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59)
신마의선-159화(159/500)
신마의선 (159)
함께 움직이는 강호의 전설 셋과 더불어 신의라는 명호에 부족함 없는 의술로 이미 유명세를 떨치는 단악선이었다.
그런데 정작 소문의 당사자는 이를 모르고 있다니.
“그나저나 그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 줘야 하지 않겠느냐?”
묵비의 말에 단악선이 들고 있던 봉을 매만졌다.
그러기를 잠시.
“묵룡(嘿龍)……. 묵룡으로 할래요.”
초악량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용이라…….”
생각하면 할수록 괜찮은 이름이었다.
위화신공을 익힌 단악선만이 봉 자체가 품고 있는 진정한 위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엔 잠잠하나 위화신공이라는 구름 안에 풀어 놓으면 그제야 진정한 위용을 드러낼 터.
묵비도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실력을 자부하는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낸 결과물.
극음의 냉기를 지닌 만년한철과 극양의 열기를 지닌 염화단철, 거기에 운철을 더해 함께 벼려 낸 일생일대의 역작에 부족함이 없는 이름이었다.
“아, 그리고…….”
뒤늦게 중요한 것을 떠올린 묵비가 품 안에서 기다란 목갑 하나를 꺼내 단악선에게 건넸다.
“이건 뭔가요?”
어린아이의 팔 길이만 한 목갑을 받아 들며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어진 묵비의 말에 표정이 환해졌다.
“부탁했던 물건이다.”
“설마?”
목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단악선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자를 훌쩍 넘긴 길이의 대침(大鍼).
어마어마한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크기에 한설화마저 아미를 찡그릴 정도였다.
“그게 사람 몸에 들어간다고?”
초악량과 범계위가 끔찍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면 흉기 아닌가?”
“사람을 살리기는커녕 죽이겠는데?”
반면 묵비는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을 흘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묵룡 이상의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은 역작이 바로 눈앞의 대침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앗!”
무심코 위화신공을 운용한 단악선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위화신공을 받아들인 침두 내부에서 극양과 극음의 기운이 맹렬히 뒤엉키나 싶더니, 날카로운 끝부분인 침첨(鍼尖)에서 선명한 서기가 줄기줄기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침이 수많은 사람을 살릴 거예요!”
그 말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시선을 마주하더니 마른침을 삼켰다.
거대한 대침을 들고 기뻐하는 단악선의 모습이 문득 무섭게 느껴진 것이다.
―갑자기 앞날이 두려워지는군.
초악량의 전음에 범계위가 불길한 기분을 떨쳐 내듯 고개를 저었다.
―설마. 아닐…… 거야.
하지만 얼마 안 가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그럼 이제 치료할 시간이에요. 저를 위해 망가진 몸이니 다시 원래대로 회복시켜 드릴게요.”
대침을 들고 싱글벙글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묵비의 표정이 점차 굳어 갔다.
“혹시 치료 과정에서 그 침도 사용되느냐?”
“당연하죠. 없으면 모를까 이처럼 훌륭한 의구를 사용하지 않는 건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단악선의 손에 이끌려 묵비가 내당 안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내당 쪽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비명 소리에 초악량과 범계위는 소름이 쭉 끼쳤다.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초악량이 침음하듯 입을 열었다.
“이제 다치지 말아야겠다.”
범계위와 한설화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단악선은 묵가철장에 열흘 동안 머물며 장주인 묵비의 치료에 전념했다.
다행히 묵비의 상태는 나날이 호전되어 지금은 평소와 가까운 상태를 회복했다.
단악선의 의술과 묵룡아(黙龍牙)라 이름 붙인 대침 덕분이었다.
흉악한 외견과는 다르게 묵룡아의 효용은 실로 대단했다.
물론 침을 찔러 넣어 진기를 직접 흘려 넣는 방식이라 약간(?)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컸다.
무엇보다 치료를 훨씬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단악선의 보물이 되어 있었다.
또 다른 보물은 당연히 묵룡이었다.
단악선은 치료를 하는 와중에도 묵룡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밥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늘 곁에 두고 한시도 떼어 놓지 않았다.
특히나 치료를 마치고 나서는 늦은 시각까지 묵룡을 휘두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련에 매진했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위화신공의 위력에 다른 세 사람마저 놀랄 정도였다.
묵룡을 통해 증폭된 위화신공을 다시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단악선은 눈부신 속도로 높은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멀리서 단악선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범계위가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단 의원은 분명 천하제일인이 될 거야.”
초악량도 수긍했다.
“우리가 잘만 이끌어 준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게다.”
반면 한설화는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차라리 나 혼자 가르치는 게 나을 텐데…….”
초악량과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그러다 이내 표정이 싸늘해졌다.
처음엔 농담인가 싶었는데 한설화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한설화를 노려봤다.
한설화 역시 지지 않고 두 사람을 마주 쏘아봤다.
그 순간 마무리를 위한 운기조식을 마친 단악선이 내공을 갈무리하며 눈을 떴다.
세 사람의 시선이 단악선에게 모아졌다.
확실히 하루하루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은연중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기도뿐만 아니라 이제는 눈빛에서도 제법 존재감이 묻어났다.
세 사람을 향해 달려온 단악선이 범계위를 향해 외쳤다.
“봉술 가르쳐 주세요.”
“물론! 이번엔 차차라락! 하는 거 배울 차례지?”
“맞아요. 비껴 흘려 낸 뒤 받아쳐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방법이요.”
초악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문 모를 범계위의 설명을 귀신같이 이해하는 단악선이 지금도 신기할 뿐이었다.
“묵룡이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묵룡을 끌어안으며 배시시 웃었다.
“네, 정말 좋아요.”
