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82)
신마의선-182화(182/500)
신마의선 (182)
금시초문인 듯 고개를 갸웃하는 주초운의 모습에 점소이가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아직 소문을 못 들으셨나 보군요. 얼마 전에 이곳과 가까운 무위에 신의의 자제분께서 의가를 열었습니다.”
“신의라면……. 성수신의를 말하는 거요?”
“예. 그 출중한 실력 덕에 의선이라고 불린다더군요. 요즘 그것 때문에 무위의 객잔들이 손님들로 미어터진답니다.”
점소이가 품속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밀랍에 쌓인 작은 단약을 자랑스레 내보이며 점소이가 환하게 웃었다.
“저도 며칠 전에 힘들게 이 녀석을 구입할 수 있었지요. 이게 바로 그 소문의 신마단이라는 영약입니다.”
그 말에 주초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복용하면 한 달 동안은 병치레가 없고 부작용도 없다는 그 약 말이오?”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피로 회복은 물론 기혈을 보하고, 외상 약으로도 탁월하지요. 물에 으깨 바르고 자고 일어나면 바로 새살이 돋는다고 합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주초운이 불쾌한 눈빛으로 혀를 찼다.
무식한 어중이떠중이라면 모를까 그는 한평생 의술에 몸담아 온 사람이었다.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어리석지도, 귀가 얇지도 않았다.
“의술로 사기를 치다니…….”
다른 것도 아니고 그것만큼은 절대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불의였다.
그러자 점소이가 펄쩍 뛰었다.
“사기라니요! 신마단을 먹어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약이나 다름없다며 칭송을 하던뎁쇼?”
“직접 복용해 보셨소?”
“아이구, 이 아까운 걸 어떻게 아무 때나 함부로 먹는단 말입니까? 만약을 대비해 아껴 둬야지요.”
말없이 점소이를 응시하던 주초운이 품속에서 열 냥짜리 전표 세 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럼 그 신마단을 내게 파시오.”
점소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은 꽤나 구하기 힘들어졌다곤 하나 이 정도 금액이라면 웃돈을 얹어 주고도 여분의 신마단을 더 구할 수 있었다.
모처럼 여윳돈이 생길 기회를 점소이는 놓치지 않았다.
신마단을 건네받은 주초운은 겉을 싸고 있던 밀랍을 벗겼다.
그는 이 자리에서 신마단의 정체를 낱낱이 까발릴 생각이었다.
의원 된 자로서 가짜 약이 판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으음?”
밀랍을 벗기기 무섭게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에 주초운이 멈칫했다.
그는 이내 신마단을 으깨어 일부를 떼어 낸 뒤 입으로 가져갔다.
눈을 감은 채 입 안에 굴려 맛을 확인하기를 잠시.
“……!”
번쩍 눈을 뜬 주초운이 주장명을 향해 말했다.
“바람이 그치는 대로 신마의가라는 곳에 가 보자꾸나.”
“이렇게 갑자기요?”
청량하게 입 안을 감도는 기운을 몇 번이고 확인한 주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약을 만들어 낸 의원을 꼭 만나 봐야겠다.”
지쳐 있던 주초운의 얼굴 위로 기이한 열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 * *
신마의가가 개업한 지 한 달째.
의가를 찾아오는 환자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단악선뿐만 아니라 진성의가에서 파견된 젊은 의원들, 그리고 초악량과 범계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뭐? 북경? 거기서 여기까진 왜 기어 왔어? 거긴 의원이 없어? 어의도 있고, 그자들이 가르치는 제자들도 사방에 널렸다며?”
범계위의 핀잔에 진료를 받던 환자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저희 같은 놈들은 감히 그분들을 뵙지도 못합니다.”
“뭐? 그럼 우리 단 의원은 쉽냐? 이걸 확!”
그 사나운 기세에 잔뜩 움츠러든 환자를 뒤로한 채 범계위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넌 어디서 왔어? 뭐? 운남? 여기까지 오다가 죽겠다. 그냥 대충 아무 데나 들어가 치료받지 그랬냐? 그 몸으로 여기까지 용케도 살아 왔네.”
