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64)
신마의선-164화(164/500)
신마의선 (164)
처음엔 단순히 자신에게 새 삶을 살게 해 준 은인에 대한 호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느껴져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아비로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도 모르는 사이 단악선을 향한 딸의 마음은 이미 연심으로 발전해 있었던 것이다.
시비를 비롯한 남궁세가의 일꾼들이 부산해진 것도 그때였다.
잠시 후 남궁세가의 웅장한 정문이 활짝 열렸다.
그 사이로 총관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는 네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궁백이 직접 나서 그들을 맞았다.
“본 가의 은인들을 다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중하게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남궁백의 모습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멈칫했다.
서로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어색한 자리가 될 것이라 짐작했건만 남궁백의 환대는 그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뭔가 사람이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수?
―으음. 전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워졌구나.
그렇게 범계위와 전음을 나눈 초악량은 새삼 남궁백이 달리 보였다.
눈빛과 태도에서 느껴지는 여유만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정적인 기도가 무림맹주 시절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반면 남궁백은 남궁백대로 놀라고 있었다.
“제가 알던 그 어린 의원이 맞습니까?”
삼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한 단악선의 모습에 남궁백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만이에요, 맹주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단악선이 건넨 인사에 남궁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의원님 덕분입니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을 한 기억은 없는데요?”
멋쩍게 겸양하는 단악선을 향해 남궁백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대로 향이를 잃었다면 제 삶은 온통 어둠뿐이었을 겁니다. 더욱이 삶의 이유와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 역시 단 의원님과의 만남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저 감사할 수밖에요.”
다시 한 번 솔직한 마음을 전한 남궁백이 단악선 일행을 내당으로 손수 안내했다.
엄청난 규모의 정원.
중앙 연못의 정자 위에는 어느새 진수성찬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다기를 받쳐 들고 다소곳한 걸음으로 정자에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사이 화장을 고치고 왔는지 더욱 자태가 화사해진 남궁향이었다.
“어?”
남궁향을 알아본 단악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친 남궁향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미 목덜미까지 노을이 내려앉은 듯 발그레해져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남궁 소저.”
“네…….”
반색하는 단악선을 향해 남궁향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남궁백은 내심 기가 막혔다.
남궁가의 이름에 걸맞게 어지간한 사내는 눈 아래로 두던 그녀였다.
피는 못 속인다고, 병상을 털고 일어나기 무섭게 다시금 검을 든 남궁향이다.
그래서 지금은 제 오라비를 비롯한 세가 내의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단연 발군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도도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평소의 기세는 어디 가고 그저 수줍은 봄 처녀처럼 다소곳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런 딸의 모습이 남궁백은 더없이 낯설었다.
“다행히 혈색은 좋아 보이네요.”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좀 힘이 없는데……. 혹시 후유증이 남거나 치료의 부작용이 있나요?”
남궁향이 당황해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이제 완전히 건강해졌어요.”
여전히 남궁향은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악선을 흘깃거리는 표정에서는 감출 수 없는 감정이 묻어났다.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제는 아이 티를 완전히 벗은 단악선을 직접 마주하니 가슴이 뛰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 리 없는 단악선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몸을 살펴봐도 될까요?”
남궁향이 화들짝 놀라 단악선을 바라봤다.
손을 대면 그대로 붉은색이 묻어 나올 정도로 홍조가 내려앉은 그녀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하지만 이내 사심이 깃들지 않은 단악선의 눈빛을 마주하곤 남궁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락을 구하는 딸의 눈빛에 남궁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장소가 있을까요?”
“그럼 제 처소로…….”
단악선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던 남궁향이 괜한 오해를 살까 싶어 황급히 말을 이어 갔다.
“혹시 몰라 진맥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했어요. 간단한 의구나 약재들도 준비해 두었고요. 처방문을 위한 지필묵도…….”
“잘됐네요. 그럼 안내해 주시겠어요?”
남궁향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남궁향의 처소에 도착한 단악선은 빤히 그녀를 응시했다.
실내에 단둘이 있는 상황.
거기에 홀로 연모의 감정을 키워 왔던 남궁향은 단악선의 시선을 의식하자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단악선이 손을 뻗어 남궁향의 손목을 붙잡았다.
“……!”
깜짝 놀라는 남궁향과 달리 단악선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맥이 너무 빨라요! 호흡도 너무 가쁘고요!”
남궁향은 부끄러운 마음에 질끈 눈을 감았다.
“혹시 복용하는 약이 있나요? 특별한 영약 같은 거요.”
“네? 아니요.”
“그런데 왜 이러지?”
당황한 단악선을 향해 남궁향이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이건 영약을 복용하거나 몸에 이상이 생겨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들었어요.”
“아!”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단악선이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남궁향은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마음에 둔 누군가가 있는 건가요?”
“……!”
“역시.”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혼기를 맞은 사람에게 흔한 경우인데 제가 간과했네요.”
단악선이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이건 병이라 할 수도 있고 병이라 할 수도 없는 모호한 증상이에요.”
“증상……이요?”
“우선 심호흡을 해 주시겠어요?”
남궁향이 고분고분 그 말을 따랐다.
단악선이 품속에서 침이 담긴 목갑을 꺼냈다.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 침을 놓는 건 아니니 안심하세요. 그저 심신을 안정시키고 원활하게 기를 다스리기 위한 거니까요.”
남궁향의 몸에 침을 놓으며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애끓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 열기. 그걸 상사화(相思火)라고 해요.”
이른바 상사병이다.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이요. 심한 경우에는 그 열기가 심맥을 다치게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사라져요.”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남궁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걸요.”
