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83)
신마의선-183화(183/500)
신마의선 (183)
지게 위에 있던 주장명이 아버지를 대신해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도 의원이세요.”
“아!”
아두는 비로소 지게 위에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일고여덟 살 정도 되었을까.
자신의 동생들과 비슷한 또래였다.
그런데도 눈빛은 몹시 어른스럽고 의젓했다.
“진짜 의원이세요?”
아두의 물음에 주초운이 씁쓸하게 웃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 아니겠소?”
“아, 그렇죠. 실례했습니다.”
아두의 사과에 주초운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지게를 내려 벽에 기댄 주초운이 자신은 그 옆에 털썩 앉았다.
그 모습마저 아두는 안쓰러웠다.
그러나 저마다 사연을 품고 이곳을 찾아온 것은 다른 환자들도 마찬가지.
아두는 이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자꾸만 지게 쪽으로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의가에 들어선 단악선은 평소처럼 환자들을 맞이하기에 앞서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를 치료했다.
그렇게 치료를 받는 도중.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걱정스런 눈빛을 던졌다.
“단 의원, 오늘은 하루 쉬는 게 어때?”
“아직은 할 만해요.”
“하지만 안색이 너무 안 좋은걸?”
“조금만 더요. 해 보는 데까지는 해 보려고요.”
고집을 꺾지 않는 단악선의 모습에 범계위가 초악량을 향해 눈빛으로 도움을 청했다.
이에 초악량이 단악선을 향해 넌지시 운을 뗐다.
“하루에 진료할 환자 수에 제한을 둘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초악량의 마음은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먼 곳에서 찾아온 환자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
그런 단악선의 생각을 짐작한 초악량이 차선책을 내놓았다.
“아니면 새로운 의원을 더 영입하든가. 의원 한 명이 감당해야 할 환자의 숫자가 너무 많다. 지금도 버거운데 이대로라면…….”
“그렇지 않아도 방법을 생각 중이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단악선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중증의 환자를 돌보려면 뛰어난 의술을 지닌 의원이 필요했다.
진성의가의 세 의원들의 실력도 출중하긴 했으나 아직 풍진성을 따라잡기엔 요원한 상태.
하물며 자신의 기준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와중 아두 차례가 돌아왔다.
아두가 침상 위에 엎드리자 단악선은 곧바로 시침을 시작했다.
“아두 형, 좀 어때?”
아두의 몸에 찔러 넣었던 침을 빼며 단악선이 물었다.
잠시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던 아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를 받을수록 다리의 감각이 확실히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이전보다 간지러운 느낌도 더 강해졌고요.”
“다행이다. 조만간 다른 치료도 병행할 수 있겠어.”
치료를 마치고 침상에서 내려온 아두가 다리에 부목을 댔다.
그러다 문득 단악선을 힐끔거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한데 정작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치자 어색한 웃음 너머로 할 말을 삼켰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내게 할 말이 있는 거야?”
“아닙니다. 그저…….”
아두가 단악선을 향해 웃었다.
“뭔데? 할 말이 있으면 해.”
아두가 한숨을 내쉬더니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사흘째 계속 기다리는 환자가 있습니다. 환자는 제 동생들 또래의 아이인데, 그 아이를 아버지가 지게에 태워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아! 그분!”
단악선도 의가에 들어서며 그를 본 기억이 났다.
“마음 같아서는 순서와 상관없이 의가에 들이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과 형평성 문제가 있어서…….”
“왜 그 환자를 먼저 들이고 싶었는데?”
“아이의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보였거든요.”
단악선은 잠시 고민했다.
들어오면서 지나치듯 얼핏 본 것이라 아이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두가 이런 말을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잠시 시각을 가늠하던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시고 와.”
“네? 하지만 아직 진료 시간이 아닌데요?”
“그러니까 지금 봐야지. 진료 시간에는 순서대로 환자를 봐야 하니까.”
“하지만 괜찮으시겠어요? 안 그래도 피곤하실 텐데.”
“난 괜찮으니까 들어오시라고 해.”
아두가 복잡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뜩이나 피곤할 단악선을 더 힘들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두의 안내를 받아 한 사람이 진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지게는 밖에 두고 아들을 품에 안은 주초운이었다.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감도는 아이의 낯빛.
이를 확인한 단악선의 표정이 짐짓 심각해졌다.
반면 주초운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떠올랐다.
설마 의선이라 불리는 이곳 의가의 주인이 이렇게 어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단 예의를 갖췄다.
“의원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아들을 침대에 눕힌 주초운이 품속에서 얼마 전 점소이에게 구입했던 신마단을 꺼내 들었다.
“이 약을 제조하신 분이 의원님이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효능을 의심해 제가 직접 확인을 해 보았습니다만, 그 공능이 실로 대단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의원님을 찾아뵙게…….”
단악선이 그의 말을 잘랐다.
“이야기는 나중에요. 일단 진맥부터 할게요.”
단악선이 곧장 주장명에게 다가가 손목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기를 잠시.
“으음…….”
단악선이 침음성을 흘렸다.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에 번져 있는 심각한 청색증.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상태일 줄은 몰랐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안 좋네요.”
단악선이 침을 꺼내자 아이가 흠칫했다.
“안녕? 내 이름은 단악선이야. 네 이름을 알려 줄래?”
그런 아이를 단악선이 웃으며 안심시켰다.
“장명(長命)……. 주장명이에요.”
