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85)
신마의선-185화(185/500)
신마의선 (185)
단악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당연히 신경 쓰이고 걱정되죠. 명색이 저도 의원인걸요.”
“그렇다면 어째서…….”
주초운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인에게 자신만의 독문무공이 있듯 의원 역시 마찬가지.
자신이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단악선이 지닌 의술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아무런 제약도 두지 않는다니.
그래서 혹시나 싶어 다시 물어본 것인데, 이제는 또 신경 쓰이고 걱정된단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주초운은 충격을 받았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제 의술을 어설프게 따라 하려 한다면 환자들에게 득보다 실이 많을 거예요. 그러니 누구보다 경계해야죠. 온전치 않은 의술이 유출되면 그만큼 많은 폐해와 부작용이 따를 테니까요.”
자고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이다.
심오한 깨우침 없이 겉핥기식으로 어설프게 남용되는 의술은 오히려 더 큰 해악을 불러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의원님이라면 걱정 없어요.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제가 잘 알거든요.”
자신을 바라보는 단악선의 눈빛.
그 안에 담긴 믿음을 마주한 주초운은 일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제가 의원님의 의술을 어깨너머로 훔쳐 배워도 괜찮다는 말씀이십니까?”
“왜 어깨너머로 훔쳐 배워요? 제가 다 알려 드릴 텐데.”
“……!”
“의원님이라면 걱정 없어요. 의원님처럼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지닌 분이 그런 실수를 하실 리 없잖아요.”
주초운은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기를 잠시.
“그런……, 의미였습니까?”
단악선의 진의를 깨달은 주초운은 당혹감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했다.
애초에 단악선은 자신의 의술을 타인에게 전수하는 데 일말의 고민도 없었던 것이다.
‘순진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도통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단악선의 눈빛을 마주하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 파문처럼 번져 가는 깨달음이 있었다.
대지약우(大智若愚).
크게 지혜로운 자는 오히려 어리석어 보인다 했던가.
‘단순히 일개 의원으로 끝날 그릇이 아니구나!’
이 순간 주초운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군자불기(君子不器)와 대인호변(大人虎變), 이 여덟 글자였다.
군자는 그릇처럼 용도가 정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 군자불기.
나아갈 땐 나아가고, 머물러야 할 때에는 머무르며, 말을 해야 할 때에는 분명히 자신의 생각을 밝힐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때와 상황에 따라 가장 의롭고 적절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군자라는 의미였다.
나이를 떠나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긴.’
주위를 둘러보던 주초운이 내심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
거기에 사무심과 능소밀까지.
하나같이 대단한 사람들이 이토록 단악선을 아끼고 따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듣자니 아직 단악선의 나이는 고작 열다섯.
아직 앳된 티도 벗지 못한 지금도 이럴진대, 어른이 되어 자신의 뜻을 펼치게 되면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대인호변인가…….”
무심코 중얼거린 주초운의 말에 범계위가 초악량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초 형, 저게 무슨 뜻이유?”
범계위의 손을 탁 쳐 낸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면 털갈이를 마친 호랑이의 무늬가 더욱 짙어지지?”
“당연한 거 아니오? 지금까지 내가 처죽인 호랑이가 몇 마린데 그걸 모를까.”
범계위의 대답에 초악량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하던 설명은 마저 이어 갔다.
“그와 같이 대인(大人)은 천하를 혁신해 새롭게 바꾼다는 의미다.”
“오!”
탄성을 터트린 범계위가 주초운을 향해 흡족한 눈빛을 던졌다.
“사람 보는 눈이 제법인걸? 그러고 보니 저놈도 꽤나 괜찮은 의원 같구려.”
범계위의 너스레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그런 세 사람을 뒤로한 채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장명이도 완전히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때까지만이라도 이곳에서 저를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사실 주초운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아들을 살릴 유일한 방법은 단악선에게 의지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자신들을 위해 이곳에 머물 이유를 만들어 주는 단악선의 배려와 마음 씀씀이에 주초운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주초운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실 저 또한 바라던 일이었습니다. 의원 된 자로서 자신의 의술을 갈고닦을 기회를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다. 제 아들이 낫고 나서도 저는 의원님 곁에서 의술을 더 깊이 배우고 싶습니다.”
단악선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우리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해 봐요.”
그렇게 말한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침상에 누워 있는 주장명을 바라봤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환자 본인의 결정뿐이군요.”
이미 주초운과 단악선의 대화를 듣고 있었기에 주장명은 고민 없이 대답했다.
“할게요. 그게 최선이란 걸 저도 아니까요.”
그렇게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순간.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넌 건강해지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
주장명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전 의원이 될 거예요.”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에 주초운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꼭 건강해져서 여기 계신 단 의원님 같은 훌륭한 의원이 되어라.”
그런데 주장명이 뜻밖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주초운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
“전 아버지 같은 의원이 될 거예요. 그 어떤 역경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의원이요.”
울컥한 주초운이 격동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주장명이 다짐하듯 말했다.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제 유일한 꿈이었으니까요.”
“하아……. 녀석.”
주초운이 침상을 등지고 돌아섰다.
차마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부자를 바라봤다.
단악선이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향해 환한 미소를 건넸다.