그런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사실 상사병은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진 병이에요.”
그 병명의 유래는 무려 춘추 전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송(宋)나라 말기.
주색을 탐하기로 유명했던 강왕(康王)은 신하의 아내를 빼앗아 자신의 후궁으로 삼고, 신하는 누명을 씌워 먼 변방의 오지로 귀양을 보내 버렸다.
아내를 그리워한 나머지 신하는 자결을 택했고, 그 소식이 알려지자 아내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사람은 죽기 전 같은 유언을 남겼다.
함께 합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비록 살아서 함께할 수는 없지만 죽어서만큼은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분노한 강왕은 두 사람의 무덤을 멀리 떨어트렸다.
“그런데 그들 부부가 묻힌 무덤에서 각각 한 그루씩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 나무의 가지 끝은 서로를 향해 뻗어 있었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나무들을 상사수(相思樹)라고 불렀어요. 상사병이라는 말도 거기서 유래했고요.”
“슬픈 이야기군요.”
어느새 눈물이 그렁한 남궁향을 보며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만큼 애틋하고 강박적이죠.”
남궁향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라 해서 어찌 모를까.
하루에도 몇 번이고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는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었다.
밥 먹다가도, 산책할 때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불현듯 생각나곤 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강박 장애와 비슷해요. 기쁘고 슬픈 감정이 밀려드는 조증과 우울증이 야기되기도 하고요. 기분이 좋을 때는 하늘을 나는 것 같지만 반대로 밀려드는 좌절감에 하루 종일 우울할 때도 있죠.”
“밥도 못 먹고, 잠도 자지 못하며, 일에 집중할 수 없는 것처럼요.”
“맞아요.”
단악선이 안심시키듯 남궁향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런 마음의 병과는 동일한 범주 안에 놓을 수 없어요. 결과가 명백히 다르거든요.”
“어떻게요?”
“상사병은 한번 앓고 나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만 강박 장애나 조울병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남궁향의 표정이 밝아졌다.
단악선과 손을 맞잡은 지금 이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라던 그때.
“응원할게요.”
“예?”
“남궁 소저의 사랑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남궁향은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깜빡였다.
그러기를 잠시.
남궁향은 그만 아연해졌다.
‘날 여자로 보고 있지 않아!’
자신과 달리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는 단악선의 눈빛에 남궁향은 비로소 현실을 깨달았다.
단악선에게 있어 그녀는 환자일 뿐이었다.
“축하해요. 절맥은 이제 모두 완치되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뒤늦게 밀려드는 서운함에 남궁향은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어? 괜찮으세요?”
염려 가득한 단악선의 눈빛에 남궁향이 애써 웃었다.
“단 의원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그동안의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뭘요. 의원으로서 당연한 일인걸요.”
“전 이곳에서 좀 더 마음을 추슬러야 할 것 같으니 단 의원님께서는 그만 일 보셔도 돼요.”
웃으며 일어선 단악선이 남궁향을 향해 응원의 눈빛을 던졌다.
“힘내요. 남궁 소저.”
“……!”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 번 남궁향의 마음에 비수를 꽂은 단악선이 그녀의 처소를 나섰다.
다시 정자로 돌아오자 마침 일행은 중요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청화은옥이 서역에서 왔다고?”
초악량이 남궁향의 병인으로 지목되었던 침상을 언급하자 남궁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상인의 행적을 수소문하다 보니 서역까지 닿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만, 청화은옥을 침상으로 만든 곳도 서역에 있었습니다. 그들 말로는 미리 경고를 했다는군요. 그런데 특별한 수련을 한다고 해서 만들어 줬다고 합니다.”
“서역이라…….”
초악량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곤륜과 공동에서 자신들을 방해했던 흑의인.
이상하게도 자꾸 그쪽으로 촉이 뻗었다.
그때였다.
“그 청화은옥을 바친 곳이 비룡상단이라고 했지?”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 이름이 귀에 익지?”
그러다 이내 범계위가 놀란 눈으로 한설화를 바라봤다.
“마녀, 네 돈 떼먹고 나른 놈들이잖아?”
“……!”
쩌저적.
뒤늦게 이를 떠올린 한설화에게서 뼛골 시린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흑룡강성의 성도, 합이빈(哈爾濱)에 위치해 있던 흑룡상단.
단악선을 만나기 전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지만 그들은 맡겼던 투자금의 지불을 거부했다.
이전의 상단인 비룡상단으로부터 인수할 당시 모든 채무 관계를 정리했기에 자신들에게 지불 책임이 없다는 이유였다.
전 상단주의 행방을 묻자 변방으로 갔다는 단편적인 정보가 전부였다.
결국 그녀가 아끼던 비녀인 조화건잠을 맡기고 돈을 마련해야만 했다.
이때 남궁백이 다시 입을 열었다.
“놈들이 노린 사람이 제 딸아이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나 제 아들을 노린 것 같습니다. 전 그들의 배후에 마교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 아닐 수도 있지.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은 다른 세력이 암암리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세력이라면?”
초악량은 여행 중 곤륜산과 공동산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설명했다.
“단언컨대 놈의 무공은 결코 마교의 것이 아니었네. 물론 그 마귀들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놈에게서는 그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도 자체적으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제야 남궁백이 단악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 소저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아!”
단악선의 확답을 듣고 나니 일말의 불안마저 완전히 거두게 된 남궁백이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참으로 염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작은 답례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혹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이미 충분히 받았는걸요. 영약도 많이 주셨고요.”
남궁백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공청석유 말씀이십니까? 하나 그건 이미 딸아이 치료에 전부 쓰이지 않았습니까?”
“……!”
그 순간 정자 안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