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75)
신마의선-175화(175/500)
신마의선 (175)
원소절(元宵節)이 지난 지 닷새째.
여느 때라면 한바탕 눈이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무위였지만 근래 며칠간은 쾌청한 날씨가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거리에는 사람이 넘쳤다.
이따금 불어오는 찬 바람도 마다치 않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거리로 나선 사람들.
작년 이맘때와 같은 여유를 되찾은 그들의 얼굴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미소가 감돌았다.
단악선이 돌아온 지 보름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무위 역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거친 사파인들의 패악질에 몸살을 앓던 이들도 다시금 마을에 정을 붙여 가는 중이었다.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한 이후 사파인들이 이전처럼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악량과 범계위 앞에서 맹세의 술을 나눈 뒤로 그들은 나름대로 마을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급적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피했고, 혹 무림인들 사이의 갈등이 벌어진다 해도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 역시 그들과 어울려 지내는 현실에 점차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노점상을 하는 장 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살피던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오늘따라 유독 거리에 무림인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각자 움직이던 그들은 어느 순간 아는 얼굴끼리 인사를 주고받더니 삼삼오오 모여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침 일찍 어디들 가십니까?”
이제는 제법 안면이 쌓여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한 장 씨의 물음에 사파인들 중 누군가가 웃으며 대답했다.
“단 의원님께서 보자 하셔서 가는 중이요.”
노점상 장 씨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단 의원님께서 부르셨다면 필시 좋은 일일 테지요.”
“그랬으면 좋겠소.”
이제 와 이곳 무위에서 쫓아내진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못내 조심스러운 사파인들이었다.
그만큼 단악선 뒤에 버티고 있는 세 사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사파 무림인들은 이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따라 걷는 길.
그 길 끝에는 정문 위의 현판 자리가 비어 있는 장원 하나가 있었다.
활짝 열린 대문 사이로 무림인들이 들어서자 단악선이 가장 앞에서 나서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단악선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사파의 무림인들 역시 뒤늦게 황망해하며 고개를 마주 숙였다.
단악선 뒤에 말없이 서 있는 세 사람보다 눈앞의 어린 의원에게 더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아는 까닭이다.
이곳 무위에 금지를 선포한 것을 주도한 사람이 단악선이라는 것을 그들은 처음에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호 역사상 전례가 없는 업적을 이뤄 낸 당사자가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소년이라니…….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누구 하나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강호의 자자한 명성은 말할 것도 없었고, 당장 염라와 다름없는 세 사람이 얼마나 단악선을 지극하게 아끼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희들은 왜 보자 하셨는지……?”
단악선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을 힐끔거리며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혈음노봉이라는 명호를 지닌 양익천이었다.
한때 그는 할심독조 염기와 함께 고위광의 심복을 자처했지만 고위광이 쫓겨난 이후, 염기와 행동을 달리했다.
말없이 마을을 뜬 염기와 달리 마을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 이곳에 남은 것이다.
덕분에 그는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사파 무림인들을 대변하는 자리를 차지했다.
강호의 명성이나 나이를 떠나 일단 무공을 가장 높게 치는 게 무림인들의 생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저들 중에 최고 고수는 단연 곡운경이었다.
평생 고수들과 비무를 치러 온 그였기에 일신에 지닌 무위 역시 상당했다.
무엇보다 천하오절 중 한 명인 초악량과 손을 섞고도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지나치게 과묵해 무위 안에서도 대부분 홀로 지내 왔다.
그런 그를 상대로 감히 말을 섞어 볼 엄두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 중에는 없었다.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인사도 할 겸, 여러분의 몸을 좀 살펴보려고 오시라고 했어요.”
잠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껌벅이던 사파인들이 이내 너 나 할 것 없이 탄성을 터트렸다.
험난한 도산검림을 누비며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았다.
적어도 무림인이라면 골병까지는 아니라도 지병 한두 개쯤은 달고 사는 법.
그런데 신마의선이라 불릴 정도로 탁월한 의술을 지닌 단악선에게 직접 진료를 받다니.
“듣자니 강호에서는 비무초선이라는 깃발을 들고 돌아다니는 놈들도 있다며?”
이곳에 모인 사파인들은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지금껏 홀로 강호를 주유하던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규율에 얽매이는 걸 누구보다 싫어했다.
그런 삶에서 몸에 밴 자유분방함 때문일까.
한 사람이 입을 열자 서로 앞다투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만큼 단 의원님의 의술이 고명하다는 증거지.”
“그럼 우리도 비무초선의 기회를 잡은 건가?”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다?”
비무라는 말에 사파인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나서려 했고, 누군가는 단악선 뒤에 선 세 명의 표정을 살폈다.
이를 본 단악선은 웃음으로 그들을 진정시켰다.