범계위는 문득 호기심이 동했다.
“영약과 비교한다면?”
“영약만큼 좋아요.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좋아요!”
주저 않고 대답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세 사람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른 건 제쳐 두고 단악선이 좋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닷새 후.
단악선 일행은 묵비와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불과 보름 만에 묵비는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묵비가 투실한 손을 내밀어 단악선의 손을 마주 잡았다.
“언제든 또 오너라.”
“고마웠어요. 장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호의는 잊지 않을게요.”
“적제(赤帝)의 가호가 함께하길.”
직업이 직업인지라 늘 불을 다루는 그인 만큼 자신이 모시는 불의 신인 축융(祝融)의 이름을 빌어 앞날을 축원한 것이다.
묵가철장을 벗어난 일행은 한적한 소로를 벗어나 어느새 관도로 접어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호남성으로 갈 거예요.”
“호남?”
“청담연(淸潭淵)이라는 곳을 방문하려고요.”
“아!”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영신편(飛影神鞭) 담정을 만나러 가는 것이냐?”
“네.”
그는 비록 문파나 세력을 이끄는 수장은 아니었으나 나름 정파무림 내에서 존경받는 명숙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분께 수결도 받으면서 겸사겸사 친구들도 만나 볼까 해요.”
운중산과 방소방을 떠올린 단악선의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 * *
무당산 인근 객잔.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단악선이 묵룡을 챙겨 재빨리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다녀올게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며칠 전부터 잔뜩 들떠 있던 단악선이다.
그 모습에 세 사람이 싱긋 웃었다.
“저리 좋을까.”
세 사람의 미소를 뒤로한 채 단악선은 곧장 무당산으로 향했다.
“운중산? 그 아이라면…….”
무당파의 산문 앞.
지객을 담당하던 청년 도사가 운중산을 만나러 왔다는 단악선의 말에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왜요? 지금은 만날 수 없나요?”
“으음. 아니다. 잠시 기다려 보거라.”
그 말을 남긴 청년 도사가 산문 너머로 사라졌다.
산문 밖에 덩그러니 남겨진 단악선은 운중산을 기다리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차 기다림에 지쳐 무료해질 즈음.
“악선아!”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산아!”
날듯이 달려오는 운중산을 향해 단악선도 마주 달려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싸안은 두 사람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며 쉬지 않고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너 키가 컸다?”
“너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누군가 싶었는걸.”
“이제 나도 일 년만 더 지나면 정식으로 도명첩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이제 진짜 무당파의 제자가 되는 거야?”
“그렇다.”
뿌듯한 표정으로 어깨에 힘을 주는 운중산의 모습에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모습은 약간 달라졌지만 애늙은이 같은 딱딱한 말투는 여전했다.
“그런데 들고 있는 그건 뭐지?”
단악선의 손에 쥐어진 묵룡을 발견한 운중산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거? 헤헤.”
단악선이 슬며시 웃더니 자랑하듯 묵룡을 내밀었다.
“얘 이름은 묵룡이야.”
“묵룡?”
“응. 내 성명병기야.”
운중산이 부러운 눈빛을 흘렸다.
아직 무기명 수습 제자인 자신에게는 진검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입문해야만 도명과 함께 비로소 한 자루 검을 하사받게 된다.
“멋지군. 한번 만져 봐도 될까?”
“얼마든지.”
단악선이 건넨 묵룡을 들고 자세히 관찰하던 운중산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묵룡의 자태에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서 소방이에게도 보여 주자. 오랜만에 함께 비무도 하고.”
단악선의 말에 운중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보러 가는 건 괜찮은데……. 아마 비무는 힘들 거다.”
“어? 왜?”
“소방이가 많이 다쳤다.”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다쳤다고? 얼마나?”
운중산이 한숨을 흘렸다.
“아무래도 의원인 네가 직접 확인하는 게 낫겠군.”
두 사람은 서둘러 산을 내려와 방소방이 머무는 마을 외곽의 움막으로 향했다.
입구를 가린 거적을 젖히며 들어서자 부목을 댄 채 누워 있던 방소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악선아! 크윽……!”
무심코 몸을 일으키던 방소방이 신음을 흘리며 다시 주저앉았다.
퉁퉁 부은 얼굴.
곳곳에 가득한 멍 자국을 발견한 단악선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단악선의 물음에 방소방이 특유의 너스레로 화답했다.
“원래 영웅의 삶은 고달픈 법이지. 물론 너희 같은 애송이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야.”
“…….”
“어쨌든 나가서 이야기하자. 우리 집 벼룩들 신났다. 모처럼 별식이 등장했다고 말이야.”
그러나 단악선은 말없이 품속에서 침이 담긴 목갑을 꺼냈다.
방소방의 몸에 침을 놓으며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얻어터졌는지 성한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내상은 말할 것도 없었고, 손가락도 골절된 상태.
거기에 늑골도 실금이 가 있었다.
이 정도 부상이라면 숨 쉴 때마다 고통스러울 텐데도 방소방은 짐짓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러나 감출 수 없는 게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식은땀이 이내 비 오듯 쏟아졌기 때문이다.
“내게 말해 주기 곤란한 일이야?”
걱정 가득한 단악선의 음성에 방소방이 움찔했다.
“쳇.”
뒤늦게 억울함과 분한 감정이 밀려들었던지 방소방이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한 줄기 눈물.
단악선이 눈을 들어 운중산을 바라봤다.
이에 운중산이 한숨을 내쉬더니 방소방이 다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 연 대야라고, 몇 대에 걸쳐 부를 쌓아 거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에게는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성격이 아주 개차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운중산의 말에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어린 거지들에게 한 대 맞을 때마다 은자를 주기로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