잔뜩 역정을 내며 심통을 부리는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이 결국 한마디 했다.
“적당히 해라. 환자들 경기하겠다.”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가 도리어 버럭 했다.
“아니, 초 형! 이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온단 말이우?”
범계위가 가리킨 환자들의 행렬을 보며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치료하고 돌려보냈는데,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밤을 새워 환자들을 치료해도 모자랄 지경.
“어쩌겠느냐. 그래도 우린 단 의원보다는 낫지 않느냐?”
그나마 경미한 증상의 환자를 살펴야 하는 자신들과 달리 단악선에게는 위중한 환자들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만큼 막대한 집중력과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범계위가 울상을 지었다.
반면 초악량은 이미 능소밀에게 자세한 내막을 들었던지라 그 연유를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이렇게 꾸역꾸역 밀려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분의 고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치료부터 하고 보는 신마의가의 철칙 때문이었다.
높은 의가의 문을 넘어설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반 백성과 가난한 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이곳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특히나 이전에는 단악선을 만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강호에 명성 자자하다고 한들 하늘의 별과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별이 지금은 인세에 내려와 버젓이 의가를 차렸다.
당연히 사람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단 의원이 걱정인데…….”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단악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눈 밑은 퀭하고 안색도 창백한 단악선의 모습을 보자 초악량의 눈에 우려의 감정이 떠올랐다.
아무리 내공에 의지한다고 해도 체력과 심력은 별개의 문제.
끊임없이 이어지는 환자들을 쉬지 않고 치료한 탓에 정신력이 이미 한계에 달한 것 같았다.
한설화는 문득 얼굴이 따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니 근심 가득한 초악량과 범계위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뭐라도 좀 해 봐, 마녀. 이러다 우리 단 의원 쓰러지겠어!
범계위의 전음에 한설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지은 업보가 있어 범계위는 더 이상 한설화를 채근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한설화 역시 이쯤에서 단악선을 말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막 환자의 치료를 마치고 다음 환자를 받으려는 단악선을 한설화가 제지했다.
“오늘은 이쯤 해 두거라.”
“어떻게 그래요. 아직 환자가 남았잖아요.”
단악선의 고집에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당장 너부터 상태가 심상치 않구나.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원이 환자들 앞에서 쓰러진다면 어불성설 아니냐?”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아두를 향해 물었다.
“아두 형, 환자가 얼마나 남았지?”
“곡주님 앞으로만 아직 백 명 넘게 남았습니다.”
“아아…….”
단악선이 지친 표정으로 탄식을 흘렸다.
그런 단악선을 향해 아두가 다가섰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지요.”
“그래도…….”
“이미 지칠 대로 지치셨습니다. 의원님께서 돌봐야 할 환자들은 하나같이 병환이 가볍지 않으신 분들입니다. 만약 이러다 의원님께서 실수하시면 그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지금 보니 손도 살짝 떨리시는 것 같은데요.”
진심을 담은 아두의 설득이 통했던 것일까.
결국 단악선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죠.”
한설화가 아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한설화의 전음에 아두가 빙긋 웃으며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진성의가의 세 의원들에게도 단악선의 말을 전했다.
“잘 생각했다.”
한설화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단악선을 토닥였다.
“네가 쉬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도 쉴 수가 없단다.”
“네…….”
어딘가 시무룩한 단악선의 모습에 한설화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행여라도 단악선이 생각을 바꿀세라 아두가 재빨리 환자들을 돌려보냈다.
“죄송해요. 오늘 진료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의원님께서 너무 지치셨어요. 번호표를 나누어 드릴 테니 내일 다시 방문해 주시겠어요? 번호표가 있는 분들은 우선적으로 치료해드릴 게요.”
그 말에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역정을 내거나 원망을 내비치는 사람이 없었다.
의원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손해를 오롯이 자신들이 감당해야 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단악선이 보인 행보에 누구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 것도 크게 작용했다.
