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72)
신마의선-172화(172/500)
신마의선 (172)
한설화가 다가서자 고위광이 흠칫했다.
분명 눈은 웃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섬뜩한 살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명성으로 나를 겁박할 생각이라면…….”
입을 열던 고위광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설화가 출수를 했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 판단한 고위광이 전력을 끌어 올렸다.
헐렁하던 그의 소맷자락이 크게 부풀어 오르나 싶더니, 시커멓게 물든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것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괴이한 느낌을 자아내는 손이었다.
꽈앙!
손과 손이 부딪쳤음에도 벽력탄이 폭발한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고위광의 눈에 경악의 감정이 담겼다.
한설화의 공격이 단순히 전력을 떠보는 것이 아닌, 진짜 살의가 담긴 일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짜 해보자는 것이오?”
고위광의 외침에도 한설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말없이 재차 손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을 뿐이다.
‘감히!’
고위광의 눈에 짙은 분노가 떠올랐다.
강호의 소문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과 사람을 거칠수록 더욱 과장되고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빙옥선자에 대한 소문 역시 마찬가지.
‘이쯤에서 나도 힘을 보여 줄 필요가 있지.’
오랜 세월 강호에 발길을 끊은 그녀였다.
초악량이나 범계위라면 모를까 그녀 정도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싶었다.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위해서라도 물러설 수 없다 판단한 고위광이 반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꽈앙!
전력을 실어 내려친 거령산수(巨靈散手)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혔다 느낀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이 손목과 어깨를 타고 올라와 그대로 내부를 진탕시켰다.
“컥!”
피를 토하며 뒷걸음질 치는 고위광의 눈에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노렸던 상대를 한 번도 비껴 간 적 없던 그의 성명절학.
거령산수가 이처럼 맥없이 무너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고위광의 머리털이 곤두선 것도 그때였다.
서늘하고 예리한 무언가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고위광은 급히 양손을 교차해 상체를 방비했다.
콰앙!
공터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폭음이 터져 나오며 한 사람의 몸이 훨훨 날아갔다.
고위광이었다.
실 끊어진 연처럼 한참을 날아간 고위광이 시장의 건물 하나를 무너뜨리며 처박혔다.
“크으윽……!”
고위광이 비틀거리며 신형을 일으켰다.
그의 두 팔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가까스로 가슴은 방비했으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손목뼈가 부러져 버린 것이다.
그 순간 한설화가 다시 한 번 손으로 허공을 내리그었다.
“……!”
길게 갈라진 가슴에서 솟구치는 자신의 핏물을 발견한 고위광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한설화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고, 둘 사이의 그 텅 빈 공간 사이에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허공을 그어 댄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치명적인 요혈을 고스란히 내어 준 것이다.
순간 고위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목에 닿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빠르다는 표현만으론 담아내지 못할 섬뜩한 기운.
육안으로 확인되는 예기도, 허공을 찢는 파공음도 없었다.
단지 뼈를 시리게 하는 예리한 기운이 어느 순간 턱 밑에 이르러 있을 뿐이었다.
“크아악!”
고위광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방에서 짓쳐 드는 얼음 칼.
난데없이 짓쳐 든 예리한 기운이 전방위에서 온몸을 난도질해 대고 있었다.
검기도 막아 내는 호신강기는 종잇장처럼 베여 나갔고, 고위광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만! 그마아안!”
고위광이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그를 에워쌌던 섬뜩한 기운이 사라졌다.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언제 공격을 했냐는 듯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고위광은 신음을 흘렸다.
소문일 뿐이라 여겼던 그녀의 신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자리에 모인 사파인들 역시 마찬가지.
압도적인 한설화의 무위에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이 나보다 뛰어난 고수라는 건 인정하오!”
고위광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하나 이런 식으로 우리와 세력을 규합할 수 있을 것 같소?”
한설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순간 고위광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끄악!”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한 자루 얼음 창이 그의 허벅지를 꿰뚫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음 창은 하나가 아니었다.
한차례 허공이 일렁이나 싶더니…….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얼음 창의 숫자는 무려 세 개에 달했다.
푸푸푹.
세 자루 얼음 창이 고위광의 양어깨와 나머지 허벅지를 관통했다.
네 자루 얼음 창에 꿰어 피를 쏟아 내면서도 고위광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저들의 폭거를 좌시할 생각이냐!”
숨넘어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고위광은 뒤쪽의 사파인들을 향해 말을 이어 갔다.
“이대로 넋 놓고 당할 생각인가? 이대로 저들에게 굴복해 사도련 휘하로 흡수되면 평생을 비참한 노예로 숨죽이며 살아야 할 것이다! 싸우지 않으면 쟁취할 수 없다!”
고위광의 독려에 사파인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평생을 쫓긴 것으로도 모자라 나머지 인생마저 누군가의 주구로 전락할 수는 없었다.
“그분을 죽인다면 우리도 떠날 것이오!”
누군가 소리치자 사파인들 상당수가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아무리 우리가 힘을 숭상하는 무인이라지만 모든 것을 힘의 논리만 내세워 결정한다면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소?”
“맞소! 그렇게 결성된 사도련이 어찌 사파인들을 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제대로 된 대접을 원하오!”
군중 심리라는 게 으레 그렇듯 들불처럼 번진 열기가 그들의 이성을 잡아먹고 이내 몸집을 키워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실소했다.