“우리 식구가 되신 걸 환영해요.”
그날 밤.
환자들의 진료를 마무리한 단악선은 곧장 주씨 부자의 처소를 찾아왔다.
이왕 결정된 이상 하루라도 빨리 주장명에게 위화신공을 전수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공을 전수하는 자리에 제가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단악선을 따라 들어서는 범계위와 한설화를 보며 주초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록 강호인은 아니었지만 무공을 전수하는 과정에 타인의 참관이 금기시된다는 것 정도는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장명이를 가장 오래 봐 오신 분이잖아요.”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죠. 함께 논의하고 연구해 치료를 하려면 당연히 그 과정도 모두 알고 계셔야죠.”
“아!”
자신의 아들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공개하는 단악선의 진심에 주초운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반면 범계위와 한설화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떠올랐다.
단악선이 주장명에게 가부좌를 취하라 지시한 뒤 자신 역시 그 뒤에 가부좌를 틀었기 때문이다.
“네가 직접 전수하려고?”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우린 왜 데려온 거야?”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요.”
한설화가 범계위를 향해 핀잔을 던졌다.
“멍청이.”
“뭐?”
발끈하는 범계위를 향해 한설화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애초에 우리 두 사람의 진기를 바탕으로 위화신공을 익힐 수 있었던 건 단 의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
처음 단악선의 몸 상태를 살피던 당시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임독양맥은 말할 것도 없고, 생사현관 역시 이미 타통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기경팔맥과 십이경맥 역시 잘 닦여 있었다.
단악선을 임신했을 당시 모친인 마의는 일부러 영약들을 복용했다.
거기에 태어난 직후에는 벌모세수(伐毛洗髓)까지 받았다.
그런 완벽한 조건이 갖춰져 있었기에 두 사람의 진기를 무리 없이 받아들여 자신의 내력으로 녹여 융화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주장명은 그렇게 비범한 육체적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의 진기를 받아들였다간 가뜩이나 약해진 심장이 버텨 내질 못할 터.
그래서 무공을 전수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뭐야, 그런 거였어?”
범계위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자 단악선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가 발생하면 제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건 두 분뿐이에요.”
“그런 거라면 나만 믿어.”
한설화를 바라본 범계위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위화요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녀와 손을 맞대야 했기 때문이다.
내키지 않는 표정이 역력한 건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그래도 단악선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저 단악선이 말한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때 처소 밖에서 초악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해도 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호법은 초악량의 몫이었다.
이미 반경 삼십 장 안에 기감의 그물을 펼쳐 완벽한 감시망을 구축한 초악량이었다.
“고마워요, 초 아저씨.”
단악선이 주장명의 등 뒤, 명문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우선은 눈을 감고 몸 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기운을 느껴 봐.”
주장명이 단악선의 지시를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고개를 갸웃했다.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중해.”
“……!”
평소와는 다른 단악선의 음성에 주장명이 움찔했다.
그런 그에게 단악선이 다시 말했다.
“지금부터 네가 살고 죽는 건 오롯이 네게 달렸어. 그러니 명심해. 네가 실패하면 우리 모두가 실패하는 거야.”
그 말에 주장명이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의식을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주장명이 미미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착각인가 싶을 정도로 몸 안에 스며드는 희미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잡힐 듯 말 듯 지극히 미묘한 느낌이었다.
그때 단악선이 말했다.
“그거야.”
주장명은 의식적으로 더욱 정신을 집중해 그 정체 모를 기운을 쫓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미약하게 흘러들어 오는 기운이 점차 따듯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맞아. 그게 진기야. 이제부터 그 진기를 움직일 거야. 놀라지 말고 그 진기들이 머무는 위치와 순서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 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네가 완전히 기억할 때까지 계속 내가 뒤에 있을 테니 전혀 조바심 낼 것 없어.”
주장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위화신공을 운용해 진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오랜 시간 병을 앓아 온 주장명은 나이에 비해 너무 일찍 기맥이 굳어 있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길을 뚫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럼에도 단악선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운기행공을 도왔다.
진기가 막히면 우회하지 않고, 집요하고 끈질기게 정확하고 확실하게 길을 내며 나아가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으으…….”
주장명의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난생처음 겪는 낯선 고통 때문이었다.
닫혀 있던 기맥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진기로 인해 수반되는 고통은 그만큼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단악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주초운은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누가 봐도 이 순간 가장 힘든 사람이 단악선이라는 건 한눈에 봐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창백해진 안색은 말할 것도 없었고, 비처럼 쏟아지는 땀은 어느새 옷깃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번 시작한 이상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다.
위화신공과 의술을 함께 지닌, 오직 자신만이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등 뒤에 와 닿는 두 사람의 손이 느껴진 것도 동시였다.
내력이 고갈되기 직전.
범계위와 한설화가 나누어 준 진기가 새롭게 단전을 채웠다.
‘고마워요.’
비록 말로는 전할 수 없었으나, 두 사람의 도움에 힘입어 단악선은 얼마 남지 않은 고지를 향해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의 시간이 더 흘렀을 때.
“아!”
지금까지와 확연히 다른 탄성이 주장명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드디어…….
처음으로 일주천을 마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