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8)
신마의선-18화(18/500)
신마의선 (18)
이른 아침.
단악선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뚝딱거리는 소음 때문이었다.
“우와!”
전각을 나선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어제와 완전히 달라진 신마곡의 모습 때문이었다.
너저분했던 광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선이 닿는 곳곳이 모두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한편에선 초악량과 범계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뒤쪽으로는 전에 없던 모옥 한 채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소란스러웠던 것이다.
단악선이 두 사람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모옥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설화였다.
‘이분이구나.’
단악선은 범계위가 데려오겠다고 한 환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안녕하세요.”
단악선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단악선이라고 합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단악선을 바라보던 한설화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한설화다. 그냥 편하게 아주머니라 부르면 된다.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지는 그녀의 음성 때문이었다.
“방금 그게 전음이라는 거죠?”
단악선이 감탄했다.
“부모님께 들었던 적이 있어요. 무림의 고수들이 몰래 대화를 나눌 때 쓰는 절기라고요. 아주머니께서도 엄청난 고수셨군요?”
단악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흥! 그깟 전음이 뭐라고.
단악선이 놀란 눈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와, 정말 신기해요.”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공만 회복한다면 전음 따위야…….”
말을 해 놓고 초악량은 금방 후회했다. 자신을 보며 한껏 으스대는 범계위 때문이었다.
그때 단악선이 초악량과 범계위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아주머니께서 머무실 집을 짓고 계셨던 거군요? 어제부터 바쁘시더라니.”
“어? 어…….”
“뭐, 그런 거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을 향해 한설화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빨리해. 그쪽 지붕 아직 덜 올라갔잖아.
한설화의 지시에 범계위의 미간이 꿈틀했다.
―어젯밤에 두 사람 몰래 나갔다 온 거 말할까? 피 냄새가 진동하던데.
이어진 그녀의 전음에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사람은 통나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은 묵묵히 작업을 이어 갔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한설화가 절벽 쪽으로 향했다.
휘잉.
그녀가 휘저은 소매를 따라 강력한 경력이 일어났다.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거대한 용권풍이 일더니 절벽을 긁어냈다.
절벽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온갖 넝마와 천 조각이 바람에 휩쓸려 하늘 높이 솟구쳤다. 한설화가 허공을 움켜쥐자 빨려 들 듯 그녀의 손에 딸려 왔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계곡이 깨끗해진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한설화는 한참이나 무공을 이용해 계곡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어느 정도 청소가 마무리된 듯하자 단악선이 한설화에게 다가섰다.
그녀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도 편찮은 곳이 있으신 거죠?”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한설화를 향해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일단 제 전각으로 가요. 진맥부터 해 볼게요.”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악선을 뒤따랐다.
* * *
한설화는 의자에 앉아 단악선을 주시했다. 단악선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손가락을 그녀의 손목에 올려놓은 채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단악선이 눈을 뜬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하아…….”
단악선이 한숨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네요.”
단악선의 눈 위로 안타까운 눈빛이 담겼다.
“말을 안 하시는 게 아니라 할 수 없으셨던 거군요.”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치료……. 이걸 치료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결과도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고요. 이런 상태는 저도 처음이거든요.”
단악선이 미안한 표정으로 한설화를 바라봤다.
“죄송해요.”
한설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해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 만약 이 자리에 신의와 마의가 있었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공연한 기대에 마음이 움직인 자신이 어리석을 뿐이다.
“당장 제가 손을 쓸 수 있는 건 목소리를 회복하는 정도예요.”
시종일관 차갑기만 하던 한설화의 눈에 처음으로 감정이랄 수 있는 이채가 떠올랐다.
―내가 다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전체를 고칠 수는 없지만, 하나씩 회복시키는 건 가능해요. 물론 이게 궁극적인 치료법은 아니지만요.”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기맥에서 흘러나오는 한기를 차단하는 게 중요해요. 그다음에 신경과 근육을 자극해서 활동성을 높일 거고요.”
―그게 가능하다고?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품속에서 선앙침이 담겨 있는 목갑을 꺼냈다.
“시작할까요?”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단악선이 그녀의 혈 자리 몇 곳에 시침을 했다.
“길게 ‘아’ 소리를 내 보세요. 폐부 안의 무거운 숨을 천천히 끌어 올려 뱉는 느낌으로요.”
잠시 머뭇거리던 한설화가 이내 단악선의 지시를 따랐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았다.
쇳소리처럼 거친 숨소리만 이어질 뿐이었다.
그런 한설화를 향해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잘하고 계세요. 계속 그렇게 하세요.”
그때부터 단악선은 진지한 표정으로 시침을 이어 갔다. 치료가 반 시진이 넘어갈 무렵이었다.
“……아아.”
한설화의 입에서 청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깜짝 놀란 한설화가 단악선을 바라봤다.
“내가 방금 목소리를……?”
“지금도 하고 계시네요.”
“……!”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지만 한설화는 이 순간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진정 소중한 것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그녀에게는 목소리가 그중 하나였다.
초악량과 범계위.
이 아이를 향한 그들의 무한한 신뢰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단악선이 손을 들어 침상을 가리켰다.
“잠깐 누워 보실래요?”
단악선이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좀 더 몸을 자세히 살펴봐야겠어요.”
