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55)
신마의선-155화(155/500)
신마의선 (155)
“차라리 나를 죽여라!”
공현자가 처절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그게 부탁하는 태도인가?”
공현자가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나뿐인 제자를 위해 그 어떤 오욕도 감내하리라는 각오를 다졌다.
“제발…….”
그 순간.
공현자의 말을 자르며 현검이 말했다.
“그러지 마십시오, 사부님.”
공현자가 놀라 현검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산공독과 싸우며 운공하고 있어야 할 현검이 어느새 눈을 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지가 이렇다 하지만 저 역시 공동의 제자. 기꺼이 감내하겠습니다.”
“현검아…….”
“만약 사부님께서 저자에게 굴복한다면 제자는 차라리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어 자결하겠습니다.”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단호한 음성에 공현자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공현자가 말없이 자신의 제자를 응시했다.
심마와 같은 고통과 싸우는 와중에도 현검의 눈빛은 더없이 맑고 차분했다.
공현자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다. 그래야 내 제자지.”
공현자가 다른 의미의 각오를 두 눈에 새겨 넣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공동 문하답게 죽자.”
“사부님을 모실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고맙다. 나도 그렇다. 네가 내 제자여서…….”
목이 멘 공현자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하.”
마른 웃음을 흘린 홍단엽이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사제지간이 쌍으로 염병을 떠는군.”
천천히 들어 올리는 홍단엽의 양손을 따라 주위의 경물이 일그러졌다.
강력한 열양진기에 주변의 공기가 데워지며 생긴 현상이었다.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손을 현검에게 뻗으며 홍단엽이 조롱했다.
“사문은 너희를 버렸고, 네 사부마저 너를 포기했구나.”
“사부님은 틀리지 않았다.”
홍단엽이 고개를 돌려 공현자를 비웃었다.
“똑똑히 지켜봐라. 비록 내 손으로 피를 묻히지만 네 제자를 죽인 것은 네 아집이니.”
그때였다.
우둑.
“……?”
현검의 천령개를 향해 손을 가져가던 홍단엽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왜 자신의 손이 기이하게 뒤틀려 있는지 한순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난데없이 들이닥친 강렬한 후폭풍에 그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꽈릉.
멀지 않은 곳에서 터져 나온 우레 소리가 귀청을 두드린 것도 동시였다.
홍단엽이 화들짝 놀라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 형! 한 놈쯤 죽어도 되잖수! 뭐가 그리 급해?”
“사부 쪽이 죽으면 좀 더 기다리려 했다.”
“하긴 제자 놈이 뭘 알겠어.”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며 경내로 들어서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타는 듯한 노을을 등에 업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정체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강호인 중 저렇게 거대한 체구를 지닌 고수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망산초자…….”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한 사람의 목소리도 귀에 익었다.
죽었다 깨도 잊을 수 없는 괴물.
과거 자신의 손가락 세 개를 앗아 간 당사자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초악량……!”
툭.
바닥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떨어진 것도 동시였다.
두 개밖에 남지 않은 그의 손가락과 왼손을 통째로 짓이긴 암기의 정체였다.
왼손은 흉측하게 뒤틀리고 부서져 뼛조각이 피부를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그 사이로 철철 흘러내리는 피를 아연한 눈으로 바라보길 잠시.
“크윽.”
뒤늦게 홍단엽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지독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다, 당신들이 어떻게…….”
그 말을 무시한 채 초악량이 말했다.
“왜 너뿐이지? 나머지 두 명은 어디 있나?”
교활하게 눈빛을 굴리던 홍단엽이 재빨리 공현자와 현검 뒤로 신형을 날렸다.
그의 양손은 각각 두 사람의 정수리 위에 올려져 있었다.
“다가오면 이놈들은 죽는다!”
서로 시선을 마주한 초악량과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홍단엽 쪽을 향해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당황한 홍단엽이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멈춰! 설마 이자들이 눈앞에서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러나 초악량과 범계위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 왔다.
“어째서…….”
범계위가 코를 후비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뭐 해? 빨리 안 죽이고.”
“뭐?”
“손 안 대고 코 풀 기회인데 왜 마다하겠어?”
홍단엽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구대문파와 저들 사이에 쌓인 원한을 그라 해서 모를 리 없었다.
