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57)
신마의선-157화(157/500)
신마의선 (157)
흑의인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누군가 그러더군.”
의아해하는 초악량을 향해 흑의인이 말을 이어 갔다.
“돌로 치면 개는 달아나지만…….”
“……?”
“범은 달려든다고.”
초악량의 눈빛이 흔들렸다.
언젠가 이와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흑의인은 생각을 이어 갈 틈을 주지 않았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대로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쇄도해 왔기 때문이다.
펄럭.
흑의인의 장포가 펄럭였다.
동시에 그의 머리칼이 올올이 곤두서며 사자의 갈기처럼 나부꼈다.
초악량은 상대가 필생의 공력을 끌어 올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콰콰콰콰.
그가 내뻗은 손을 따라 가공할 경력의 소용돌이가 주변의 모든 사물을 먼지로 으스러트리며 곧장 초악량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경시할 수 없는 위력에 초악량이 마주 주먹을 내뻗었다.
꽈앙!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충격음과 함께 초악량의 신형이 그대로 주르륵 일 장가량 밀려났다.
반면 흑의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오연한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손목을 타고 올라와 어깨까지 저릿하게 만드는 충격에 초악량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전사경이 실린 돌멩이를 받아 냈을 때부터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웬걸.
제법인 정도가 아니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괴물이 뜬금없이 튀어나오곤 하는 곳이 강호라지만 이건 정말이지 예상 밖이었다.
당금 강호를 뒤져도 이 정도 수준의 무공을 지닌 자는 손에 꼽을 정도.
그러다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우리가 구면이던가?”
흑의인의 눈빛.
그 안에 녹아 있는 불같은 적개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상대의 눈빛이나 분위기가 낯설었다.
이때 흑의인이 재차 거리를 좁혀 왔다.
일수를 교환한 뒤 할 만하다 싶었던 것일까.
일말의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찾아볼 수 없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였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슬쩍 웃었다.
“건방진.”
흑의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한순간 눈앞의 공간이 갈라지는 착각이 들었다.
동시에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경력이 난데없이 눈앞으로 짓쳐 들었다.
사영의가 손도 쓰지 못하고 당했던 격공장.
그러나 흑의인은 오히려 더욱 바짝 거리를 좁히며 연달아 장력을 뿌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 안에 기꺼이 자신을 던진 것이다.
그 순간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부딪쳤다.
꽈앙!
거대한 충격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몇 번의 격타음과 섬광이 번뜩이나 싶더니 한 사람의 신형이 튕겨져 나왔다.
물러선 사람은 초악량이었다.
“으음…….”
침음성을 흘리는 초악량의 표정은 침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먼지구름이 흩어지고, 그 사이로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이쯤 되니 묻지 않을 수가 없군.”
“…….”
“이 정도의 무공을 지닌 자가 어째서 복면으로 자신을 감추는 것인가?”
흑의인은 재차 신형을 날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나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풀썩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
흑의인의 눈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게다가 가슴은 거대한 바위에 얻어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격공장에 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 어떤 경력도, 웅혼한 장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소매를 털어 내듯 그저 가볍게 앞으로 내민 초악량의 동작에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무형장(無形掌)…….”
흑의인이 간신히 입을 벌려 중얼거렸다.
순간 비릿한 액체가 입 안에 고였다.
“왁!”
흑의인이 한 움큼이 넘는 피를 토해 냈다.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허용한 탓에 내부가 진탕되고 기혈이 흔들린 것이다.
그만큼 통렬한 한 수였다.
처음부터 주도권을 쥐고 있다 생각했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놈은 교활하게도 함정을 파 놓고 자신을 끌어 들인 것이다.
생사결(生死決)이란 단순히 무공의 고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앞섶을 내려다보던 흑의인이 다시금 싸늘한 눈빛을 뿜어내며 초악량을 응시했다.
내심 어처구니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감탄할 수밖에.
무형장 자체는 그다지 뛰어난 신공이 아니었다.
소리도, 형태도 없다지만 방비만 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피하거나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초악량은 그것을 절묘하게 사용했다.
고집스러울 만큼 시종일관 강격(强擊) 위주로 맞받아친 것도 결국 이 한 수를 위한 포석이었던 셈.
방심을 유도해 암경(暗勁)이나 침투경(浸透勁) 같은 무공을 예상치 못하게 만든 다음 역으로 이를 이용한 것이다.
늙은 생강이 맵다던 옛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초악량이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너는 졌다.”
그 말에 흑의인이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이 상황에서도 웃는 흑의인의 모습에 초악량이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전의가 남아 있다는 건 그만큼 매우 드문 일이었다.
분명 내부가 진탕되어 기혈이 들끓고 있을 터.
그런데도 흑의인은 억지로 진기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사, 사부님!”
등 뒤에서 현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초악량은 그제야 흑의인이 웃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현자와 현검의 머리 위.
일 장쯤 높이의 허공에 떠 있는 흑색 강기의 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허공에서 한 차례 꿈틀한 강기 창이 그대로 두 사람을 향해 내리꽂혔다.
공현자와 현검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드는 강기 창을 아연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턱.
어느새 그들 앞에 나타난 초악량이 강기 창을 잡아챘다.
그리곤 그대로 찢어발겨 버렸다.
찌이익!
소름 끼치는 소성과 함께 와해된 진기의 칼날이 사방으로 비산해 일대를 휩쓸었다.
순식간에 폐허로 변한 장내의 풍광에 공현자와 현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강기 창의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이를 맨손으로 붙잡아 와해해 버린 초악량의 무위에 기가 질려 버린 것이다.
반면 초악량은 씁쓸한 표정으로 흑의인이 서 있던 곳을 응시했다.
