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84)
신마의선-184화(184/500)
신마의선 (184)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일반적으로 심장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움직임을 조절할 수 없는 불수의근(不隨意筋)이에요. 하지만 무공을 통해 진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면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해지죠. 예를 들자면……. 귀식대법(龜息大法)처럼요.”
그 말에 주초운은 비로소 눈앞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무인들 중 일부가 내공을 이용해 숨을 멈추고, 심장 박동을 늦추어 혈류량을 조절해 인위적으로 가사 상태로 들어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살수들이 은신할 때 사용한다는 그 방법 말입니까?”
“실제로 귀식대법을 사용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처럼 내력을 이용해 의지대로 불수의근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주초운은 무언가 희망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무공……인가요.”
그런 그에게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물론 무공을 익힌다고 해서 일반적인 무인들처럼 사용해서는 안 돼요. 필시 심장에 무리가 갈 테니까요. 오직 심장을 보조하는 용도로만 사용해야 해요.”
그 말에 주초운이 무거운 탄식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제가 너무 편협했군요. 의술만이 유일한 방편이라 여기고 원인을 제거하는 것에만 매달렸습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생각했는데……. 제 그릇이 너무 작았습니다.”
단악선이 주초운을 위로했다.
“후회할 일도, 자책할 일도 아니에요. 저라도 예전이었다면 의원님과 같은 결정을 내렸을 테니까요.”
그래도 여전히 한숨만 내쉬는 주초운의 모습에 단악선이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지금 아드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알고 계시죠?”
주초운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어야 반년.’
그 안에 상태를 호전시키지 못한다면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심장의 기능을 원래대로 회복한다 한들 망가진 다른 장기들이 연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리란 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간절한 주초운의 눈빛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할게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요. 대신 의원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제 도움이라고요?”
주초운은 당황했다.
이미 아득히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단악선을 어찌 도울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다.
이때 단악선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야죠. 그만큼 치료 확률도 높아질 테니까요. 그리고 누구보다 아드님의 상태를 잘 알고 계시잖아요.”
단악선의 말에 주초운은 내심 다시 한 번 놀랐다.
‘내가 참 오만했구나!’
이처럼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 있음에도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자신보다 의술이 부족한 그에게까지 스스럼없이 조언을 구하다니!
그런 단악선의 모습은 주초운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또한 지금까지 자신의 실력에 미치지 못하는 의원들을 얕보고 무시했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명이, 이 아이만 살릴 수 있다면!’
절망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 오던 그였다.
그런 그의 눈 속에서 새로운 열망의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반면 침상에 누워 있는 주장명은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와 단악선을 서글픈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 주장명을 향해 아두가 다가섰다.
“이것 좀 마셔 볼래?”
아두가 건넨 차를 받아 들기 위해 주장명이 힘겹게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찻잔을 움켜쥐는 깡마른 손가락.
이를 본 아두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떠올랐다.
비슷한 또래의 동생들이 있어서인지 남 일 같지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말없이 찻물만 들여다보는 주장명의 모습 때문이었다.
“몸에 좋은 약재들을 넣어 끓인 차야. 마시면 몸이 따듯해질 거야.”
“고마워요.”
그런데 정작 주장명은 차를 입에 가져다 대지도 않았다.
“혹시 쓸까 봐 그래? 안심해. 감초와 비파, 대추가 잔뜩 들어가서 달콤해.”
몇 번을 권해도 차를 마시지 않는 주장명의 모습에 아두가 당황했다.
“왜 안 마셔? 건강에 좋다니까?”
주장명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제가 노력하면 아버지가 힘들어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주장명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처연하게 웃었다.
“제가 살기 위해 노력하면 그만큼 아버지는 힘들어진다는 뜻이에요. 지금까지 쭉 그래 왔어요.”
주장명이 눈을 들어 멀찍이 떨어져 있는 주초운을 바라봤다.
“그런데 막상 제가 죽으면 아버지는 또 힘들어하시겠죠.”
주장명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살아서도 아버지를 쭉 힘들게 했는데, 죽어도 아버지를 힘들게 하다니. 나만 아프면 좋겠는데, 저 때문에 아버지도 아파하세요. 난……, 왜 이렇게 태어난 걸까요?”
심사가 어지러운지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는 주장명이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고스란히 아두에게 와닿았다.
아두가 가만히 손을 뻗어 울먹이는 주장명의 손을 붙잡았다.
“그래도 넌 운이 좋은 거야.”
“제가요?”
“그래. 그것도 하나만이 아니라 두 가지 면에서.”
의아해하는 주장명을 향해 아두가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첫 번째는 이제라도 우리 의원님을 만난 거야. 저분이라면 반드시 너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실 거야.”
“정말 제가 나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이걸 봐.”
아두가 불편한 자신의 다리를 들어 올려 보였다.
“의원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영영 불구로 살아야 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의원님 덕분에 이렇게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었어. 물론 아직은 더 치료를 받아야 하겠지만.”
아두가 확신이 담긴 표정과 목소리로 주장명을 다독였다.
“우리 의원님 실력은 직접 겪어 본 내가 보증할 수 있어. 그러니 불안해하지 마.”
“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주장명에게 아두가 다시 찻잔을 들어 건넸다.
“두 번째 이유가 궁금하진 않아?”
그 말에 주장명이 아두와 시선을 마주했다.
“궁금해요.”
아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널 아껴 주고 사랑해 주는 좋은 아버지가 있다는 거야. 난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시거든.”
아두가 문득 씁쓸하게 웃었다.
