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73)
신마의선-173화(173/500)
신마의선 (173)
“난 이놈이 사과를 해도 받아 줄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할 수 없죠. 그분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어요.”
“그럼 내가 직접 이놈을 추방하고 오지.”
단악선이 만류할 틈도 없이 한설화가 훌쩍 신형을 날렸다.
그러자 고위광의 사지를 관통하고 있던 얼음 창도 허공에 떠올랐다.
“끄아악!”
고위광이 처절한 비명을 남기며 맥없이 끌려갔다.
그 안쓰럽고 처량한 모습은 거령노군이라는 명호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중인들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엄청난 신법과 가공할 격공섭물을 동시에 펼치는 한설화의 신위에 기가 질려 버린 것이다.
반면 초악량은 한설화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차라리 그냥 죽는 게 편했을 텐데.”
그 말에 중인들의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질려 갔다.
완전히 얼어 버린 그들을 향해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내일 정오까지 시간을 드릴게요. 이곳에 머물고 싶으신 분은 그동안 잘못한 분들에게 용서를 구하세요. 하나하나 모두 확인할 테니까 속일 생각은 마시고요. 만약 용서를 받는 과정에 불합리한 점이 있었다면, 단순한 추방으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방금 보셨다시피요.”
“단순히 무위에서만 쫓겨나는 게 아니다.”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소름 끼치는 웃음을 말아 올렸다.
범계위의 눈빛을 마주한 사파인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런 그들의 면면을 한 명씩 노려보며 범계위가 말했다.
“아예 이승에서 추방해 주지.”
* * *
땅거미가 내려앉는 저녁 무렵.
단악선은 신마곡에 들어섰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보는 익숙한 풍경에 단악선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다행히 무위와 달리 이곳은 예전 그대로였다.
병풍처럼 사방을 에워싼 깎아지른 절벽.
그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노을을 머금어 반짝이는 뿌연 물안개는 다시 봐도 장관이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정겨운 운치를 만끽하길 잠시.
단악선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춰 섰다.
계곡 입구에 자리 잡은 돌무더기.
불가해(不可解)라 불리던 강호의 전설적인 기인, 무불능요(無不能要) 탁요신의 걸작이라 불리는 기환진이 위치한 곳이었다.
하지만 단악선에게는 조금 의미가 달랐다.
돌무더기를 향해 다가선 단악선이 희미하게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서글픔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그 모습에 범계위는 괜히 울컥해졌다.
초악량 역시 마찬가지.
비록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여행 내내 단악선이 얼마나 이곳을 그리워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긴 정말 그대로네요.”
짐짓 쾌활한 단악선의 음성에 사무심이 빙그레 웃었다.
“과연 그럴까요?”
“네?”
“달라진 곳이 있는데, 못 보셨습니까?”
의아한 얼굴로 다시 주변을 둘러보던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어?”
그러고 보니 전에는 없던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저건 언제 지어진 건가요?”
“한 달 전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용도가 뭐죠? 처소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것 같은데요?”
단악선의 물음에 사무심이 의뭉스럽게 웃었다.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하며 건물을 향해 다가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눈에 이채를 발했다.
“어? 이건?”
코를 킁킁거리던 단악선이 건물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건물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유혹하듯 매력적인 향이 더욱 짙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덜컹.
“우와!”
건물의 문을 열어젖힌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 그대로 산처럼 쌓인 약재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약재 창고는 처음 봐요!”
탄성을 터트리는 단악선의 모습에 사무심과 능소밀이 시선을 마주하더니 만족스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토록 애쓴 보람이 있었다.
이처럼 기뻐하는 단악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그간 쏟아부은 노력이 아깝지가 않았다.
성큼 창고 안으로 들어선 단악선이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구획되어 잘 정리된 서랍장은 높이가 천장에 이를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이동이 용이하게 설계된 사다리들이 놓여 있었다.
이 안의 약재들을 한꺼번에 쏟아 놓으면 그 안에서 헤엄치는 것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 유독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창고 중앙의 탁자 위에 놓인 상자.
옥을 깎아 만든 함은 보는 것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장인의 솜씨를 거친 놀라운 세공은 말할 것도 없었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설명하기 힘든 묘한 느낌으로 사람을 잡아 끌고 있었다.
“열어 봐도 되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사무심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곡주님의 것이니까요.”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옥함을 열었다.
“……!”
얼마나 놀랐는지 단악선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옥함 안을 가득 채운 것은 그동안 꿈에서도 바라 마지않았던 온갖 영약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걸 다…….”
기대하던 단악선의 모습에 사무심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필요한 약재나 영약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 주십시오. 곧바로 채워 놓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그런데 괜히 이것 때문에 무리하신 건 아닌가요?”
“여윳돈으로 구입한 것들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악선이 사무심을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총관님은 정말 대단해요!”
사무심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 대단하신 분은 곡주님이시지요. 저야 곡주님의 능력에 기대어 돈을 불린 것밖에 없는걸요.”
초악량과 범계위도 흐뭇한 눈빛을 던졌다.
이렇게까지 기뻐하는 단악선의 모습은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수고했네.”
“아주 잘했어.”
내심 사무심을 총관으로 데려온 걸 잘한 일이라 생각하는 두 사람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가 복용한 공청석유가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단악선을 위해 사무심이 준비한 선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내일은 의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의가요?”
“전부터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의가를 세우고 싶으시다고요.”
