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60)
신마의선-160화(160/500)
신마의선 (160)
단악선은 내심 기가 막혔다.
바로 어제, 연 대야의 회갑연이 있었다.
마을 최고의 거부가 여는 잔치였기에 인근의 거지들도 동냥을 위해 그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운 나쁘게 연 대야의 아들인 연적심과 마주쳤다.
그는 다짜고짜 거지들을 두들겨 팼다.
그러면서 한 대에 은자 한 냥을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맞아 준 거야? 고작 은자 때문에?”
방소방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아무리 돈이 좋아도 몸이 망가지면 무슨 소용이야? 그런데 그 나쁜 놈은 우리 애들이 한사코 거절하자 억지로 은자를 쥐여 주더니 그 값만큼 채워 때렸다고 해.”
단악선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정도로 깊은 악의를 지닌 사람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돈을 돌려주려고 갔지.”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사과를 받아 내기 위해서였다.
“뭐, 솔직히 우리 애들 복수도 해 주고 싶었고.”
방소방이 무공을 익혔다는 걸 알고 있던 연적심은 비무를 요청했다.
방소방 역시 잘됐다 싶어 비무를 수락했다.
이 기회에 흠씬 두들겨 주려 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연적심의 무공이 상당했다.
어렸을 때부터 영약을 복용하고 강호의 유명한 고수들을 무사부로 초빙해 온갖 절기들을 익혀 왔기 때문이다.
방소방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이 꼴이 됐어. 그 자식 무공이 꽤 강하더라고.”
또래에서는 나름 강하다 자부하던 방소방조차 놈의 무공을 감당할 수 없었다.
“영약이 무섭긴 무섭더라고.”
초식의 현묘함이나 정밀함 자체는 방소방이 우위였다. 하지만 압도적인 내공 차이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비무를 했는데 이렇게까지 무자비하게 손을 쓴 거야?”
단악선의 물음에 방소방이 멋쩍게 웃었다.
“뭐, 사실 나도 그럴 생각으로 붙은 거니까. 그런데 어쩌겠어? 실력이 모자라 진 거니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마지막에 놈이 한 말이 치욕스러웠어.”
“뭐라고 했는데?”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더라. 억울하면 영약이라도 구해 먹고 오라고. 하긴 거지들만 득시글대는 개방에 영약 따위가 어디 있겠느냐며…….”
그때를 떠올리자 새삼 울컥했는지 방소방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참 화를 삭인 방소방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거지든 다시 오면 이 꼴이 될 거라며 지껄이더군. 그 득의양양하던 꼬락서니가 어찌나 눈꼴시던지…….”
그 말에 단악선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어떤 거지라도?”
만약 이립이나 홍적문이라면?
그런 단악선의 생각을 눈치챈 방소방이 고개를 저었다.
“사부님이나 장로님을 끌어들일 순 없어.”
“왜?”
“그래도 명목상 정당한 비무였으니까. 게다가 스승님 체면이 있지. 어떻게 멍청한 제자의 쪽팔린 모습을 알리겠어?”
방소방이 내심 이를 갈았다.
몇 번을 생각해도 분하고 억울했기 때문이다.
그런 방소방의 모습에 단악선과 운중산은 함께 분노하고 가슴 아파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비무면 된다는 거지?”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단악선이 갑자기 옷을 벗었다.
“뭐 하는 거야?”
단악선이 자신의 옷을 가지고 움막 밖으로 나섰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단악선은 누군가의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움막 밖의 거지와 옷을 바꿔 입은 것이다.
“뭐 하는 거냐니까?”
“동냥하러 가려고.”
뒤늦게 단악선의 생각을 눈치챈 방소방이 펄쩍 뛰며 만류했다.
“나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돼.”
“어떻게 안 그래?”
“뭐?”
“네가 나였다면 못 본 척 그냥 넘어갈 거야?”
분노가 서린 단악선의 눈빛에 방소방이 움찔했다.
단악선이 재차 물었다.
“정말 그럴 수 있어?”
“…….”
“난 그렇게 못 해. 내 친구를 괴롭힌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거야. 설령 그게 누구라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중산도 입고 있던 도포를 벗었다.
“야! 너까지 왜 이래?”
깜짝 놀란 방소방을 향해 운중산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악선이 혼자 보낼 수는 없다. 우리는 친구니까.”
“하아……. 이 미친놈들.”
방소방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중산이 네가 간과한 게 있는데 말이야.”
“……?”
“연적심의 무사부 중에 철금권정(哲錦拳挺) 방 대협이 무당의 속가 제자라는 거 잊었어?”
