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68)
신마의선-168화(168/500)
신마의선 (168)
그는 거지 경험이 전무한 두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움막을 내주고, 동냥하는 법과 거지로서 생존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진심을 다해 두 사람을 자신의 몸처럼 아끼며 호의를 베풀었다.
처음에는 경계하고 거리를 두려 했으나 팍팍하게 살던 강호에서 드물게 느낀 따듯한 인정에 결국 두 사람은 추면개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석 달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던 그때.
두 사람의 눈앞에 하오문주가 나타났다.
“결국 놈을 죽이고 우리는 그대로 개방을 떠났다.”
초악량이 추면개를 향해 미안한 눈빛을 보냈다.
“우리가 연락을 취하지 않은 건 개방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소. 우리가 개방 안에 숨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노인장께도 화가 미칠 테니까.”
하오문뿐만 아니라 정파 내에서도 개방이 곤욕을 치르게 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후환을 없애기 위해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범계위가 변명하듯 말을 이어 갔다.
“덕분에 그날 이후 거지는 절대 죽이지 않기로 마음먹었지. 원래는 죽였어야 했는데 살려 준 거지가 백 명은 족히 넘을걸?”
그 말에 공터에 모인 거지들이 술렁였다.
“그럼 우리를 이용한 거야?”
“그래도 염치는 있었나 보군. 본 방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사라진 걸 보면.”
“어쩐지. 그 악명 자자한 혈수존자와 망산초자가 거지들은 안 죽이는 게 이상하더라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그래도 본 방을 우롱한 건 사실이잖아?”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가는 소요 속에서 이립은 홀로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지금 이 상황을 개방에게 더없이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던 이립이 갑자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공터에 모여 있던 거지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립에게 모아졌다.
“드디어 방주께서 정신을 놓으셨군.”
“충격이 클 수밖에. 그 십대악인을, 그것도 둘이나 개방이 품고 있었다는 말인데.”
그 순간 뚝 웃음을 멈춘 이립이 초악량과 범계위를 향해 외쳤다.
“알고 보니 우리는 한 식구였구려!”
초악량과 범계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공터에 모여 있던 개방 방도들 역시 마찬가지.
자신들의 방주가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나 싶어 이립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한번 개방은 영원한 개방! 당시의 일은 우리가 이미 깔끔하게 수습을 했지! 그 당시 방주셨던 사부님과 내가 하오문과 협상을 진행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던지……. 때문에 이렇게 머리가 벗겨지지 않았겠나?”
홍두타라는 별호에 걸맞게 유쾌하게 자신의 이마를 두드린 이립이 한껏 으스댔다.
“그래도 끝까지 해결해 냈지. 왜냐? 우리 개방도의 일이니까!”
이립이 분위기를 묘하게 끌어갔다.
“그래서 두 분도 우리 거지들에게는 손속의 자비를 둔 것 아니오? 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는 이미 한 식구라는 동질감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범계위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어이, 거지 두목.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살기가 담긴 범계위의 눈빛에도 이립은 태연했다.
“일단 지금 상황은 정리해야 할 것 아닌가?”
범계위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 모습에 이립이 히죽 웃었다.
“이제 곧 연판장과 관련된 내용을 발표해야 할 텐데, 그 소식을 중원에 널리 전파할 사람들은 다름 아닌 여기 있는 본 방의 거지들일세.”
“그런데?”
범계위의 반문에 이립이 싱긋 웃었다.
순간 범계위는 설명하기 힘든 불길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괜히 코 꿸 것 같은 예감이 든 것은 초악량 역시 마찬가지.
아니나 다를까.
“자고로 팔은 안으로 굽는 법. 같은 식구 일이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이 바로 우리 개방일세. 한데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까?”
“…….”
“알고 보니 개방이 도우려 했던 자들이 과거 개방을 기만하고 우롱했던 자들이라면? 더구나 그들이 십대악인이라면?”
“……!”
“이건 확실히 짚고 가자고. 아무리 내가 방주라지만 저 수많은 거지들을 일일이 설득하기란 불가능하다네.”
초악량이 싸늘해진 눈빛으로 이립을 노려봤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말 그대로 그럴듯한 명분을 쥐어 주자는 거지요. 저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명분?”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린 이립이 개방 방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들은 한때 우리와 한 바가지 밥을 먹어 온, 어엿한 개방 방도! 흉험한 도산검림 한가운데서도 이를 잊지 않고 본 방도에게는 단 한 번도 살수를 펼치지 않았다! 이 얼마나 의롭고 신의 있는 행동이란 말인가?”
태풍이 휘몰아치듯 이립이 말을 이어 갔다.
“험하고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금 개방의 품으로 귀의하길 저들이 바라니, 나 개방 방주 이립은 의리를 지켜 온 저들에게 마땅히 청의빈객(淸衣賓客)의 자리를 내어 주려 하노라!”
뜻을 같이하나 거지 대신 번듯한 신분을 지닌 개방의 귀한 손님.
그들을 가리켜 청의빈객이라 한다.
“이게 무슨 짓이지?”
불쾌함이 역력한 초악량의 눈빛에 이립이 능청스럽게 웃었다.
“아무리 개방 방도가 많아도 중원 각지에 이 소식을 빠르게 퍼트리기 위해서는 발에 땀 나게 뛰어다녀야 가능한 일입니다. 같은 식구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요.”
“…….”
“아니면 연판장과 관련한 내용은 조금 미룰까요?”
범계위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 단 의원이 그것 때문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금밖에 기회가 없습니다. 단 의원 덕에 한껏 분위기가 달아올랐는데, 여기서 그만둔다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그들의 마음도 얼어 버릴 것입니다.”