“비무는 안 하셔도 되요.”
단악선이 소매를 걷으며 말을 이었다.
“차례대로 제 앞으로 오세요. 우선 진맥부터 시작할게요.”
고민을 지운 사파인들이 반색하며 단악선에게 다가섰다.
반면 신마삼존이라는 새로운 별칭을 얻은 세 사람은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만.”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안전한 곳 마련해 줬으면 됐지.”
“…….”
한설화는 말이 없었지만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악선에게 다가서던 사파인들이 그 기세와 눈빛에 놀라 멈칫했다.
그러나 단악선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세요. 어차피 앞으로 계속 함께 지내야 하잖아요. 저도 이 기회에 저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었고요.”
단악선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세 사람도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중인들은 내심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몇 마디 말로 그들 세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당금 강호에 과연 몇이나 될까?
한 명이라면 모를까, 세 사람 모두를 한 번에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단악선만이 유일할 터.
하지만 그 놀라움은 한 번을 끝나지 않았다.
치료 과정에서 또 한 번 놀란 것이다.
가장 먼저 단악선에게 진료를 받은 사람은 핏빛 감도는 단창을 귀신처럼 쓰는 걸로 유명한 양익천이었다.
양익천의 상태를 살피던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팔꿈치와 어깨 근육의 상태가 묘하게 뒤틀려 있네요? 관절의 가동 범위도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 있고……. 아무리 봐도 외부의 충격이나 부상으로 인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움찔하는 양익천을 단악선이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이 손짓으로 양익천을 가까이 불렀다.
양익천이 바짝 거리를 좁히자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자의에 의해 팔 길이를 늘리는 게 가능한가요?”
“……!”
화들짝 놀란 양익천이 마치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단악선을 주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오직 평생 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단지 진맥과 촉진만으로 이를 알아내다니!
단악선의 말대로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어깨의 관절과 근육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팔의 길이를 늘어나게 할 수 있었다.
비록 손가락 세 마디 정도에 불과한 짧은 거리였지만 그 몇 치의 간격을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치열한 생사결에서 상대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그에게는 비장의 구명절초였던 셈이다.
“…….”
양익천은 당혹감을 넘어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비밀이 알려진다면?
불안함에 흔들리는 양익천의 눈을 마주하며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걱정 마세요. 비밀은 지켜 드릴게요.”
“저, 정말입니까?”
“그럼요. 환자의 비밀 보장이야말로 의원의 기본 원칙인걸요.”
그리고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양익천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나저나 많이 힘드셨겠어요. 늘어난 근육이 신경을 눌러 평소에도 많이 고통스러우셨을 텐데.”
그 말대로였다.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하루에도 몇 번씩 손가락과 팔을 마비시키는 듯한 찌르르한 고통이 찾아왔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극통.
덕분에 온전히 잠을 자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양익천의 마음을 흔든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단악선의 눈빛이었다.
“…….”
지그시 입술을 깨문 채 침묵하는 양익천을 향해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더 늦지 않게 발견한 게 다행이에요.”
단악선이 양익천의 목 뒤쪽과 겨드랑이 근처 요혈에 침을 놓았다.
“자, 이제 움직여 보세요.”
단악선의 말에 양익천이 반신반의하며 팔을 들어 크게 원을 그렸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팔을 구부리다 펴길 반복하던 양익천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기 침을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분명 같은 자리에 침을 놓았는데 그 결과가 너무 달랐던 것이다.
오히려 단악선보다 더 많은 곳에 침을 놓은 의원이 많았다. 그런데도 고통이 잠시 완화된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멀쩡한 건 처음이었다.
“어떻게…….”
반평생 그를 괴롭혀 왔던 고통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다.
기적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를 본 사파인들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앞다투어 나섰다.
“다음 분 나오세요.”
단악선은 차례대로 꼼꼼히 사파인들의 몸을 살폈다.
대부분은 간단하게 침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다른 치료와 병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처방전과 치료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진료는 벌써 세 시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어느새 점심시간도 훌쩍 넘겨 버린 상황.
그런데도 단악선은 한번 시작한 치료를 끝내기 전까지는 식음마저 전폐할 기세였다.
그 모습에 사파인들도 점차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단악선 뒤에 버티고 있는 세 사람의 존재에 압도되어 마지못해 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심으로 자신들을 대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단악선이 보듬은 것은 비단 육신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치료를 하는 내내 단악선은 상대와 시선을 마주했다.
거기에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경청하고, 상대의 아픔에 공감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사파인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권력을 노리던 사파인들이 모두 떠나고, 이곳에 남은 이들은 의탁할 곳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 이유와 사정은 모두 달랐지만 마음이 허한 것은 모두 같았다.
그런 척박하고 모진 삶 속에서 이와 같은 경험은 흔치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은 서서히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