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70)
신마의선-170화(170/500)
신마의선 (170)
금방이라도 사무심과 일전을 벌일 것 같던 그가 잠시 멈칫했다.
당당한 사무심의 눈빛이 괜히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무언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야 이처럼 주눅 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세상 무서운 게 없는 그라 할지라도 혈수존자와 망산초자를 한꺼번에 적으로 돌리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거기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빙옥선자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
“흥!”
차가운 코웃음을 친 고위광이 서늘한 음성으로 경고했다.
“그래도 이곳 무위에 우리가 머물 곳을 마련해 준 공로가 없지 않으니 특별히 오늘은 한 번만 넘어가 주마. 그러나 두 번은 없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건방지게 지껄인다면 그날이 네놈 제삿날이 될 것이다.”
고위광이 신형을 돌려 성큼 걸음을 옮겼다.
눈치를 살피던 사파인 몇 명이 황급히 고위광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 모습에 사무심이 눈살을 찌푸렸다.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는군.”
이미 몇몇 고수들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달려온 능소밀이 주위를 둘러봤다.
잔혹하기로는 수위를 다툰다는 거령노군과 사무심이 일전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보고에 만사 제쳐 두고 달려온 것이다.
여차하면 손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사무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의 거령노군도 그분들의 존재는 부담스러웠던 모양일세.”
능소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사무심의 눈동자 속에 몰아치는 투지를 읽어 내곤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그 노마와 붙어 보실 생각이셨습니까?”
“걱정 말게. 내 몸 안에는 공청석유가 흐르고 있다네.”
사무심의 농담에도 능소밀은 웃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죽으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더구나 저 비열한 놈들이 합공이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아무리 사무심의 무공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하나 저 많은 숫자를 홀로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그러다 문득 사무심이 소적산을 향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아까부터 소적산이 장부를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뭔가?”
소적산이 적고 있던 장부를 사무심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독안룡 유귀, 객잔에서 살인 및 기물 파손.
―이매수 염당, 무전취식 칠 회 및 장 씨 협박.
―거령노군 고위광, 경고 무시 및 총관님 모욕. 혈수존자 선배님과 망산초자 선배님을 안중에도 없다고 지껄임.
마치 사서를 기록하듯 꼼꼼하게 적혀 있는 내용을 확인한 사무심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고위광은 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했지 안중에도 없다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슬쩍 고개를 돌려 장부를 확인한 능소밀도 피식피식 웃었다.
“아주 원한이 뼈에 사무쳤군그래?”
소적산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엮은 장부만 벌써 네 권째입니다.”
그 말에 사무심과 능소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분들이 빨리 돌아오셔야 할 텐데…….”
잔뜩 위축된 마을 사람들을 눈에 담은 사무심의 눈빛이 더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단악선은 기분이 좋았다.
무위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발은 가벼워졌고, 덩달아 신법도 쾌속해졌다.
경공을 펼치는 와중에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단악선의 모습에 나란히 달리던 세 사람이 흐뭇하게 웃었다.
집에 가는 게 저렇게 좋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무위에 도착한 단악선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늘 활기차고 생기 넘치던 저자가 한산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분위기는 둘째 치고 마을 밖으로 벗어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재도구가 잔뜩 실린 수레들.
축 늘어진 어깨와 우울한 표정은 하나같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한두 명도 아니었다.
당장 눈에 들어온 숫자만 해도 열 명 이상이었다.
그들을 지나치는 순간 곳곳에서 회한 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하다니…….”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대로 계속 버티다간 결국 죽고 말 걸세. 눈먼 칼에 맞아 죽거나, 분통이 터져 죽거나.”
“어떤 미친놈이 저 악귀 같은 놈들을 불러들인 거야?”
“듣자니 얼마 전에 이곳이 정파인들의 금지로 선포되었다 하더군. 그래서 사파 놈들이 몰려드는 거고.”
누군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신마의선인가 뭔가 하는 미친놈 때문에 정든 고향을 등져야 하다니…….”
단악선이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비로소 무언가 상황이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방금 욕설을 뱉은 사내의 얼굴이 눈에 익다는 사실을 깨달은 단악선이 곧장 그에게 다가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사내가 움찔하며 물러섰다.
“넌 누구냐?”
“저 모르시겠어요? 전에 시장에서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유심히 단악선의 얼굴을 뜯어보던 사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눈매며 코가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어? 혹시 임 씨네 약재상 들락거리던 그 꼬마?”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게 저였어요.”
“하지만 그때는 키가 작았는데?”
그가 단악선을 곧바로 떠올리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 년 동안 단악선의 키가 부쩍 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한숨을 쉬며 솔직하게 말했다.
“방금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던 신마의선이 바로 저예요. 최근에 강호에서 그렇게 불리고 있거든요.”
그 말에 사내를 비롯해 그와 대화를 나누던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네가 이 재앙을 초래한 원흉이라고?”
사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키가 자랐다곤 하나 단악선은 아직 청년이라 보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도 어린 단악선이 그 정도로 강호에 영향력을 지녔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사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난데없이 원인 모를 오한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원흉?”
뒤늦게 단악선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발견한 사내가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소름 끼치는 살기를 뿜어내는 세 사람의 위압감에 기가 질려 버린 것이다.
특히나 방금 입을 연 거구의 대머리는 꿈에서 볼까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에게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 간절한 눈빛에 세 사람은 솟구치는 노기를 애써 억누르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숨통을 억죄던 살기가 사라지자 사내와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들에게 단악선이 진심을 담아 부탁했다.
“어찌 된 연유인지 설명 좀 해 주세요.”
