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71)
신마의선-171화(171/500)
신마의선 (171)
무위의 성화객잔.
주인마저 영업을 포기한 객잔 내부에는 부서진 집기들과 탁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객잔 내부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나마 멀쩡한 팔선탁을 중심으로 오십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집결한 것이다.
하나같이 이곳 무위가 금지로 선포되자마자 달려온 사파인들이었다.
가장 상석인 팔선탁의 정중앙 자리는 거령노군 고위광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할심독조 염기와 혈음노봉 양익천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위광에 비해 다소 무공이 떨어지지만 강호에서의 위상만큼은 부족함이 없는 마두들.
염기는 강철도 찢어발기는 갈고리 같은 조수(爪手)로 유명했고, 양익천은 핏빛이 감도는 단창을 귀신처럼 쓰는 걸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 두 사람이 심복을 자처하고 나서자 고위광은 굳이 사양할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공만큼 거느린 머릿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 슬슬 대비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은근히 의견을 개진하는 양익천의 말에 고위광이 슬쩍 웃었다.
짐짓 여유로운 그의 느긋함에 양익천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염기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상단 놈들의 말에 따르면 혈수존자와 망산초자가 곧 이곳에 도착할 것이라 합니다.”
고위광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내가 그들보다 못해 보이더냐?”
고위광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자욱한 안광을 마주한 사파인들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근 들어 더욱 무공이 일취월장한 고위광이었다.
십대악인 대부분이 사라진 지금, 그가 차지하는 사파 무림 내의 위상은 초악량과 범계위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그만큼 대단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곳 무위에 입성한 이후 고위광의 손에 죽은 자가 벌써 다섯 명이 넘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객잔 내에는 그 시신을 직접 치운 자도 있었다.
문제는 그 다섯 명이 하나같이 대단한 고수였다는 점이었다.
자신과 반목하는 고수들을 망설임 없이 유부로 떠밀어 버린 단호한 손속.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무공을 과시하는 것만으로도 고위광은 어렵지 않게 이 자리의 수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셋이나 되지 않습니까?”
조심스럽게 진언하는 염기를 향해 고위광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들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힘을 모으면 절대 건드리지 못한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염기의 반문에 고위광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생각해 봐라. 놈들이 이곳 무위를 금지로 선포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멀뚱하게 서로의 눈만 바라보는 모습에 고위광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의 목적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단언하듯 고위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련(邪道聯), 바로 사도 연합을 결성하기 위해서다.”
그 말에 장내에 모인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모아진 시선들을 의식하며 고위광이 설명을 이어 갔다.
“정파에 원한을 지닌 자들을 모아 하나의 세력을 구축하려는 것이겠지. 이를 위해 연판장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무림맹의 구파일방 이탈을 유도했다. 덕분에 무림맹은 세가 연합으로 격하된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 상황에서 사파인들에게 구심점을 제공해 그 힘을 하나로 결속한다면 무림 전체에 가장 강한 세력이 탄생하는 것이다.”
“오오!”
“과연 그런 의도가 감추어져 있었던 겁니까?”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탄성 사이로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연판장을 주도한 것은 신마의선이라 불리는 어린 의원 아닙니까? 지금껏 그가 보인 행보는 우리와 사뭇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고위광의 말에 질문을 던진 청금귀수 이한영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는 신의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마의의 아들이기도 하다.”
“아!”
“아주 머리가 좋은 꼬마지. 제 아비가 쌓아 올린 유대를 이용해 정파를 속여 금지를 만들고, 어미의 명성을 이용해 사파인들을 휘하로 거느려 무림 전체를 장악할 심산인 게다.”
충분히 일리 있는 고위광의 가정에 모두가 납득했다.
“결국 놈들이 원하는 건 세력이다. 그만큼 머릿수가 지닌 가치가 중요해지는 셈이지. 하나 정작 세력을 유지할 사파인들이 텃세에 못 이겨 모두 떠나 버리면 금지를 만든 것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양익천이 들고 있던 단창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가 뭉쳐야 하는 것이군요.”
“그렇다. 우리만의 세력을 형성해야 저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앞으로 있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도련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지.”
고위광의 뛰어난 혜안에 사파인들이 탄복했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그런 말이 생겨난 데에는 과연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저들도 분명 기선을 제압하려 할 것이다.”
고위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둥 같은 목소리가 객잔을 뒤흔들었다.
―전부 집합! 이 개새끼들아!
그 음성에 담긴 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건물이 들썩이며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놀라서 당황한 중인들과 달리 고위광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지.”
고위광이 자리에서 일어나 객잔 밖으로 나섰다.
“모두 내 뒤에 서라. 이만한 머릿수를 지닌 우리를 놈들은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보무도 당당한 고위광의 태도에 다른 사파인들 역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 * *
무위 시장의 중앙에 위치한 넓은 공간.
원래는 장터가 어우러지는 행사인 묘회(廟會) 때마다 사자춤 공연이 열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텅 비어 한산하기만 했다.
그곳에서 단악선 일행은 사무심, 능소밀과 재회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웃으며 건넨 사무심의 인사에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요. 일이 이렇게 될지는 몰랐어요.”
단악선의 사과에 사무심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제 능력이 부족하여 일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상황을 바로잡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선배님들께서도 오셨으니까요.”
능소밀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다른 세 사람 쪽을 힐끗거렸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선배님들께서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은데요.”
아니나 다를까.
한바탕 혈풍이 몰아칠 분위기였다.
불안해하는 능소밀을 향해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세 분도 많이 달라지셨어요. 예전보다 훨씬 인자하고 온화해지셨거든요.”
능소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인자하고 온화해지셨다고요?”
