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54)
신마의선-154화(154/500)
신마의선 (154)
어쩌면 두 사람이 익힌 위화신공에 남들은 알지 못하는 효험이 있는 건가 싶었다.
자신들의 기감을 아득히 벗어난 거리에서 단악선이 능소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곡주님…….”
반면에 능소밀은 단악선이 건넨 따듯한 말 한마디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 따스한 눈빛에 그간의 노고가 단번에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남자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훈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쯤이면 늘 눈치 없이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
“왜 말을 하다 말아?”
“네?”
“찾았다며.”
눈살을 찌푸리며 채근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능소밀이 내심 쓴웃음을 삼켰다.
하지만 이내 엽단영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언급했다.
“짐작하신 대로 공현자와 그의 제자인 현검은 납치된 것이 맞습니다.”
“흥, 꼴 좋군. 명색이 구대문파라는 놈들이 납치나 당하고.”
비웃음을 흘리는 범계위와 달리 초악량은 진지한 눈빛을 흘렸다.
다른 곳도 아닌 공동파, 그것도 적전제자였다.
그 정도면 제법 강호에서 어깨 펴고 걸어 다닐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고수를 납치했다는 건 그만큼 상대의 능력이 녹록지 않다는 의미였다.
“흉수에 대해 파악한 건 있나?”
초악량의 물음에 능소밀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놈들의 실력이 대단해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무리해 추적을 들키느니 차라리 그게 나았다.
“위치는?”
마음이 급했는지 범계위는 벌써부터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한중 인근에 위치한 곡우산. 북동쪽의 폐사찰이랍니다.”
“한중?”
“감숙과 섬서 경계 근처입니다.”
“별로 안 머네?”
대충 거리를 가늠한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동파에 알리는 게 좋겠죠?”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않는 게 나을 것 같구나.”
“어째서요?”
“과연 우리 말을 놈들이 고분고분 믿을까 싶구나. 그리고 그 전에 나부터가 놈들이 미덥지 않고.”
이번 일의 성격상 부산하게 소란을 떨어 봐야 역효과였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관건인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범계위가 벌떡 일어섰다.
“그냥 내가 가서 데려올게.”
“나도 같이 가자.”
초악량도 함께 일어서자 모처럼 생색을 내고 싶었던 범계위가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나 못 믿수?”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는 초악량의 모습에 범계위가 나직이 툴툴댔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단 의원을 위한 일인데 설마 녀석들을 죽이기라도 할까 봐?”
초악량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널 못 믿어서가 아니다.”
“그럼?”
“놈들의 면면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런다.”
범계위가 알겠다는 듯 히죽 웃었다.
“가만 보면 초 형도 참 사람이 못됐다니까.”
“뭐?”
“명문정파랍시고 떠들다가 납치나 당한 한심한 사제지간을 비웃어 주려는 생각이잖수?”
“…….”
초악량은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흉수들의 정체였다.
하지만 떫은 표정을 지을 뿐 굳이 설명하진 않았다.
그래 봐야 말만 길어지고 피곤해질 뿐이다.
범계위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따라오슈. 초 형도 놈들에게 쌓인 게 많을 테니 이번만 특별히 데려가 드리리다.”
이때 능소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 함께 움직이면 이곳을 감시하는 자가 눈치챌 겁니다.”
능소밀의 지적에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괜찮아.”
“네?”
“우리가 더 빨리 가면 돼.”
“아!”
능소밀이 탄성을 터트렸다.
이들이 누군지 간과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은 일반적인 잣대로 규정할 수 없는 논외의 대상이다.
사람이든, 혹은 전서구든.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동하는 그 어떤 수단도 이들보다 빠를 수 없었다.
무공 자체가 상식적인 범주에 해당이 되지 않는 괴물들인 것이다.
단악선이 초악량과 범계위에게 말했다.
“그럼 두 분께 맡길게요. 부디 조심하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미심쩍은 눈빛을 던졌다.
“그런데 초 형, 나 따라올 수 있겠수?”
