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6)
신마의선-16화(16/500)
신마의선 (16)
“우리가 여기 있다고 광고를 해라.”
대신 범계위를 맞이한 사람은 초악량이었다.
범계위에게 핀잔을 던진 초악량이 계곡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한설화를 바라봤다.
“오랜만이군.”
초악량이 건넨 인사에 한설화가 고개만 까닥였다.
범계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초악량을 바라봤다.
“단 의원은?”
“마을에 갔다. 필요한 약재가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애를 혼자 보냈다고?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어떡하라고?”
“짐승들이 싫어하는 약초를 지니고 다니잖아.”
“밤길에 넘어지면? 우리 단 의원 무릎 까지면 초 형이 책임질 거유?”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왜 내 책임이야?”
“내가 없을 때는 당연히 초 형이 책임져야지. 아니면 저 여자보고 책임지라고 할까?”
범계위의 생떼에 초악량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예 일리 없는 말도 아니었다.
‘변장이라도 하고 따라나설 걸 그랬나?’
눈꼴시게 하는 범계위의 호들갑에 괜히 더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신마곡 내부를 둘러보던 한설화가 전음을 날렸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개판이지?
“개판이라니? 앞으로 너도 같이 살 곳인데.”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한설화가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을 지나쳤다.
―여기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기겠어.
잠시 고민하던 한설화는 청소를 시작했다.
괜히 수고를 덜겠다고 어설픈 인간들에게 맡기느니 직접 하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악량과 범계위가 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그건 뭐냐?”
범계위가 들고 있는 그릇을 뒤늦게 발견한 초악량이 물었다.
“넘보지 마슈. 단 의원 줄 거니까.”
범계위가 아직도 김이 나는 그릇을 끌어안았다.
* * *
“그러니까…….”
곽가가 눈앞의 시신을 툭 차며 물었다.
“우연히 이자가 숨어 있던 곳을 지나치다가 신음을 듣고 발견했다?”
단악선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그가 한 말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한 것이 전부였다. 눈앞의 곽가라는 사내와는 말을 섞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모든 게 우연이라고?”
곽가의 얼굴 위로 건조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단악선이 입술을 깨물었다.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 벌써 몇 번인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벌써 몇 시진째 반복되고 있는 질문과 답이었다.
이번에는 단악선이 대답하지 않고 곽가를 노려봤다.
그 순간 단악선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곽가가 단악선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움켜쥐며 물었다.
“꼬마야. 어른이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지?”
살기를 뿌리는 질문에 단악선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무림맹은 정말 공명정대하군요.”
곽가의 얼굴이 붉어졌다.
꼬마를 압박하기 위해 시신을 옆에 두었고, 살기까지 뿌리며 겁을 주었다. 이 정도면 이 나이 때의 누구라도 벌벌 떨며 용서를 구할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이 꼬마에겐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곽가를 더욱 화나게 했다.
스릉!
곽가가 칼을 뽑아 단악선의 목에 들이댔다.
“꼬마야, 마지막 경고다. 고분고분 묻는 말에 대답해라.”
검에 닿은 피부에 붉은 핏물이 맺혔지만 단악선은 조금도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대답은 이미 다 했어요. 같은 질문을 다시 한다면 대답하지 않겠어요.”
“이!”
곽가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칼을 든 손에 힘을 주려 할 때였다.
“조장님, 속하 장위입니다.”
문밖에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성의가 쪽에서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벌써?”
곽가의 반문에 장위라 이름을 밝힌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직접 이곳으로 오겠답니다.”
“풍진성 그자가 직접?”
곽가의 얼굴에 의외란 표정이 떠올랐다. 이 정도로 즉각 반응이 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무림맹 일개 조장인 자신과 진성의가의 명성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도 가주인 그가 직접 오겠다니. 풍진성이 이 꼬마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두세요!”
곽가의 시선이 단악선에게 향했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던 단악선이 소리를 지르자 곽가는 자신이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와의 문제에 그분을 끌어들이지 마세요! 그분은 이번 일과 상관없잖아요!”
곽가는 그 말에 오히려 여유를 찾았다.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
단악선이 곽가를 노려봤지만 곽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넌 필요가 없겠군.”
곽가가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보내라.”
“처음부터…….”
단악선이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
“풍 아저씨를 노린 거였군요.”
“꼬마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이건 어른들의 문제니까.”
단악선은 수하의 손에 이끌려 객잔 밖으로 던져졌다.
“꺼져라. 풍진성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면.”
단악선은 어쩔 수 없이 돌아서야 했다.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과 분노에 단악선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아무래도 일이 생긴 것 같은데?”
깊어진 밤만큼 범계위의 초조함도 커졌다.
초악량 역시 심각한 표정이었다. 단악선이 이렇게까지 늦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가 봐야 할 것 같아.”
조바심 낸다며 내내 범계위를 타박했던 초악량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자. 너는 마을로 가서 단 의원의 행방을 수소문해 봐라. 나는 마을로 향하는 경로를 뒤져 볼 테니.”
그렇게 두 사람이 신마곡을 나서려 할 때 입구 쪽에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작은 인영을 발견했다.
단악선이었다.
“단 의원!”
언제 그랬냐는 듯 범계위의 얼굴이 환해졌다.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날듯이 달려갔다.
그런 범계위를 발견한 단악선도 목소리를 높였다.
“아저씨!”
“어?”
범계위가 당혹성을 흘렸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단악선이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와락 껴안았기 때문이다.
“보고 싶었어요.”
범계위는 일순 멍해졌다.