한설화가 멈칫했다.
―내 몸을?
어찌나 당황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전음을 날린 그녀였다. 그러나 단악선의 눈동자는 찻물처럼 맑고 고요했다.
“전 아직 편작의 형들처럼 뛰어나지 못하거든요.”
편작은 화타와 함께 최고의 명의로 불리는 의원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었다고 해요. 그들도 역시 의원이었고요.”
―그 이야기라면 나도 알고 있다.
그만큼 유명한 일화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황제가 편작의 형제들 가운데 누구의 의술이 가장 뛰어나냐고 물었다. 이에 편작은 맏형이 가장 뛰어나고 그다음이 작은 형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편작의 이름이 가장 유명하냐고 황제가 다시 물었다. 편작은 자신이 약과 수술을 통해 병을 고쳤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반면 둘째 형은 환자의 병세가 미미한 상태에서 미리 병을 치료하고, 첫째 형은 얼굴만 봐도 상대의 병을 알아내 원인을 없애 버렸기에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는 건?’
한설화는 내심 크게 놀랐다.
단악선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 편작에 버금가는 의술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한설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침상에 눕자 단악선이 맥문을 잡으며 주의를 주었다.
“만약 이상한 기분을 느끼더라도 절대 입을 열거나 움직이시면 안 돼요.”
“이상한 기분?”
“범 아저씨나 초 아저씨는 괜찮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간지러울 수도 있거든요.”
한설화는 의아했지만 일단 몸을 맡긴 이상 단악선을 믿기로 했다.
한설화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맥문을 통해 희미한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집중하지 않으면 그대로 놓치고 말았을 정도로 미약하고 가느다란 기운이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기맥을 따라 움직이던 기운이 어느새 기경팔맥을 거쳐 발바닥 부근의 용천혈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내 발목을 타고 종아리를 거쳐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한참 동안 몸을 살피고 나서야 천천히 흩어졌다.
“하아…….”
단악선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심을 거듭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연신환허(練神還虛)…….”
단악선이 중얼거린 한마디.
그것이 한설화의 현재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한설화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어떻게 그걸? 넌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들었는데?”
“의술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무공과 맞닿아 있으니까요. 화타가 오금회(五禽戱)를 만든 것처럼요.”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강호에 다양한 내공심법이 존재하는 만큼 수련 방법도 천차만별이죠. 그런데 그 안에 담긴 핵심 요결은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이를 요약하면 대략 세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연정화기(練精化氣), 연기화신(練氣化神), 연신환허(練神還虛)다.
연정화기는 정(精), 즉 타고난 정기인 선천지기를 수련해 기를 축적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기를 바탕으로 신(神)을 양성하는 것이 연기화신이다.
그다음, 기존의 제약을 넘어 초인적인 정신과 육체, 그것이 완벽히 조화된 상태가 신(神)인데, 연신환허는 신을 단련해 궁극에 이르는 경지를 말한다.
육신의 제약을 넘어 초월의 경지로 도약하는 단계.
육체의 한계에 갇히지 않으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불로불사의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도교는 분파가 엄청나지만…….”
한설화는 의아한 눈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도교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사상은 하나예요.”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불사(不死)와 등선(登仙)이죠.”
이를 위해 각각의 종파에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수련을 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중심이 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불사의 비약 제조를 목적으로 한 연단파(練丹派). 귀신이나 산천의 신령들을 모시고 주술과 부적으로 사악한 기운을 다스리는 부록파(附錄派). 음양화합이나 방중술을 이용해 장생불사를 꿈꾸는 장생파(長生派). 단전 호흡과 도인술을 수련하는 연기파(練氣派).
“현존하는 도교 문파의 대부분이 연기파에 속하죠. 그들이 제조하는 영약은 연단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요.”
이는 당금의 대표적인 도교 문파인 화산파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아마도 아주머니께서는 오래전에 연신환허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 짐작돼요.”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단악선도 확신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과 유사한 그 어떤 사례도 직접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것 말고는 한설화의 상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사지백해를 비롯한 그녀의 온몸에 가득한 한기.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육신의 제약을 벗어난 그녀였기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불안정하다는 점이죠. 완벽하게 신을 완성하지 못한 채 급히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으로 보여요.”
표정이 없는 이유도,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멈춰 버린 육체의 시간에 근육과 신경들이 함께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한설화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단악선의 말을 듣고 나니 과거의 오래된 기억 가운데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고칠 수 있겠느냐?”
한설화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가 좀 필요하긴 한데……,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아요.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지만요.”
“시간은 상관없다.”
“게다가 우려되는 점도 있어요.”
단악선이 곤란한 얼굴로 머뭇거렸다.
“괜찮으니 말해 보려무나.”
한설화의 말에 단악선이 가만히 한숨을 흘렸다.
“멈추었던 노화가 진행될 거예요. 육체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테니까요.”
한선화가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바란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늙어 가는 것.”
“정말요? 보통 여자들은 미모가 이십 대에서 멈추길 원하지 않나요? 우리 엄마도 그러셨는데?”
“내 삶은 축복이 아니다.”
단악선을 응시하며 한설화가 말을 이어 갔다.
“이 영겁 같은 시간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면…….”
한설화의 눈빛이 처연해졌다.
“내 너를 평생의 은인으로 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