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78)
신마의선-178화(178/500)
신마의선 (178)
의가가 들어설 장원.
그 입구 앞에 선 단악선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대문 위를 올려다보았다.
덩그러니 비어 있던 자리.
그곳에 새로이 내걸리는 현판에는 신마의가(神魔醫家)라는 네 글자가 유려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의가를 세운 것이다.
무위에 다시 돌아온 지 한 달 만이었다.
단악선은 격동한 마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단악선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우리 단 의원 소원 하나 또 이뤘네?”
초악량 역시 대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축하한다. 이로써 당당히 세상에 첫발을 디뎠구나.”
한설화 역시 따듯한 미소를 건넸다.
“그동안 고생했다.”
단악선이 세 사람을 와락 껴안았다.
“모두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정말 감사드려요.”
단악선의 격앙된 눈빛과 목소리에서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났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쭉 번창해 중원 제일의 의가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순풍에 돛 단 듯 모든 게 잘 풀리길 기원합니다.”
사무심과 능소밀, 거기에 소적산까지.
거기에 현판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돌아가며 축하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사방에서 쏟아지는 인사에 일일이 화답하던 그때.
더없이 반가운 사람들이 도착했다.
풍진성이 진성의가 사람들을 이끌고 직접 방문한 것이다.
그 일행 중에는 아두와 동생들도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풍진성이 자신과 함께 온 이들을 가리켰다.
“아직 의가를 세우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기에 손이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풍진성은 진성의가 내의 젊은 의원들을 데려왔다.
“고마워요.”
단악선이 건넨 감사의 눈빛에 풍진성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제가 고맙지요. 마침 이 녀석들에게도 슬슬 진짜 의술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답니다. 곡주님의 의술을 가까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들에게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채 약관이 되지 않은 젊은 의원 세 명이 단악선에게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이미 이곳으로 향하는 동안 풍진성으로부터 단악선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야기를 많이 들어 온 그들이었다.
그래서 비록 나이는 자신들보다 어렸지만 결코 단악선을 경시하지 못했다.
무인은 무공으로 말하고, 의원은 의술로 말하는 법.
스승인 풍진성보다 뛰어난 의술을 지녔다는 것만으로도 단악선은 이미 그들에게 있어 존경의 대상이 된 지 오래였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단악선이 마주 고개를 숙이며 짧게 인사를 나눴다.
풍진성이 의원 셋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가리켰다.
“앞으로 이들이 한동안 이곳에서 곡주님과 다른 의원들을 보조할 것입니다.”
풍진성이 소개하자 그들이 단악선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중에는 아두도 있었다.
아두와 시선이 마주치자 단악선이 멋쩍게 웃었다.
“지난번엔 실례했어요.”
“예?”
당황해 반문하는 아두를 향해 단악선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랑 비슷하거나 동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보다 한 살 많다면서요? 그것도 모르고 초면에 말을 놨지 뭐예요.”
“아, 아닙니다.”
아두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냥 편히 말씀 놓으십시오.”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저보다 형인데.”
“풍 의원님께서도 곡주님께 말씀을 높이는데 저 따위가 어찌 감히…….”
한사코 거절하는 아두의 모습에 단악선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로 존댓말 하는 걸로 해요. 그럼 되죠?”
단악선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했지만 아두는 아니었다.
“그러시면 제가 오히려 불편합니다. 편하게 말해 주셔야 제가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이를 떠나, 제 은인이시고, 절 고쳐 줄 의원이시며, 제게 지시를 내리실 상관이십니다.”
아두의 말에 곁에 있는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두의 말이 맞습니다. 곡주님도 이제는 이 의가를 이끌 주인이 아니십니까? 단체를 위한 기본적인 예의는 감안하셔야 합니다.”
풍진성까지 나서자 단악선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알았어요. 아니, 알았어. 아두 형. 그럼 잘 부탁해.”
형이라는 호칭에 아두가 다시 당황했지만 풍진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천성이 착하신 분이니. 이것도 곡주님의 방식이겠지.’
결국 아두도 이쯤에서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의원님.”
정식으로 인사를 마친 아두가 자신의 뒤에 있는 동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뭐 해? 얼른 인사드려.”
단악선보다 한참 작은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남매였는데, 남자애 쪽이 오빠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아이들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어딘가 주눅 든 기색이 역력했다.
“무서워할 것 없어.”
단악선은 아이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어쩌면 이것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나마 사람대접을 받던 진성의가를 떠난 것이 못내 아쉬운 그들이었다.
단악선이 쪼그려 앉아 아이들과 시선을 나란히 했다.
“나도 잘 부탁해. 앞으로는 이곳이 너희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지내. 어려운 일은 여기 아저씨들에게 부탁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두 아이가 움찔했다.
여기저기 즐비한 험상궂은 사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와락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러다 아이들의 시선이 단악선 뒤쪽에 멈춰 섰다.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단악선은 범계위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범계위가 씨익 웃자 아이들이 그만 울음을 터트려 버린 것이다.
“이 좋은 날 왜 애를 울려?”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가 억울한 눈빛을 던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초 형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한다고?”
범계위는 내심 기가 막혔다.
사나운 눈매나 날카로운 기세.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분위기를 지닌 초악량이 자신에게 뭐라 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소매를 들어 입을 가리고 있는 한설화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가늘게 휘어진 눈을 보니 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웃지 마. 넌 뭐 다른 줄 알아?”
한설화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급격히 얼어붙는 장내의 분위기에 사무심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단악선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던졌다.
전 중원을 뒤져도 단악선 말고는 저들을 말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능소밀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아이들을 향해 내민 그의 양손에는 어느새 먹음직한 당과가 들려 있었다.
