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86)
신마의선-186화(186/500)
신마의선 (186)
“후우…….”
단악선의 입에서도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악전고투를 치른 듯 온통 땀범벅인 단악선의 얼굴.
이를 확인한 범계위가 걱정 가득한 눈빛을 던졌다.
“단 의원, 괜찮아?”
“두 분 덕분에요. 마지막 순간에 두 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말끝을 흐린 단악선이 애써 웃어 보였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면면부절 이어질 줄 알았던 진기가 바닥을 드러냈을 때는 정말이지 가슴이 철렁할 정도였다.
그래도 이를 통해 얻어 낸 것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주장명의 일주천을 도와주면서 기맥을 포함한 몸 상태를 더욱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름 큰 수확이었다.
몇 번의 심호흡으로 내기를 안정시킨 단악선이 주장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기가 움직이는 느낌과 순서를 기억했니?”
“어느 정도는요.”
“그럼 다시 한 번 해 볼까?”
“괜찮으시겠어요?”
염려 가득한 주장명의 눈빛에 단악선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길은 터 두었으니 처음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야.”
그때였다.
“흥!”
“쳇!”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한설화와 범계위가 손을 맞대고 있었다.
비록 서로를 마뜩지 않아 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를 향한 감정보다 단악선을 위하는 마음이 더욱 컸던 것이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위화요법을 운용하는 두 사람을 향해 단악선이 미소로 화답했다.
맞대지 않은 그들의 손이 단악선의 몸에 닿았다.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진기의 홍수.
그렇게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운기를 마친 단악선은 고갈되었던 내력이 완전히 회복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범계위와 한설화를 향해 감사의 눈빛을 건넨 단악선이 다시 한 번 주장명 뒤에 가부좌를 틀었다.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렇게 다섯 번째에 이르렀을 때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한 듯 일주천을 반복할 때마다 운기행공에 점차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장명이 눈을 뜨자 단악선이 말했다.
“이번엔 네 스스로 운기행공을 해 볼래?”
주장명이 잠시 머뭇거렸다.
단악선의 힘을 빌려 겨우 해낸 운기행공이었다.
오롯이 혼자의 힘만으로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단악선의 눈빛에 천천히 자신감을 찾았다.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단악선을 앞에 두고 언제까지 주저하고 있을 수 없었다.
주장명이 다시 가부좌를 튼 채로 눈을 감았다.
내부의 진기를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해 의식을 집중하고 있을 때, 단악선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를 믿어. 넌 이 세상 누구보다 용감한 아이니까.”
“……!”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워 오지 못했을 거야.”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는 법.
흔들릴지언정 결코 포기하지 않는 굳건한 의지.
어쩌면 그것이 주초운이 아들에게 물려준 가장 위대한 재산이 아닐까 싶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운명에 맞서 싸우는 건 비단 주장명뿐만이 아니었다.
그런 단악선의 응원 덕분이었을까.
주장명의 얼굴 위로 은은한 놀라움이 떠올랐다.
단전 깊숙한 곳에서 꿈틀대는 미약한 기운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깨어난 진기를 주장명은 집념으로 단단히 붙들었다.
그리고 방금 전의 기억을 되짚어 천천히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훌륭해.”
단악선의 칭찬에 주장명이 멋쩍게 웃었다.
비록 느리고 더뎠지만 본인만의 힘으로 일주천을 마쳐 낸 것이다.
한 차례 맥을 짚어 주장명의 몸 상태를 확인한 단악선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수련해. 나와 주 의원님도 노력하겠지만 치료의 성패는 오직 네게 달렸으니까.”
“최선을 다할게요.”
그렇게 위화신공을 전수한 단악선은 감사의 예를 표하는 주초운에게 마주 고개를 숙인 뒤 처소를 나섰다.
얼굴을 감싸는 시원한 밤바람이 더없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모처럼 호젓한 달밤을 만끽하는 단악선 옆으로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나란히 서서 달빛을 감상하고 있을 때.
주장명의 상태를 확인한 주초운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어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벅찬 마음에 말을 잇지 못하는 주초운을 돌아보며 단악선이 웃었다.
“좋은 밤이죠?”
달빛보다 환한 미소였다.
주초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달을 올려다봤다.
“네, 더없이 좋은 밤이군요.”
주초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앞으로 제 능력을 벗어난 환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제가 맡겠습니다.”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에는 환자가 너무 많아요.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에요.”
그러나 주초운은 물러서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선택과 집중이요?”
“네. 단 의원님께서는 중증의 환자를 집중으로 치료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당장은 시간에 쫓겨 온전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 아닙니까? 그만큼 안타깝고 아쉬운 상황이 늘어날 텐데요.”
“그건…….”
단악선도 차마 부정할 수 없었기에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실제로 주초운이 언급한 부분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당장만 해도 가까이 두고 경과를 관찰해야 하는 환자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입원실을 마련하고 지속적인 치료를 병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력과 시간의 여유가 없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
어쩔 수 없이 중증의 환자들은 근처 객잔과 의가를 매일같이 오가야만 했다.
