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81)
신마의선-181화(181/500)
신마의선 (181)
신마의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심지어 그 긴 행렬은 신마의가 담벼락을 한 바퀴 돌아 에워싼 것도 모자라 인근 저자까지 점령한 상태였다.
이때 환자들을 안내하던 아두가 단악선 일행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이게 무슨 난리야? 왜 환자가 더 늘었어?”
범계위의 물음에 아두가 한숨을 흘렸다.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더군요.”
“소문? 개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게…….”
아두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누군가 대대적으로 열심히 홍보를 한 것 같아요. 거기에 실제로 치료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졌고요.”
“뭐? 홍보? 누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근처에서 동요하는 기척을 감지한 범계위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냐?”
범계위와 시선이 마주친 능소밀이 움찔했다.
사실 그는 신마의가가 개업하기 전부터 신마상단을 이용해 열심히 사전 작업을 해 두었다.
홍보 역시 그 사전 작업의 일환 중 하나였다.
단악선이 직접 의가를 열었는데 환자가 없어 체면이 구겨지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래를 튼 상인들을 통해 열심히 홍보를 해 두었다.
처음에는 그 효과가 미미해서 잊고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 환자들의 경험담까지 전해지자 홍보의 위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범계위의 눈치를 살피던 능소밀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 그냥 최선을 다해…….”
“누가 최선을 다하래!”
범계위가 버럭 하자 능소밀이 울상을 지었다.
열심히 일 했다고 욕먹어야 하는 상황이 억울했지만 감히 범계위에게 말대꾸를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때 아두가 환자들이 늘어난 이유를 하나 더 언급했다.
“곡주님 말고도 이곳에 뛰어난 의선들이 계신다는 소문 때문에 환자들이 더 몰린 것 같습니다.”
“의선들?”
반문하던 범계위가 발끈했다.
“우리 단 의원 말고 누가 감히 의선을 자처해?”
아두가 당황한 얼굴로 범계위를 올려다보았다.
“모르셨습니까?”
“응? 뭘?”
뒤늦게 자신과 초악량을 빤히 바라보는 아두의 모습에 범계위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그게 초 형이랑 나는 아니겠지?”
아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 근래 계속 곡주님과 함께 환자들을 치료하지 않으셨습니까?”
“응? 그랬지.”
범계위가 영문 모른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고작 속병 좀 낫게 해 주고 접골해 주는 정도인데?”
“환자들의 말에 따르면 다른 의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치료가 신속하다는 소문을 듣고 왔답니다.”
아두의 설명에 범계위가 당황한 눈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초악량 역시 마찬가지.
소문에 크게 일조해 지금의 사태를 야기한 두 사람 역시 능소밀을 탓할 처지가 아니었다.
단악선을 위해 환자를 줄이려고 한 일이 되레 더 많은 환자를 불러들이고 만 셈.
그런 범계위를 한설화가 비웃었다.
“이런 걸 인과응보라 하지.”
“뭐?”
“그러게 누가 그렇게 열심히 하래?”
범계위가 한설화를 노려봤다.
“지금 이게 남 일이라고!”
한설화가 빙긋 웃으며 범계위를 지나쳤다.
“열심히 해. 쓸모도 없는 무공을 익힌 나는 도와줄 수가 없으니까.”
“……!”
범계위가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지난번 놀렸던 말을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니!
그런 그를 뒤로한 채 한설화는 단악선을 데리고 의가 안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범계위가 초악량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초 형, 우리 아무래도 망한 것 같수.”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늘어나는 환자들의 줄을 보며 초악량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 * *
감숙성 난주.
모래 폭풍을 동반한 매서운 칼바람을 뚫고 마을로 들어서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빼꼼히 드러난 눈만 제외하고 몇 겹의 천으로 얼굴을 싸매고 있었는데, 등에는 커다란 지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게 역시 모래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두꺼운 천으로 뒤덮여 있었다.
걸음을 옮기던 사내가 한 차례 휘청였다.
지게의 무게도 무게였지만, 그 부피 때문에 바람을 맞으며 걷는 게 몹시 힘겨웠던 것이다.
이때 그가 메고 있던 지게 위에서 얇은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버지,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떨까요?”
지게에 타고 있는 아이를 떠올린 사내가 애써 이를 악물었다.
“난 괜찮으니 걱정 마라.”
난주의 겨울은 바람이 세고 추위가 강하긴 했지만 눈은 거의 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이동을 할 수가 있었다.
만약 눈에 발이 묶였다면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을 터.
바람이 잠시 잦아지자 사내가 얼굴을 싸매고 있던 천을 걷어 내고 잠시 숨을 돌렸다.
사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고집스런 눈매와 단단한 턱선이 강인한 인상을 주는 사내였다.
하지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고, 험난한 여정 때문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지게를 감싸고 있던 천 위의 수북한 모래를 털어 낸 사내가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치료에 있어서 의원의 실력만큼 중요한 건 바로 살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다. 며칠 전에 했던 말인데 그새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사내의 말에 지게 위에서 울먹이는 음성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저 때문에 아버지께서…….”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아비 된 자로서 당연한 도리니까.”
걸음을 재촉하며 사내가 말을 이어 갔다.
“세상 그 어떤 아비가 아픈 자식을 위해 험난한 길을 마다할까. 도리어 나는 네게 미안할 뿐이다. 이 아비가 부족해 너를 이렇게 고생시키는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전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걸 아는 놈이 그런 소리를 하느냐?”
“죄송해요…….”
나직이 한숨을 내쉰 사내가 누그러진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 아비를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힘을 내다오.”
사내의 시선이 마을 어귀로 향했다.