멈칫하는 운중산을 향해 방소방이 엄포를 이어 갔다.
“네가 거기 가서 드잡이질을 벌인 게 사문의 어른들께 알려지면 크게 경을 칠 거야.”
“상관없다.”
“뭐?”
“이미 경은 한 번 쳤다.”
운중산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악선이가 오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골방에서 면벽(面壁)의 벌을 수행하고 있었을 테니까.”
“……!”
방소방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무당의 면벽 형은 혹독하기로 유명했다.
음식은커녕 물조차 마실 수 없었고, 몇 날 며칠을 한 자세로 벽만 보고 앉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운중산은 방소방의 복수를 위해 연적심에게 비무를 청하려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사문의 어른들께 허락을 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문의 어른들은 정식으로 치러진 비무였기에 관여할 일이 아니라 못을 박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몰래 담을 넘었다.
그런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문의 어른들에게 그대로 붙들려 골방으로 직행했던 것이다.
“악선이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여기 오지도 못했을 거다.”
단악선의 명성이 있어서 거절하지 못하고 운중산을 보내준 것이다. 애초에 오랫동안 벌을 줄 계획이 아니기도 했지만.
“하아……. 이것들을 대체 어쩌지?”
단악선과 운중산을 번갈아 보던 방소방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만큼 자신을 위해 기꺼이 한 몸 내던지는 친구들의 진심에 감격한 것이다.
방소방이 부목을 떼어 내며 힘겹게 일어났다.
“아이고, 거지 죽네.”
“넌 왜 일어나?”
운중산의 물음에 방소방이 씨익 웃었다.
“추우강남(追友江南)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
“괜찮겠어?”
걱정을 담은 단악선의 눈빛에 방소방이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괜찮지 않지. 그런데 어쩌겠어? 친구를 잘못 둔 내 팔자려니 해야지.”
잠시 후 움막을 벗어난 어린 거지 셋이 어디론가 향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설화가 내심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기를 잠시.
“단 의원이 왜 거지꼴을 해야 하는 거지?”
방금 눈으로 본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설화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인간 군상을 꼽으라면 단연코 거지였다.
병적으로 깔끔함을 추구하는 그녀의 성정상 도저히 용납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존재들이 바로 거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단악선이 냄새나는 누더기를 쓰고 돌아다니다니.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끔찍한 광경에 한설화는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 모습에 범계위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초 형, 가서 말릴까?”
“감당할 수 있겠느냐?”
“뭐가 말이유?”
“우리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면 분명 단 의원이 삐질 텐데?”
“헛! 그건 안 되지.”
단악선과 한설화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두 사람은 같은 선상에 놓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수. 마녀 때문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그 이상한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놈들도 분명 단 의원을 노리고 있을 거요.”
“그래서 우리가 호위하는 것 아니냐?”
초악량이 문득 아스라한 눈빛을 흘렸다.
“원래 저맘때는 저렇게 놀며 크는 거다. 흙도 좀 묻히고, 먼지도 마셔 가면서…….”
“하긴,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지.”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서 우리 이야기가 왜 나와? 과거의 일은 그냥 과거로 묻자. 그게 뭐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어? 쟤들 경공 쓰는데?”
그 말과 함께 범계위가 신형을 날렸다.
초악량과 한설화 역시 조용히 뒤를 밟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단악선과 친구들은 연 대야의 장원인 청심장(淸心莊)에 도착했다.
회갑연은 어제였지만 아직까지도 잔치가 한창인 듯 담장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됐지?”
단악선의 말에 운중산과 방소방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한다?”
그 말과 함께 단악선이 청심장 대문 앞에 철퍼덕 엎드렸다.
운중산과 방소방도 이에 뒤질세라 곧바로 엎드렸다.
그리고 사전에 연습한 대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한 푼 줍쇼!”
“가엾은 거지에게 적선(積善)하시고 대대손손 복락을 누리소서!”
“동전 한 닢이면 불행을 면하리니!”
쩌렁한 세 사람의 목소리에 장원 안을 오가던 사람들의 이목이 일제히 대문 쪽으로 쏠렸다.
그 와중에도 방소방은 단악선에게 핀잔을 던졌다.
“야, 무슨 거지가 그렇게 당당해?”
“어? 이렇게 하는 게 아니야?”
“최대한 불쌍해 보여야지. 눈빛은 더 비굴하게! 그래, 그렇지!”
“아! 동냥도 나름 기술이 필요하구나.”
“그냥 기술이 아니라 구명절초(救命絶招)지. 이 기술 하나에 밥줄이 달려 있는 거라고.”
