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63)
신마의선-163화(163/500)
신마의선 (163)
시간은 유수처럼 빠르게 흘렀다.
신마곡을 나선 이후 처음 원단을 맞이했던 곤륜파.
그 이후로 벌써 일 년이 지나 새로운 원단이 코앞이었다.
그동안 단악선은 구대문파 외에도 서른 명의 강호 명숙에게 연판장의 수결을 받아 냈다.
거기에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따라다니기 시작한 신마의선이라는 명호 역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신의와 마의.
두 사람의 진전을 모두 이은 단악선의 의술은 어느새 전설적인 의원인 화타와 편작의 명성에 버금갈 정도였다.
여기에는 환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단악선의 성격도 한몫했다.
비록 그만큼 여행이 지체되긴 했지만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베푼 의술 덕에 단악선의 이름은 강호에서 점차 지대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여행 틈틈이 치른 비무 역시 단악선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크게 한몫했다.
상대가 하나같이 명성이 자자한 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단악선이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의 공동전인이라는 소문이 더해졌다.
그러자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단악선을 찾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오랜 지병으로 고통받던 환자들과 그 가족들.
고명한 의술을 배우고자 하는 의원들.
각 문파의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과 명성에 목숨을 건 각파의 고수들.
심지어 미리 혼처를 선점하기 위한 매파들까지.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단악선을 만나기 위해 강호를 떠돌았다.
하지만 단악선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늘 여행 중이었기에 그 바람을 이룬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런데 이조차도 단악선에게 신비감을 부여했다.
강호의 소문이란 게 왕왕 와전되고 부풀려지기 마련.
몇몇 호사가들은 삼생의 덕을 쌓아야 신마의선을 만날 수 있다고 떠들어 댔고, 덕분에 단악선은 마치 소년의 모습으로 인세를 유람하는 신선처럼 표현되곤 했다.
그러나 정작 소문의 당사자인 단악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련에 매진할 뿐이었다.
“세월이 말 그대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느껴지는구나.”
새하얀 눈밭 위에서 묵룡을 휘두르는 단악선을 지켜보던 초악량이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설원 위로 쏟아지는 푸른 달빛.
거기에 강력한 경력을 따라 비산한 눈송이가 별처럼 반짝이며 장관을 연출했다.
범계위와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묵룡과 더불어 한바탕 춤사위를 이어 가는 단악선의 모습에 흐뭇한 눈빛을 흘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묵룡을 거둔 단악선이 세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그사이 단악선의 키는 더 이상 아이라 부르기 힘들 만큼 부쩍 자라 있었다.
어느덧 초악량의 가슴팍 언저리만큼 성장한 것이다.
균형을 이뤄 잘 다져진 근육 역시 다부진 체격과 더불어 의젓한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앳된 곱상함이 남아 있었다.
눈빛 역시 마찬가지.
맑게 가라앉은 찻물처럼 담백하고 온화한 눈빛은 여전히 별처럼 반짝였다.
“이제 위화신공도 어느덧 육성을 넘어섰구나.”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도 아직 한참이나 멀었는걸요.”
어딘가 석연치 않아 하는 그 모습에 초악량이 실소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이제는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껴졌다.
“애초에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느냐?”
“네?”
“네가 생각하는 무공의 기준은 우리들이 아니더냐?”
“그렇죠?”
당연한 게 아니냐는 듯 되묻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이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분명 너뿐일 게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단악선을 향해 한설화가 말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지금의 넌 무림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니.”
범계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언젠가는 우리도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당장 지금만 해도 그 어떤 후기지수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실력이 출중한 단악선이었다.
“네. 조바심 내지 않을게요.”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제가 늘 감사하는 거 아시죠?”
이제는 제법 능청스러워진 단악선의 표정에 세 사람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굳이 거길 가야 해?”
내키지 않아 하는 기색이 역력한 범계위의 표정에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들러야겠다고 전부터 생각해 왔거든요.”
“하지만 이제 걔들 이제 오대세가도 아니라며? 연판장에 넣어 봐야 별 의미도 없을 텐데?”
“그래도 어느 누가 남궁세가를 무시할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제가 치료했던 환자의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한 번은 방문해야 해요.”
단악선의 다음 목적지는 다름 아닌 안휘의 남궁세가였다.
단악선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범계위는 여전히 남궁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비록 무림맹주 직위를 내려놓고 낙향했다곤 하나 그간 쌓인 갈등이 워낙 많아 못내 불편했던 것이다.
“그 인간 이름이 우리 연판장에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빠.”
초악량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다면 말리진 않으마. 한 누이와 다녀오너라. 우리는 추후 다시 합류하마.”
“함께 가지 않으시고요?”
“우리 기분은 둘째 치고 남궁백 그자가 우리를 반기지 않을 것 같구나.”
비록 마지막은 좋게 마무리 지었으나 결국 자신들과 얽혔다는 이유로 남궁백은 무림맹주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을 달가워할 리 없는 것이다.
“우리 때문에 네가 불편을 겪을 필요는 없지 않으냐?”
슬쩍 발을 빼는 두 사람을 단악선이 설득했다.
“그러지 말고 함께 가요. 그곳에는 우리가 처음으로 힘을 모아 살려 낸 환자가 있잖아요.”
초악량과 범계위가 곤란한 듯 시선을 마주했다. 하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말이 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때 환자를 살리기 위해 여러분이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셨는지는 제가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함께 가는 게 아니면 방문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초악량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범계위도 한숨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단 의원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네 사람은 남궁세가가 위치한 안휘를 향해 움직였다.
