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65)
신마의선-165화(165/500)
신마의선 (165)
나름 산전수전 겪으며 노련함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남궁백이다.
자신의 물음으로 빚어진 이 어색한 침묵의 의미를 곧바로 깨달았다.
자신의 시선을 애써 회피하는 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고, 단악선 역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당했군.’
남궁백은 입맛이 몹시 썼다.
목적이야 어찌 되었든 속았다는 사실이 달가울 리 없었다.
특히나 공청석유를 구하기 위해 세가의 기둥뿌리가 뽑힐 뻔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감정을 추스르며 애써 웃었다.
결과만 따지고 보면 어쨌거나 단악선이 있어 딸을 살릴 수 있었다.
“사실 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분명 좋은 일에 쓰였을 테니 괘념치 않겠습니다.”
남궁백의 말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좋은 일에 쓰였지.”
“맞아. 우리 단 의원이 공청석유 같은 영약을 허투루 쓸 리 없지.”
안도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남궁백은 아직도 고민하는 단악선을 향해 슬쩍 웃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원하시는 게 있다면 말씀하시지요.”
단악선이 눈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이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눈치채셨겠지만 선물은 이미 충분히 받았어요. 이제야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그 말이 남궁백의 마음을 누그러트렸다.
따지고 보면 원수의 딸을 살려 준 것인데 그 정도 속인 것이 문제일까?
“제가 은혜를 입은 분은 여러 분인데, 공청석유는 하나뿐이었으니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남궁백이 인자한 웃음으로 다시 말하자 단악선도 뭔가가 떠올랐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터라 욕심을 집어넣었다.
고민하는 모습이 귀여웠던지 남궁백이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받은 은혜가 더 크니, 당당히 요구하셔도 됩니다.”
“비무요!”
자신도 놀랄 정도로 큰 목소리를 낸 단악선이 민망한지 얼굴을 붉혔다.
꾹 참고 있는데 남궁백이 재차 자극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다급히 외쳐 버린 것이다.
“가주님께 가르침을 청하고 싶어요.”
다시 진정하고 정식으로 요청을 하자 남궁백의 웃음이 진해졌다.
“하하.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제게도 비무초선(比武招仙)의 기회가 오는군요.”
단악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비무초선이요?”
금시초문인 단악선의 반문에 남궁백이 빙그레 웃었다.
이와 관련된 강호의 소문이 떠들썩한데 정작 소문의 당사자인 단악선이 이를 모르고 있다는 게 재밌었다.
“비무초친(比武招親)에서 한 글자만 살짝 바꿔 의미를 달리한 말입니다.”
무공이 뛰어난 여걸이 자신보다 뛰어난 배우자를 구하기 위해 치르는 비무가 바로 비무초친이었다.
“의원님을 만나기 위해 강호인들이 고안한 방법이지요. 단 의원님께서 비무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름 무공에 자신 있는 자들이 비무초선을 자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신마의선과 비무를 하면 반드시 다쳐라. 그럼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몸을 고쳐 준다. 그런 소문이 함께 따라다니더군요.”
단악선은 문득 짚이는 바가 있었다.
지금까지 비무를 치르며 결과에 상관없이 상대의 부상이나 지병을 치료해 주었다.
이는 단순히 의원으로서의 순수한 소명 때문이었지 비무의 대가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새 사실이 와전되어 엉뚱한 소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강호인들이 바라 마지않는 영광을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남궁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곳을 가리켰다.
“저 담을 돌아가면 본 가의 연무장이 있습니다.”
남궁백을 따라 정자를 내려서는 단악선을 지켜보며 범계위가 불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괜찮겠수?”
“뭐가 말이냐?”
초악량의 반문에 범계위가 우려를 드러냈다.
“남궁백 저자 말이유. 지금까지 단 의원이 겨뤄 본 상대들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수?”
“으음…….”
초악량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분명히 남궁백은 고수였다.
그것도 그들의 기준에서도 충분히 윗선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수준.