십대악인인 그들이 공동 문하를 구해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뒤늦게 간과하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이들이 죽으면 연판장에 수결을 얻지 못할 텐데?”
초악량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역시 네놈들의 목적은 우리를 방해하기 위해서였군.”
짐작대로였다.
이로써 곤륜산에서 놈들이 곤륜 문하를 죽인 목적도 이해가 되었다.
“뭐, 부득이한 경우니 어쩔 수 없지. 우리는 복수를 해 주고, 그걸 명분 삼아 연판장을 받는 걸로 하지.”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홍단엽을 부추겼다.
“할 거면 서둘러.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으니까.”
홍단엽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켰다.
이쯤에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더 이상 거리가 좁혀진다면 그나마 달아나는 것마저 불가능할 터.
그렇게 판단한 홍단엽이 뒤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채 몇 걸음도 움직이기 전에 거대한 벽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이 범계위의 신형이라는 것을 깨달은 홍단엽이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죽엇!”
상대는 자신을 얕잡아 보고 방심하고 있는 상태.
여기서 십이성 전력을 다한 혼신의 일격이라면…….
어쩌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헛된 희망에 불과했다.
턱.
솥뚜껑처럼 거대한 손이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이익!”
필생의 공력을 끌어 올린 홍단엽이 그대로 오른손에 진기를 쏟아부었다.
화르륵.
그의 손을 움켜쥔 범계위의 손가락 사이로 시뻘건 화염이 솟구쳤다.
그런데…….
너무나 태연한 범계위의 모습에 절로 당혹성이 새어 나왔다.
“어떻게?”
그가 그토록 자부하던 극융염화진기(極融炎火眞氣)도 소용이 없었다.
범계위가 홍단엽의 손을 움켜쥔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허리춤까지밖에 오지 않던 홍단엽의 얼굴이 자신의 시야 앞으로 들어오자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디 한겨울에 애들 손이나 녹이겠어?”
그 순간 초악량이 끼어들었다.
“일단은 죽이지 말고 살려 둬라.”
“쳇.”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범계위가 진기를 끌어 올렸다.
그리곤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더니 붙들고 있던 홍단엽의 손을 놔주었다.
쿵.
엉덩이부터 바닥에 떨어진 홍단엽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살점이 녹아 한데 뒤엉켜 버린 자신의 손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끄아악!”
뒤늦게 엄습하는 작열통에 몸부림치는 사이.
우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정강이 근처에서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크학!”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두둑. 뚝. 뚜둑.
홍단엽의 몸에서 연이어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오나 싶더니.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인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아무리 흉악한 악인이라 하더라도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눈물과 비명을 쏟아 내는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공현자와 현검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마치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내는 아이처럼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범계위의 무자비한 손속에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감히 우리 단 의원 일을 방해해?”
싸늘한 눈으로 홍단엽을 내려다보던 범계위가 그의 아혈을 점해 버렸다.
“끄르륵.”
끝 모를 고통 속에 버둥대던 홍단엽은 결국 게거품을 게워 내며 혼절했다.
정신 사나운 멱따는 비명이 그치자 그제야 범계위가 초악량을 향해 웃었다.
“초 형 말대로 살려는 뒀소.”
“고맙다, 그래.”
쓴웃음을 머금은 초악량이 공현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산공독에 당했다지?”
이미 초악량과 범계위는 한참 전에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다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조금 뜸을 들였을 뿐이다.
입이 가벼운 것 같은 홍단엽을 통해 다른 자들과 관련한 정보를 얻고자 했지만 놈이 앞뒤 가리지 않고 살수를 쓰려 했기에 마지못해 나선 것이다.
“…….”
자존심 때문인지 공현자는 인상을 찌푸린 채 침묵했다.
서로에게 쌓인 앙금이 많았기에 초악량은 충분히 그의 입장을 이해했다.
초악량이 홍단엽을 향해 다가갔다.
놈이 산공독을 풀었다면 당연히 해약도 지니고 있을 터.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옷 속을 뒤지자 두 개의 약병이 나온 것이다.
이래서야 어느 것이 산공독이고 어느 것이 해약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줘 보슈.”
초악량이 망설이는 사이 범계위가 손을 뻗어 두 개의 병을 낚아채 갔다.
두 개의 자기 병을 번갈아 바라보던 범계위가 그중 하나의 마개를 열어 망설임 없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공현자와 현검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범계위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산공독이네.”
