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69)
신마의선-169화(169/500)
신마의선 (169)
“……!”
두 사람의 말에 제갈연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올려다보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조용히 속삭였다.
“걱정 마라. 오늘처럼 좋은 날 굳이 피를 볼 생각은 없으니까.”
그렇게 단악선을 안심시킨 초악량이 제갈연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방금 전의 온화한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욱한 살기만이 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너희들의 수결은 받지 않겠다.”
의아해하던 제갈연은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흠칫했다.
“그러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찾아와라. 무위는 너희에게 금지가 아니니까.”
범계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벌써부터 저들의 방문이 기대되는 범계위였다.
“성심성의를 다해 환대해 주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개방 제자들 사이에서 웃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반면 제갈연은 웃을 수 없었다.
끔찍한 살의가 휘몰아치는 두 사람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그대로 온몸이 서걱서걱 잘려 나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립이 다시 한 번 외쳤다.
“개방의 모든 방도는 무위가 정파의 금지로 선포된 것을 중원 곳곳에 널리 알려라! 이는 곧 우리 개방 친구들의 일이니!”
이립은 유독 개방과 단악선 일행의 관계를 강조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터에 운집한 거지들 사이에서 일제히 대답이 터져 나왔다.
“숭상협의(崇尙俠義)! 천하개방(天下丐幇)!”
쩌렁하게 울리는 하나 된 목소리.
그 안에 담긴 개방의 의지가 제갈연을 압박했다.
이립을 쏘아보던 제갈연의 시선이 초악량과 범계위를 지나 단악선에게 멈춰 섰다.
제갈연이 분한 눈빛을 흘렸지만 이곳에서 그녀가 지닌 영향력은 극히 미미했다.
결국 이를 깨달은 제갈연이 천천히 돌아섰다.
올 때는 당당하게 찾아온 그녀였지만 돌아갈 때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무림맹의 인사들과 사라지자 단악선이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오늘의 환대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제가 음식을 좀 준비했어요. 모두 마음껏 드세요.”
단악선의 말을 신호로 잠시 후 공터에 수레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러 대의 수레에는 온갖 산해진미와 술 항아리가 가득했다.
단악선이 개방 대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신마상단에서 공들여 준비한 음식들이었다.
분주하게 음식을 실어 나르며 개방 방도들이 환호했다.
“벌써부터 친구 덕을 보는구먼!”
“고맙소이다! 잘 먹겠소!”
“얻어먹은 만큼 우리도 최선을 다하리다!”
단악선을 향해 저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한 거지들이 이내 삼삼오오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개방 대회의 뒤풀이 격인 연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장내는 처음처럼 시끌벅적해졌다.
거기에 술이 들어가자 더욱 목소리가 높아졌고, 곳곳에서 흥을 돋우는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거기에 춤사위까지.
그 떠들썩한 모습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연회를 만끽하는 개방 방도들을 뒤로한 채 단악선이 돌아섰다.
공터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 이르자 한설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단악선이 그녀에게 다가가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고마워요, 아주머니.”
한설화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롯이 네 의지와 노력으로 해낸 일이다.”
그리곤 단악선 뒤에 서 있는 초악량과 범계위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말아 올렸다.
“나와 저 두 거지는 그저 네 곁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
“……!”
초악량과 범계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지가 아니야! 그저 빈객일 뿐이라고!”
범계위의 항변에 한설화가 피식했다.
“두 사람 다 잘 어울리는데, 왜.”
초악량과 범계위가 발끈하려는 찰나, 단악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짓는 단악선.
그 모습에 세 사람은 언제 으르렁거렸냐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감숙성 무위.
원단을 지나 열흘째를 맞은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는 당일에 그치지 않고 보름 후인 원소절(元宵節)까지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해야 할 마을.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썰렁했다.
매년 열리던 사자춤 공연도 없었고, 덕담을 주고받아야 할 사람들도 문을 닫아걸고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
마을 곳곳에 내걸린 홍등과 건물들을 장식한 전지(剪紙)가 무색할 정도였다.
때문에 저자의 상인들은 시름이 깊어졌다.
모처럼 맞이한 대목이건만 예상치 못한 이유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무위에서 삼 대째 객잔을 운영해 온 성화객잔의 주인, 양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휴우…….”
양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서 두려움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점소이를 보고 있자니 지금 상황이 더욱 답답했다.
“어, 어떻게 할까요?”
난데없는 사태에 점소이는 받쳐 든 음식 접시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울먹였다.
양일이 점소이를 손짓해 불렀다.
“위험하니 우선 이쪽으로 와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객잔 안쪽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죽엇!”
와장창.
뒤이어 집기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물은 좀 부수지 말지…….”
계산대 뒤에 숨은 양일이 슬쩍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파악했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던 두 명의 무림인.
처음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주문했던 그들이 지금은 시퍼런 칼을 휘두르며 목숨 걸고 싸우고 있었다.
그 흉험한 광경에 그나마 몇 되지 않던 손님들도 비명을 지르며 객잔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서 신마상단에 알려라.”
“네!”
양일의 지시에 점소이가 재빨리 객잔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 순간.
“끄아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객잔에 울려 퍼졌다.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양일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피투성이가 된 장한이 시신을 내려다보며 섬뜩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거치도(鋸齒刀).
톱니를 연상시키는 비죽비죽한 칼날에 묻어난 살점과 핏물을 털어 낸 장한이 양일과 눈이 마주치자 히죽 웃더니 그대로 창문 밖으로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그래도 살인은 없었는데…….”
흉흉한 분위기가 생길 때마다 신마상단원들이 몸을 던져 막아 준 덕분에 사람이 죽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선도 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정말 이곳을 떠날 때가 된 것 같구나.”