* * *
“그냥 이대로 넘기실 사안이 아닙니다.”
남궁세가의 총관인 단리웅풍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노총관은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감히 오대세가를 재편한다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하단 말입니까? 검조(劍祖) 남궁의 이름으로 오대세가를 이끌어 온 본 가를 어찌…….”
말을 이어 갈수록 기가 막혔던지 노총관은 결국 분통을 쏟아 냈다.
“허울뿐인 무림맹의 기만을 이대로 좌시해선 아니 됩니다! 허락만 하신다면 노복이 직접 세가의 아이들을 이끌고 가 놈들에게 본 가의 검이 얼마나 무거운지 깨닫게 해 주겠습니다.”
선불 맞은 멧돼지 마냥 흥분한 노총관을 남궁백이 부드러운 미소로 다독였다.
“총관의 말대로 허울뿐인 무림맹 아닌가? 그들이 어떤 협잡을 꾸미던 거기에 어울려 줄 필요는 없다 보네만.”
“하오나 가주님! 깃털도 많으면 배가 가라앉는다 하였습니다. 한 마리 개가 헛것을 보고 짖으면 온 동네 개가 따라 짖는 법이고요. 소문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본 가가 상관하지 않는다 해도 멋대로 떠들어 대는 자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정녕 이를 두고만 보실 것입니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이 흔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내 모습이 바르다면 어찌 그림자가 비스듬하다고 근심하겠는가.”
그 말이 증광현문(增廣賢文)에 실린 문구임을 단리웅풍이 어찌 모를까.
“가주님!”
남궁백이 차분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불허(不許).”
한숨만 푹푹 내쉬는 노총관을 향해 남궁백이 안쓰러운 눈빛을 던졌다.
크고 작은 부침은 있을지언정 늘 성세를 구가하던 남궁세가였다.
그런데 당대에 이르러 모멸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평생 세가의 살림을 도맡아 하며 누구 못지않은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던 노총관에게는 그만큼 힘든 시기일 터.
이를 모르지 않기에 남궁백은 안쓰러운 눈빛을 건넸다.
“총관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남궁의 이름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걸세. 격류 한가운데 놓인 바위처럼, 절벽 끝의 뿌리를 내린 노송처럼 말일세.”
“도련님 뜻이 그렇다면야…….”
노총관의 말에 남궁백이 슬쩍 웃었다.
대체 언제 적 도련님이란 말인가.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그였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걸세.”
노총관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런 그에게 남궁백이 말했다.
“걱정 말게. 난 오히려 지금 상황이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 생각하네. 미명에 사로잡혀 어두웠던 시야를 털어 내니 이제야 모든 것이 온전히 보이기 시작했네. 본 가의 진짜 힘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도 깨달았고. 그러니 날 믿어 주게. 본 가가 다시 일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일세.”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는 남궁백의 눈빛을 마주한 노총관이 희미하게 웃었다.
“하나 이 노구가 언제까지 버텨 줄지……. 영화를 되찾은 세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총관의 엄살에 남궁백이 웃음을 터트렸다.
“안 통하네. 십 년 넘게 우려먹었으면 이제 충분하지 않나. 그것보다 지금은 우선할 일이 있을 텐데? 손님들을 맞을 준비는 잘 되어 가나?”
“뭐 그리 반가운 손님이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노총관의 모습에 남궁백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단악선 일행이 방문첩을 보내 온 게 닷새 전이었다.
그런데 노총관의 태도가 몹시 떨떠름했다.
공청석유 때문에 가세의 살림이 크게 기울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장은 손님맞이에 집중하세. 자네가 언급했던 사안에 대해서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네. 만약 저들이 선을 넘는다면 나 역시 관망하고 있지만은 않을 걸세.”
“노복은 그저 가주의 명을 좇을 뿐입니다.”
축 처진 어깨로 돌아서는 노총관의 뒷모습에 남궁백은 다시 한 번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모습은 저래도 눈으로는 웃고 있을 그의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남궁백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최근 무림맹에서 오대세가를 다시 발표한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기존의 오대세가에서 남궁의 이름을 빼 버렸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제갈세가가 대신하고, 요녕의 모용세가를 끌어들여 새로운 오대세가로 체제의 변화를 꾀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갈, 당가, 팽가, 황보, 모용으로 구성된 오대세가를 중심으로 명망 있는 무림세가를 포섭해 무림맹의 이름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자신들과 뜻을 달리한 구파일방을 다른 세력으로 대신한 것이다.
서문세가와 공손세가, 그리고 언가권(言家拳)으로 유명한 진주의 언가와 창법으로는 조가와 쌍벽을 이룬다는 신창양가(神槍楊家)까지.
남방 일대에서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리고 있던 광동진가(廣東陳家)도 최근 무림맹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궁백의 실각과 더불어 남궁세가만 바다를 떠도는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고립된 상황.
당장 상황이 그리되자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기존에 남궁의 이름 아래 세상 풍파를 긋던 상단과 표국들이 점차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세월 세가와 역사를 함께해 온 경제적 기반이 크게 휘청이고 있었다.
그러나 남궁백은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무엇보다 내실을 다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했다.
처소를 나선 남궁백은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한참을 거닐었다.
그러다 문득 먼발치에 서 있는 자신의 딸을 발견했다.
외당에 마련된 정원 앞에서 남궁향은 정문 쪽을 응시하며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이토록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에 남궁백은 씁쓸하게 웃었다.
“차라리 그때 이어 줄 것을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