“이를 어쩌나. 괜히 우리들 때문에…….”
“부디 의원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야 뭐, 하루 이틀 아팠던 것도 아닌걸. 십 년을 넘게 앓았는데 하루쯤이야 못 기다릴까.”
저마다 단악선을 염려하며 환자들이 돌아섰다.
환자들을 배웅한 아두는 겨우 신마의가의 문을 닫아걸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문을 닫기 전.
‘저분은 어제도 오셨는데?’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지게를 지고, 그 위에 아이를 태우고 있어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던.
‘오늘도 늦으셨나 보구나.’
그나마 중증 환자에게 나눠 준 50개의 번호표도 그 사내 앞에서 끊기고 말았다. 내일 진료를 확신할 수 있는 게 50명뿐이기에 더 이상은 나눠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두가 지게 위의 아이를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던졌다.
‘많이 아파 보이는데…….’
한숨과 함께 돌아서는 중년인의 뒷모습을 보며 아두는 짠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환자들이 빨리 줄어야 할 텐데.’
그러나 아두에게는 단악선의 건강이 우선이었다.
안쓰러움을 뒤로한 채 아두가 대문을 닫아걸었다.
이미 달이 중천에 걸린 늦은 밤.
겨우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아두는 새벽부터 늘어선 줄을 보며 한숨부터 흘렸다.
오늘도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 문을 연 것은 그들의 병색이 하나같이 완연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힘들면 이런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까.
더구나 아직도 새벽바람은 차갑기만 했다.
“이래서는 없던 병도 생기겠다.”
차가운 바람에 기침하는 몇몇 사람을 발견한 아두가 환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제 제가 나누어 준 번호표대로 진료가 이루어질 테니, 번호가 늦는 분들은 저기 다루에서라도 몸을 녹이고 오세요.”
“그러다 누가 새치기라도 하면 어쩌누?”
누군가의 우려에 아두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번호뿐만 아니라 환자분들 얼굴도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새치기를 하거나, 제가 나눠 드린 번호표와 다른 분이라면 진료 순서가 뒤로 밀려날 거예요.”
“정말 우리를 다 기억한단 말이오?”
“제가 기억력 하난 좋거든요. 물론 여기 계신 분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재주에 불과하지만요. 그러니 걱정 말고 쉬었다 오세요.”
그렇게 아두는 백 명 정도만을 남겨 두고 모두 돌려보냈다.
중증의 환자는 물론 단악선 몫이었지만 그들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숫자가 많지 않았다.
초악량과 범계위, 진성의가의 의원 세 명이 도맡아 진료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
그런데 환자들이 돌아간 뒤 한 사내가 아두에게 다가왔다.
“아!”
아두의 입에서 짤막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어제 문을 닫기 전 마지막에 보았던 지게 사내였기 때문이다.
어제보다는 일찍 나왔지만, 오늘도 진료를 볼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게에 있는 아이는 두꺼운 이불로 감싼 상태였다.
‘저 아이 때문에 매번 늦는구나.’
아마도 아침의 차가운 바람 때문에 새벽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지금도 지게를 돌아보는 시선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결국 아두가 사내에게 다가가서 사정을 말했다.
“오늘도 진료를 못 보실 수 있어요.”
아두의 설명에 주초운이 고집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다리겠소.”
“네? 하지만…….”
“내가 늦은 것이니 어쩔 수 없지 않겠소? 다른 환자들의 시간도 소중한 것은 마찬가지니까.”
주초운이 지게 위의 아들을 향해 안쓰러운 눈빛을 던졌다.
아두가 지게 위에서 바들바들 떨며 추위와 싸우는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의가 안으로 달려간 아두가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이걸 가지고 있어.”
아두가 주장명에게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건넸다.
손바닥 안에 번지는 온기에 주장명이 의아해할 때였다.
“단약을 제조할 때 직접 불을 사용하지 않고 뜨겁게 달군 돌멩이를 사용하는 건가?”
주초운의 말에 아두가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