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7)
신마의선-17화(17/500)
신마의선 (17)
“헉헉!”
소적산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산을 내달렸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만큼 힘들었지만, 한시도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약속했던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일 각.
‘늦지 않은 건가?’
잠깐 한눈을 팔던 그 때, 소적산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발목이 걸려 균형을 잃고 나뒹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차가운 단검이 목 위에 올려진 뒤였다.
“이 씨☓놈이!”
뒤늦게 자신을 올라탄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소적산이 욕설을 내뱉었다.
가휘섭이었다.
그때 가휘섭이 소적산의 입에 무언가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삼켜, 뒤지기 싫으면.”
목 위에 올려져 있던 단검이 한 치 정도 파고들었다.
꿀꺽.
소적산은 입안의 단약을 삼켰다. 지금으로선 달리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가휘섭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네가 삼킨 것은 흑주적갈독(黑蛛赤葛毒)이다.”
“……!”
소적산의 눈빛이 흔들렸다.
남만의 오지에서 발견된다는 거미.
일단 물리면 하루가 지나지 않아 온몸에 칡이 휘감은 것 같은 붉은 자국을 남긴 채 절명한다는 무서운 독물이다.
“알아낸 것을 말한 뒤 이대로 돌아가라. 그리고 내일 나를 찾아와. 해약은 그때 주지.”
“싫다면?”
가휘섭이 단검을 움직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기랄!’
소적산은 열불이 치밀었다. 지칠 대로 지친 자신과 달리 놈은 아직도 쌩쌩했다.
‘교활한 자식!’
뭐 빠지게 뛰어다녔던 자신과 달리 놈은 처음부터 이곳에 은신한 채 체력을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운 좋게 이곳을 벗어난다 해도 놈은 해약을 대가로 지금까지 일궈 놓은 이의당(二義黨)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들 것이 분명했다.
죽으면 죽었지 그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속아 신세를 망친 사람들이 어디 한두 명이던가. 유흥가에서 보호세를 걷으며 사는 순의방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건만, 놈에겐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죽여.”
가휘섭의 악랄하게 웃었다.
“그게 소원이라면.”
막 가휘섭이 소적산의 목을 그으려던 순간이었다.
“뭐 하냐? 너희들.”
가휘섭이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대머리 거한이 지척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소적산이 황급히 소리쳤다.
“찾았습니다! 그 소년을 무림맹 무사들이 데리고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무림맹?”
“네. 듣기로는 악명 높은 사파인과 연루가 되었다고…….”
“그래? 그래서 어디야?”
“네?”
“그놈들이 있는 곳.”
“처, 청화객잔입니다.”
범계위가 소적산과 가휘섭의 목덜미를 움켜쥐곤 곧장 신형을 날렸다.
지면이 순식간에 멀어지는 광경에 소적산은 오금이 저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가공할 신법이었다.
* * *
톡톡.
곽가가 짜증 가득한 시선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고민이 생겼을 때 나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눈치 빠른 수하 하나가 술을 따르며 말했다.
“말을 타고 출발했다고 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곽가가 말없이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채 절반도 마시지 않고 술잔을 내려놨다.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왔나 보군.”
곽가가 씨익 웃었다.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각인 걸 보면 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이다.
잠시 후 별채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섰다.
곽가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가 기다렸던 풍진성이 아닌, 처음 보는 낯선 인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온몸의 피가 싸늘히 식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살기!’
상대의 눈빛 너머 일렁이는 명백한 살의는 술기운을 단번에 날려 버릴 만큼 전율스러웠다.
“풍진성, 그자가 보냈나?”
초악량은 실소했다.
당금 강호에 누가 감히 혈수존자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뭔가 착각을 한 모양인데, 굳이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
곽가가 자신의 칼을 움켜쥐었다.
“재미있군. 파사단을 상대로 살수 따위를 보내다니.”
곽가는 지금 이 상황을 은근히 반기고 있었다. 이 일로 풍진성은 자신의 충실한 개가 될 것이다.
