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56)
신마의선-156화(156/500)
신마의선 (156)
초악량이 슬쩍 돌아선 것도 그때였다.
이를 눈치챈 범계위가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응? 어디 가슈?”
“방금 구해 준 공동파 녀석들을 따라가 보려고.”
초악량의 대답에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제자인 현검 쪽은 그나마 나았지만 시종일관 뻣뻣했던 공현자는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수?”
“나라고 어디 저들이 예뻐서 그러는 것 같으냐?”
초악량은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머지 흉수들을 찾아야지.”
“……?”
“사영의와 다른 한 명이 근처에 있다면 필시 그 두 사람을 다시 노릴 것이다.”
“아!”
그제야 범계위가 이해했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놈들은 미끼였던 거요?”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이자 범계위가 홍단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그쪽은 초 형한테 맡기리다. 난 이놈과 할 말이 있어서 말이오.”
살벌한 눈빛을 흘리는 범계위와 바들바들 떠는 홍단엽을 뒤로한 채 초악량이 신형을 날렸다.
* * *
“크윽!”
휘청이며 신음을 흘리는 사부의 어깨를 현검이 재빨리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공현자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산공독은 완벽히 제거했으나 열흘 동안 시달린 여파는 어쩔 수가 없었다.
삐쩍 마른 자신의 팔과 눈에 띄게 야윈 제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공현자가 무거운 한숨을 터트렸다.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구나.”
사파 놈들에게 인질로 붙잡힌 것도 모자라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정작 그를 괴롭히는 건 따로 있었다.
“하필 그자들에게 목숨을 빚지게 되다니…….”
초악량과 범계위를 떠올린 공현자는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사문에 돌아가 사실대로 보고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반면 현검은 그런 사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악인이라 할지라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들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부의 모습이 그리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사부의 고지식한 성품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은원의 구분은 명확히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 제자는 그분들에게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올리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현검의 말에 공현자가 어이없다는 눈빛을 던졌다.
“그자들의 손에 걸려 유명을 달리한 공동 문하가 몇인 줄은 아느냐?”
“하오나…….”
공현자가 단호한 표정으로 현검의 말을 잘랐다.
“그들을 괜히 십대악인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이유 없이 그들에게 불길한 명호가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
“그들이 칠지괴타와 다를 게 무어란 말이냐? 목적을 위해서라면 상대를 기만하고 목숨을 앗아 가는 걸 주저하지 않는 게 사파 무리의 추악한 본성이다. 행여라도 그들을 우리와 같은 선에 놓고 판단하지 말거라.”
현검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등골을 타고 오르는 한 줄기 오한이 느껴졌다.
공현자도 이를 느낀 듯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십 장 정도 떨어져 있는 관목림을 헤치며 두 사람이 걸어 나온 것도 그때였다.
그중 한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공현자가 침음성을 흘렸다.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진, 타는 듯한 붉은 홍의.
거기에 관능적인 눈빛이 돋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농염한 자태는 매우 유혹적이었다. 하지만 그 요염함이 지나쳐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안나찰(獨眼羅刹)…….”
공현자가 당혹성을 흘렸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이곳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한 사영의가 묘한 눈빛을 흘렸다.
“갈 때 가더라도 작별 인사는 나눠야 하지 않겠어? 그래도 그간 쌓인 정이 있는데 말이야.”
교태 섞인 그녀의 비음에 공현자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아무리 외양이 삼십 대 정도로 보인다지만 실제로는 고희를 넘긴 노마가 바로 그녀였다.
“그 요망한 입 닥쳐라!”
공현자의 일갈에 사영의가 실소하며 천천히 두 사람에게 다가섰다.
허공에 나부끼는 새하얀 머리카락.
그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외눈에서 자욱한 살기가 흘러내렸다.
“아쉽네. 석별의 정을 제대로 나누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어서.”
반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흑의인은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며 그 자리에 바위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공현자와 현검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사영의가 신형을 날렸다.
어지러운 검 그림자와 붉은 잔영이 격렬하게 뒤섞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연달아 차가운 금속성과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큽!”
공현자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그녀와의 대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검을 타고 올라온 한기(寒氣)가 심맥을 파고들었다.
사영의의 성명 무공인 빙심투골장(氷心透骨掌).
그 영향력을 벗어나려 애썼지만 좀처럼 그녀를 떨쳐 낼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수로!’
과거 그녀는 자신의 백초지적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수를 썼는지 지금은 자신과 동수를 이룰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나 현검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점차 승기는 상대 쪽으로 기울었고 공현자와 현검은 날아드는 장력을 걷어 내기도 급급했다.
반면 사영의는 여유가 있었다.
“걱정 마. 너희를 공동파로 돌려보내 줄 테니까.”
사영의가 요사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거추장스러운 무거운 몸뚱이는 놔두고 목만 잘라서 말이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영의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공현자는 이를 악물었다.
“대체 목적이 뭐냐?”
“이제 와서 그게 궁금해?”
사영의가 여유 있게 말을 이어 갔다.
“뭐, 좋아. 염왕 앞에서 고해야 할 이야기는 있어야겠지.”