이어진 사무심의 말에 단악선은 감격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인근에 장원 하나를 인수했습니다. 오래전 낙향한 고위 관리가 사용하던 곳인데, 최근 일가가 고향으로 이사해 좋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직접 보시고 용도에 맞게 수리를 지시하시면 목공들을 불러 의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총관님이 최고예요!”
단악선이 덥석 허리를 끌어안자 사무심도 모처럼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능소밀을 챙기는 건 잊지 않았다.
“능 아우와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능 단주님도 최고예요!”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미소 한 번에 그동안의 노고가 모두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그동안 밀려 있던 서로의 근황과 일상을 공유하던 중.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뒤로한 채 사무심이 일어났다.
“그럼 오늘은 편히 쉬시지요. 저는 분위기도 살필 겸 해서 마을을 둘러보겠습니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필요하면 불러 주세요.”
“가장 골치였던 자를 한 선배님께서 처리해 주셨으니 나머지는 그리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오랜만의 귀가를 만끽하십시오.”
단악선은 사무심을 계곡 입구까지 배웅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듯 폭포 아래에 위치한 연못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안녕, 얘들아. 잘 지냈어?”
단악선을 발견한 물고기들이 연못가로 모여들었다.
“어?”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천년화리가 더 늘었네요?”
그것도 신마곡을 떠날 때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 있었다.
단악선을 따르던 능소밀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신경 좀 썼습니다.”
“대단해요! 성격이 까다로운 녀석들이라 번식이 어려운데…….”
“그렇습니까? 별로 어렵지 않던데요?”
의외라는 듯 능소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저 녀석들이 바라는 대로 해 주었을 뿐입니다. 볕이 뜨거워 힘들어할 때에는 연못가에 차양을 드리워 그늘을 만들어 줬고, 배가 고프다고 하면 그때그때 바로 먹이를 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글쎄요?”
능소밀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냥 보면 알겠던데요?”
언제부턴가 이상하게 동물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 능소밀이었다.
아직 물고기는 그저 감으로 느끼는 정도였지만 작은 놈은 비둘기부터, 큰 놈은 호랑이나 곰과도 약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능소밀의 말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작 본인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나 실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초 형은 전에 이런 거 본 적 있수?
―남만의 만수산장에서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다.
그곳의 장주가 펼쳤던 만수대진(萬獸大陣).
눈빛과 호령, 손짓으로 온갖 짐승들을 자유자재로 부리던 그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웠다.
당장 그 정도 신위는 아니었지만 교감을 통해 동물과 의사소통을 하는 경지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마 위화신공의 영향 때문인 듯싶군.
초악량의 전음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처음 단악선에게 위화신공을 전수하던 당시.
주위를 감싼 상서로운 기운에 이끌려 짐승들이 몰려왔던 게 떠올랐다.
“이 정도면 성수신단을 많이 만들 수 있겠어요.”
단악선이 능소밀의 공을 높이 추켜세웠다.
“능 단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구하신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렇습니까?”
연이은 단악선의 칭찬에 능소밀이 헤벌쭉 웃었다.
반면 범계위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녀석이 천년화리 숫자를 늘려 놓은 것 때문에 과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단악선에게 허드렛일을 시키지 않기 위해 초악량과 자신이 직접 잡초를 뽑고 빨래를 하던 당시.
물 위에 떠 있는 천 조각을 먹이로 착각하고 삼킨 천년화리가 대량으로 폐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낙담하던 단악선의 눈빛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정도면 삼 년 전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아요.”
별 뜻 없이 건넨 단악선의 말에 괜히 움찔하는 범계위였다.
그런데 얄밉게도 능소밀은 눈치 없이 한껏 으스댔다.
“앞으로도 저만 믿어 주십시오. 으하하!”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단주님만 믿을게요.”
그렇게 말한 단악선이 일행을 향해 말했다.
“그럼 대화 나누세요. 전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여독도 풀리지 않으셨을 텐데 좀 쉬시지 않고요?”
능소밀의 말에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정리할 게 산더미예요.”
뒤늦게 단악선이 메고 있던 커다란 봇짐을 발견한 능소밀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자료들에 대해서는 이미 낮에 얼핏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강호를 주유하며 펼쳤던 의술.
그에 대한 임상 기록들이었다.
단악선의 성격상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대로 전각에 틀어박혀 정리가 끝날 때까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을 터.
“그럼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부르십시오.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고마워요. 능 단주님이 계시니 정말 든든하네요.”
그 말을 남기고 전각 안으로 사라지는 단악선의 뒷모습을 향해 능소밀이 짠한 눈빛을 던졌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괜한 오지랖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작 자신의 처지를 걱정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너 이리와.”
갑작스런 범계위의 부름에 능소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동안 수련은 열심히 했겠지?”
능소밀이 쓰게 웃었다.
“보셨다시피 제가 맡은 일이 한두 개가 아닌지라…….”
“그래서? 우리가 전수한 신공은 뒷전이었다고?”
“아, 아뇨. 뒷전이 아니라 단지 주어진 시간이 부족해서…….”
범계위의 험악해지는 눈빛에 능소밀이 재빨리 말을 바꿨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연마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 그럼 어디 확인해 볼까?”
“확인요? 어떻게요?”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무공이 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달리 있겠어? 당연히 비무지.”
“……!”
범계위의 괜한 화풀이에 낚인 능소밀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인자와 온화? 대체 어디가!’
범계위의 섬뜩한 눈빛을 마주한 능소밀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