처음 입을 열었던 사내가 우울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최근 마을로 흉악한 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처음 머릿수가 적을 때는 그나마 신마상단의 눈치를 보는가 싶었는데, 그 수가 점점 많아지자 온갖 패악질을 일삼으며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신마상단도 애를 쓰곤 있지만 중과부적인 듯싶더구나.”
무위에 입성한 사파의 인물들 대부분은 정파의 추격에서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그런 만큼 믿는 구석이 하나쯤은 있었다.
그런 고수들이 대거 밀려들자 사무심과 능소밀, 그리고 이의당의 삼류 무사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단악선의 눈빛이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이런 결과를 바라고 연판장을 완성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에는 고민보다 앞서 해야 할 것이 있었다.
단악선이 마을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인데 본의 아니게 여러분을 힘들게 만들었어요. 정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던 단악선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그 모습에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 주변의 공기가 급격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사과를 해야 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열불이 치밀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힐끔거리던 마을 사람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그러니 이제 고개를 들어라. 남은 사람들이 고생이지 어차피 떠날 우리야, 뭐…….”
회한 어린 그들의 음성에 단악선이 눈을 들었다.
“기회를 주세요.”
“기회? 무슨 기회 말이냐?”
사람들의 반문에 단악선이 단호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사태를 정리하겠어요. 오늘 안에 전부 되돌려 놓을게요. 그러니 고향을 떠나는 건 조금만 미뤄 주세요.”
“하지만…….”
“알아요.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거. 그래도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저 또한 무위가 고향이에요. 그래서 이곳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싸워 왔고요. 그러니 저를 믿어 주세요.”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하며 이어 간 간곡한 설득에 마을 사람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들 역시 평생에 걸쳐 일궈 온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놈들의 패악질에는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때.
보다 못한 초악량이 앞으로 나섰다.
“하루만 더 기다려 주시오.”
범계위와 한설화 역시 한마디씩을 보탰다.
“하루는 무슨. 한 시진……. 아니, 반 시진 안에 정리하지.”
“그냥 정리하는 걸로 끝내지 않아.”
어느새 한설화 주위로 번져 가기 시작한 서릿발에 마을 사람들이 흠칫했다.
“단 의원의 고개를 숙이게 한 놈들을 그대로 둘 수 없지.”
초악량과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구나.”
“당연히 몇 배로 받아 내야지.”
실로 오랜만에 뜻을 같이하는 세 사람이었다.
잠시 후.
무위에 들어선 단악선은 흉흉한 마을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무위는 더 이상 단악선이 알던 곳이 아니었다.
인정 넘치던 상인들로 활기찼던 시장이 지금은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무거운 적만이 감도는 거리 곳곳에는 깨진 기와를 비롯한 온갖 쓰레기들이 즐비했다.
스산함마저 감도는 황폐한 마을 모습에 단악선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단악선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섰다.
“곡주님?”
반신반의한 얼굴로 다가서던 소적산이 이내 단악선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잘 지내셨어요?”
소적산을 마주한 단악선이 이내 쓰게 웃었다.
“하긴……. 잘 지내셨다면 마을이 이리될 리가 없었겠죠.”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이게 어디 소 당두님 탓인가요.”
단악선의 위로에 소적산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자신의 눈을 한 차례 찌르더니 몸을 떨었다.
‘두고 보자. 이놈들.’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억지로 끌어 올린 소적산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선명히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확인한 소적산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들었다.
“곡주니님! 어허허헝!”
소적산의 모습에 단악선이 당황했다.
“많이 힘드셨나 보군요.”
단악선의 위로에 소적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손수 작성한 장부들을 꺼냈다.
“이게 뭐죠?”
얼떨결에 장부를 받아 든 단악선이 장부를 펼쳤다.
단악선 곁에 있던 세 사람의 시선도 장부에 적힌 내용에 고정되었다.
그 안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사파인들의 만행.
그 내용에 단악선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런데 이걸로 부족했던지 소적산은 눈물을 훔쳐 낸 손으로 직접 장부를 넘겨 가장 뒤쪽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한 부분을 콕 짚어 주더니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단악선이 그 부분을 확인한 순간.
초악량의 검미가 꿈틀했다.
범계위와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사실 그들에게 있어 사파인들의 악행 자체는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지금껏 무림인으로 지내 오며 그보다 더한 악행을 무수히 겪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부 말미에 적힌 내용에 관해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심독조(割心毒爪) 염기. 초악량은 부상으로 인해 이제 한물갔다고 평가함. 그 말에 청금귀수(淸琴鬼手) 이한영과 독릉산응(毒陵山鷹) 조맹방이 동의. 셋이 연수하면 충분히 비벼 볼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함.
―범계위 머리는 워낙 반들거려 파리도 미끄러질 거라며 혈음노봉(血陰老蜂) 양익천이 떠들어 댐. 같이 웃은 사람은 조영곡, 이필수, 조자릉.
―한설화는 전설 속 강시가 틀림없다고 구유음소(九幽吟嘯) 장곡이 지껄이자, 태양 앞에 어둠이 스러지듯 자신이 한번 품으면 나긋나긋해질 거라며 색심염사(色心焰士) 조귀영이 거듦.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까지.
셋 다 모두 웃었다.
분노가 한계를 넘으니 오히려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됐다.’
뜻하는 바를 이룬 소적산은 울음을 슬슬 그치더니 슬쩍 옆으로 물러났다.
괜히 앞에 서서 그 분노를 자신이 감당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단악선은 소적산의 등을 다독여 주고 있었다.
“이 자식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차가운 눈빛을 흘리는 초악량과 달리 범계위는 이미 사자후를 터트리고 있었다.
“전부 집합! 이 개새끼들아!”
천지를 뒤흔드는 포효가 무위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