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66)
신마의선-166화(166/500)
신마의선 (166)
“……졌어요.”
단악선이 패배를 인정하자 남궁백이 빙그레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
단악선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덕분에 안계를 넓힐 수 있었어요.”
아쉬움 가득한 단악선의 눈빛에 남궁백이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이미 훌륭한 스승들께서 함께하시니 사족은 굳이 필요 없겠지만…….”
남궁백이 말끝을 흐리며 초악량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한마디 조언을 해도 되겠냐는 무언의 눈빛이었다.
승낙의 의미를 담아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남궁백이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검아일체(劍我一體).”
단악선의 눈이 반짝였다.
“검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뜻인가요?”
남궁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단악선과 거리를 두고 물러선 남궁백이 손에 들린 검을 휘둘렀다.
절도와 품격이 느껴지는 초식.
그 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새겨 넣던 단악선이 이내 탄성을 터트렸다.
비로소 남궁백이 말한 검아일체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권법을 검으로 펼쳐 낸 건가요?”
“……!”
이번에는 남궁백이 놀랐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곧바로 진의를 깨우치는 단악선의 영민함은 그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본 가의 권법인 구벽신권(九劈神拳)과 금나수인 대연십구식(大衍十九式)을 검으로 응용한 것입니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 할 때의 검법과는 확연히 달랐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무리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현묘하면서도 다양한 효용을 지닌 검법은 그 자체로도 이미 하나의 완성된 절학이었다.
남궁백이 설명을 이어 갔다.
“검과 내가 하나가 된다면 손에 들린 검은 더 이상 단순한 무기가 아닌, 그 틀을 벗어나 수족을 확장하는 개념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아!”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백은 방금 전의 비무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단악선이 봉술을 포기하고 금나수로 대응한 상황을 지적하고 있었다.
만약 묵룡에 초악량의 금나수를 녹여 낼 수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
“반대로 검아일체를 이루면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검을 거둔 남궁백이 이번에는 천천히 손을 들어 단악선을 가리켰다.
“……!”
그 순간 단악선은 다시 한 번 눈앞이 아득해졌다.
방금 전 경험했던 제왕검형의 무시무시한 압력이 재차 전신을 찍어 눌러 왔던 것이다.
남궁백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존재했다.
“검즉심(劍卽心), 아즉검(我卽劍). 의지가 곧 검이 되니, 이를 의형수검(意形手劍)이라 합니다.”
신검합일(身劍合一).
마음이 가는 곳에 이미 검이 이르러 있으니 베지 못하는 것이 없다 했던가.
초식이나 내공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검의 또 다른 형태였다.
“물론 저 역시 아직 초입의 경지라 그 끝을 보는 게 요원하기는 합니다만…….”
남궁백이 웃으며 초악량 일행을 눈에 담았다.
“이미 앞서 그 경지에 계신 저분들과 함께라면 머잖아 의원님 역시 그곳에 서게 될 테지요.”
남궁백의 말에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는 내심 뜨끔했다.
세 사람의 개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그동안 단악선을 따로 가르쳐 왔던 것이다.
그 바람에 단악선의 근간이 되는 무리가 한데 엮이지 않고 따로 놀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남궁백의 조언은 다시 한 번 현 상황을 정확히 되짚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한 줄기 음성이 단악선의 귀를 파고든 것도 그때였다.
“새벽녘 잠을 깨우는 계명성(鷄鳴聲)이 미망을 흩어 내니, 하늘에 오롯한 계명성(啓明星)은 오연히 세상을 굽어보는도다. 어제도 오늘도 닭은 울고 별은 그곳에 있나니, 하나는 벗 삼고 하나는 죽장(竹杖) 삼아 그저 나아갈 뿐.”
칠언 절구로 이루어진 절묘한 시구.
단악선의 얼굴 위로 기이한 열기가 일렁였다.
의미는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묘하게도 가슴을 울리는 내용이었다.
반면 초악량은 그것이 남궁백이 스스로 깨우쳐 얻은 심득(心得)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런데도 단악선에게 아낌없이 이를 전하고 있었다.
“…….”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 듯 눈을 감은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단악선의 모습에 남궁백이 가만히 미소 지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신도 저와 같은 때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가르침을 내린다 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와 다름없었다.
반면 단악선은 이미 받아들일 자세를 충분히 갖춘 상태였다.
그러기를 잠시.
천천히 눈을 뜬 단악선이 남궁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가르침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로 화답하는 남궁백을 향해 초악량이 물었다.
“그토록 중요한 것을 남에게 알려 줘도 되는 것인가?”
“아무리 중요한들 어찌 자식의 목숨을 살려 준 은혜와 견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남궁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게다가 언젠가는 남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으음?”
“세상일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의미심장한 남궁백의 눈빛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시선을 교환했다.
―이걸로 벌써 일곱 번째인가? 사위 삼겠다고 매달렸던 놈들 말이유.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느냐. 사람도 마찬가지지.
범계위와 초악량이 전음을 나누고 있던 그때.
한설화를 중심으로 갑자기 강력한 냉기가 휘몰아쳤다.
“왜 이래? 갑자기!”
난데없이 서리를 뒤집어쓴 범계위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한설화는 대답 대신 묵묵히 손을 들어 단악선의 손을 가리켰다.