바위 위의 상황을 알 리 없는 개방 방도들은 이립의 말에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혈수존자와 망산초자가 우리 친구가 된다고?”
“본 방을 지켜 줄 고수가 늘어나는 셈인가?”
“그것도 어디 보통 고수야? 무려 천하오절이라고!”
“그래도 십대악인은 좀…….”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라고. 이미 저들은 신마의선과 한편이잖아. 신마의선은 우리 편이고.”
흘러가는 저간의 분위기에 초악량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공교로운 우연, 거기에 교활한 이립의 잔머리가 더해져 제대로 엮인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립은 단악선을 향해 친근한 미소를 건넸다.
“단 의원 의견은 어떤가?”
초악량과 범계위가 움찔했다.
‘저 망할 거지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단악선이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보다는 두 분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원수보다는 친구가 좋은 것 같지만요.”
결국 이립의 뜻대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었던 단악선마저 함락된 상황.
상황이 이쯤 되니 빠져나갈 구석이 전무했다.
시선을 마주한 초악량과 범계위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립이 호쾌하게 외쳤다.
“나 이립이 개방에게 묻노니 저들을 청의빈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인정하는가?”
“가(可)!”
“우리 거지들은 방주 뜻을 따르리다!”
“환영하오!”
개방 방도들이 초악량과 범계위를 받아들이는 것을 인정했다.
개중에는 간혹 불만 어린 목소리도 있었으나 압도적인 찬성의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순식간에 개방의 정식 일원이 된 초악량과 범계위는 그저 소태 씹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이립이 다시 한 번 타구봉을 휘둘러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곤 단악선에게 연판장을 건네받았다.
“소림사의 의발전인 혜공선사! 적벽화산의 당대 장문인 화산신검 진명진인!”
긴 시간에 걸쳐 연판장에 적힌 수결을 하나씩 읽어 나간 이립이 그들이 동의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들은 앞으로 무위가 정파인은 들어설 수 없는 금지(禁止)로 선포하는 것에 동의한다! 단 환자는 정사를 불문하고 들어설 수 있다! 만약 이를 어기는 자가 있다면 연판장에 동의한 명숙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으로 간주, 추후 일어나는 일에 대해 모든 책임이 본인에게 있음을 선언한다!”
이립이 연판장을 뒤쪽에 도열한 개방의 장로들에게 넘겼다.
연판장을 받아 그 안에 적힌 수결의 진위 여부를 확인한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방주인 이립이 연판장의 말미에 자신의 수결을 채워 넣었다.
이로써 완성된 연판장이 다시 단악선에게 건네졌다.
단악선이 벅찬 얼굴로 초악량과 범계위를 바라봤다.
드디어 그들이 마음 편히 머물 곳이 마련된 것이다.
그동안 여행하며 경험했던 온갖 기억과 감정이 홍수처럼 밀려들어 단악선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과 범계위가 다가섰다.
“수고했다.”
“고생했어, 단 의원.”
어깨를 두드리는 두 사람의 손에 단악선은 갑자기 울컥했다.
“고마워요.”
단악선이 이립과 다른 개방 방도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뜨거운 환호로 대답하는 개방이었다.
“나머지는 맡겨만 주시오!”
“며칠 안에 중원 전역에 오늘의 포고가 전해질 것이오!”
감격의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단악선을 초악량과 범계위가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난데없는 한 줄기 차가운 음성이 허공을 흔들었다.
“본 맹은 인정할 수 없어요.”
내공이 실린 날카로운 목소리가 긴 메아리를 남기며 사위로 퍼져 나갔다.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썰물처럼 양쪽으로 갈라지는 인파.
그 사이로 호위를 거느린 여인 한 명이 들어섰다.
“본 무림맹의 주축이 되는 오대세가. 그리고 휘하의 세가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연판장에 수결을 하지 않았어요.”
뜻밖의 불청객에 이립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보니 대무림맹의 맹주셨구려. 늦었지만 취임을 축하드리오.”
제갈연은 이립이 일부러 비꼬는 것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세는 커졌지만 이전보다 내실은 없는 새로운 무림맹을 은근히 돌려 까는 셈.
불쾌한 눈빛이 역력한 제갈연을 향해 이립이 약 올리듯 웃었다.
“하나 여기에는 분명 남궁세가 가주의 수결이 적혀 있소만?”
“그들이 오대세가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요? 본 맹이 인정한 곳만이 진정한 오대세가죠.”
차갑게 코웃음 친 이립이 제갈연을 쏘아봤다.
“원하는 게 뭐요?”
제갈연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본 맹은 대화를 원해요. 그 협상의 여지에 따라 어쩌면 서로가 원하는 바를 모색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단악선이 앞으로 나섰다.
“맹주님의 말씀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
제갈연의 얼굴에 불쾌함이 떠올랐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애송이가 개방 방주와의 대화에 끼어든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악선은 그녀의 눈빛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말을 이어 갔다.
“연판장에 수결을 하신 분들 중 어느 누구도 협상이나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어요. 맹주님의 제안은 그분들의 순수한 호의를 모욕하는 것이에요.”
“건방진…….”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단악선을 노려보던 제갈연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화사하게 웃었다.
“모두의 입장은 다른 법이니까요.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을 분명 찾을 수 있을…….”
그러나 제갈연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불쑥 끼어든 음성이 그녀의 말을 잘랐기 때문이다.
“미친년인가?”
범계위.
“제정신이었다면 이렇게 제 발로 죽을 자리에 걸어 들어오지 못했을 테지.”
그리고 초악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