그렇다고 조추운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엔 그가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벅차다.
“저도 솔직히 두려워요. 이러다 자칫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놓치게 될까 봐서요.”
단악선이 솔직하게 심경을 밝히자 주초운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걱정으로만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잠시 시간을 두고 이어진 주초운의 말에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돌이킬 수가 없겠지요.”
단악선이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를 이어 의가를 운영해 온 주초운이었기에 어쩌면 답을 알지도 몰랐다.
그리고 역시나.
“결국 환자가 많아 생긴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두 가지 해결책이 있지요.”
“두 가지나요?”
주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치료 비용을 높이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증상이 가벼운 환자는 저렴한 의원을 찾아갈 것이고, 자연히 환자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건 안 돼요!”
단악선이 정색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주초운이 빙그레 웃더니 다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다른 방안은 의원의 숫자를 늘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대형 의가들이 의원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
빈부의 격차로 환자를 차별하고 싶지 않았기에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의원의 숫자를 늘린다라…….”
나직이 그 말을 되뇌는 단악선을 향해 주초운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묘막측한 방법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원래 진리는 단순한 법이잖아요.”
당장 진성의가만 해도 열 명이 넘는 의원이 풍진성을 보조하고 있었다.
거기에 의원들마다 거느린 수습 의원만 해도 스무 명에 달한다.
문제는 당장 의원들을 불러 모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분들의 지혜를 빌려야겠어요.”
“누구?”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던 범계위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 총관님과 능 단주님이요.”
“하긴. 잔머리 굴리는 잡기는 녀석들만 한 적임자가 없지.”
범계위가 어딘가를 향해 전음을 날렸다.
잠시 후 사무심과 능소밀이 날 듯이 달려왔다.
이미 잠자리에 든 직후였던지 편한 복장이었다.
“부르셨습니까.”
한참 달게 자다 깨서 불만스러울 법한데도 사무심은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반면 능소밀은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비몽사몽 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단악선의 고민을 듣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냈다.
“차라리 이참에 공고를 내시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지자 능소밀이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신마상단의 상권이 뻗어 나간 지역이 적지 않습니다. 상단의 연락책을 총동원한다면 늦어도 한 달 안에 전 중원에 의원을 구한다는 공고문을 내걸 수 있습니다.”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이며 능소밀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의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료비가 저렴하다 하나 의가 자체의 수입이 적지 않으니까요. 중증의 환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꽤 크지만 그 이상으로 경증의 환자들이 많아 의원들을 고용하는 비용은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환자들 대다수가 돌아갈 때 신마단은 빼놓지 않고 구입하는지라 그에 따른 수입도 상당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곡주님께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이른바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상황이 만들어졌지요.”
그 말에 초악량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만큼 단 의원이 자신을 갈아 넣어 가능했던 게지.”
범계위와 한설화도 초악량의 말에 수긍했다.
사무심 역시 민망했던지 어색하게 웃었다.
“덕분에 의원들을 고용할 여유가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이때 주초운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의 의견은 타당해 보이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의아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주초운이 설명을 이어 갔다.
“우선은 고용한 의원들 대부분이 단 의원님께서 기대하는 실력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는 점입니다.”
당장 진성의가에서 이곳으로 파견된 젊은 의원들만 해도 나름 세간에서는 뛰어난 의술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래도 단악선의 기준에는 아직도 한참이나 밑도는 상태.
그나마 주초운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고 환자를 맡길 수 있었다.
“새로 고용한 의원들을 단 의원님의 눈높이에 맞게 성장시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아무리 빨라도 일이 년 가지고는 부족하겠지요. 어쩌면 환자를 돌보는 시간보다 그들을 가르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으음…….”
단악선이 침음했다.
주초운의 말대로였다.
애초에 의원들을 구하는 이유가 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는데, 그리된다면 본말전도(本末顚倒).
그야말로 주객이 바뀌는 셈이다.
“게다가 두 번째 문제는…….”
주초운이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실력이 뛰어난 의원들은 돈으로 움직이는 게 어렵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주초운은 중원을 떠돌며 수많은 의원들을 만나 왔다.
그중에는 상당한 실력을 지닌 의원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몇 명은 가세가 기울어 당장 내일 먹을 식량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실력이 있어도 명성과 역사를 지닌 인근의 의가에 밀려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의원들이었다.
어느 의가에서도 환영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의원들.
그런데도 그들이 그렇게 궁핍한 생활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자존심이었다.
당장 주초운 자신만 해도 그랬다.
단악선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선선히 신마의가에 남을 것을 약조하지 않았을 터.
그만큼 의원들의 자부심과 고집은 대단했고, 실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강했다.
그때였다.
“흐흐.”
한 줄기 웃음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에 모아졌다.
그 시선들의 중심에 서 있던 범계위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의원들만 있으면 된다는 거지?”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히죽 웃었다.
“나만 믿어, 단 의원. 내가 해결해 줄게.”