“나서지 마라.”
곽가가 도열한 수하들에게 명령한 후 말했다.
“어디 실력을 좀 볼까?”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칼이 허공을 찢고 나아갔다.
칼에서 뿜어지는 새파란 광채가 순식간에 초악량을 에워쌌다.
하나 초악량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칼이 미간을 향해 떨어지는 순간 손을 들어 칼끝을 튕겼을 뿐이다.
칼을 쥐고 있던 곽가의 신형이 순식간에 허공에서 뒤집어졌다.
쿠웅!
곽가는 무거운 충격음과 함께 마룻바닥에 처박혔다.
“……!”
영문도 모른 채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곽가가 경악한 눈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사량발천근(四兩拔千斤)!’
혹은 이화접목(梨花接木)이라고도 불리는 무학의 정수.
힘의 방향과 흐름을 틀어 상대의 힘으로 적을 제압하는 절정의 수법이었다. 곽가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살수 따위가 아니야!’
돈 몇 푼에 칼을 파는 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느껴졌다.
이는 일대종사급의 존재감이다.
“설마…….”
그 순간 곽가의 뇌리에 벼락이 내리쳤다. 자신들이 이곳 무위에 파견된 이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혈수존자?”
초악량이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날 잡으러 왔다더니 이제야 알아보는가?”
곽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술을 마셨다곤 하나 이는 변명이 될 수 없었다. 용모파기에 적혀 있는 얼굴 그대로인데 어찌 몰라본 것일까.
꽈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뒤쪽의 건물 벽이 무너져 내린 것도 그때였다. 뿌연 먼지 사이로 일렁이는 핏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곽가가 본능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살기에 몸이 멋대로 반응한 것이다.
섬뜩한 칼 그림자가 폭발하듯 상대를 집어삼켰다.
시퍼런 칼날이 전신을 난도질하려는 찰나 범계위가 그림자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콰득.
곽가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맹렬한 기세로 휘둘렀던 칼이 맨손에 잡혀 버린 것이다.
‘미친!’
대경실색한 곽가가 사력을 다해 칼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이마에 푸른 힘줄이 돋았다.
기다렸다는 듯 범계위도 칼을 움켜쥔 손에 진기를 주입했다.
그 순간 곽가는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반발력이 자신의 진기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의 칼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나 싶더니, 그대로 쇳물로 녹아 후드득 떨어졌다.
“헉!”
곽가가 헛바람을 들이켜며 황급히 물러섰다.
그 순간 범계위가 양손을 뻗었다. 넋을 잃고 있던 파사단원 두 명이 그의 손에 붙들렸다.
“컥!”
“커헉!”
솥뚜껑 같은 손이 머리를 움켜쥐자 파사단원 둘이 허공에 매달린 채 발버둥을 쳤다.
퍼헉!
그 순간 두 사람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사람의 두개골을 짓이겨 버린 가공할 악력에 곽가가 기겁하는 사이 머리를 잃은 시신이 흥건한 핏물 위로 무너졌다.
그제야 곽가는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다.
“망산초자!”
범계위가 빠드득 이를 갈며 곽가를 노려봤다.
“너냐? 우리 단 의원 건드린 놈이.”
* * *
청화객잔과 멀지 않은 뒷골목.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은신하고 있던 소적산과 가휘섭은 화들짝 놀라야 했다. 청화객잔 방향에서 난데없이 불길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저긴…….’
파사단이 쓰고 있는 별채였다.
충천하는 화광을 목도한 소적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불길에서 뛰쳐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명백했다.
이미 생존자가 없다는 뜻.
‘파사단이 전멸했다고?’
멍한 눈으로 불길을 바라보던 소적산이 정신을 차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뒤늦게 화마를 목도한 사람들이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가휘섭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욕지거리를 뱉었다.
“이런 씨☓…….”
가휘섭이 몸을 돌려 가려는데 소적산이 붙들었다.
“어디 가는 거지? 그 괴물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소적산의 만류에 가휘섭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지?”