“손톱이 깨졌잖아…….”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긴 초악량의 눈빛이 흔들렸다.
손톱이 깨져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단악선의 손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초악량은 문득 설명하기 힘든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단 의원을 다치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용서 못 해.”
서늘한 음성과 함께 한설화가 남궁백을 노려봤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남궁백조차 흠칫하며 물러설 정도였다.
―말려야 해!
초악량의 전음에 범계위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초악량이 다시 한 번 전음을 날렸다.
―지난번 현음상인에게 단 의원이 다쳤을 때. 일주일이나 발이 묶였던 거 기억 안 나?
―어?
범계위가 당황했다.
정파의 명숙인 그와의 비무에서 단악선의 얼굴에 멍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에 분노한 한설화가 현음상인을 공격했고, 덕분에 그의 부상을 치료하느라 단악선이 일주일을 꼬박 매달려 있어야 했다.
그 일주일 내내 단악선이 쉰 한숨과 사과가 수백 번에 이르렀다.
그 후로 한설화도 참고는 있지만, 단악선의 피를 본 것은 처음이니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일주일로 끝나지 않는다!
전음을 날린 초악량이 주위를 가리켰다.
연무장 주변을 빼곡하게 메운 남궁세가의 무인들.
남궁백이 다치면 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부상자가 늘어날 테고 그만큼 이곳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 터.
비로소 상황을 인지한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말했던 대로 움직입시다.
훗날 뒷감당이 심히 걱정되었지만 일단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고 볼 일이었다.
어차피 힘든 건 나중의 나지 당장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지금!”
짧게 소리를 지른 범계위가 뒤에서 와락 한설화를 껴안았다.
놀란 한설화의 눈에서 이내 끔찍한 살기가 뭉클거리며 쏟아졌다.
그 순간 초악량이 재빨리 한설화의 마혈을 찍어 버렸다.
“……!”
한설화는 내심 어이가 없고 황당해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두 사람이 자신을 제압할 줄은 짐작도 못 한 것이다.
무시무시한 한설화의 눈빛을 마주한 초악량이 헛기침을 터트리며 슬쩍 시선을 외면했다.
반면 범계위는 범계위대로 걱정이 앞섰다.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슬슬 후환이 두려워진 것이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돌아가는 상황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찾아뵈어야 할 것 같아요.”
남궁백은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 가의 문은 항상 열려 있을 것입니다.”
“아! 그리고…….”
단악선이 품속에서 연판장을 꺼내 남궁백에게 내밀었다.
“여기 수결을 적어 주실 수 있나요?”
남궁백이 세가 무인들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 지시한 뒤 연판장에 자신의 이름을 채워 넣었다.
“감사해요.”
고개를 꾸벅 숙인 단악선이 남궁향을 향해 손을 흔든 뒤 돌아섰다.
이윽고 단악선 일행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어느새 남궁백 곁에 다가온 남궁호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소자가 뜻을 펼칠 강호에는 저런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겠군요.”
남궁백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 심정을 그라 해서 어찌 모를까.
한때 천하제일이라 자신했던 그조차 지금은 저 같은 괴물들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네게는 이 아비가 있질 않느냐.”
이어진 남궁백의 말에 남궁호는 격동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금일부터 너희에게 본 가의 절학을 전수할 것인즉, 나를 넘어설 때까지 정진하고 더욱 정진하거라.”
남궁호가 힘차게 대답했다.
“소자, 본 가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반드시 부친의 기대에 부응하겠노라 남궁호가 다짐하는 그 순간.
남궁백이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연히 뒤따랐어야 할 남궁향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단악선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응시하는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쯤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단악선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던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 남궁백의 시선도 느끼지 못한 채 남궁향은 아련한 눈빛으로 단악선이 사라진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이제 그만 내려놓지?”
얼음장 같은 한설화의 음성에 범계위가 멈칫했다.
그리고 고분고분 옆구리에 끼고 있던 한설화를 내려놓고 멀찍이 물러섰다.
“마혈도 풀고. 아니면 내가 직접 풀까?”
한설화의 말에 범계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한설화의 무공이라면 직접 푼다는 말도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분노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난 초 형이 시킨 대로 했을 뿐이야.”
범계위의 변명에 초악량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언제부터 내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어쨌거나 뒷일은 초 형이 책임지슈.”
그 말과 함께 범계위가 신형을 날렸다.
졸지에 홀로 한설화의 살기를 감당하게 된 초악량이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물러선 초악량이 한설화를 향해 지풍을 날렸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범계위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팍.
어깨를 때린 지풍에 마혈이 풀리자 한설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구를 먼저 족쳐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녀가 범계위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나마 초악량에 비해 신법이 딸리는 범계위를 먼저 쫓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단악선은 차마 말릴 수도 없었다.
차라리 한번은 털고 가는 게 나중을 위해서라도 낫다는 걸 이미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아는 까닭이다.
그런 단악선에게 누군가 말을 건네 온 것도 그때였다.
“거기 있는 훤칠한 총각은 혹시 단 의원 아니신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어?”
웃으며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립의 모습에 단악선이 반색했다.
“언제 오셨어요?”
이립 옆에 나란히 서 있던 홍적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분위기가 살벌하길래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네.”
“아…….”
이립이 웃으며 단악선에게 다가섰다.
“이제 연판장을 공표할 때가 왔군.”
“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