후들거리는 다리로 객잔을 나선 양일이 거리를 둘러보며 한숨을 터트렸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우울해지는 상황이 저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냥 집어 가시면 안 됩니다!”
좌판을 지나치며 말도 없이 쓱 과일을 집어 가는 사내를 향해 이웃집 장 씨가 애처롭게 외쳤다.
그러나 값도 치르지 않은 사내는 오히려 뻔뻔히 대꾸했다.
“외상이야.”
“안 됩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입니까?”
장 씨가 목소리를 높이자 사내가 히죽 웃더니 험악한 얼굴을 그에게 들이밀었다.
“이게 네 목숨보다 비싼가?”
노골적인 협박에 장 씨가 창백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우지끈! 콰쾅!
요란한 소리에 양일이 눈을 들어 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지붕 위에서 어지럽게 뒤얽혀 싸우는 무림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바람에 여기저기 튀어 오른 기와 조각이 비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문제는 지나가던 무림인이 파편에 얻어맞더니 그 싸움에 난입해 더 큰 난리가 나 버렸다는 점이었다.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자들은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행인을 협박해 재물을 강탈하는 건 일쑤였고, 심지어 아이를 안고 있는 아녀자를 희롱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는 근래 들어 이곳 무위에서 비일비재한 일이 되어 있었다.
원단이 시작될 무렵.
한두 명씩 늘어난 사파 무림인들이 지금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비가 붙고, 싸움이 일어났다.
그나마 신마상단원들이 나타나면 물러서던 그들이었지만,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사람은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때였다.
“멈추시오!”
어디선가 달려온 사내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무림인들과 마주 섰다.
신마상단에 몸담고 있는 무인들이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한때 이곳의 순의방이었던 이의당을 이끌었던 당두, 소적산이 있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은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 말씀드렸을 텐데요.”
소적산과 대치한 무림인들이 소적산을 비웃었다.
“지금 우리보고 한 소리냐?”
방금 전 객잔에서 사람을 죽인 애꾸 사내가 살기를 흘리며 소적산을 노려봤다.
“싫다면?”
피부를 파고드는 강렬한 살기에 소적산이 멈칫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고 소리쳤다.
“그분들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그분들?”
고개를 갸웃하던 애꾸 사내, 독안룡(獨眼龍) 유귀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혈수존자와 망산초자, 십대악인인 그들이 고작 이런 일을 문제 삼는다고?”
처음에는 통하던 그 협박이 이제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곳 무위의 백성들을 보호하는 것이 그분들의 뜻이오!”
그 말에 다른 사파인들이 키득거렸다.
“악인들의 수좌 격인 그분들이 일개 백성을 신경 쓴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그들 앞에서 그런 헛소리를 늘어놓았다면 당장 너부터 무사하지 못할걸?”
한마디씩 거드는 주변의 호응이 유귀의 객기를 자극했다.
“그렇다면 시험해 보자.”
유귀가 거치도의 손잡이를 잡아 갔다.
“네놈을 죽여 보면 알 수 있겠지. 정말 그들이 화를 내는지 말이야. 너희 같은 잡것들을 과연 기억이나 하실까 의문이지만 말이야.”
마치 여흥을 즐기듯 유귀가 소적산을 향해 다가섰다.
“어디 막아 봐라.”
그 말과 함께 유귀가 벼락처럼 칼을 뽑았다.
그러나 그의 거치도는 소적산을 베지 못했다.
칼이 반쯤 뽑혀 나오는 순간 난데없이 한 사람이 끼어들어 소적산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턱.
유귀가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의 손을 움켜쥔 상대를 확인했다.
“수전귀야!”
자신을 알아본 유귀를 향해 사무심이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이곳을 떠나시게.”
“뭐?”
“자네들은 이곳에 머물 자격이 없네.”
그렇게 말한 사무심이 다른 사파인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다른 분들도 잘 듣고 명심하시오. 이곳의 백성들이야말로 진정한 이곳의 주인이오. 그리고 당신들은 손님이오. 만약 손님으로서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곳에 머물 수 없소.”
“헛소리!”
사무심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유귀가 힘껏 칼을 뽑으려 했다.
우두둑.
“크아악!”
비명을 지르며 유귀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유귀의 의도를 파악한 사무심이 손가락에 힘을 주어 도파를 움켜쥔 유귀의 손을 그대로 짓이겨 버린 것이다.
압도적인 사무심의 무위에 장내는 일순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때였다.
“그렇다면 객은 어떻게 예의를 갖춰야 하는 것인가?”
질문을 던지며 장내로 들어서는 한 사람이 있었다.
지독하리만치 살기로 점철된 냉혹한 눈빛을 지닌 노인이었다.
그는 독특하게도 헐렁한 소매로 손을 가리고 있었는데, 온갖 색상의 천을 기워 넣은 알록달록한 장포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악귀의 형상이 수놓아져 있었다.
‘거령노군(巨靈老君)!’
단번에 그의 정체를 깨달은 사무심이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무양 일대에서 악명 높은 그는 새로 십대악인을 뽑는다면 단번에 그 안에 이름을 올릴 만큼 고강한 무공과 잔인한 손속으로 유명했다.
드디어 마주치기 꺼려지는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심은 차분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이곳 무위의 원칙은 분명합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에게 피해를 끼칠 경우 불문곡직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불문곡직이라…….”
사무심의 말을 곱씹던 고위광이 히죽 웃었다.
“그런데 그걸 누가 판단하고 결정하지? 설마 그게 자네는 아니겠지?”
“…….”
“미리 말해 두는데 나는 그들도 두렵지 않네.”
고위광이 말하는 그들이 누구를 뜻하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위광을 응시하던 사무심이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분명 경고했습니다.”
“경고?”
고위광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뭉클거리며 쏟아졌다.
“너 따위가 감히 노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