역시나.
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서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난 것이다.
사영의 또한 이미 절명한 상태.
증거 인멸을 위해 떠나기 전 손을 쓴 것이다.
‘놈은 분명 근처에 있다.’
초악량이 기감을 펼쳐 주위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상대의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기감을 피해 완벽하게 존재를 지울 수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적어도 은신술만큼은 놈이 한 수 위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호랑이로 죽는 게 아닌, 개로 살아남는 것을 선택한 것인가?”
내공이 실린 우렁한 음성이 대기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날카로운 이빨을 지녔어도 결국 개는 개일 뿐.
다만 놈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게 아쉬웠다.
“감사합니다.”
뒤늦게 건넨 현검의 인사에 초악량이 고개를 돌려 두 사제를 바라봤다.
복잡한 눈빛을 흘리며 입을 꾹 다문 공현자.
그 모습을 마주한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못 들은 걸로 하지.”
“네?”
의아해하는 현검을 향해 초악량이 말을 이어 갔다.
“너희를 살린 것은 알량한 의협심 따위로 한 일이 아니다. 그저 필요에 의한 것일 뿐. 그러니 감사할 이유도, 인사를 받을 이유도 없다.”
초악량이 은연중에 섬뜩한 기파를 드러냈다.
“이후 다른 곳에서 적으로 만난다면 너희의 목숨을 거두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
공현자와 현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모르면 몰랐을까 소문으로만 전해 들었던 혈수존자의 경이적인 무위를 직접 목도한 이상 그 말이 단순한 위협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초악량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쪽을 향해 접근해 오는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나같이 예리한 보검을 연상시키는 기운은 과거에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복마검진(伏魔劍陣)인가.’
어느 문파나 절기로 꼽히는 합격술이 존재한다.
소림의 나한진(羅漢陣)이나 개방의 타구진(打狗陣)이 대표적이었다.
특히나 공동파의 복마검진은 무당의 칠성검진(七星劍陣), 화산의 매화검진(梅花劍陣)과 더불어 천하삼대검진으로 인정받는 비장절예였다.
산문을 걸어 잠그고 웅크리고 있던 공동파가 드디어 나선 것이다.
공동의 정예가 나선 이상 제아무리 근처에 흑의인이 은신해 있더라도 함부로 나서지 못할 터.
지금 상황에서 굳이 그들과 마주칠 필요가 없었다.
초악량이 말없이 돌아섰다.
반면 남겨진 두 사람은 유유히 멀어지는 초악량의 뒷모습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만큼 초악량이 남긴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잠시.
공동의 검수들이 장내에 도착했다.
일대 제자들로 구성된 공동의 정예들이었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당금의 공동파 장문인인 형진도장이었다.
“제자 공현자가 장문인을 뵙습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공현자가 황급히 예를 갖추었다.
현검 역시 마찬가지.
운신하기도 버거웠지만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 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무사했구나.”
제자와 사손의 안위를 확인한 형진도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체 모를 자들에게 두 사람의 신병이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후 그는 시간을 끌며 자체적으로 사태를 파악했다.
흉수의 의도는 분명했다.
신의의 아들이 완성하려는 연판장.
거기에 수결을 채워 넣는다면 두 번 다시 살아 있는 두 사람을 만날 수 없으리라는 노골적인 협박이 적힌 서신 때문이었다.
삼엄한 눈빛으로 주변을 쓸어 보던 형진도장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주검으로 누워 있는 사영의와 격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내의 모습에서 방금 전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짐작한 것이다.
“어찌 된 일이더냐?”
형진도장의 물음에 공현자가 자신들이 그간 겪은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너희를 구했다고?”
예상치도 못하게 튀어나온 초악량의 이름에 형진도장은 잠시 당황한 듯싶더니 이내 신색을 회복했다.
그간 그와 쌓인 원한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피해 갈 수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흑의인에 대해 짐작 가는 바는 없느냐?”
“죄송합니다. 지닌바 무위가 대단하다는 것밖에는…….”
말끝을 흐리는 제자의 모습에 형진도장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초악량이 사라졌다는 방향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시 폐사찰로 돌아온 초악량은 난감한 눈빛을 흘리며 서 있는 범계위와 마주해야 했다.
“그새를 못 참고 죽여 버린 것이냐?”
바닥에 널브러진 홍단엽.
부릅뜬 그의 눈에서는 더 이상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초악량의 질책에 범계위가 펄쩍 뛰었다.
“내가 그런 게 아니오!”
의심스런 초악량의 눈빛이 범계위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진짜라니까? 몇 가지 물어보려던 참에 갑자기 발광하듯 가슴을 쥐어뜯더니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멋대로 죽은 거요!”
처참한 몰골로 숨을 거둔 홍단엽의 시신을 들여다보던 초악량이 낮게 침음했다.
“분명 평범한 놈들이 아닌데.”
“초 형은 뭐 알아낸 거 있수?”
초악량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독안나찰은 죽었다.”
“다른 한 놈은?”
“놓쳤다.”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놓쳤다고? 초 형이? 나더러 그걸 믿으라고? 그냥 죽여 버린 게 민망해서 그런 거 아니고?”
쓴웃음을 머금은 초악량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중원의 무공이 아니라고?”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혹시 마교 놈들인가?”
“놈들은 아니다.”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니라면 아니었다.
누구보다 마귀들을 때려잡는 데 진심이었던 초악량인 만큼 마교의 무공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럼 놈들 정체가 뭐란 말이오?”
“그걸 모르니 답답한 게 아니냐. 하나 확실한 건…….”
말끝을 흐리던 초악량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어떤 식으로든 조만간 다시 마주칠 거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