“이곳에는 죄다 눈뜬장님들만 기어들어 온 것인가?”
의아해하던 중인들이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흠칫했다.
“명진호운(命盡怙運) 여맹수등(如盲守燈).”
목숨이 사라지고 있는데 운에 의지하는 건 맹인이 등불을 지키는 것과 같다는 의미.
법구경에 나오는 문구를 한 글자 비틀어 경고를 날린 것이다.
실제로 초악량은 이곳을 피로 씻어 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단악선만 아니었다면 저자들은 몇 번이고 죽었을 터.
범계위와 한설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로소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은 사파인들의 눈빛이 이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초악량이 다시 한 번 경고했다.
“새는 모이를 탐하다 목숨을 잃고, 사람은 욕심을 좇다 목숨을 잃는 법이지.”
범계위가 히죽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마녀는 자기 몫을 챙겼으니 나머지는 사이좋게 반반씩 나눕시다. 그렇지 않아도 손이 근질거리던 참이었거든.”
일대종사의 존재감을 지닌 두 사람이 내뿜는 살의에 중인들은 그만 아연실색했다.
그때 단악선이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한 차례 한숨을 내쉰 단악선이 중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전 사도련을 만들 생각이 없어요. 그와 비슷한 어떤 단체도 관심이 없고요.”
단악선의 말에 중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껏 사파의 연합 세력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던 그들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바로 신마의선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중원을 돌며 명숙들과 담판을 지어 연판장을 완성하고 이곳 무위를 정파의 금지로 선포한 당사자.
그런 만큼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나서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장내에 내려앉은 무거운 침묵을 깨며 단악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 그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고 싶을 뿐이었어요.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고향 같은 곳 말이에요.”
그 말에 중인들 중 몇 명의 눈빛이 흔들렸다.
“여긴 안전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할 분은 떠나세요.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안위 역시 지켜야 해요. 그게 이곳의 규칙이니까요.”
어느새 중인들의 시선은 단악선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하지만 어디에나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
끝내 고위광에게 동조한 무인 한 명이 반발하듯 소리쳤다.
“귀하가 연판장을 만들어 우리에게 머물 곳을 마련한 공로는 나 역시 인정하오. 하지만 무슨 권한으로 우리의 행동을 강제하는 것이오?”
단악선이 자신을 향해 외친 사람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전 권한이 없어요. 그래서 저와 뜻을 달리하는 분들에게는 이곳의 규칙을 적용하지 않을 거예요.”
단악선이 단호한 눈빛으로 사내를 응시했다.
“원하신다면 지금 말씀하세요. 이곳의 규칙 대신 그토록 좋아하시는 무림의 규칙을 적용시켜 드리죠.”
“……!”
중인들은 가슴 한편이 섬뜩해졌다.
뒤늦게 그것이 비수처럼 심장을 파고드는 눈빛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몇몇 사파인들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아직 약관에 한참 미치지도 못하는 아이의 눈빛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존재감.
위엄마저 느껴지는 눈빛에 소름이 끼쳤다.
괜히 말을 꺼내 본전도 못 건진 염기가 할심독조라는 명호가 무색하게 곧바로 꼬리를 말았다.
그 무서운 고위광이 저리된 마당에 함부로 나섰다 괜히 손해를 자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회를 드릴게요.”
단악선이 진지한 눈빛으로 중인들을 응시했다.
“이 책자에는 여러분들이 그동안 무위에서 저지른 악행들이 기재되어 있어요. 그러니 잘못한 분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세요. 그리고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러지 마세요. 그게 싫은 분은 여길 떠나세요.”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단호한 분위기에 중인들이 술렁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단악선이 쐐기를 박았다.
“앞으로 이곳은 사파인들의 안식처가 될 거예요.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가 따르고요. 의무가 싫고 권리만 누리고 싶은 분은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어요.”
그 말이 끝나자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중인들을 초악량이 노려보았다.
“너희 버러지들은 주어진 호의조차 감사히 여길 줄 모르는구나!”
화들짝 놀라는 중인들을 초악량이 준엄한 눈빛으로 꾸짖었다.
“단 의원은 너희에게 기회를 주었다. 사지 멀쩡하게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지. 그러니 결정해라. 이곳의 규율을 지킬 자신이 없는 자는 이대로 떠나라.”
범계위가 귀찮은 표정으로 중인들을 노려봤다.
“됐고! 그냥 전부 꺼져. 여기는 우리끼리만 살 테니까. 사도련인가 뭔가는 너희끼리 딴 데 가서 만들고!”
사무심과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저도 그게 더 나을 듯합니다.”
“맞습니다. 생각해 보니 애초에 연판장도 저들 때문에 만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곡주님과 선배님들이 오붓하게 지낼 목적은 이미 이루셨으니, 굳이 저들은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중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묘하게 흘러간 분위기가 애초의 예상과 크게 엇나갔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단 의원.”
“네, 아주머니.”
한설화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고위광을 가리켰다.
“이놈이 여기 살려면 내게 사과를 해야 하는 거지?”
“그래야겠죠?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용서가 전제되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사과를 받아 줘야 하는 건가?”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사과를 하는 건 본인의 마음이지만, 받아 주는 건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몫이죠. 어느 누가 그걸 강요할 수 있겠어요.”
그 말에 한설화가 조용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