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62)
신마의선-162화(162/500)
신마의선 (162)
“장주님, 실은…….”
호위 무사 중 한 명이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경위를 연 대야에게 자세히 설명하려 했다.
이때 연적심이 바락바락 악을 써 대기 시작했다.
“아버님! 소자는 억울합니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표정으로 연적심이 단악선 일행을 가리켰다.
“이놈들이 갑자기 나타나 소자와 아버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래서 비무를 하게 된 것인데, 놈들은 다수로 소자를 핍박했습니다!”
단악선과 친구들이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연적심의 모습에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 했던가.
더구나 늦게 얻은 귀한 자식인 만큼 평소 연적심을 끔찍하게 아끼던 연 대야였다.
“감히 내 회갑연에 이런 짓을 벌이다니! 이러고도 네놈들이 무사할 성싶으냐?”
주변의 공기는 어느새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러다 문득 연 대야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들이 지목한 상대들이 하나같이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어린애들이었기 때문이다.
연 대야의 뒤쪽에서 노성이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이노옴! 중산! 네놈이 어째서 여기 있는 것이냐!”
가슴 철렁한 음성에 운중산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연 대야 뒤쪽에서 나타난 준엄한 눈빛의 중년인을 발견한 운중산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무당이 배출한 걸출한 속가 제자.
그중에서도 철금권정(哲錦拳挺)이라 불리는 사숙뻘의 고수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가 연적심의 무사부 중에 한 명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운중산이 낭패한 표정으로 단악선과 방소방을 바라봤다.
‘거봐. 내가 뭐랬어?’
입 모양만으로 건넨 방소방의 말에 운중산이 울상을 지었다.
“면벽하라 일렀던 네 사부의 말을 내가 분명히 들었거늘!”
장주인 연 대야와 함께 있다 따라나선 그는 뜻밖의 소동에 운중산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몹시도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철없는 어린애라 할지라도 사문의 명예에 먹칠하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
그런데도 운중산은 이내 나직이 한숨을 흘리더니 당당히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사숙의 꾸짖음은 부당합니다.”
“뭐라?”
“저는 사부님의 허락을 받아 산문을 나섰습니다.”
운중산은 단악선이 자신을 찾아 무당에 방문한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지금 벌어진 일의 책임은 제가 아니라 연적심 저자에게 있습니다.”
운중산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비무를 요청한 것도 저 녀석이 먼저였습니다.”
운중산이 공터 한편에 나뒹구는 전낭을 가리켰다.
“저기 떨어져 있는 은자를 대가로 한 사람당 일각씩 비무를 요청했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어떤 경우에도 멈출 수 없다는 조건을 걸었던 것도 저 녀석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깨고 무사들에게 저희를 죽이라 명령한 것은 사숙께서도 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
방유극의 얼굴 위로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적지 않은 세월 연적심을 지도해 온 그였기에 평소 연적심의 성정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운중산을 비호한다면 연 대야의 입장을 난처하게 할 터.
나아가 그동안 그와 맺어 왔던 우호적인 관계의 단절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할 때.
불안하게 눈을 굴리던 연적심이 끼어들었다.
“전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저놈들이 저를 이곳으로 유인해 왔습니다. 저놈이 무당의 제자라면 어째서 누더기를 입고 있겠습니까? 놈들은 처음부터 저를 꾀어내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것입니다!”
방유극의 눈썹이 꿈틀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운중산이 거지꼴을 하고 있는 건 이상했지만 곧이곧대로 그 말을 믿을 만큼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무당은 결코 제자를 허투루 거두지 않는다.
무재(武才)보다 도기(道器)로서의 성품을 가장 먼저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운중산은 누구보다 반듯하고 공명정대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운중산이 음모를 꾸밀 리 없는 것이다.
이때 운중산 옆에 있던 단악선이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거지꼴의 소년을 향해 방유극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악선이 소매를 들어 얼굴에 묻혀 두었던 그을음을 닦아 낸 뒤 빙긋 웃었다.
“전에 무당산에서 뵌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나요?”
“너는?”
유심히 단악선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방유극이 이내 해연히 놀라 소리쳤다.
“단 의원 아니신가!”
그는 과거 단악선이 연판장에 수결을 받기 위해 무당파를 방문했을 당시 공증인으로서 그 자리에 함께했었다.
“지금 그 모습은 대체…….”
당혹감에 말을 잇지 못하는 방유극을 향해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전부 말씀드릴게요.”
단악선이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거, 거짓말입니다!”
연적심이 황급히 소리쳐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해 보려 했으나 이미 그를 향한 방유극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장주님.”
방유극이 연 대야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 농사 잘못 지으셨습니다.”
“방 사부!”
연 대야가 당황해 소리쳤다.
“어째서 한쪽 입장만 듣고 상황을 판단한단 말이오? 비록 사승으로 엮이지 않았다 하나 방 사부께서는 엄연히 저 아이의 무사부 아니오? 제자의 억울함도 마땅히 헤아려야 하는 법 아니오?”
방유극이 눈살을 찌푸렸다.
“장주님께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그게 무슨……?”
“천둥벌거숭이 같은 장주님의 아들이 본 파의 제자를 죽이라 명령했습니다. 속가라 하나 저 또한 무당 문하. 제가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합니까?”
“……!”
연 대야의 얼굴이 일순 파랗게 질렸다.
“하, 하지만 내 아들은…….”
방유극이 그 말을 잘랐다.
“운중산 저 아이가 답답하고 미련하긴 하지만 거짓말을 입에 담을 아이는 아닙니다. 반면 연적심 저 녀석은 어떻습니까? 세간에 파다한 녀석의 행실에 대한 소문을 정녕 듣지 못하셨단 말입니까?”