“주장명? 좋은 이름이구나.”
아이가 오래 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이름이었다.
단악선이 침을 들어 주장명에게 자세히 보여 주었다.
“여기 침두에 새겨져 있는 신선 조각 보여?”
유심히 선앙침을 살피던 주장명의 눈이 이내 휘둥그레졌다.
“와……! 대단해요. 어떻게 이 작은 침을 이렇게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죠?”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지? 나도 매일같이 보는데 놀라워.”
그리곤 침의 용도를 설명했다.
“이 침을 이용해 네 몸 상태를 살펴볼 거야. 살짝 따끔할 테지만 병 때문에 힘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 걱정할 거 없어.”
“네…….”
“긴장하지 말고 느긋하게 마음먹어. 네가 괜찮다고 하면 시작할 테니까 미리 겁먹지 않아도 돼.”
힐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본 주장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 준비되었어요.”
“벌써? 우리 장명이는 무척이나 용감하구나.”
단악선의 격려에 주장명이 슬쩍 웃었다.
하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윽.”
따끔한 느낌과 함께 가슴 부근을 파고드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사전에 단악선과 이야기를 나눈 만큼 놀라거나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렇게 주장명의 몸 몇 군데에 침을 찔러 넣은 단악선이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단악선이 눈을 들어 주초운을 올려다보았다.
“심장의 형태가 일반적이지 않네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주초운은 묵묵히 그 말을 들었다.
“타고난 기형으로 인해 심장이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로 인해 제대로 피를 밀어내지 못하고 있고요. 게다가 역류 현상도 반복되고 있네요.”
이어진 단악선의 물음에 주초운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아이를 치료한 사람이 누군가요?”
“그걸 어떻게…….”
“이 아이의 상태는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니까요. 그분이 치료를 하셨기에 그나마 최악의 사태를 간신히 모면하고 있어요.”
주초운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단악선의 나이 때문에 반신반의했던 마음이 일거에 사라졌다.
지금까지 만나 온 그 어떤 의원도 이렇게 정확한 진단을 내린 사람이 없었다.
“저는 주초운이라 하옵고, 과거 하남성 정주에서 고조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의가를 물려받아 운영했었습니다.”
“어?”
단악선이 놀란 눈으로 주초운을 바라봤다.
“혹시 능요불망(能療不亡)이라 불리시던?”
이번엔 주초운이 놀랐다.
설마 단악선이 자신을 알아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과분한 명호입니다. 자식의 병조차 고치지 못하는 자가 어찌 그리 불릴 자격이 있단 말입니까.”
이는 겸손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일찍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왔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신기하기만 했다.
무림에 천하오절이 있다면 의원들 중에도 출중한 실력으로 손꼽히는 다섯 명의 명의가 있었다.
자신의 부모님을 제외한 세 명.
그중 한 명이 다름 아닌 눈앞의 주초운이었다.
죽을병만 아니라면 그 어떤 병도 치료해 낸다는 명의 중의 명의.
하나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춰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 냈던 당사자이기도 했다.
“그렇다니 좀 더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네요. 누구보다 가장 오랫동안 치료를 해 오셨을 테니까요. 이 병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도 의서로만 확인했지 실제로는 처음 보는 병이라서요.”
이토록 솔직하게 물어 올 줄은 몰랐기에 주초운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의견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저 역시 심장 기형까지는 알아냈으나 달리 손을 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치료를 위해 가슴을 열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저 피가 역류할 때 응급조치를 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래요? 흐음…….”
고심에 잠긴 단악선을 향해 주초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아이를 치료할 방법이 있습니까?”
“잠시만요.”
과거 부모님께서 남기셨던 의서의 내용을 되짚어 떠올리던 단악선이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없진 않아요.”
“……!”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주초운이 격동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단악선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은 심장이 제 역할을 하도록 유도해 피가 역류하는 걸 막는 게 급선무예요. 두 번째는 증상이 반복되지 않도록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고요.”
묻고 싶은 말이 태산 같았지만 주초운은 이어질 단악선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애써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불안정한 혈류로 인해 다른 장기까지 영향을 미친 상태예요. 온전히 피가 공급되지 않아 손상이 진행되기 시작했고요. 무엇보다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도 선천적인 기형을 완벽하게 바로잡을 방법이 없어요.”
“네? 하지만 방금 치료가 가능하시다고…….”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심장을 고치는 건 불가능해요.”
주초운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단악선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절망감이 더욱 크게 돌아왔다.
아무리 증상을 완화한다 해도 병인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언제 재발할지 몰랐다.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한 폭탄을 가슴 속에 품고 지내는 셈인 것이다.
그때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계속 살 수 있는 방법은 있어요.”
“네?”
“병의 원인인 심장을 고치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뜻이에요.”
“다른 것으로 온전한 심장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주초운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과 침으로 빈맥을 다스리고, 피의 역류를 어느 정도 잡아 낼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요.”
“하지만 제게는 더 이상 남아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걱정 마세요. 다행히 제게 몇 가지 다른 방안이 있으니까요.”
“아!”
“그렇게 시간을 버는 게 첫 번째. 그다음은 기형인 심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른 걸로 보조해야 해요. 그렇다면 장명이는 비록 병이 있다곤 하나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이 시도가 성공하면 그 이름대로 큰 탈 없이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무공이에요.”
“무공 말입니까?”
“네. 정순한 내공이라면 충분히 심장의 부족한 기능을 보조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