제대로 손을 섞어 본 것은 아니었지만 언뜻 드러냈던 무공만으로도 그의 실력은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만나 본 정파의 고수들 중 한 손 안에 꼽을 만큼 강자인 것이다.
이윽고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의원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저만한 고수와 비무 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만약 다치기라도 하면?”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단악선에게 호의를 지닌 남궁백이 그럴 리 없다 생각한 것이다.
“너희들의 지나친 과보호만 아니었다면 단 의원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다.”
단호한 평가를 내린 초악량이 이내 단악선과 남궁백이 향한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단악선과 남궁백이 연무장 위로 올랐다.
이미 두 사람의 비무 소식이 전해진 듯 세가 내의 수많은 무인들이 연무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소문 무성한 신마의선에 관한 호기심도 한몫했지만 정작 그들이 모인 진짜 이유는 남궁백 때문이었다.
가주인 남궁백의 무위를 직접 눈으로 볼 기회는 그만큼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세가의 절학.
그것도 당금 세가의 주인이 직접 펼치는 무공을 통해 견식을 넓힐 절호의 기회였다.
그 무수한 인파 중에는 남궁향과 그녀의 오라비인 남궁호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남궁향과 남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수려한 이목구비를 지닌 남궁호는 아비의 얼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진중한 눈빛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아버님의 무공을 보는 건 오랜만이군.”
남궁호의 말에 남궁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혈육인 그들조차 남궁백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한데 왜 그리 기운이 없는 것이냐?”
오라비의 물음에 남궁향은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남궁호는 그런 누이의 모습이 의아했지만 이내 연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작하는구나.”
남궁호가 빙그레 웃었다.
“미래 우리 처남 실력은 어떨지 기대되는걸?”
“……!”
그 말에 남궁향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하지만 연무장 위에 마주 선 단악선과 남궁백에게 시선을 고정한 남궁호는 이를 알 수 없었다.
남궁백이 고색창연한 한 자루 검을 들어 기수식을 취했다.
“세 번의 선공을 양보하겠습니다.”
그 역시 소문 무성한 단악선의 무공 수준이 내심 궁금하던 참이었다.
더구나 딸이 단악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가 먼저 비무를 청하고 싶을 정도였다.
단순히 무공의 고하를 확인하는 것을 떠나 비무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무공을 익혀도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점이 존재했다.
각자의 성정에 따른 개성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 같은 경우 천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한 번 검을 맞대는 게 상대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악선이 남궁백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손에 들린 묵룡이 꿈틀거리나 싶은 순간.
묵룡 특유의 암청색 잔영이 순식간에 연무장 안을 가득 채워 버렸다.
남궁백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훌륭하다.”
짧은 탄성과 함께 남궁백이 검을 비껴 비처럼 쏟아지는 연환 공격을 흘려 냈다.
묵룡이 변화를 일으킨 것도 그때였다.
현란한 잔영을 뒤로한 채 한 줄기 섬광이 되어 그대로 남궁백의 가슴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쩌엉!
연무장 안을 가득 채우는 금속성과 함께 단악선이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이번에도 남궁백은 검을 쳐올리는 간단한 동작으로 묵룡을 걷어 낸 것이다.
‘대체 어떻게?’
남궁백의 눈에 은은한 놀라움이 떠올랐다.
비록 일검에 단악선을 떨쳐 내긴 했으나 검을 통해 전해진 충격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무기에 이 정도 내력을 담아낼 수 있는 고수는 흔치 않았다.
단악선의 나이를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은 그 직후에 일어났다.
속도와 위력에 치중했던 앞선 공격과 달리 단악선의 손에 들린 묵룡이 느리게 날아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위치가 절묘했다.
“허!”
남궁백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봉이 선점한 방위가 하나같이 검로가 시작되는 지점을 봉쇄하고 있었다.
더구나 퇴로마저 차단해 단순한 공격을 강제하고 있었다.
만약 이에 반응해 섣불리 움직인다면 함정에 발을 들이게 되는 셈.