“방 사부…….”
연 대야는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 보려 했지만 이어진 방유극의 말에 얼굴이 해쓱해졌다.
“하긴 본 문이 아니라도 조만간 개방에서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묻겠군요.”
연 대야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왜 여기서 난데없이 개방이 언급된단 말인가?
그런 그를 보며 방유극이 안쓰러운 눈빛을 던졌다.
“모르셨습니까? 저 아이가 바로 당대 개방 방주님의 제자입니다.”
“헉!”
연 대야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달은 것이다.
이는 연적심도 마찬가지.
설마 어제 두들겨 팼던 눈앞의 거지가 개방 방주의 제자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대놓고 개방을 조롱했으니…….
방유극이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연 대야를 바라봤다.
“설마 이 아이……. 아니, 단 의원에 대해서도 들어 보지 못하셨습니까?”
상황이 이쯤 되니 연 대야는 벌써부터 방유극의 다음 말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 단 의원이 바로 신마의선 본인입니다.”
“신마의선? 설마 신의와 마의를 부모로 두었다는 그……?”
연 대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당금 강호를 떠들썩하게 만든 풍문.
특히나 떠들어 대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입을 통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오르내리는 단골 소재가 바로 신마의선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는 건…….”
점차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연 대야의 얼굴을 마주한 방유극이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세 분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이야기지요.”
“……!”
연 대야의 얼굴이 안쓰러울 정도로 구겨졌다.
처음엔 별것 아닌 것 같던 일이 점차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비화되나 싶었는데, 이제는 아예 멸문지화 수준의 문제로 번진 것이다.
그 자체로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인 세 사람.
단신으로 청성파를 피로 씻어 낸 혈수존자와 소림에 쳐들어가 대웅전을 박살 낸 망산초자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남 일이 아니게 되었다.
털썩.
연 대야가 갑자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방유극을 올려다보았다.
“사, 살려 주시오. 방 사부! 미욱한 제 자식 놈의 불찰은 전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길을 열어 주십시오!”
방유극이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본 문에는 장주님을 위해 탄원을 해 드릴 수 있으나 타 문파의 일에는 저도 관여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그 세 분에 관해서는 저 따위가 감히 나설 자격도 안 되고요.”
“방 사부! 제발…….”
연 대야의 끈질긴 애원에 방유극이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사실 사람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연 대야는 괜찮은 부류였다.
다만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에 눈이 어두워졌을 뿐.
자식을 잘못 가르친 탓에 모든 화를 뒤집어쓰게 된 그에게 인간적인 동정심을 금할 수 없었다.
“사과할 대상이 틀리셨습니다.”
방유극이 슬쩍 눈짓으로 단악선을 가리켰다.
그 의미를 깨달은 연 대야가 체면이고 뭐고 전부 내려놓고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부디 이 늙은이와 멍청한 자식 놈을 살려 주십시오!”
단악선이라면 어쩌면 그 세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에 연 대야가 처절하게 외쳤다.
그 모습에 단악선은 마음이 약해졌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처음과 달리 상당히 누그러진 단악선의 눈빛에 연 대야는 얼핏 희망을 보았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다시 한 번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디까지나 이건 정당한 비무니까요.”
단악선이 연적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와중에도 여전히 뉘우치지 못하고 독기 가득한 연적심의 눈을 보며 단악선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자신이 떠난 이후 두 친구의 앞날에 분명 피해를 끼칠 터.
확실한 마무리를 통해 연적심의 심성에 깊게 뿌리를 내린 몹쓸 독(毒)을 뽑아내야 했다.
“약속만 지켜 주신다면 별일 없을 거예요.”
“약속이라면?”
“한 사람당 일각의 비무. 그것만 지켜 주시면 돼요.”
갑자기 난입한 연 대야로 인해 방소방은 아직 일각의 시간을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네?”
반문하는 연 대야를 향해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굳이 지켜보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차마 권할 수는 없네요. 아마도 무척 괴로우실 테니까요.”
그 말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깨달은 연 대야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세요. 죽진 않을 테니까요. 명색이 의원인 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럼……?”
“어디까지나 치료의 일환이에요.”
“치료 말입니까?”
“네. 심리 치료요. 육신의 병만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거든요. 어긋나고 뒤틀린 마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해악을 끼치니까요.”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엎드려 있던 연 대야를 방유극이 일으켜 세웠다.
“장주님을 모시게.”
호위 무사들에 의해 공터를 벗어나면서도 연 대야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단악선이 연적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친 연적심은 곧 들이닥칠 일을 예감한 듯 안쓰럽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악선은 단호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소방아, 치료 시작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소방이 씩 웃으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맡겨만 주십시오! 단 의원님!”
잠시 후 장내에 처절한 울부짖음과 끔찍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 * *
그날 저녁.
커다란 식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세 사람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기를 잠시.
범계위가 다른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냐?”
초악량의 물음에 범계위가 찔끔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소피보러?”
“사람 피가 아니라?”
“칫.”
속내를 들킨 범계위가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설화가 일어났다.
“넌 또 왜?”
“…….”
한설화의 눈에서 넘실거리는 살기를 마주한 초악량이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단 의원이 알아서 잘 해결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범계위가 웬일로 한설화 편을 들었다.
“마녀가 옳아! 밟을 때는 확실하게 밟아야지.”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아주 가서 쑥대밭을 만들어라. 단 의원도 알게. 우리가 몰래 뒤를 밟고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면 단 의원도 무척 기뻐할 거야? 그치?”
“…….”
“…….”
때마침 단악선이 객잔에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밝은 목소리로 미루어 의도했던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웃어라. 이것들아. 그러다 들킬라.
초악량의 전음에 한설화와 범계위가 애써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