산공독이 들어 있던 자기 병을 홍단엽 옆에 내려놓은 범계위가 나머지 병을 들고 공현자와 현검을 향해 다가갔다.
“무, 무슨 짓을……, 콜록!”
기겁하던 공현자가 기침을 토했다.
범계위가 우악스런 손길로 턱을 잡아 벌리고는 자기 병 안에 담겨 있던 가루약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현검 역시 마찬가지.
“어때? 효과가 있는 거 같아?”
그 말에 공현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눈을 감고 운공을 시작했다.
최대한 빠르게 일주천을 마친 공현자가 현검을 향해 말했다.
“해약이 맞다. 서둘러 운기조식을 취해라.”
“네, 사부님.”
현검도 눈을 감고 운공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공현자도 재차 운공에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거의 동시에 눈을 뜬 두 사람의 눈빛에 생기가 감돌았다.
다행히 큰 내공 손실 없이 산공독을 해독했기 때문이다.
물론 약간의 손해는 있었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현검이 당혹성을 터트렸다.
“왜 그러느냐?”
걱정 가득한 사부의 음성에 현검이 당황한 얼굴로 범계위를 가리켰다.
“저분께서 드실 해약이 남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범계위가 산공독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공현자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범계위는 태연했다.
“아, 이거? 별거 아니야. 모르고 먹었으면 모를까 알고 먹은 건데, 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가 진기를 끌어 올렸다.
한순간 그를 에워싼 주변의 공기가 후끈해지나 싶더니.
“꺼억.”
트림과 함께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나왔다.
아연실색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제의 모습에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별거 아니라니까.”
그러나 정작 그 지독한 산공독에 묶여 열흘 동안 지옥을 경험한 두 사람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기를 잠시.
공현자가 복잡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어찌 우리를 구해 주는 것이오?”
“감사 인사가 참 특이하군?”
냉소 어린 초악량의 반문에 공현자가 발끈했다.
“당신들이 아니었다 해도 어차피 본 파에서…….”
범계위가 그 말을 잘랐다.
“너희들이 죽고 나서? 아니지. 지금 분위기를 보니 죽어도 안 올 거 같은데?”
“…….”
공현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서로 살갑게 대화를 나눌 사이도 아니고, 짧게 묻지. 습격한 놈들은 몇이었나?”
초악량의 질문에 공형자가 짧게 대답했다.
“셋이었소.”
“그중 한 명은 독안나찰 사영의겠지?”
“그렇소.”
“나머지 한 놈은 누구지?”
“그건 잘 모르겠소. 복면을 착용한 데다 말수도 없어서…….”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이곤 한쪽으로 비켜섰다.
“바래다주진 않아도 되겠지?”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던지 공현자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가자.”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고집스런 공현자의 모습에 초악량이 피식했다.
그래도 못내 마음에 걸렸던지 현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부님, 그래도 감사 인사는 해야 하지 않습니까?”
“저들이 저 빌어먹을 꼽추에게 우리를 죽이라 종용했다는 걸 잊었단 말이냐?”
“네? 하지만…….”
“일단 본문으로 복귀하는 것이 우선이다. 돌아가서 상의해 보자꾸나.”
그 말에 초악량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는 범계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 보슈. 죽고 나면 오자니까. 저런 놈들이 뭐 이쁘다고 산공독까지 먹었을까. 괜히 입맛만 버리게.”
들으라는 듯 대놓고 큰 소리로 외치는 범계위의 음성을 공현자는 끝까지 못 들은 척 외면했다.
그나마 현검은 염치가 있는지 두 사람을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부랴부랴 사부를 따라나섰다.
“필요에 의해 구했을 뿐, 굳이 저들에게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그나마 단 의원이 하려는 일에는 도움이 될 테니 그거면 됐지.”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도 이내 그들에게 관심을 거두었다.
대신 범계위는 고개를 숙여 홍단엽을 응시했다.
퍽.
“커헉!”
범계위가 옆구리를 힘껏 걷어차자 아혈이 풀린 홍단엽이 피 기침을 토하며 정신을 차렸다.
범계위가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남은 산공독을 그의 입에 때려 넣었다.
“자, 이제 우리만 남았으니 오붓하게 대화를 나눠 볼까?”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안쓰럽게 몸을 떨어 대는 홍단엽을 향해 범계위가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