“……?”
“이 꼴이 났는데, 무림맹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
그제야 소적상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무림맹이 움직이는 순간 우리 같은 잔챙이들이 갈려 나가는 건 순식간이야.”
가휘섭의 눈에 감출 수 없는 짜증이 드러났다.
“씨☓, 더럽게 꼬였어. 어쩌다 이런 일에 휩쓸려서는…….”
남은 방법은 먼저 무림맹에 알리는 길뿐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보를 넘긴다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이 될 터.
그것만이 유일한 살길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가휘섭이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반면 소적산은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그 자리를 지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휘섭과 한통속으로 엮이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차라리 비상(砒霜)을 먹고 죽지.’
무엇보다 대머리 악귀의 뜻을 거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충천하는 화광을 뒤로한 채 범계위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때였다.
핏발 가득 선 눈의 범계위.
쏟아지는 자욱한 살기에 소적산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젠장!’
살기 위해 그렇게 발버둥 쳤건만…….
소적산이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슬쩍 눈을 떠 대머리 거한을 바라봤다.
‘뭘 먹고 있는 거지?’
품속에서 꺼낸 환약.
겉을 싸고 있던 밀랍을 벗기지도 않고 통째로 입에 넣어 우걱우걱 씹는 범계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광기로 번들거리던 범계위의 눈빛이 점차 맑아지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뿜어내던 살기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왜 너 혼자냐?”
“그, 그게…….”
소적산이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였다.
“끄아악!”
그 순간 멀리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가휘섭이 달아난 방향이었다.
잠시 후.
골목을 돌아 사라졌던 가휘섭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더니 애원하듯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을 잡은 사람은 범계위였다.
동시에 그의 눈과 입, 그리고 코와 귀에서 시뻘건 화염이 솟구쳤다.
“헉!”
소적산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불과 한 호흡 만에 가휘섭은 새카만 재로 변해 버렸다.
퍼석.
바닥에 부딪친 시신이 가루가 되어 산산이 흩뿌려졌다.
그 모골 송연한 광경에 소적산은 그저 입만 뻥긋거릴 뿐이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어?”
동시에 소적산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옷 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은 지독한 열기가 느껴진 것도 동시였다.
마치 혈관을 타고 용암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끄어어!”
그대로 주저앉아 비명을 터트리는 소적산을 향해 범계위가 물었다.
“너는 왜 도망가지 않았지?”
그 순간 소적산은 깨달았다.
가휘섭이 타 죽은 것도, 자신이 겪는 이 뜨거움도 그와 관련이 있었다.
소적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약조했기 때문입니다. 대인과…….”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범계위가 씨익 웃으며 손을 털자 지옥 같은 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옷에서 나는 연기가 아니었다면 꿈을 꾼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 이게 대체……?”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제법 강단이 있는 녀석이군.”
소적산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하아…….”
소적산이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가휘섭의 경우만 봐도 그랬다.
딴에는 살길을 모색한다고 잔머리를 굴렸지만 결국 제 발로 죽음을 자초한 셈이다. 저들은 처음부터 어찌해 볼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소적산이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그런 소적산을 내려다보며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은 잊어라.”
소적산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 수 있다는 희망도 잠시, 범계위가 명령하듯 말했다.
“잘 지키고.”
“네?”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소적산을 향해 범계위가 청화객잔 쪽을 가리켰다.
“저놈들 왜 죽었는지 알지?”
소적산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단 의원이 이 마을에서 눈곱만한 흠집이라도 나면 앞으로 모두 네 책임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단 의원이 배가 고파도 네 책임이다.”
“네?”
“단 의원이 심심해도 네 책임이고, 단 의원이 힘들어도 네 책임이다. 단 의원이 여자를 원하는데 안 넘어와도 네 책임…….”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그만 가자.”
마지못해 돌아서던 범계위가 소적산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명심해라. 다 네놈 책임이다.”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잊으라는 거야? 지키라는 거야?’
어느 말에 따라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소적산은 일단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