“…….”
“우리의 충고를 무시하면 어찌 되는지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하니까. 한마디로 본보기야. 너와 네 제자는. 그러니 이제 그만…….”
째앵!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허공에 드리워져 있던 검영이 비단 폭처럼 찢겨 나갔다.
그 사이로 사영의가 하얗게 얼어붙은 손을 밀어 넣었다.
“죽어!”
공현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가슴을 향해 밀고 들어오는 사영의의 손.
이를 막을 방법이 전무했다.
그때 기적이 벌어졌다.
콰앙!
“꺄악!”
갑자기 눈앞에서 폭음이 터져 나오나 싶더니, 사영의가 새된 비명과 함께 튕겨져 나간 것이다.
그대로 훌훌 날아간 사영의가 허공에서 몸을 틀어 바닥에 착지했다.
여유 있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만이 가득했다.
“혈수존자…….”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공현자와 현검이 고개를 돌렸다.
십 장쯤 떨어진 바위.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그 옆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초악량이었다.
“따라와 보길 잘했군.”
초악량이 걸어와 공현자와 현검 앞을 막아섰다.
“물러서라.”
그 말에 공현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에게 목숨을 빚지게 된 셈이다.
하나 그는 고집스러울지언정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이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현검을 데리고 멀찍이 물러섰다.
“얼굴이 좋아졌군?”
초악량이 물끄러미 사영의의 얼굴을 응시했다.
“주안술을 회복한 걸 보니 무공이 늘었나?”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사영의가 표독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그래도 사라진 눈이 다시 생겨나진 않는 모양이군.”
빠드득 이를 갈던 사영의가 뒤쪽을 향해 힐끔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자가 너의 주인인가?”
초악량의 눈빛이 흑의인을 향했다.
복면 위로 드러난 것은 한 쌍의 눈뿐이었지만 눈빛 안에 담긴 존재감은 사영의나 홍단엽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독특하게도 철저히 자신의 기파를 갈무리해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자로군.’
만약 자신들을 감시하는 자가 있었다면 그 말고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주인이라니!”
사영의의 눈썹이 꿈틀했다.
“우리는 주종 관계가 아니다. 그가 나에게 부탁을 했고, 나는 그 부탁을 수락했을 뿐이다.”
초악량이 차가운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런데 왜 그의 눈치를 살피지?”
“……!”
“그런 관계를 달리 뭐라 부를까?”
사영의의 얼굴이 안쓰러울 만큼 심하게 구겨졌다.
초악량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슬쩍 웃었다.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스스로도 이미 깨닫고 있었나 보군.”
노골적인 초악량의 조롱에 사영의의 살기가 무섭게 치솟았다.
“닥쳐! 이…….”
소리를 지르던 사영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갑자기 어깨가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왁!”
사영의가 갑자기 한 사발이 넘는 피를 토하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오른팔은 힘없이 늘어진 상태였다.
앞섶을 온통 피로 물들인 채 사영의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대체 어떻게……?”
초악량이 손을 들어 사영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영의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돌연 눈앞에서 무언가가 일렁이나 싶더니 그대로 가슴을 향해 짓쳐들어온 것이다.
황급히 양팔을 교차해 방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쾅!
사영의가 피를 뿌리며 훌훌 날아갔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휘청이며 신형을 바로잡은 사영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격공장(隔空掌)……!”
적에게 타격을 가할 때 기를 모아 위력을 배가하는 것을 발경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발전시킨 수법이 존재했다.
이른바 장풍, 혹은 권풍이라 불리는 수법이었다.
응축된 기를 유지한 채 밀고 나아가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방금 초악량이 사용한 격공장은 그런 수법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절학이었다.
특정할 수 없는 임의의 한 지점에서 기가 폭발하는 것이다.
의지를 따라 자연히 진기가 일어나 좇는 심의운기(心意運氣)의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신위였다.
실제로 그녀 역시 당하기 직전까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어떤 기세도.
심지어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당하고 나서야 그 위력을 뼈아프게 절감할 뿐이었다.
너무나 압도적인 무위의 격차.
그 앞에서는 손쓸 방법이 전무했다.
초악량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사영의는 석상이 된 듯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심장을 파고드는 삼엄한 기세가 이를 허락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차이.
그게 격(格)이다.
그리고 초악량은 그 격을 온전히 갖춘 자였다.
쿵.
초악량의 발이 바닥을 굴렀다.
그 힘이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순간, 초악량의 몸이 나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다리와 허리를 거쳐 회전력이 더해진 경력이 고스란히 그의 손으로 전달되었고, 쥐고 있던 돌이 그의 손을 떠난 것도 동시였다.
“……!”
사영의가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그녀가 질끈 눈을 감았다.
퍽.
“……?”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숨이 붙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영의가 슬쩍 눈을 떴다.
자신 앞을 가로막은 채 손을 들어 올린 흑의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이군.”
초악량이 흑의인을 향해 흥미로운 눈빛을 던졌다.
전사경을 실어 던져 낸 돌멩이를 한 손으로 받아 낸 흑의인의 정체가 새삼 궁금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