“나와는 달리 너는 병이 나으면 함께 기뻐해 줄 아버지가 계시잖아. 그게 두 번째 행운이야.”
“아!”
그제야 주장명이 아두를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표정 할 것 없어. 너도 곧 나처럼 웃게 될 테니까. 우리 의원님을 믿어.”
자신도 힘든 처지에서 이토록 자신에게 관심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아두.
그 따듯한 마음이 응어리진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말없이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주장명의 모습에 아두가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한편,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 사람이 있었다.
“그나마 내 어린 시절은 저 아이들에 비하면 행복했던 셈인가.”
초악량이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물론 그 역시 불행한 일을 겪긴 했지만 적어도 몸이 불편하거나 병 때문에 고통받은 적은 없었다.
그 말에 범계위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흥, 저게 뭐 그리 불쌍하다고…….”
“눈물이나 닦아라.”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가 버럭 했다.
“나 안 울거든?”
말없이 서 있던 한설화가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저 아이, 살 수 있겠지?”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의원이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 어떻게든 살려 줄 거야.”
“부디 그랬으면 좋겠구나.”
초악량이 안쓰러운 눈빛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서로를 의지해 힘들게 버텨 온 저 부자의 노력을 하늘이 알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날 저녁.
진료를 모두 마친 단악선이 장원 뒤뜰에 딸려 있는 별채로 향했다.
한동안 주씨 부자가 머물 임시 거처였다.
주장명은 매우 피곤했던지 벌써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도 혹시 깰지 몰라 단악선과 주초운은 정원을 거닐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며 치료 방안을 모색하길 한 시진 정도.
결국 의견을 한데 모아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제가 지닌 의술을 총동원해도 분명 한계가 있어요.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건 길어야 이 년. 그 안에 심장을 보조할 수 있는 내공을 쌓는 수밖에는 없어요.”
단악선의 말에 주초운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전 무공에 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게다가…….”
주초운이 말끝을 흐렸다.
진기를 이용해 혈류를 다스릴 수 있을 정도라면 상당한 수준의 내공이 필요할 터.
아무리 무공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해도 이 년 만에 그 정도의 내공을 쌓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읽은 단악선이 차분하게 말했다.
“물론 기존의 무공으로는 어려워요. 그런데 최근에 연구 중인 무공이 있어요. 다만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어요.”
위화신공을 통해 이미 상당한 내공을 쌓은 단악선이었다.
하지만 이는 워낙 기초가 잘 닦여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공을 익혀 본 적 없는 주장명이 위화신공을 익힐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
그럼에도 주초운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시도해야지요.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그럼 일단 쉬고 계세요. 저는 신마곡으로 돌아가 다른 분들과 상의를 해 볼게요.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분들이니 분명 기꺼이 허락하실 거예요. 그러니 마음 편히 쉬고 계세요.”
주초운의 배웅을 받으며 신마곡으로 돌아온 단악선은 곧장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 아이를 살리려면 위화신공을 전수해야 해요.”
예상대로 세 사람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능소밀도 익힌 마당에 한 명 더 늘어난다 해서 문제 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차피 익혀도 무공은 쓰지 못한다며?”
범계위의 질문에 단악선이 대답했다.
“어차피 심장을 보조하기 위한 목적이니까요.”
“그렇게라도 살릴 수 있다면 해야지. 어차피 위화신공 자체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 아니더냐.”
초악량의 말에 한설화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때 한편에서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능소밀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게 사제가 생기는 셈이군요?”
능소밀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자고로 사제는 굴려야 제맛…….”
갑자기 사방에서 날아드는 따가운 시선에 능소밀이 재빨리 말을 바꿨다.
“……이지만, 저는 다르지요. 최선을 다해 아끼고 보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그제야 누그러지는 세 사람의 눈빛에 능소밀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래서 농담도 자리를 봐 가며 해야 하는 것이다.
사무심이 한 가지 의견을 내놓은 것도 그때였다.
“그 아이의 아버지 말입니다. 주초운이라 했던가요? 그를 우리 의가의 정식 의원으로 고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정식 의원으로요?”
“어차피 그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서라도 우리 의가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아닙니까? 게다가 의술도 뛰어나다고 하니 지금처럼 환자가 몰리는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악선도 이내 수긍했다.
“오늘 대화를 나눠 보니 실력이 상당하셨어요. 기존의 의술에 치우쳐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긴 했지만요.”
반면 그만큼 자신의 의술에 대한 자부심과 그에 걸맞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범계위가 간단히 상황을 정리했다.
“잘됐네! 아들은 치료하고 아비는 의원하고!”
다른 사람도 모두 동의하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한번 여쭈어볼게요.”
* * *
날이 밝기 무섭게 의가로 향한 단악선은 어젯밤 신마곡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주초운에게 전달했다.
“제 아들만 살려 주신다면 제가 어찌 불구덩이라도 마다하겠습니까? 다만…….”
잠시 말끝을 흐리던 주초운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저는 여생을 이곳에 바치겠으나 제 아들에 한해서는 자유를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단악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부탁드립니다. 제 아들의 몫까지 제가 짊어지게 해 주십시오.”
거듭된 주초운의 애원에 단악선이 당황했다.
“우리 의가에는 그 어떤 제약도, 금제도 없어요. 저희 의가에 머무시는 것도 강제가 아니라 정식으로 초빙하는 것이고요. 대체 왜 그런 오해를 하신 거죠?”
이번엔 오히려 주초운이 당황했다.
“설마 의원님께서는 의원님만의 비전이 유출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으시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