‘눈 뜨고 소매치기를 당하는 기분이군.’
순식간에 자신의 검법을 베껴 흉내 내는 단악선의 수법에 남궁백은 내심 기가 막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남궁백의 대응은 간단했다.
훌쩍 뒤로 물러나 단악선의 공격권을 벗어나 버린 것이다.
그렇게 세 번의 공격을 양보한 남궁백이 본격적으로 단악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어지러운 검영이 순식간에 단악선을 에워쌌다.
단악선이 황급히 묵룡을 휘둘러 대응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검기를 쳐 내기도 급급했다.
남궁백의 검을 통해 쏟아지는 초식 하나하나.
그 어느 것도 절초가 아닌 것이 없었다.
남궁세가의 심법인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
거기에 중원의 수많은 검법 가운데 수위를 다투는 절학인 제왕검형(帝王劍形)이 더해지자 단악선은 순식간에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 차이가 너무나 명확해 장내의 어느 누구 하나 단악선의 패배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단악선과 검을 마주한 남궁백은 아직도 투지로 일렁이는 단악선의 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디?’
남궁백은 시험 삼아 제왕검형의 절초인 단하유성(斷霞流星)의 초식을 시전했다.
일견하기엔 간단히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 단순한 동작.
하나 그 안에 담긴 위력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일격에 산도 자를 만큼 강력한 패도를 추구하는 중검(重劍)!
제왕검형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긴 혼신의 절예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남궁가의 검인가!”
지켜보던 초악량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그만큼 가슴이 끓어오르는, 뜨거운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이전에는 과장되었다 느껴진 남궁백의 명호.
일검에 언덕을 베고, 일검에 강물을 가른다는 단능단제(斷陵斷湍)라는 수식어에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었다.
반면 단악선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창백해진 얼굴로 대응할 방법을 모색했지만 태산처럼 찍어 누르는 것 같은 압력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린 것도 그때였다.
‘또 저 눈빛!’
단악선의 눈.
그 안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열기를 발견한 것이다.
굽힐 줄 모르는 불굴의 투지.
이는 마치 초악량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
묵룡을 놓은 단악선이 다짜고짜 남궁백의 검격에 몸을 던졌다.
그 무모함이 마치 범계위를 보는 것만 같았다.
단악선의 손이 허공의 한 점을 찍은 것도 그때였다.
따앙!
육중한 충격음을 시작으로 단악선의 손이 기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拿), 점(點), 타(打), 척(拓), 질(跌).
잡아채고, 누르며, 두드리고, 걷어 넘기는 동작을 통해 조금씩 충격을 흘려 내기 시작한 것이다.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이런 게 가능하다니!’
남궁백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단악선의 손을 통해 쏟아지는 금나수의 수법은 하나같이 기초적인 무공 요결이었다.
한데 그것이 일시에 모이니 그야말로 신공절학에 가까운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의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짜자자작!
가늘게 쪼개진 충격파가 예리한 검기처럼 연무장 위의 대기를 찢어발겼다.
더불어 태산압정(泰山压顶)의 기세로 단악선을 찍어 누르던 압력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렇지. 바로 그거다.”
단악선의 손을 통해 온전히 구현된 자신의 금나수를 보며 초악량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단악선은 죽을 맛이었다.
순간의 도박이 제대로 주효했지만 그 과정에서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대로 비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오직 정상에 오른 자만이 천하를 굽어볼 수 있는 법.
이제 막 가파른 능선에 발을 올린 자신은 그 정상의 높이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한데 남궁백은 이미 그곳에 이르러 있었다.
조금이라도 그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지금!’
압력이 약해진 어느 한 지점.
실낱같은 빈틈을 향해 단악선이 금나수를 욱여넣었다.
“……!”
단악선의 두 눈이 지진을 일으킨 것도 동시였다.
겨우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싶었는데, 이건 웬걸.
어느새 시퍼런 검날이 목에 겨누어진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