이렇게나 반겨 주는 단악선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몹시 기뻤다. 콕 찍어 설명하기 힘들었지만 가슴 한구석이 간지러운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어, 음……. 그래. 나도 보고 싶었다.”
괜히 멋쩍은 마음에 범계위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리곤 손을 뻗어 단악선의 등을 토닥였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자신을 껴안은 단악선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범계위가 물끄러미 단악선을 바라봤다.
평소와 다른, 묘한 느낌.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어딘가 힘이 없었다.
“저 좀 씻고 올게요.”
단악선이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자신의 전각으로 갔다. 그러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힘겹게 웃었다.
“돌아오셔서 기뻐요.”
그 말을 끝으로 단악선이 돌아섰다.
단악선이 사라진 후, 범계위가 중얼거렸다.
“피 냄새가 났어.”
“목에 상처도 있었다. 분명 날붙이에 베인 것이다.”
초악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범계위가 몸을 움직이려 했다.
“잠깐.”
초악량이 손을 뻗어 신형을 날리려는 범계위의 어깨를 붙들었다.
범계위가 야차 같은 얼굴로 으르렁댔다.
“지금 나 말리면 초 형이라고 봐주는 거 없수.”
“말리려고 하는 게 아니다. 확실히 하려고 하는 거지.”
두 악인이 눈을 마주쳤다.
초악량의 두 눈에서도 자욱한 살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소적산은 기분이 좋았다.
오늘 거둬들인 상납금이 기대했던 것을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다.
“하하! 마시자, 마셔!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제대로 취해 보겠느냐!”
소적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수하들이 함께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한참을 왁자지껄하게 마시고 떠들었다.
그렇게 밤새 이어진 여흥이 절정을 향해 치달을 무렵.
“자, 받아라! 오늘은 지난달보다 넉넉히 넣었다!”
소적산이 은자가 들어 있는 전낭 뭉치를 탁자 위에 올렸다.
쩔그렁.
은자들이 부딪치는 묵직한 소리에 그의 수하들이 목이 터져라 환호했다.
“역시 우리 대당가(大堂哥)! 통이 크십니다!”
“어디 통만 크실까. 무공도 천하제일이시지. 신효방(辛梟幇) 놈들을 몰아붙이던 대당가의 무위를 자네들도 보았어야 하는 건데!”
“이제 흑룡회만 꺾으면 되겠군?”
“대당가께서 계시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 이곳 무위의 순의방(巡衣幇)들을 일통하는 건 대당가에게 맡기면 돼. 우린 그저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지.”
사방에서 쏟아지는 온갖 칭송.
이를 만끽하던 소적산이 수하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무위는 머지않아 우리들 손에 들어올 것이다.”
한 잔의 술로 목을 축인 후 그가 연설을 이어 갔다.
“신효방을 쓰러트렸으니, 그들이 관리하던 술도가와 기루 또한 우리의 것이라 할 수 있지!”
“와아!”
환호하는 수하들의 모습에 소적산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야.”
“흑룡회 때문입니까?”
수하의 반문에 소적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효방을 노리던 건 놈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앞으로 녀석들과 더 자주 얽히게 될 것이다.”
그 말에 한껏 흥이 오른 그의 수하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그런 의미로 대당가의 무공 한번 견식하게 해 주십시오!”
“옳소! 천외천의 경지에 도달한 대당가의 무공을 한 수 보여 주십시오!”
소적산이 머쓱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몇 수 보여 주도록 하마.”
소적산이 제법 그럴듯한 기수식을 취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실내를 휩쓸었다. 소적산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친 것도 동시였다.
와지끈!
주루의 지붕이 송두리째 뜯겨 나가나 싶더니.
소적산의 신형이 빨려 들어가듯 허공으로 솟구쳤다.
장내에 일순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와! 지금 봤어?”
“대당가의 경공이 이 정도였다니!”
“흑룡회 놈들이 이 광경을 봤어야 하는 건데!”
거나하게 취한 그들이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 * *
소적산이 정신을 차린 곳은 달빛도 스며들지 못하는 깊은 산속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소적산이 한 곳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인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어둠이 눈에 익자 그 인영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놈은!”
소적산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화상으로 인해 한쪽 얼굴이 주저앉은 애꾸 사내. 바로 자신들과 더불어 이곳 무위의 암흑가를 양분하고 있는 흑룡회의 회주, 가휘섭이 분명했다.
그는 포악한 성질만큼 독심의 소유자로 유명했다.
그런데 얼굴이 엉망이었다. 하나뿐인 독안은 부어오른 눈두덩이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얼굴 곳곳에 시퍼런 멍 자국이 가득했다.
그 역시 자신을 알아봤는지 눈에서 살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젠장!’
소적산도 뒤늦게 진기를 끌어 올렸다.
아니.
끌어 올리려고 했다.
‘뭐야?’
소적산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진기가 그의 의지에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목.”
소적산이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고수!’
그저 마주한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존재감!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지극히 위험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고슴도치처럼 비죽한 수염을 가진 대머리 거한이 입을 열었다.
“오늘 낮, 단악선이라는 아이와 관련해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알아 와라. 시간은 한 시진.”
“단악선? 그게 누굽니까?”
흑룡회주 가휘섭의 물음에 대머리 거한이 히죽 웃었다.
콰직.
“끄어억!”
가휘섭의 처절한 비명이 밤공기를 뒤흔들었다.
움푹 주저앉은 그의 코에서는 연신 코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꿀꺽.
소적산이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눈앞에서 벌어진 일인데, 가휘섭이 무슨 수에 당했는지 볼 수가 없었다.
“명심해라. 한 시진이다. 늦는 놈은…….”
대머리 악귀가 섬뜩하게 웃었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