간식과 재치 있는 표정으로 능숙하게 아이들을 달랜 능소밀이 한적한 장원 한편으로 아이들을 데려가자 예상치 못한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죄송해요. 아직 애들이 어려서…….”
아두의 사과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애들이 다 그렇지, 뭐.”
그 모습에 몇몇 사람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정작 그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도 아직 아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대놓고 웃을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없었다.
풍진성이 아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앞으로 이 아이가 꽤 도움이 될 것입니다.”
풍진성은 아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데다 이해력이 뛰어나 배우는 게 아주 빠릅니다. 거기에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까막눈이었던 아두는 지금은 약방문을 대신 적을 정도로 능숙하게 글을 다룰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의술 도구 정리와 약재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해박해졌다.
마치 마른 논에 물이 스미듯 배우는 족족 빠르게 습득하는 과정은 풍진성조차 경이로울 정도였다.
이는 타고난 아두의 영민함도 한몫했지만, 잠을 아껴 공부에 매진하는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진성의가에 들어온 이후 아두가 하루 두 시진 이상 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풍진성의 말에 단악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대단해!”
단악선의 칭찬에 아두가 멋쩍게 웃었다.
“저는 성공하고 싶으니까요.”
“성공?”
단악선의 반문에 아두가 슬쩍 고개를 돌려 풍진성을 올려다보았다.
“풍 가주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닿았거든요.”
고개를 갸웃하는 풍진성을 대신해 아두가 말했다.
“성공에는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셨죠. 나이나 성별, 배경, 민족, 지식……. 그 어떤 것도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고요. 오직 필요한 것은 깨달음뿐이라고 하셨어요.”
“아!”
뒤늦게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풍진성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단악선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단악선이 놀란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신의의 평소 지론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아두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목수는 일검에 청석판을 베어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창피해하지 않는다.”
아두가 한 말을 단악선이 곧장 받았다.
“사공은 화공처럼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해서 좌절하지 않는 것처럼.”
“어?”
이번엔 아두가 놀라 단악선을 쳐다봤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야.”
단악선이 풍진성과 아두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지. 깨달음은 그렇게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그 깨달음에서 발현하는 열의.
이는 곧 의지가 되어 절실함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인정하면 스스로가 좋아지는 법.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존의 방편을 찾게 되고, 결국 이를 위한 자신만의 전략을 찾기 시작한다고 하셨다.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건 공부밖에 없다는 그 말씀도?”
아두의 질문에 풍진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스승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다.”
무공을 배우거나 의술을 갈고닦는 건 기술의 습득일 뿐, 공부가 아니다.
진정한 공부는 스스로 자각하고 현실을 깨달아, 생존을 위해 유기적으로 정보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뜻한다.
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궁리하며 삶을 습득해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공부라고 그는 늘 강조했다.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될 때, 비로소 행복을 마주할 수 있다고 하셨죠.”
잠시 그리운 추억에 잠겨 있던 단악선은 이어진 풍진성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때마다 다른 스승님께서는 애 그만 괴롭히고 취했으면 들어가 자라고 하셨고요.”
평소에는 과묵하다 술만 드시면 말씀이 많아지셨던 아빠.
그리고 그런 아빠를 타박하며 잔소리를 쏟아 내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두 분께서도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말을 해 놓고 나서야 풍진성은 뒤늦게 아차 싶었다.
어쩌다 보니 단악선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웃고는 있었지만 단악선의 눈빛이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풍진성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정식 진료는 언제부터 하실 생각이십니까?”
단악선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보름 후부터요. 그때까지는 최대한 제대로 준비하려고요.”
“제가 손을 보태겠습니다.”
풍진성이 앞장서 팔을 걷어붙이자 다른 이들도 개업 준비를 서둘렀다.
그때였다.
여기저기 바쁘게 지시를 내리며 본인 역시 바쁘게 뛰어다니는 단악선을 풍진성이 가만히 불렀다.
“곡주님.”
“네?”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풍진성이 질문을 던졌다.
“행복하십니까?”
단악선이 해맑게 웃으며 되물었다.
“아저씨가 보시기엔 어때 보여요?”
이제는 제법 능청스러워진 단악선의 태도에 풍진성은 새삼 단악선이 열다섯 살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행복해 보이십니다.”
단악선이 눈을 찡긋했다.
“여러분 덕분이에요.”
보름 후.
드디어 신마의가가 정식으로 개업하는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직접 개업 준비를 점검하던 사무심은 일꾼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단악선을 찾았다.
아직 개업을 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단악선은 침구를 가지런히 늘어놓고 진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환자를 받으려면 아직 한 시진 이상 남았습니다만?”
의아해하는 사무심을 향해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그 전에 우리 사람부터 치료하려고요.”
이미 사전에 언질이 되어 있었던지 곧바로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가 치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단악선은 우선 순서대로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침을 놓기 시작했다.
아두가 쭈뼛거리며 치료실 안으로 들어선 것도 그때였다.
“저를 찾으셨다고…….”
“아두 형, 어서 와.”
단악선이 웃으며 치료실 한편에 마련된 침상을 가리켰다.
“거의 다 끝나 가니까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 줄래?”
그러고 나서 단악선은 다시 치료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세 사람의 치료가 끝나자 단악선이 사무심을 향해 부탁했다.
“진성의가의 의원님들을 불러 주시겠어요?”
사무심이 진성의가에서 파견한 의원 셋을 데려오자 단악선이 본격적으로 아두의 치료를 시작했다.
아두의 불편한 다리를 안마하듯 주무르던 단악선이 허벅지와 골반 사이에 침을 찔러 넣었다.
“이 상태로 무릎을 한 번 높게 들어 볼래?”
단악선의 지시를 따르던 아두가 당혹성을 터트렸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