지금도 소름 끼치는 기파를 뿜어 대는 세 사람에게 과연 가당키나 한 말일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빨리빨리 안 튀어 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사파인들을 향해 범계위가 노성을 터트렸다.
그 기세에 움찔한 몇몇 사파인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범계위 앞에 섰다.
그중에는 팔비영호(八臂獰虎)라 불리는 곽충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나름 자신의 명성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던 곽충이 범계위에게 인사를 건넸다.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법 친근한 척하기에 아는 놈인가 싶었는데,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소적산이 슬쩍 나섰다.
“자신이 범 선배님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하던데요?”
“쟤가 그랬다고?”
“네.”
소적산이 장부를 펼쳐 보였다.
“여기 적혀 있지 않습니까?”
장부에 적혀 있는 곽충의 명호를 확인한 범계위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 다리 여덟 개 달린 호랑이 본 적 있냐?”
범계위의 물음에 소적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호랑이가 있다면 진즉 강호에 알려졌겠지요.”
“그치? 그렇게 이상하게 생긴 호랑이를 만났다면 내가 기억 못 할 리 없지.”
그 말에 곽충이 황당한 얼굴로 소리쳤다.
“팔 년 전 곡부에서 뵙지 않았습니까?”
범계위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냐?”
“예? 아뇨, 따지는 게 아니라…….”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범계위가 소적산을 향해 물었다.
“이놈. 다른 짓은 한 거 없어?”
장부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소적산이 곧바로 대답했다.
“무전취식 세 건. 아녀자 희롱 두 건입니다.”
“그래?”
눈살을 찌푸린 범계위가 냅다 손을 뻗어 곽충의 발목을 낚아챘다.
“억!”
곽충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명 손이 날아드는 것을 보았는데, 보고도 피할 수가 없었다.
졸지에 범계위의 손에 거꾸로 매달린 곽충이 황당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그 말에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이런 짓.”
꽈앙!
“컥!”
폭음과 함께 곽충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범계위가 그대로 팔을 휘둘러 그를 바닥에 패대기쳐 버린 것이다.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쾅쾅쾅쾅!
밤계위가 연달아 곽충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팔 여덟 개 달린 사나운 호랑이라는 명호가 무색하게 곽충은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하지 못했다.
첫 번째 공격에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갔고, 두 번째 공격에 아예 혼절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름 고수로 평가받는 곽충의 처참한 모습에 중인들은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개구리처럼 축 널브러진 곽충을 멀리 집어 던진 범계위가 서슬 퍼런 눈빛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넌 추방이다.”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장내에 운집한 사파인들이 흠칫했다.
“멋대로 설치라고 금지를 만든 게 아니거든.”
한 차례 좌중을 쓸어 본 범계위가 소적산의 손에서 장부를 낚아챘다.
“지금부터 이름을 부르는 놈들은 앞으로 나서라.”
한참 동안 이름을 열거한 범계위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섬뜩하게 웃으며 입을 연 범계위의 말에 호명된 사파인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한 놈씩 처리하기 귀찮으니까 전부 다 덤벼.”
소름 끼치는 범계위의 눈빛 앞에 사파인들은 그대로 얼어 버렸다.
나름 강호에서 어깨를 펴고 다녔던 명호도, 어느 정도 자부하던 무공도 망산초자라 불리는 재앙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어찌 함께 사도를 걷는 동도들을 핍박하는 것이오?”
사파인들 사이가 썰물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삼엄한 기파를 흘리며 한 사람이 들어섰다.
범계위와 시선을 마주한 고위광이 짐짓 근엄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성정으로 어찌 함께 큰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을까.”
“어?”
범계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거령노군? 너도 와 있었어?”
대뜸 반말을 날리는 범계위의 모습에 고위광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경망스러운 언행은 여전하군.”
초악량이 피식 실소했다.
“살려 달라고 엎드려 빌던 놈이 할 말은 아니지. 그것도 눈물 콧물 쏟으면서 말이야.”
“……!”
고위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던 치욕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 당당히 어깨를 폈다.
이미 많은 사파인이 그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범계위에게 호명되었던 사파인들마저 우르르 고위광 뒤로 몰려가 도열했다.
그나마 그만이 유일한 살길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 모습에 소적산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저자가 사파인들을 휘하로 거둔 이후 안하무인으로 설치는 사파인들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저놈은 무슨 죄를 지었는데?”
범계위의 물음에 소적산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세 분 모두에게 불손한 언행을 일삼았습니다. 게다가…….”
소적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마침 범계위도 앞으로 나서던 상황.
그 바람에 세 사람의 어깨가 부딪쳤다.
세 사람의 눈빛이 어지럽게 뒤얽혔다.
“저놈은 내 거야.”
“아니, 내가 먼저다.”
“왜 끼어드는 거야? 내가 하고 있었잖아!”
이러다 그들이 먼저 싸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농밀한 살기가 사납게 휘몰아쳤다.
이때 능소밀이 재빨리 세 사람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능숙하게 움켜쥔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주먹 안에는 세 개의 산가지가 들려 있었다.
제비뽑기였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능소밀의 움직임에 소적산이 탄성을 흘렸다.
역시 상단의 단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세 사람은 언제 살기를 피워 올렸냐는 듯 말없이 산가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 세 사람이 동시에 손을 뻗어 산가지를 잡아 갔다.
그런데 그 동작이 일생일대의 적을 조우한 것처럼 신중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쳇!”
“빌어먹을!”
분한 눈빛을 흘리는 두 사람과 달리 한 사람은 조용히 웃었다.
바로 한설화였다. 그녀는 앞으로 나서며 소적산에게 물었다.
“저놈이 내게 뭐라고 했다고?”
“늙고 얼어붙은 꽃도 같은 이불 아래서 따뜻하게 덥혀 주면 향기가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한설화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