“문제없다.”
곤륜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초악량도 나름 정양에 집중했다.
덕분에 청성파에서 입었던 내상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내공 역시 마찬가지.
아직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사천에 막 도착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져 있었다.
“그래도 무리하지 마세요.”
염려가 담긴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또 성질 못 이겨 날뛰다 다치지 마슈. 괜히 우리 단 의원 고생시키지 말고.”
초악량의 눈썹이 꿈틀했다.
같은 말도 범계위에게 들으니 매우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말만 마친 범계위가 곧장 신형을 날렸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범계위에게 핀잔을 듣는 신세라니.
“그럼 다녀오마.”
그 말을 끝으로 초악량도 객잔 밖으로 사라졌다.
* * *
인적이 끊긴 폐사찰.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반쯤 기울어진 대웅전 내부에 두 사람이 좌정을 한 채 운공을 하고 있었다.
삼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비록 도관은 날아가고 머리가 헝클어져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눈빛만큼은 단단한 중년 도사.
그리고 수려한 이목구비가 눈에 띄는 약관 남짓의 청년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안색은 몹시 초췌했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은 턱 끝에 맺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크윽…….”
청년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온 것도 그때였다.
불안한 제자의 모습에 공현자가 다그치듯 입을 열었다.
“견뎌라! 버텨야 한다!”
“네……. 사부님……. 하나…….”
“곧 본 파의 정예가 우리를 찾으러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텨야 한다!”
흐트러지는 정신을 일깨우는 단호한 음성에 현검이 흔들리던 의지를 겨우 붙잡았다.
그리고 다시 운공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반면 공현자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검게 죽어 가기 시작했다.
운공 도중 입을 열자 진기가 흔들렸고, 그 바람에 그나마 실낱처럼 이어지던 진기가 끊어진 것이다.
혹시라도 제자가 들을까 싶어 공현자는 입술을 깨물어 고통을 참았다.
그러나 내부의 팽팽한 균형이 깨지자 억누르고 있던 고통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참으로 지독한 독이로다!’
놈들이 사용한 산공독(散功毒)은 악랄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온몸의 혈관을 물어뜯는 느낌이었다.
실로 참기 힘든 지독한 가려움.
거기에 다시 불로 지지는 듯한 작열통이 이어졌다.
짧은 시간에 몇 번이나 파도처럼 밀려드는 끔찍한 고통은 마치 산 채로 지옥 한가운데 던져진 기분이었다.
‘빌어먹을…….’
사찰 밖으로 시선을 던진 공현자가 내심 욕설을 삼켰다.
어느새 주위로는 타는 듯한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초조함에 타들어 가는 속도 모르고 서산으로 무심하게 기우는 해가 야속할 뿐이었다.
이곳으로 납치당한 것이 오늘로 열흘째.
그동안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 마실 수도 없었다.
심지어 잠도 잘 수 없었다.
그저 쉬지 않고 산공독에 대항해 운공하는 것만이 당장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운기를 멈추면 산공독이 평생 쌓은 내공을 날려 버릴 터.
무인에게 있어 죽음보다 비참한 것이 바로 무공을 잃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그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이미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놓아 버리고 싶은 유혹이 불쑥 찾아왔다.
그럼에도 공현자는 그때마다 매번 다시 이를 악물었다.
고통 속에 남겨질 제자를 외면한 채 자신 먼저 편해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사문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나…….
하루, 그리고 이틀…….
이곳에 붙들려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짤그락.
바닥에 즐비한 깨진 기와를 밟으며 한 사람이 들어선 것도 그때였다.
“끌끌.”
공현자와 현검을 향해 혀를 차는 사람은 작달막한 키에 등이 굽은 꼽추였다.
그것도 흘러내린 것 같은 눈두덩이가 대부분의 눈을 덮고 있어 매우 흉측한 몰골을 지닌 노인이었다.
“애쓴다, 애써.”