단악선이 문득 궁금한 듯 운중산 쪽을 향해 속닥였다.
“그런데 왜 적선을 쌓으라고 표현해?”
“적선(積善)은 선행(善行)을 쌓는 일을 뜻한다. 특히 우리 같은 도교의 수행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고.”
어느 종교이건 간에 세속의 윤리를 내포하기 마련.
특히나 도교에서 중요시되는 것이 적선, 즉 선업을 쌓는 일이었다.
선행이 모자라거나 한 번이라도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 밖의 다른 종교적 실천이나 수행 역시 무효로 돌아간다 여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행을 쌓으면 다른 종교적 실천이나 수행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갑작스런 재난은 면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도가의 이념은 불로장생, 즉 오래오래 잘 사는 거잖아.”
곡식을 먹지 않고 솔잎이나 대추, 밤 같은 생식만 하며 수련하는 벽곡(辟穀)이나 약재나 영약 등을 섭취하는 복이(服餌), 호흡을 다스리는 조식(調息), 진기를 이끄는 과정인 도인(導引).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을 관조하는 내사(內思) 좌망(坐亡) 등도 적선이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운중산의 설명에 단악선이 엎드린 채 탄복했다.
“이런 단순한 구걸에도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구나.”
“그런 것치곤 우리 너무 없어 보이는데?”
방소방의 말에 세 사람이 키득거렸다.
분명 복수를 하러 온 것인데 지금 상황만 생각하면 그저 웃기고 재미있을 뿐이었다.
“한 푼 줍쇼!”
“어제 왔던 거지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선자도래(善者到來), 내자적선(來者積善)!”
선한 자는 오지 않고, 이미 온 자는 선하지 않다는 의미의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
이를 절묘하게 비튼 운중산의 재치에 방소방이 감탄했다.
“오! 그래도 도사 밥 좀 먹었다 이건가?”
운중산이 받아쳤다.
“그러는 넌 밥값도 못 하는군.”
“뭐?”
“매일같이 동냥 밥 먹은 건 넌데 악선이가 더 거지 같다.”
“큭.”
“크큭.”
그렇게 엎드려 키득거리며 웃던 도중 누군가가 대문 앞에 나타났다.
“이것들이 무슨 배짱이지?”
서늘한 음성에 단악선이 고개를 들었다.
호위 무사들로 짐작되는 일단의 무리가 복잡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오면 그때는 발목을 부러트린다 했을 텐데?”
무사들 중 누군가가 짐짓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썩 물러가라. 이번에는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
그때였다.
“왜 귀한 손님들을 내쫓고 그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무사들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곳의 소장주인 연적심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방소방을 발견한 연적심이 비릿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벌써 움직이다니 대단한걸? 하긴 어제 내가 자비를 많이 베풀기는 했지.”
단악선이 눈을 들어 연적심의 얼굴을 확인했다.
또래임에도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소년.
수려한 이목구비와 대조적으로 눈빛이 흐리고 탁했다.
“쟤야?”
“어.”
단악선의 물음에 방소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연적심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단악선의 눈앞에 흔들었다.
“동냥을 하고 싶으시다? 그럼 이건 어떠냐?”
짤랑.
은자가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를 흔들며 연적심이 웃었다.
새로운 장난감이 제 발로 걸어와 기쁜 듯한 표정이었다.
“나를 따라온다면 이걸 전부 주마. 거지들이니까 당연히 마다하진 않겠지?”
친근한 미소 너머 잔인하게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한 단악선이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정도 돈이라면 당연히 따라가야지요.”
“좋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연적심이 저만치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원을 호위하던 무사들 역시 침중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단악선과 운중산, 방소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적심이 이끄는 곳으로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장원 뒤편에 위치한 으슥한 숲속 공터였다.
연적심이 눈짓하자 호위 무사들이 퇴로를 차단했다.
짤그랑.
연적심이 단악선 일행 앞에 은자가 든 전낭을 던졌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비무 상대가 영 부족했거든.”
연적심의 차가운 눈동자가 방소방을 향했다.
“너 정도만 되어도 더 바랄 게 없겠는데 말이야.”
주먹을 움켜쥔 채 부르르 떠는 방소방의 모습에 연적심이 자신만만한 눈빛을 흘렸다.
“비무 조건은 이렇다. 일각. 각자 일각만 버티면 그 돈은 너희 것이다. 대신 한번 시작된 비무는 절대 멈출 수 없다.”
“좋아요.”
가장 먼저 나선 단악선이 묵룡을 거머쥐며 빙그레 웃었다.
“그것참 마음에 드는 조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