“설마 이 넓은 중원에 널 치료할 의원이 없겠느냐? 마침 이곳에 유명한 의원이 있다고 하니, 가 보자꾸나.”
난주에 위치한 진성의가에 관한 소문은 일찍부터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듣자니 황궁의 어의들조차 조언을 구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니, 이번에는 부디 헛걸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지게 위의 아이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매번 비슷한 기대를 안고 중원을 떠돈 것이 벌써 몇 년째.
내로라하는 의가들을 방문할 때마다 실망을 안고 돌아섰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가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날 저녁.
진성의가의 대문을 걸어 나오는 사내의 얼굴이 유독 어두웠다.
지게 위에 걸터앉은 아이 역시 마찬가지.
먼 길을 다그쳐 겨우 이곳에 다다랐지만 진성의가의 가주를 만나지 못했다.
바쁜 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성의가의 가주를 대리하는 의원들에게 아이의 진찰을 부탁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럽기만 했다.
―어떻게 이 아이가 살아 있는 것입니까?
되레 그렇게 묻는 의원들의 모습에 주초운은 이번에도 헛걸음을 했다는 걸 직감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께서 계셨다면 분명 방법을 찾으셨을 텐데……. 저희들로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진성의가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주초운이 들고 있던 처방전을 구겨 바닥에 던졌다.
“여기도 다를 게 없구나.”
복령과 건칠, 부자를 배합한 탕약은 일시적으로 빈맥을 누를 수 있으나 부작용도 심했다.
아무리 법제를 거친다 한들 몸에 쌓이는 독성을 간과할 수 없는 노릇.
진성의가의 의원들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아이의 상태가 약 기운을 버텨 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집을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실망 가득한 부친의 음성에 지게 위에 앉아 있던 주장명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잠시 내려 주세요.”
지게에서 내려온 주장명이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아버지. 이제 정말 그만 하세요.”
“이 녀석이?”
주초운이 험악하게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청색증 때문에 유독 파리한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내 안쓰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주장명이 서글프게 웃었다.
“벌써 삼 년째예요. 중원을 다 돌았지만 이제 남은 의가도 거의 없고요. 더 이상 손쓸 수가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아버지께서 잘 아시잖아요.”
“…….”
“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은 없어요. 그러니 우리 이제 그만 내려놓아요.”
“아니. 한 명쯤은 있을 게다.”
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 부친의 눈빛에 주장명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아버지보다 뛰어난 의원은 없어요.”
“아니다. 있다. 반드시 있어야 한다.”
광기에 가까운 눈빛으로 주초운이 외쳤다.
“무림인들 사이에 전설처럼 회자되는 두 의원이 있다.”
“성수신의와 생사마의 말씀이신가요? 하지만 그분들은 오래전에 은거해 속세에 발길을 끊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는다. 개조명운(改造命運) 심상사성(心想事成)이라 하지 않더냐. 간절히 원하고 절실히 바라면 그 소원은 이루어지는 법이다.”
주장명이 슬프게 웃었다.
“더 이상 저를 속이지 마세요.”
이어진 아들의 말에 주초운의 눈빛이 흔들렸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 병이 불치병이라는 거. 그래서 제 소원이라도 들어주시려고 이렇게 중원을 떠도시는 거잖아요.”
주초운은 그만 가슴이 먹먹해져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의 어린 것이 의연하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고, 한편으론 서글펐다.
본래 그는 하남성 정주에서 사 대째 이어져 내려온 의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실제로 정주 일대에서 가장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 있다 알려져 있었고, 그에 따른 평판도 대단했다.
그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인근에서 찾아오는 의원들로 문지방이 닳을 정도였다.
그렇게 그의 손을 거쳐 많은 환자가 위기를 넘기고 생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혈육인 아들은 치료할 방법이 전무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지닌 그라 해도 선천적으로 안고 태어난 병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흔히 자식의 병은 부모의 업보라곤 하지만, 제 엄마를 앗아 간 그 몹쓸 병까지 물려받을 줄은 몰랐다.
태어난 자식에게 몇 번 젖을 물려 보지도 못하고 떠난 아내를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리는 그였다.
이제는 아들만이 유일한 가족.
그런데 해가 갈수록 아들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그는 가산을 정리하고 아들과 함께 중원을 떠돌기 시작했다.
언젠가 몸이 나으면 무얼 하고 싶냐는 그의 물음에 주장명이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중원을 자유롭게 누비며 여행을 하고 싶어요.
그러나 점차 깊어지는 아들의 병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치료를 위한 여행이라는 건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아니다.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주초운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남궁세가의 여식이 앓고 있던 절맥 역시 불치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치되었다 들었다. 내 직접 남궁세가를 방문해 그 병을 치료한 의원에 대해 알아낼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조금만 더 버텨 보자꾸나.”
주초운이 아들을 다시 지게에 올렸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다시 바람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주초운은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객잔을 찾았다.
마침 손님이 없어 한산하던 참이었기에 점소이가 극진한 예를 갖춰 그를 맞이했다.
그러다 뒤늦게 지게를 타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몸이 불편한 아이라 그렇소.”
주초운이 양해를 구하자 점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의가는 방문해 보셨는지요?”
“그렇지 않아도 막 그곳을 나선 참이오.”
눈치 빠른 점소이는 대번 주초운의 표정으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음식을 주문받아 주방으로 사라진 점소이가 이내 뜨겁게 데운 차를 내왔다.
“우선 이걸로 몸부터 녹이십시오.”
“고맙소.”
그렇게 뜨거운 차로 꽁꽁 언 몸을 녹이던 도중이었다.
우연히 주초운과 눈이 마주친 점소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할 말이 있소?”
점소이가 주위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춰 입을 열었다.
“혹시 신마의가는 가 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