엄지와 검지밖에 남지 않은 왼손으로 자신의 뺨을 긁던 꼽추 노인이 놀리듯 입을 열었다.
“공동파에서 너희들을 버렸나 보다. 아직도 신의의 아들과 그 일행을 쫓아내지 않고 있다는구나.”
“닥쳐라, 칠지괴타(七指怪駝)!”
“호오? 아직도 입을 열 수 있다니 여유가 있나 봐? 훌륭해. 그 정신력만큼은 인정해 주지. 과연 공동의 차기 장문인다워.”
자신들을 흔들려는 꼽추 노인을 꾸짖은 공현자가 분노한 눈을 들어 그를 노려봤다.
“본 파가 한낱 악적들의 협박에 굴복할 것 같더냐? 조만간 너희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글쎄. 과연 그럴까?”
칠지괴타라 불린 홍단엽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데 왜 그 잘난 공동파의 검수들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는 거지?”
“…….”
“너희는 버려진 거야. 그 알량한 자부심. 구대문파라는 체면 때문에 말이야.”
공현자가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너희야 산공독 따위를 이용한 치졸한 암습이나 펼치는 놈들이니 명예가 뭔지도 모르겠지.”
“어이, 말코. 지금 뭔가 대단히 착각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홍단엽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설마 너희가 두려워 몸을 사린다 생각하는 거야?”
“제대로 겨룬다면 너는 내 상대가 아니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홍단엽이 낄낄대며 웃었다.
그리곤 벼락처럼 손을 뻗었다 거두었다.
“예전의 내가 아니다. 너 따위는 내게 백초지적도 안 돼.”
그 말과 함께 홍단엽이 손을 내밀어 펼쳐 보였다.
그의 손바닥에 올려진 귀.
공현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바로 눈앞에서 펼친 한 수였건만 도저히 눈으로 좇을 수 없었다.
그만큼 전율스러운 속도였다.
하지만 이내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현검의 뺨을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으으…….”
현검의 입에서 재차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귀가 뜯겨 나가는 극통에 삼매가 깨진 것이다.
자신의 진기가 흔들리는 것도 마다치 않고 공현자가 소리쳤다.
“참아라! 이 정도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언젠가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를 사람이다! 그러니 절대 굴복해선 아니 된다!”
“제자를 향한 사랑이 참으로 눈물겹군.”
홍단엽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공현자에게 다가섰다.
“무슨 수작이냐?”
불안하게 흔들리는 공현자의 눈빛.
이를 들여다보는 홍단엽의 얼굴에 웃음이 짙어졌다.
“공동파가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니 이쯤에서 방법을 바꿔볼까 싶어서.”
턱.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홍단엽이 엄지와 검지만 남은 왼손으로 꼬집듯이 공현자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치익.
“……!”
살이 타는 매캐한 연기와 함께 허옇게 익은 살점이 맥없이 뜯겨 나갔다.
벌겋게 입을 벌린 상처에서는 핏물도 나오지 않았다.
강력한 열양지기에 의해 지혈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릅뜬 공현자의 눈에 핏발이 가득 섰다.
그러나 끝까지 신음 소리 한번 흘리지 않고 버텨 냈다.
제자를 위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홍단엽이 이죽거렸다.
“염려 마. 적어도 출혈로 죽는 일은 없을 거야.”
끔찍한 고통에 부들부들 떠는 공현자를 내려다보며 홍단엽이 말을 이어 갔다.
“이렇게 한 점 한 점 나누어 공동에 보낼 생각이야. 과연 네 사문이 어찌 나올지 궁금하군.”
“공동은…….”
공현자는 끝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불의와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그래?”
홍단엽의 시선이 공현자를 지나 현검에게 향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천하제일인 쪽은 어떨까?”
공현자가 흠칫하며 소리쳤다.
“무슨 짓을!”
창노한 그의 표정에 홍단엽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별수 있나? 낚시가 시원치 않다면 미끼를 바꾸는 수밖에.”
주름진 그의 눈매 사이로 흉악한 살기가 줄기줄기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