생을 일궈 온 신소방을 날려 먹었지요. 뭐, 살려면 별수 있나요? 시키는 대로 무림맹의 뒤를 캘 수밖에.”
“하긴 범 선배는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니까.”
“그분이 아닙니다.”
“음?”
“전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두렵다 해도 망산초자라 불리는 그분과 어찌 견줄…….”
그러나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혈수존자.”
“……!”
“제 경우는 그분에게 정보를 가져다 바쳐야 했죠.”
엽단영이 말없이 능소밀을 응시했다.
씁쓸한 눈빛으로 한숨을 흘리는 능소밀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무슨 맡겨 놓은 물건 찾아가듯 힘들게 모은 정보를 거저 강탈해 가는데…….”
“나도 알지. 그 심정…….”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고,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신세에 동질감을 느낀 엽단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놈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엽단영이 순간 아차 싶었다.
만약 능소밀이 이 말을 옮긴다면?
그러나 능소밀은 짐짓 딴청을 피우며 반문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듣지 못했군요.”
“……고맙네.”
능소밀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 잘해 봅시다.”
그 손을 엽단영이 맞잡았다.
“그러세.”
서로에 대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뢰 관계가 구축되는 순간이었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능소밀은 결국 엽단영의 마음을 얻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 * *
식사를 위해 근처 식당을 찾은 단악선 일행은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한 뒤 담소를 나눴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이어 가던 도중 음식이 나왔다.
범계위가 문득 의아한 표정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비어 있는 자리 위에 단악선이 젓가락을 올려 두었기 때문이다.
“올 사람이 또 있나?”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혹시 몰라서요.”
“……?”
“능 단주님이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잖아요.”
그 말에 범계위는 가슴이 찡해졌다.
별것 아닌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떠난 이가 돌아올 자리를 마련해 두는 단악선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이나 기특하고 예뻐 보였다.
그렇게 식사를 하던 도중.
“어?”
단악선이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왜 그러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능 단주님의 기척이 느껴진 것 같아서요.”
단악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초악량이 슬쩍 웃었다.
“기분 탓일 것이다.”
범계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녀석이 근처에 있다면 우리가 모를 리 없어.”
은신술에 특화된 절정의 고수가 아닌 이상 두 사람의 기감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다시 식사를 이어 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설화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것도 동시였다.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은데?”
“어?”
“으음?”
그 말에 초악량과 범계위도 뒤늦게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접근하는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익숙한 느낌의 기도.
능소밀이었다.
당황한 두 사람을 향해 한설화가 핀잔을 던졌다.
“하수들.”
민망함에 초악량과 범계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런데 단 의원은 어떻게 녀석이 오는 걸 느낀 거지?”
초악량의 의문에 범계위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 더구나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멀리 까마득한 곳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능소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능소밀이 곧장 단악선 일행이 머무는 식당을 향해 들어선 것이다.
“찾았습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가쁘게 내뱉으며 능소밀이 외쳤다.
반면 초악량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네? 그러게요?”
눈빛으로 추궁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능소밀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왠지 여기 계실 것 같던데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단악선이 이곳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른 세 사람도 함께 있을 터.
반면 초악량은 의구심을 감출 수 없었다.
많고 많은 장소 중에 하필 이곳을 정확히 콕 짚어 찾아오다니.
단순한 우연이라 치기엔 무척이나 공교로웠다.
사전에 미리 언질을 해 준 적도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목부터 축이세요.”
단악선이 적당히 식은 차를 능소밀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곡주님.”
감격한 얼굴로 이를 받아 든 능소밀이 벌컥벌컥 찻물을 들이켰다.
탁.
찻잔을 내려놓은 능소밀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좀 살 것 같군요. 산서에서 이곳까지 반나절 동안 쉬지 않고 달렸거든요.”
초악량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 거리를 반나절 만에 주파했다고?”
그러고 보니 아까 달려오는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빨라져 있었다.
‘가만?’
초악량이 능소밀을 빤히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이놈도 위화신공을 익히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